‘식민 모국’ 포르투갈의 ‘새 희망’ 앙골라
석유 수출로 7% 성장을 이룩한 앙골라는 예전에 자국을 지배했던 식민 지배자 포르투갈을 도와주는 처지가 되었다. 경제위기 속에서 포르투갈은 아프리카 투자자들을 끌어모으고, 앙골라는 포르투갈 사람들을 자국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단기 경제 동향을 넘어서, 앙골라와 포르투갈의 경제 주역들은 지속적인 관계를 모색하고 있다.
사하라사막 이남의 아프리카 국가 중 경제력 면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과 나이지리아에 이어 3위인 앙골라는 신흥강국으로 주목받고 있다.(1) 탄화수소 매장량이 상당한데다 탐사 전망도 밝은- 이미 탐사가 시작된 풍부한 브라질 분지의 지질학적 연장선상에 있다- 아프리카 주요 석유생산국 중 하나다. 2008년 이후 1일 평균 180만 배럴을 생산하고 있다. 수십 년간의 내전(2) 끝에 국가적 화해가 이루어지면서 정치적 안정을 찾아 해외 투자자들도 마음에 들어 한다. 더욱 예기치 못한 것은, 예전에 앙골라를 식민지로 삼아 지배하던 포르투갈이 현재 강력한 긴축재정을 펴면서 앙골라에 구애의 제스처를 보내고 있다. 페드루 파수스 코엘류 포르투갈 총리는 지난해 11월 앙골라를 방문하면서 "포르투갈은 앙골라 자본을 환영한다"고 말했다.
앙골라의 신흥 부르주아층이 예전 그들의 지배국이던 포르투갈의 부동산 투자에 열광한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일이다. 이들의 투자가 포르투갈 부동산 가격 상승에 기여했을 것이다. 이제는 중요 은행그룹과 에너지그룹 주식에 앙골라 자본이 대량 유입되고 있는데, 액수는 20억 달러로 달리 말하면 전체 주가 총액의 4%에 해당한다. 앙골라와 포르투갈의 은행은 서로 얽히고설켜 정확한 수치 계산이 어렵다. 이런 변화의 중심에는 앙골라 석유회사 소난골(Sonangol)이 자리잡고 있다. 소난골은 모든 분야를 통틀어 2010년 아프리카 기업 중 2위에 오른 기업이다.
포르투갈을 향한 자본 이동은 2008년 이후 뚜렷해졌다. 소난골은 그때부터 포르투갈 제1의 민영은행 밀레니엄 BCP의 최대주주가 되었다. 조제 에두아르두 두스산투스 앙골라 대통령의 장녀 이사벨 두스산투스가 보유한 금융사 산토로 역시 주식거래에 참여하고 있다. 산토로와 소나골이 만든 컨소시엄 에스페란자는 포르투갈 그룹 아메리코 아모림 에너지의 지분 45%를 보유하고, 포르투갈 국영 석유회사인 갈프(GALP)의 지분 33.3%를 갖고 있다. 앙골라의 민영은행, 그중에서도 무역산업은행(BIC)과 애틀랜틱은행이 포르투갈에 지사를 개설한 것은 새로운 현상이다.
몇 년 만에 앙골라의 은행 부문 판도는 많이 바뀌었다. 1993년 경제자유화 직후 리스본에 자리잡은 포르투갈 그룹 에스피리토 산토는, 정권과 긴밀한 협력관계를 맺으며 개척자 역할을 했다. 두스산토스 대통령의 부인이 과반의 지분을 소유한 이동전화기 업체 유니텔은 포르투갈 통신사들과 제휴하고, 2010년 가입자 수를 600만 명으로 늘리며 눈부시게 성장했다.
