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철도, 비극의 여정

EU에 의한 철도 재정 긴축의 결과는?

2023-10-31     엘리자 페리괴르 l 언론인

지난 2월 28일 그리스에서 발생한 열차 충돌 사고로 뭇 그리스인들은 10년 전 자신들의 뜻이 유럽연합과 맞부딪혔던 때를 떠올렸다. 57명이라는 사망자는 공공서비스의 몰락과 민영화의 폐단을 의미했지만, 그리스와 EU 당국이 성실한 조사를 이행할 희망은 별로 없어 보인다.

 

새벽녘의 한 계곡 유역에서 금속 잔해가 나뒹구는 가운데 그 위로 연기가 피어올랐다. 3월 초, 그리스 언론은 아테네-테살로니키 철로의 이 불에 탄 금속 더미 주위에서 분주히 움직이는 구조대의 모습을 연이어 방송으로 내보냈다. 

전날 밤 11시를 지난 시각 그리스 중부 라리사 시에서 그리 멀지 않은 템페(테살리아 주) 중심부에서는 승객 352명을 실은 여객열차가 한 화물열차와 충돌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두 열차는 같은 선로에 있는 줄 모른 채 약 12분 동안 마주 보면서 달리다가 정면충돌했다. 이 사고로 57명이 사망하고 최소 85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피해자 중 상당수는 월요일까지 연장된 황금연휴를 즐기고 집으로 돌아오던 대학생들이었다. 2023년 2월 28일의 이 열차 사고는 그리스 역사상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낸 철도 참사로 기록된다. 

 

“그리스 철도망은 21세기에 적합하지 않아”

현재 진행 중인 조사는 책임 소재를 규명하기까지 수개월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라리사 역장이 선로 변경을 잘못 지시한 실수를 인정하긴 했지만, 대다수 그리스인들에게 이는 사고 후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 총리의 말마따나 그저 “사람의 실수”로 여겨지지 않는다. 그보다는 시스템 전체가 문제의 원인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라리사 역장은 철도 전문가가 아닌 교육부 공무원 출신으로, 몇 달간의 직무 교육만 받은 뒤 현장에 신규 채용됐고, 그나마도 혼자 업무를 담당했다. 교통부 장관 역시 사임 전 그리스 철도망이 “21세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점을 시인했다. 5월 21일 총선을 앞두고 일어난 이 사고로 자유보수계열의 여당 신민주주의당도 권력 기반이 취약해졌다. 

참사 후 그리스인 수만 명은 “정부는 살인자”, “템페 사고는 예고된 범죄” 등의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몇 주 이어갔다. 시위대는 국영 철도망을 운영하는 공기업인 그리스 철도청(OSE)과 정부 측에 해명을 요구하며, 그리스의 모든 여객열차 및 대다수 화물열차를 운영하는 철도회사로 2017년 이탈리아 공기업 페로비에 델로 스타토 이탈리아네에 매각된 헬레닉 트레인 측에도 책임을 묻고 있다.

한 민간기업의 화물열차 기관사 게오르기오스 도고리티스(29세)는 “예견 가능했던 사고라 더욱 유감스럽다”라며 씁쓸한 표정을 보였다. 아테네 북쪽으로 30킬로미터 떨어진 아피드네스의 작은 역에서 그는 취재진에게 신호등을 보여줬는데, 모두 빨간색으로 고정이 돼 있었다. 도고리티스는 “이 신호등이 한 번도 파란색으로 바뀐 적이 없다”고 분개하며 “2,500km에 이르는 그리스 철도 구간 중 약 1,700km에 설치된 현대식 신호기 대부분이 불량”이라고 덧붙였다. 케이블 도난, 고장, 마모 등 결함의 이유도 다양하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장치의 설치시기도 제각각이고 제조국도 죄다 다르다. 교체 부품도 구하기 힘들고, 그나마도 정부와 행정 당국에서 일 처리를 제대로 해주지 않아 수입이 지연되는 경우가 많다.” 현재 신호 체계는 수동으로 작동 중이며, 기차는 시간당 160km 이상으로 달릴 수 없다. 철도청 소속인 역장들은 기관사에게 선로가 비어있다고 알려주며 직접 출발 명령을 내려야 한다.

그리스에서의 철도 운행은 모두 이런 식이었고, 사람의 실수를 바로잡아줄 비상 안전장치는 전혀 없다. 도고리티스는 “유럽형열차제어시스템(ETCS : 차량 및 선로에 설치된 ‘발리스’라는 통신 장치를 이용한 열차 제어 시스템)이 2000년대 말 도입됐지만, 이는 신호기 없이 작동할 수 없는 시스템이다. ETCS를 갖추지 않은 다른 나라들은 최소한 Indusi, LZB, ATP 등 열차의 자동 정차를 위한 다른 비상 안전 시스템을 구비하고 있다. 하지만 그리스는 그렇지 않았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에 따르면 이는 “정치적 선택”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EU 철도청과 그리스 철도 노조에서는 진작 경고를 보냈다. 사고가 일어나기 전부터 이미 그리스 철도는 100만km 당 사망자 1명으로 평균치를 5배 웃돌며 EU 내에서 선로 위 사망률이 가장 높은 나라였다.(1) 

19세기 바티뇰 건축회사가 설계한 최초의 철도는 산악지대의 마을과 항구를 연결해주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정부는 항상 통행료와 유류세 등 수익성이 더 높은 도로 쪽으로의 자금 지원을 선호했다”는 게 도고리티스의 평이다.

