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롱의 프랑스군에서 민주화는 헛된 꿈

2023-10-31     알랑 포플라르 l 중등 교사

프랑스는 오랫동안 냉전 종식과 핵 억지력의 효율성을 내세워 군대의 인적·물적 자원 감축을 정당화했다. 그러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상황이 달라졌다. 유럽의 대대적인 재무장 움직임에 동참하면서 서민층 청년들을 상대로 병영 생활의 교육적 미덕을 찬양하는 것만으로 프랑스가 지정학적 야심을 되찾을 수 있을까?

 

퇴역 해군 장교인 역사학자 미셸 고야는 프랑스가 60년간 32번의 대규모 군사 원정과 “100여 차례의 소규모 작전”(1)에 참여했다고 기술했다. 이 통계에 따르면 프랑스는 파견 규모에서 월등히 앞선 미국의 뒤를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해외 파병을 많이 한 국가다. 고야는 “프랑스는 전 세계에서 파병 요청을 가장 많이 받는 국가”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프랑스군은 국내에서도 많은 임무를 수행한다. 대테러 감시를 담당하는 상티넬(Sentinelle) 부대가 대표적인 예다. 이 부대에 할당된 병력은 전체 육군의 10%에 해당하는 1만여 명에 달한다.(2)

“프랑스의 작은 세계 대전”과 점점 더 흐려지는 국방과 안보의 경계에도 불구하고 프랑스군에 할당된 자원은 감소했다. 2023년 7월 13일, 우크라이나 전쟁이 한창인 가운데 프랑스는 2024~2030 군사계획법을 채택했다. 프랑스 행정부는 이 법이 상황을 역전시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병력 회복에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장기적인 예산 삭감으로 프랑스군의 병력 수는 1991년 45만 3,000명에서 2023년 20만 3,000명으로 줄어들었다. 예비군 역시 42만 명에서 4만 1,000명으로 감소했다. 국가의 관심에서 멀어진 프랑스군이 현재 프랑스 전체 공무원 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80년 대비 3배나 줄어든 4%에 불과하다. 

1960년대, 프랑스는 ‘핵 억지력’ 독트린을 채택하고 군대의 ‘구조조정’에 나섰다. 이후 냉전이 종식되자 프랑스는 병력 감축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1989년, 장피에르 슈벤느망 국방장관은 ‘프랑스군 2000’ 계획을 발표하고 육·해·공군 및 헌병대 국내 사령부 23곳을 폐쇄 및 축소했다. 슈벤느망의 후임 피에르 족스 장관은 더 큰 규모의 감축을 단행했다. 당시 프랑스 하원의장 로랑 파비위스는 “평화의 배당금”을 수령 할 때가 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전쟁은 계속됐다. 걸프전(1990~1991년)에서 코소보 전쟁(1998~1999년)을 거치는 동안 이제 공군의 “정밀한” 원격 작전이 전쟁의 승리를 좌우하게 됐다.

영토 방어와 전투군단의 시대는 저물었다. 국제 위기관리 컨설턴트 스테판 오드랑은 “적은 인적·물적 자원으로 독트린에 부합하는 신속하고 효율적인 작전”을 펼치도록 설계된 신속대응부대가 각광받는 시대가 열렸다고 설명했다. 신속대응부대는 대외 작전에 가장 먼저 투입되는 부대가 됐다. 이 부대의 지휘관들은 진급 속도도 빠르다. 전문가들은 “제한된 사고의 틀에 갇힌” 장교들이 국가 최고 지도층을 차지했다고 평가했다. 이들은 반란 억제 및 대테러전에는 열을 올리지만 “전차, 철도 병참, 예비군은 불신”한다. 세계무대에서 존재감을 뽐내면서도 인명 손실 제한과 지출 삭감을 원하는 프랑스 정계에 이상적인 사고방식이 아닐 수 없다.

1996년 장이브 엘메르가 청장으로 부임하면서 프랑스 국방조달청(DGA)도 이런 독트린 변화에 동참했다. 이공계 출신으로 PSA 푸조·시트로앵 그룹(2021년 스텔란티스 그룹으로 통합)의 2인자라는 경력을 가진 엘메르는 “비용과의 전쟁”을 벌였다. 1991~2021년, 프랑스군이 보유한 전차 수는 1,349에서 222대, 대형 수상함(surface vessel) 수는 41척에서 19척, 전투기 수는 686대에서 254대로 감소했다.(3) 장사정포, 지대공 미사일 방어체계 및 공병부대는 감축의 칼날을 피해갔다. 의무(醫務), 정비, 병참은 종종 외부에 위탁됐다. 프랑스군은 전문성을 잃어갔다. 방위 산업을 민영화한 프랑스는 국내 수요 충족보다 무기 수출에 열중했다. 그사이 프랑스 전역의 방산 공장이 문을 닫았다. 브레스트의 해군기지에서 생테티엔의 ‘무기제조공장’에 이르기까지, 방산 노동자들은 파업으로 맞섰지만 국가 고용 노동자 수 급감, 전략적 생산 시설 폐쇄, 경제 논리에 근거한 국가의 독립성 침해를 막을 수 없었다. 