포르투갈로 이동하는 앙골라 자본
2009년 3월 두스산투스 대통령이 포르투갈을 방문했을 때 수많은 기업가들이 리스본의 리츠 호텔에 집결해 앙골라와 포르투갈의 경제·금융 관계를 더욱 긴밀히 할 방안을 토의했다. "대륙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기업가 중 한 명"(3)으로 소개된 마누엘 도밍고 비센체 소나골 회장은 "포르투갈에 대한 우리의 도전은 실제적이고 지속적"이라고 공언했다. 얼마 전부터 그는 두스산투스의 후계자로 여겨지고 있다. 포르투갈 방문의 여세를 몰아, 중공업과 인프라 발전을 촉진하기 위해 포르투갈 예금기금과 소나골이 제휴해 앙골라에 본사를 둔 투자 은행이 설립됐다.
국제 금융위기가 포르투갈 은행들의 기세에 제동을 걸었다. 은행들은 막대한 손해를 입었고 해외 주주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소나골은 이에 낙담하지 않고 밀레니엄 BCP의 자본 구성을 재편하는 데 지원했고, 브라질 은행과 중국 은행을 이 작업에 동참시켰다. '그리스 채권에 편중된' 밀레니엄 BCP는 2011년 회계연도에 7억8600만 유로를 손실했다. 반면 모잠비크와 앙골라 지사들은 50% 성장을 기록했다.
국제통화기금(IMF)에서 관리의 불투명성을 정기적으로 지적받는 소나골은 마치 국가 속의 국가처럼 행동한다. 소나골 그룹 전체와 함께 직접 관리하는 기금이 설립돼 경제 모든 분야에 진출해 있는 22개 기업체가 공공연하게 정부를 대신한다. 중국 민영기업인 홍콩 차이나 인터내셔널 펀드와 제휴·협력하면서 아프리카 석유회사 소나골의 활동은 다양해졌다. 단독으로 또는 아시아 파트너와 함께 소나골은 수많은 아프리카 국가와 남미(쿠바·에콰도르· 베네수엘라), 중동에 진출해 있다.
앙골라 전략가들은 포르투갈을 앙골라 국제화의 이상적인 도약의 발판으로 생각한다. 그들은 때로 정복지에서와 마찬가지로 행동한다. 그들의 태도에 복수 감정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포르투갈 기업가들은 이런 관계에서 다양한 이점을 끌어낸다. 포르투갈이 심각한 경기 후퇴를 겪는 이때, 재건 발전 현장에 투입되는 앙골라 자금은 그들에게 큰 행운이다.
앙골라에 진출해 있는 532개 해외 기업- 이들이 국내총생산(GDP)의 40%를 장악하고 있다- 중에서 38%가 포르투갈 기업이다(중국 기업은 18.8%). 포르투갈의 실업률은 13%에 달해, 앙골라의 엘도라도에 1만여 명의 노동자가 모여든다. 그들 모두가 고급 숙련공은 아니다. 이 현상에 대해 앙골라도 우려한다. 앙골라는 자국 청년들의 일자리가 부족하다고 비판한다. 2003년 2만1천 명이던 앙골라 거주 포르투갈인 수가 2011년에는 10만 명을 훌쩍 넘어섰다. 앙골라 영사관에 따르면, 실제 앙골라에 거주하는 포르투갈인은 그 배가 넘는다고 한다. 반면 포르투갈에 사는 앙골라인 수는 줄어들고 있다. 이제 희망은 남반구에 있다.
글•아우구스타 콘치글리아 Augusta Conchiglia 언론인
번역•김계영 canari62@ilemonde.com 파리4대학 불문학 박사. 저서와 역서로 <청소년을 위한 서양문화사>(2006), <키는 권력이다>(2008) 등이 있다.
(1) ‘전후 앙골라의 검은 황금’,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8년 5월호 참조.
(2) 1975년 11월 앙골라 독립 직후부터 내전이 발발했다. 앙골라 독립운동을 주도한 앙골라인민해방운동(MPLA)과 앙골라전면독립연합(UNITA)이 냉전 체제 속에서 권력 싸움을 벌였다.
(3) <렉스프레소>, 리스본, 2008년 3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