 

“역장, 기술자, 전기 기사도 부족해”

유수의 민간 버스회사 Ktel은 11만 7,000km에 이르는 국내 도로에서 “전체 승객의 80%” 가량을 수송한다고 자부한다. 이런 상황에서 그리스 철도망의 1/3은 최근 몇 년간 추진된 긴축정책에 희생됐다.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경우를 보자. 2000년 706km, 2009년 435km였던 철도 통행 구간이 현재는 68km에 불과하다.(2) 살로니카-아테네 구간은 여전히 이용인구가 많은 노선이다. 하지만 이 구간의 전체 일일 운행횟수는 2009년 30여 회에서 현재 14회로 줄었다. 

2014년 이후 유럽연합에서는 그리스 철도 현대화를 위해 약 8억 5,000만 유로 규모의 예산을 할당했다. 그러나 이번 참사는 ‘717계약’에서 드러난 바와 같이 EU의 예산 집행이 심각하게 지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2014년 그리스 철도청(OSE) 자회사 에르고스가 알스톰 및 그리스 악토르 사와 체결한 ‘717계약’은 아테네-살로니카-프로마초나스 구간의 신호 체계 현대화를 위해 4,100만 유로의 예산을 지원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자금은 대부분 EU 기금에서 충당된다. 

2016년에 마무리됐어야 할 이 작업은 지금도 끝나지 않은 상태다. 지난 9년간 시리자당(2015~2019)에서 신민주주의당(2019~)으로 주도권이 넘어가며 정권 이양이 이뤄졌어도 상황은 그대로다. 현지 탐사보도 매체에 따르면, 이 작업이 지연되는 주된 이유는 계약 내용에 대한 의견 차이 때문이다.(3) 알스톰 측에서는 짤막한 이메일로 “작업이 계속 진행 중”이라고만 밝히고 있다. 

시앙스포 릴의 교원인 조르고스 바살로스는 그리스의 법치 문제도 제기했다. “기업들 중 일부는 정부나 법조계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2022년 9월, 독일 최대의 뇌물 스캔들에 연루돼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독일 산업체 지멘스의 전직 임원 15명에 대한 항소심 무죄 판결은 시민 다수에게 충격을 안겨주며 면책 관행에 대한 인식을 심어줬다. 헬레닉 트레인 소속 기술자이자 그리스 노동자 총연맹(GSEE) 사무총장인 니콜라오스 키웃수키스는 인적 자원 없이 철도 현대화를 실현할 순 없다고 강조한다. 그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트로이카 삼두체제(ECB, IMF, EU집행위)에서는 그리스 철도청 인력을 대폭 줄이고 비용 절감을 실현함으로써 철도청 숨통을 끊어놓은 것처럼 그리스 전체의 숨통까지 끊어 놓았다.”

2010년 그리스 재정위기 당시 유럽중앙은행(ECB)과 IMF, EU 집행위원회는 그리스에 재정 지원을 해주는 대신 1차 경제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통해 예산 삭감과 공공 서비스 해체를 단행했다. 인력과잉으로 지적된 철도청(OSE) 및 트레인OSE(국영 철도운영사였으나 구제금융 후 ‘헬레닉트레인’이란 이름으로 민영화된 기업)도 이 ‘충격요법’의 표적이었다. 

하지만 사회당 집권 시절(2009~2011) 교통부 장관을 역임한 디미트리스 레파스는 “소위 ‘트로이카’ 체제가 출범하고 1차 양해각서가 발효되기 전에도 그리스 철도 재정은 이미 걷잡을 수 없는 상태였다. 2009년 철도청의 부채는 107억 유로에 달했고, 트레인OSE의 연간 적자는 12억 유로에 육박했다”고 반박했다. 그리스 의회는 2010년 11월, 그리스 정부와 ‘트로이카’가 구상한 구조조정안을 최종 채택했다. 이듬해 그리스 철도의 약 1/3이 운행 중단됐고, 철도청 직원 5,150명 가운데 2,300명 이상이 다른 부처로 이동되거나 명예퇴직 당했다. 

그러나 레파스 전 장관은 “특정 부문 필수인력의 경우, 법에 따라 전출을 거부했다”라고 항변했다. 키웃수키스 사무총장은 “안전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는 인사 조치였다”라고 개탄한다. 퇴직자의 빈자리가 채워지지 않아 회사는 텅 비고 직원 평균 연령은 높아졌으며, “지금은 역장, 기술자, 전기 기사도 부족하다”고 한다. 인력 출혈은 꾸준히 지속됐고, 현재 철도청 직원은 천 명에 불과하다. 게다가 레파스 전 장관 스스로도 인정하는 바와 같이 “교통 업무에 배정된 직원 수는 200명 정도”로, 2012년에 비하면 훨씬 적은 수준이다. 