 

군인의 정치적 결사를 금지하는 ‘군인신분법’

이처럼 대폭적인 구조조정을 겪은 공공부문은 거의 없었다. 사회당(PS)은 집권당일 시절 병력 감축에 동조했다.(4) 방산 노동자들의 영향력이 미미했던 노동운동 역시 이를 용인하거나 방관했다. 전체 군인의 3/4을 차지하는 현역 군인에 비해 6만 3,000명에 불과한 민간인 노동자의 목소리는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프랑스는 상대적으로 늦은 1945년 8월 군인의 투표권을 보장했지만 1972년 7월 13일 제정된 군인 신분법은 군인의 정치적 “결사”를 여전히 금지했다. 이 법은 또한 노동조합 성격의 직업단체 결성도 금지하기 때문에 군인들은 12개의 국립 군인단체 중 한 곳에만 가입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프랑스군의 정치적 성향은 우파로 기울었다. 조합주의가 지배하는 경찰의 경우에서 알 수 있듯 군인노조를 결성한다고 해서 노동운동과의 극명한 단절을 해소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군인들이 좌파에서 멀어진 이유는 총체적인 법규범보다 사회·문화적 경향 때문이다. 2022년, 프랑스 대선 1차 투표에서 군인들은 전국 평균보다 20%포인트 높은 극우지지 투표율을 보였다. 군부대가 있는 소도시 오손(코트도르주), 마이유르캉(오브주), 쉬프(마른주)에서 마린 르펜 후보와 에리크 제무르 후보는 각각 (전국 평균 득표율 30.22%보다 높은) 39.56%, 54.99%, 55.31%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좌파는 비록 군대의 지지를 얻지는 못했지만 국가와 국민의 주권이 달린 문제임을 인식하고 전쟁과 평화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한 시기가 있었다. 이때 좌파는 비용 절감 논리에서 탈피한 시각을 추구했으며 군사 전문가들에게 전적으로 의지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독트린을 확립했다. 장 조레스는 『새로운 군대(Armée nouvelle)』를 집필했다. 레온 트로츠키는 붉은 군대를 창설했다. 진보주의자들은 민족해방전쟁에 대한 열띤 논쟁을 벌였다. 드레퓌스 사건과 1920년대를 겪은 후 1968~16981년 다시 불거진 반군국주의도 진보주의자들의 논쟁에 불을 지폈다.

징집병 1만 5,000명이 사망한 알제리 전쟁 이후 1968년 프랑스는 68혁명에 휩싸였다. 이를 배경으로 역사학자 막심 로네가 “혁명적 반군국주의”로 묘사한 운동이 시작됐다.(5) 무정부주의자들과 트로츠키주의자들이 주축이 된 이 운동은 군인위원회 설립, 징집병 시위, 군인수첩 반납, 병역 거부, 명령 불복종 등 다양한 형태를 띠었다. 이런 항거 운동은 국제 정세의 영향으로 더욱 거세졌다. 베트남 전쟁(1955~1975), 칠레 쿠데타(1973), 그리스 군사독재(1967~1974)등의 사태는 국가 기관으로서의 군대에 대한 불신을 키웠다. <크로스앙레르(Crosse en l’air)>, <르콜루주(le Col rouge)> 등의 병영 신문도 군대에 대한 불신을 반영했다. 

1973년 봄, (학업 중 군 복무 유예를 철폐한) 일명 ‘드브레법’에 항의하는 청년 시위로 군대에 대한 반감은 더욱 확산됐다. 이미 핵무기를 보유한 상황에서 징집제는 존재 이유를 상실한 듯했다. 식민지 전쟁도 끝났으며 세계는 ‘긴장 완화’ 단계에 접어들었다. 병영 생활의 물질적으로 열악한 조건, 불편함, 지루함에 비난이 쏟아졌다. 군사기지 확장에 반대하는 시위도 이 시기에 시작됐다. 1971~1981년, 각계각층의 운동가들은 라르자크에 모여 군사기지 확장 반대 시위를 벌였다. 

 

“군대를 민주화할 수 있다는 주장은 헛된 꿈”

이로부터 반세기가 지난 지금, ‘권력과 권력의 군대’에 이의를 제기하는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나탈리 아르토 노동자투쟁당(LO) 대표는 “군국주의는 군비증강을 조장하고 국민 의식을 이데올로기적으로 조작한다. 군대의 유형과 상관없이 ‘국방’은 결코 노동자 권익 보호와 동일시될 수 없다. 부르주아 국가의 틀 안에서 군대를 민주화할 수 있다는 주장은 헛된 꿈이다. 문제는 군대의 사회적 구성이 아니라 정치의식이다”라고 성토했다.

2019년, 프랑스 노동총연맹(CGT) 소속 항만 노동자들은 프랑스가 사우디아라비아로 수출하는 무기의 선적을 거부했다. 하지만 이제 노동운동은 경찰의 폭력과 군대화를 겨냥하고 있다. 군대가 질서 유지를 담당했던 시절 푸르미 학살(1891년)과 드라베이 학살(1908년)을 규탄했던 시위와 같은 맥락이다. 군대는 현재 좋은 이미지를 유지하고 있다. 2017년, 외인부대 제13연대가 라르자크 고원에 들어섰을 때, 이에 반대한 시위대는 100여 명에 불과했다. 일자리 창출과 탁아소, 중학교, 보건소 설립 약속 앞에 군사기지 확장 반대운동 단체 가르다렘 로 라르자크(Gardarem Lo Larzac)의 주장은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2001년 부로) 징집제를 중단한 1996년 2월 22일 법은 정치의식을 약화시켰다. 군사법원과 국가보안법원 폐지에 이어 징집제도 중단되자 군대는 “보편적 사회적 사실”로서의 지위를 상실했다.(6) 국방에 관한 정치적 합의 형성에 일조한 일련의 독트린 재조정도 군대 축소 움직임에 영향을 미쳤다. 프랑스 공산당(PCF)은 카나파 보고서가 발표된 1977년 이후 핵 억지력을 지지했다. 장피에르 슈벤느망이 세운 사회주의 연구조사교육원(CERES) 회원들과 샤를 에르뉘의 노력으로 사회당(PS) 역시 1978년부터 이 독트린을 받아들였다. 독일 사회민주당이나 영국 노동당은 핵 억지력에 반대했다. 국방부 내에서도 오랫동안 소수 의견에 머물렀던 독트린을 선택한 프랑스는 사회 인터내셔널 내부에서 고립됐다. 

반면, 환경보호정당들은 핵 억지력에 반대하는 입장을 유지했다. 제라르 레비 평화·군축위원회 공동의장은 “프랑스의 핵무기금지조약(TPNW) 가입에 동의한다. 이 조약의 1조는 핵무기의 사용, 개발, 생산, 시험, 배치, 비축 및 사용 위협을 금지한다. 적어도 이 점에 대해서는 유럽생태녹색당(EELV)도 전적으로 동의한다”라고 밝혔다. 1984년 창당대회부터 녹색당에 몸담은 레비 공동의장은 녹색당이 자유주의와 비폭력 전통을 망각한 채 최근의 군사 예산 확충에 반대하지 않은 점에 유감을 표했다. “군비 확충은 핵 억지력을 강화할 것이다. 이는 프랑스가 비준한 핵확산금지조약(NPT) 6조에 어긋난다. 이 수십억 유로를 시민 안전 강화나 가뭄 및 화재와 같은 중대 재해 예방에 필요한 병원선 혹은 소방 비행기 구매에 쓴다면 훨씬 더 이로울 것이다.”

레비 공동의장은 또한 환경보호론자들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지지하는 상황을 개탄했다. “평화·군축위원회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반대하는 소수 세력이다. 반면, 많은 녹색당원들은 비록 세계 녹색당 헌장에 위배되더라도 전쟁으로 전쟁을 해결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유럽의회에서 독일 녹색당(Grünen)과 구소련 국가들의 녹색당 노선에 동조하는 프랑스 녹색당 의원들을 보라. 야니크 자도는 심지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조차 언급한 적 없는 전투기 지원을 촉구한다.”(7)

 