 

사람 잡는 민영화

이번 템페 참사는 구조조정 이후 현저히 줄어든 그리스의 철도 운영 역량을 무참히 드러냈다. 선로 변경을 잘못 지시한 책임으로 현재 기소 중인 라리사 역장도 2011년 전출된 직원 중 하나였다. 과거 철도청에서 수화물을 취급하다가 교육부로 전출된 그는 2022년 철도청으로 복귀한 후 2023년 라리사 역장으로 부임했다. 키웃수키스 사무총장은 “라리사 역장은 철도 업무를 감당하기에는 역량이 부족한 인물”이라며 분개했다. 철도 규제 당국 측에서도 열차 충돌사고 후 철도청 내 직원 교육의 허점을 시인했다. 키웃수키스는 “트로이카가 철도청을 헐값에 팔기 위해 기업 신용도를 떨어뜨리려 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철도 노선 관리 주체와 사업 운영 주체의 분리를 권장하는 유럽연합 지침에 따라 트레인 OSE는 2005년 철도청(OSE)과 분리됐다. 여객 및 화물열차의 운영을 담당하던 이 공기업은 2017년 ‘트로이카’의 요구로 민영화 수순을 밟았다.(4) 그리스는 부채를 갚기 위해 항만, 공항은 물론 각종 인프라 부문 공기업을 최대한 매각해야 했는데, 트레인 OSE의 경우 사려는 사람이 없어 헐값에 팔려나갔다는 안타까운 후문이다. 유럽 시장을 장악하려는 이탈리아 국영기업 페로비에 델로 스타토 이탈리아네가 인수를 위해 지불한 돈은 4,500만 유로에 불과했다. 

아테네 대학의 교수 겸 경제학자 니코스 테오카라키스는 “그리스 구제금융을 주도하던 트로이카가 그리스 국영기업일 당시의 철도공사는 비난했으면서도 정작 이 회사가 이탈리아 기업의 자산으로 들어가자 종전의 편견을 버렸다”고 강조했다. 본디 공공 서비스에 속해야 하는 철도의 ‘자연 독점적’ 성격을 언급하면서 테오카라키스 교수는 1990년대 민영화된 영국 철도의 쓰라린 교훈을 되짚어줬다. 민영화가 이뤄지면 기업의 수익이 증대되는 만큼 필연적으로 안전이 위협을 받는다는 것이다.(5) 

헬레닉 트레인은 수익성이 떨어진다고 판단되는 노선을 유지하기 위해 그리스 정부로부터 매년 5,000만 유로를 지원받는다. 이 기업은 이탈리아산 고속열차 펜돌리노 ETR470 5대를 구매했는데, 이 열차는 잦은 고장으로 이미 스위스에서도 퇴출됐다. 한 기관사는 “철도 이용료가 더 비싸졌는데, ETR470은 외관만 화려할 뿐 승객을 위한 공간은 더 작다. 게다가 빨리 달리지도 못한다. 그리스에서는 그 어떤 기차도 시속 160km 이상 주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헬레닉 트레인은 템페 참사에서의 모든 책임을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시위대는 첫 집회 때부터 이 기업을 정조준했다. 아테네 본사와 의회 앞에서 시위대는 “살인자”, “우리의 목숨과 맞바꾼 당신들의 수익”, “사람 잡는 민영화” 등의 구호를 외쳐댔다. 열차 참사에 대한 원성을 넘어서서 시위대의 현수막은 소위 ‘트로이카’라고 불리는 구제금융 3주체에 대한 그리스인들의 한을 담아내고 있었다. 

채권단의 당초 예상에 따르면 민영화 수익이 500억 유로로 추산됐지만, 2011년과 2020년 사이 민영화로 인한 이득은 90억 유로에 불과했다.(6) 그리고 이와 함께 사회적 차원에서의 무수한 부수적 피해가 발생했다. 

 

 

글·엘리자 페리괴르 Élisa Perrigueur
언론인

번역·배영란
번역위원


(1) ‘Report on railway safety and interoperability in the EU’, 유럽철도청, 2022, www.era.europa.eu
(2) 그리스 철도청(OSE) 웹사이트 자료. https://ose.gr  
(3) ‘역장의 진짜 이름은 악토르와 알스톰’, <Reporters United>, 2023년 3월 6일, www.repor- tersunited.gr  
(4) Niels Kadritzke, ‘Grande braderie en Grèce(한국어판 제목: 그리스 투기꾼들만 살판 난 ‘강제 민영화’)’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프랑스어판 2016년 7월호. 
(5) Marc Nussbaumer, ‘Le chaos des chemins de fer britanniques 아수라장이 된 영국 철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22년 4월호.
(6) 민영화기금 ‘Hellenic Republic Asset Development Fund’ 측 결산 자료.
https://hradf.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