‘전쟁 정당’의 등장, 군대의 전문화와 관련

우리는 이미 1980년대 차드 사태를 겪으며 “마침내 냉혈한 권력을 획득하고, 타베르니의 사회당 고문 역할을 맡고, 대통령 핵 대피소에서 달팽이 요리를 맛볼 수 있게 된” 기쁨에 도취된 자들을 목격했다. 기 오깽겜은 이들을 “술집 전략가”로 불렀다.(8) 하지만 코소보 전쟁을 전환점으로 ‘군인-지식인 복합체’가 형성됐다.(9) 레비 공동의장은 “1999년, 유럽의회 선거에서 가장 당선이 유력한 후보였던 다니엘 콩방디는 녹색당이 구유고슬라비아에 대한 폭격을 지지하지 않으면 후보에서 사퇴하겠다고 위협했다. 녹색당은 결국 내정간섭권을 용인했다.”라고 회고했다. 당시 <르 누벨 옵세르바퇴르(Le Nouvel Observateur)>, <리베라시옹(Libération)>, <텔레라마(Télérama)>, <샤를리 에브도(Charlie Hebdo)>도 전쟁을 열렬히 지지했다. 이처럼 열띤 호전론은 프랑스에 국한되지 않고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의 노동당, 독일 요슈카 피셔 부총리의 녹색당까지 휩쓸었다. 

공산당과 공산당 연계 단체 평화운동(Mouvement de la Paix)의 붕괴와 맞물린 ‘전쟁 정당’의 등장 역시 군대의 전문화와 무관하지 않다. 국방·군사위원회에서 활동 중인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LFI) 소속 오렐리앙 생툴 의원은 “병역의무 폐지로 국방에 대한 민주적 토론이 상당히 약화됐다”라고 설명했다. 전쟁과 평화에 대한 최종 결정권을 행정부가 쥐고 있고 국민은 이 결정에 복종해야 하는 제5공화국 체제에서는 재량권을 가진 기관과 오만한 부르주아 계층이 강화됐다. 

 

프랑스 병역은 불평등한 의무

부르주아 계층은 전장이나 노동 현장에서 죽어가는 이들에게 관심이 없으며 국제 문제도 개의치 않는다. 예를 들어 부르주아들은 “따지길 좋아하는 이들, 힘 앞에 굴복하는 이들, 병역을 기피하는 이들, 겁을 먹고 항복하는 이들”을 맹렬히 꾸짖으며 “각자 있어야 할 곳에 있을 때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라고 주장한다. 즉, 부르주아가 있어야 할 곳은 “기관총 앞이 아니라 키보드 앞”이라는 논리다.(10)

징병제 중단 이전부터 이미 병역은 불평등한 의무였다. ‘공화국의 용광로’는 신화에 불과했다. 청년층의 1/4을 차지하는 고학력자들은 민간 복무로 대체가능한 3가지 병역 형태 중 하나를 선택했다. 이제 청년층은 완전히 분리됐다. 입대를 선택하는 이들은 주로 서민층이다. 탈산업화와 실업에 직면한 교외 빈곤 지역과 쇠락의 길을 걷는 농촌 지역 청년들에게 군대는 사회학자 브누아 코카르의 표현처럼 “지방에 머물면서도 국가 공무원이 될 수 있는 길” 중 하나다. “현지 경제는 ‘이곳’에서의 미래를 보장하지 못한다는 생각을 품게 된” 프랑스령 해외 영토 청년들에게도 마찬가지다.(11) 매년 육군 신병의 약 10%는 ‘주권방어군’ 사전 배치 지역인 앤틸리스 제도, 인도양 또는 오세아니아 출신이 차지하고 있다. 1961년부터 맞춤형 병역제도(SMA)를 시행 중인 이 지역들은 청년 6,000명에게 직업 훈련을 제공하고 있다.

생툴 의원은 “많은 이들이 국방에 별다른 관심이 없는 상태로 국방을 당연시한다”고 설명하며 “사람들은 기껏해야 군대를 서비스 제공자로 여기며 해외 파병에 무관심하다. 그러나 시민의 참여 없이 특정 계급 혹은 이익집단이 군대를 좌우한다면 국민주권은 존재할 수 없다”라고 덧붙였다. 의회를 더욱 존중하는 제6공화국으로의 전환과 국립방산기지 설립과 함께 LFI는 9개월간의 시민 복무제를 제안했다. 25세 미만 모든 남녀를 대상으로 하는 이 제도는 최저임금(SMIC) 수준의 월급을 지급하며 병영 생활을 할 필요 없이 거주지 근처에서 복무가 가능하다. (양심적 병역 거부권 행사가 가능한) 초기 군사 교육을 마친 후에는 공익 임무를 수행한다. 생툴 의원은 이 제도의 목표는 “장 조레스의 사상을 계승한 공화국 군대의 전통을 되살려” 시민 의식 약화를 방지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런 형태의 징병제로 강한 군대를 보유한 국가를 건설하기에는 갈 길이 멀다. 좌파의 뇌리에서 시민 병사와 발미 전투의 기억은 사라졌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추구하는 SNU와 강력한 군대 건설과의 간극은 더욱 크다. 마크롱은 SNU에서 “전쟁 준비라는 군대의 궁극적 목적성”(12)은 배제하고 제복 착용, 깃발 게양, 행진 등의 군대식 의례만 차용했다. 현재 연간 3만 2,000명이 SNU에 자원하고 있다. 이 중 40%는 경찰, 군인 혹은 소방관의 자녀다. 이들은 15~17세 청소년으로 거주지 외의 지역에서 12일간 “결속력 강화 훈련”을 받은 후 같은 해에 12일간 ‘공익 임무’를 수행한다. 2021년 SNU를 거친 청소년 50%는 제복을 착용하는 기관을 선택했다. 마지막 단계는 최소 3개월~1년 사이에서 선택한 기간 동안 시민봉사 활동을 하거나 헌병대에서 근무하는 것이다.

2024년 3월부터 SNU의 적용 범위는 확대될 예정이다. 사라 엘 아이리 전 청소년·SNU 담당 차관은 이제 고등학교 과정에 해당하는 전문 기술 자격증(CAP) 과정 1·2학년 학생도 SNU 대상이 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수업 시간에 진행되는 이 “교육 과정”에 참여하면 “(파르쿠르쉽(Parcoursup, 프랑스 대학 입학 지원 온라인 플랫폼-역주)의 알고리즘 계산에 합산되는 점수를 획득”할 수 있다.(13) 

좌파 단체들은 ‘SNU에 반대하는 모임(Non au SNU)’, ‘청년·시민·해방’이라는 두 그룹으로 집결해 아이리 차관의 계획에 반대했다. CGT는 “청년의 군사화”라며 비난했으며 고등학생연합(MNL)은 “노동법 철폐를 향한 일보전진”으로 매도하며 “청년 견습생(인턴)들이 정규직 노동자에 준하는 노동을 주 35시간 이상, 무보수로 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14) 전국중등교사노조(Snes-FSU)는 SNU로 인해 “학교가 국가의 미래를 건설하는 대표 기관의 지위를 상실”했으며 특히 SNU의 결속력 강화 훈련은 수업 일수를 침해한다고 개탄했다.(15) 인권연맹(LDH), EELV, 전국노동조합총연맹(CNT), 사상의자유연맹 역시 국방부와 교육부의 “야만적 결합”을 규탄했다.(16)

 

공공영역의 군사화는 권위주의적 신자유주의

군대와 학교 간 연계를 강화하는 SNU의 목표는 현역 및 예비역 신병 모집 확대다. 나아가, 군대에 ‘사회적 역할’을 부여하는 것이다. 역사학자 베네딕트 셰롱이 지적했듯, 알제리 전쟁 직후 지배계급은 군대에 군사적 역할 외에 ‘사회적 역할’을 부여하고자 계속 노력했다.(17) 걷잡을 수 없는 사회와 재난의 시대일수록 사람들은 군대에 더욱 의지하고, 군대화된 사회를 피난처로 여긴다. 사회 전체가 혼란에 빠지면 전직 참모총장이 작가로 성공하고 레지옹도뇌르 훈장 수여자가 인플루언서로 등극하거나 생존주의 같은 사회 쇠퇴기적 관행이 나타난다. 

공공 영역의 군사화는 권위주의적 신자유주의의 도래를 의미한다. (테러, 바이러스와의) 전쟁은 통치의 한 방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군사 엘리트와 경제 엘리트 사이의 경계가 점점 더 빨리 허물어지고 있다. 역사학자 크리스토프 샤를은 “간전기(1·2차 대전 사이) 이후, 모든 고위 공무원을 통틀어 고위 장교들의 민간분야 전향이 가장 크게 증가했다”라고 설명했다.(18) 한편 피에르 드 빌리에(2014~2017년 합참의장), 드니 파비에(국립헌병대장), 크리스토프 고마르(군사정보국장), 앙투안 크뢰(군총감찰관)은 각각 보스턴그룹컨설팅(BCG)의 수석 고문 그리고 토탈(Total), 유니베일-로담코-웨스트필드(URW), 소시에테제네랄(Société Générale)의 보안 책임자로 임명됐다. 이처럼 군인의 민간 분야 이직은 군사기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한 상원 보고서에 다르면, 2018년에서 2021년 사이 군 장성 6명이 컨설팅회사에 합류했고 54명은 컨설팅 회사를 차렸다.(19)

 

생시르 육사가 개발한 몰입형 연수 프로그램

도미니크 뤼카는 신체·정신 훈련관으로 30년 동안 공군에 몸담았다. 퇴역 후 그는 민간분야로 전향했다. “2010년대 초 경영 미숙으로 프랑스전력공사(EDF)와 우체국의 직원들이 자살하는 사건들이 있었다. 이때 나는 내 능력이 민간 회사에서도 활용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뤼카는 이제 힐튼(Hilton), 빈치 오토루트(Vinci Autoroute), 레비스(Levis) 고위 경영진 대상 코칭 전문가로 활동 중이다. 경영자들은 “솔직함, 겸손, 전통 그리고 특히 인간 존중이라는 군대의 가치에 매력을 느낀다. 우리는 초경쟁적인 경제와 끊임없는 싸움의 시대에 살고 있다. 준비한 자만이 경쟁과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다.”

뤼카의 경쟁자들도 생겨났다. “내가 이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만 해도 경영자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수많은 코칭 전문가가 존재한다.” 국방부는 이런 ‘군대’와 ‘코칭’의 융합이 어떤 이점을 주는지 파악했다. 육군은 “국민에게 더 가까이 다가간다는 것은 때로는 국민에게 영감을 주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설명하며 “군대라는 계급 체계 외에 다른 조직을 지휘해야 하는 이들 즉 기업 총수 등 경영인, 교수 등 교육자, 노동감독관, 정치 지도자 등 많은 사람들에게 권위에 대한 군대의 철학을 전파”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20)

생시르 육군 사관학교는 “리더십 개발을 희망하고 경영자의 영혼을 가진” 그랑제콜 학생들에게 6개월간의 몰입형 연수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불확실한 상황에서 올바른 결정을 내리는 법”, “팀의 헌신을 끌어내는 법”, “안전지대에서 벗어나는 법”을 배우고 싶은 기업 임원들도 이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21) 동료들과 공기총, 레이저총 서바이벌 게임을 한다고 해서 이런 역량을 체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생시르 사관학교에서는 침상을 정리하고, 임시 뗏목을 만들고, 칠흑같이 어두운 터널을 기며, 담력과 적응력을 키우고, 회복 탄력성을 시험하고, 승리하는 법을 배운다. 모병관인 동시에 징집병인 이들은 이 프로그램을 마치면 또다시 전쟁터로 향할 것이다. 만인이 만인을 상대로 싸우는 전쟁터다. 

 


글·알랑 포플라르 Allan Popelard 
중등 교사

번역·김은희
번역위원


(1) Michel Goya, 『Le Temps des Guépards. La guerre mondiale de la France de 1961 à nos jours 치타의 시대. 1961년부터 현재까지 프랑스가 해외에서 벌이고 있는 전쟁』, Taillandier, Paris, 2022. 뒤에 나오는 인용문도 이 저서에서 발췌. 
(2) Élie Tenenbaum, ‘La sentinelle égarée? L’armée de terre face au terrorisme 상티넬의 방향 상실. 테러에 직면한 육군’, 프랑스 국제관계연구소(IFRI), 2016년 6월.
(3) Raphaël Briant, Jean-Baptiste Florant & Michel Pesqueur, ‘La masse dans les armées françaises. Un défi pour la haute intensité 프랑스 군대의 총자산. 고강도 군대를 위한 숙제’, 프랑스 국제관계연구소(IFRI), 2021년 6월.
(4) 사회당은 1981~1995년 대통령 그리고 1981~1986년, 1988~1993년, 1997~2002년 총리를 배출했다. 
(5) Maxime Launay, ‘L’antimilitarisme des années 68 à la fin du service militaire 징병제 종식 후 1968년 반군국주의’, Éric Fournier & Arnaud-Dominique Houte외 공저, 『À bas l’armée! L’antimilitarisme en France du XIXème siècle à nos jours 군대는 물러가라! 19세기부터 오늘날의 프랑스의 반군국주의』, Éditions de la Sorbonne, Paris, 2023. 
(6) Maxime Léonard, 에리크 푸르니에 인터뷰, ‘Crosse en l’air et rompons les rangs 전투를 거부하고 대열을 이탈하자!’, <CQFD>, n° 185, Marseille, 2020년 3월. 
(7) 이 인터뷰 이후 NATO는 입장을 바꿨다. 2023년 8월 17일, 미국은 결국 덴마크와 네덜란드가 우크라이나에 미국산 F16 전투기를 지원하는 것을 승인했다.
(8) Guy Hocquenghem, 『Lettre ouverte à ceux qui sont passés du col Mao au Rotary 차이나 칼라에서 로터리 클럽으로 개종한 이들에게 보내는 공개서한』, Albin Michel, Paris, 1986.
(9) Pierre Conesa, 『Vendre la guerre. Le complexe militaro-intellectuel 전쟁을 팔아라. 군인-지식인 복합체』, Éditions de l’Aube, La Tour-d’Aigue, 2022.
(10) Raphaël Enthoven, 엑스(X, 구Twitter), 2022년 2월 28일. 
(11) Benoit Coquard, 『Ceux qui restent. Faire sa vie dans les campagnes en déclin 쇠락해가는 농촌에 남은 이들의 생계유지』, La Découverte, Paris, 2019. 
(12) Bénédicte Chéron, ‘Le SNU est l’héritier d’une pensée magique née dans les années 1960, 1960년대 탄생한 이해할 수 없는 사고를 계승한 SNU’, <르몽드>, 2019년 6월 18일.
(13) Aude Bariéty et Caroline Beyer, ‘Le SNU va être intégré en classe de seconde, annonce Sarah El Haïry au Figaro 사라 엘 아이리, 고등학교 1학년 과정까지 SNU 확대 발표’, <Le Figaro>, Paris, 2023년 6월 15. 
(14) ‘Retour en douce du service militaire et du contrôle de la jeunesse, le Service National Universel est le nouveau moyen d’embrigadement qu’à trouver l’État 은근슬쩍 부활한 병역과 청소년 통제, 보편적 국방의무는 국가가 찾아낸 새로운 징병 수단이다’, 고등학생연합(Mouvement national lycéen), www.mnl-syndicat.fr
(15) ‘SNU au lycée, généralisation ou obligation? 고등학교에서의 SNU, 전면화인가 의무화인가’, 2023년 2월 26일, www.snes.edu 
(16) ‘SNU에 반대하는 모임(Non au SNU)’ 성명서, 2022년 7월 18일. 
(17) Bénédicte Chéron, 『Le Soldat méconnu. Les Français et leurs armée : état des lieux 인정받지 못하는 군인. 프랑스와 프랑스의 군대:현황』, Armand Colin, Paris, 2018.
(18) Christophe Charle, ‘Le pantouflage en France (vers 1880-vers 1980) 프랑스 공무원의 민간 이직’, <Les Annales>, 1987, 42-5. 
(19) Éliane Assassi, ‘Un phénomène tentaculaire : l’influence croissante des cabinets de conseil sur les politiques publiques 광범위하게 확산된 현상: 공공 정책에 대한 컨설팅 회사의 영향력 증가’, 상원 컨설팅 회사 조사 위원회 보고서, Paris, n° 578, 1권 (2021-2022), 2022년 3월 16일.
(20) 프랑스 육군, 『Commandement et fraternité, l’exercice de l’autorité dans l’Armée de terre 명령과 형제애, 프랑스 육군의 권위 행사』, Economica, Parois, 2016. Nicolas Chabut가 다음 기사에서 인용 ‘Pour un service des officiers hors les murs 군 장교가 부대 밖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법’, <Revue Défense Nationale>, 2019, www.defnat.com
(21) 생시르 육군 사관학교와 평생교육원(SCYFCO)의 홍보 책자 문구 인용.

 

신병의 환상과 탈영병의 후회

 

마르세유 신병 모병소에서 마티외 다니엘루 사령관을 만났다. “이 모병소에서는 주로 운동능력이 뛰어난 저학력 남성 지원자를 모집한다. 모집된 병사 중 30~40%는 빈민가 출신으로 코모로인도 상당수다. 생계를 위해 군에 지원하는 경우가 많다. 고졸 미만 학력의 청년에게 숙식과 세탁 서비스가 제공되는 세후 급여 1,400유로의 정규직은 꽤나 매력적인 조건이다. 생계유지를 위해 군대에 지원했다고 해서 좋은 군인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결격 요소는 과체중, 치아 건강 불량 혹은 팔에 철판이 박혀 있거나 사지가 온전하지 못한 경우밖에 없다. 신체적 장애가 있는 지원자는 모집하지 않는다. 차별이 아니라 상식적인 기준일 뿐이다. 비디오 게임이나 인플루언서들의 영향으로 지원자가 많은 엘리트 사격수의 경우 인지능력이 나쁘면 탈락 대상이다. 조준 능력이 떨어지거나 사시가 있으면 뽑지 않는다. ‘받아들이기 싫어도 그냥 받아들여’가 원칙이다. 매년 평균 1만 6,000명을 모집하고 있다. 맥도날드만큼은 아니지만 군은 프랑스에서 가장 큰 기업들 중 하나다.”

1965년, 드골 장군은 직업군인제로의 전환을 꾀했다. 하지만 당시 노동 시장은 완전고용상태였기 때문에 군에 지원하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으로 우려한 참모들은 드골을 설득했다.(1) 1990년대 들어 대량 실업이 발생하자 직업군인제 전환 계획이 부활했다. 하지만 2021년 육군 일반 사병 모집 공고 당 지원자가 1.27명에 그치는 등 지원율은 여전히 낮은 편이다.(2) 게다가, “2011~2016년, 건강 상태가 적합한 지원자 비율은 83%에서 76%로 감소했다”. “신체 활동은 줄어드는 대신 화면 앞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난 생활 방식이 과체중과 근시를 조장”했기 때문이다.(3) 2018년, <르몽드>에는 “지난 10년간 연평균 1,180명을 기록한 탈영병 중 거의 대부분은 육군 소속”이라는 기사가 실렸다.(4)
“본인에게 제기된 혐의를 알고 있습니까? 바로 탈영입니다.” 본지가 마르세유 신병 모병소를 찾은 날, 마르세유 군사 법정에서 열린 14건의 재판 중 12건이 탈영병 재판이었다. 법정에 회부된 병사들 중 3명은 같은 포병연대 소속이었다. 20세 로페즈는 베니시외 출신이다. 로페즈는 이과 바칼로레아를 실패한 후 “강렬한 경험과 야외 취침”을 꿈꾸며 입대했다. “TV 광고나 유튜브 영상을 보면 환상을 품게 된다. 첫 3개월은 좋았다. 그러나, 40km 행군을 마치고 연대에 복귀하면 장교들은 일거리를 만들어냈다. 새벽 4시까지 청소를 해야 했다.” 결국, 로페즈는 탈영했다. 

21세 드무시는 발두아즈에서 ‘보안 관련’ 실업계 바칼로레아 취득 후 5년 계약을 체결하고 입대했다. “당시 나는 대마초를 피우고 있었기 때문에 부모님은 내가 마침내 정신을 차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장교들은 계속 내게 무능하다고 말했다. 이들의 부정적인 평가가 마치 번개처럼 뇌리에 꽂혔다. 결국 나는 탈영을 했다.” 익명을 요구한 M.D.는 5년 계약을 갱신한 후 탈영했다. “나는 측량기사 직업 바칼로레아를 취득했지만 레위니옹에서의 삶은 쉽지 않았다.” “스포츠와 스트레스”를 즐겼던 M.D.는 군대에서 “정신 상태를 단련”했다고 말하면서도 “내가 상사에게 아첨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는 것이 문제였다. 때문에 내게는 타히니와 기니아에서의 임무가 주어지지 않았다”라고 털어놨다.
로페즈, 드무시, M.D.는 집형유예 1~3개월을 선고받았다. 이들 중 2명은 현재 각각 보험회사와 콘크리트 회사에 재직 중이며 긴 머리와 수염을 좋아하는 나머지 한 명은 바닥청소차를 모는 건물 청소부로 일하고 있다.

 

 

글·알랑 포플라르 Allan Popelard 

번역·김은희


(1) Marius Loris Rodionoff, 『Désobéir en guerre d’Algérie. La crise de l’autorité dans l’armée française 알제리 전쟁에서의 불복종. 프랑스군 내부적인 권위의 위기』, Le Seuil, Paris, 2023.
(2) Jean-Dominique Merchet, ‘L’armée rencontre des difficultés inhabituelles de recrutement 병사 모집에 유난히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군대’, <L’Opinion>, Paris, 2023년 8월 31일.
(3) ‘Recrutement, fidélisation : quelle attractivité des carrières militaires 신병 모집과 충성심 고취: 군인이라는 직업의 매력은?’, 상원외교위원회, Paris, 날짜 불명, https://www.senat.fr 
(4) Faustine Vincent, ‘Le temps des déserteurs 탈영병의 시대’, <르몽드>, 2018년 4월 1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