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사하라 영유권을 둘러싼 모로코-프랑스 갈등
프랑스-모로코 갈등의 이면
지난 1월부터, 프랑스에는 모로코 대사가 주재하지 않는다. 프랑스와 모로코, 양국은 최근 몇 년간 갈등을 지속하며 관계가 악화됐는데, 9월 8일 지진 후 모로코가 프랑스의 인도적 지원을 거부하면서 양국 간 갈등에 다시 불이 붙었다. 하지만 지중해를 사이에 둔 두 나라는 긴밀한 이해관계로 얽혀있다.
9월 8일, 모로코를 강타한 지진으로 약 3,000명의 사망자와 수천 명의 부상자 그리고 수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이런 상황임에도, 모로코는 프랑스 정부의 인도주의 지원을 거부했다. 두 나라의 지속된 갈등이, 이제 회복 불가능한 수준에 이른 것일까?
이 질문을 던지기 전에, 한 가지 알아둘 사실이 있다. 모로코 왕실이 마크롱 대통령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9월 16일, 모로코 통신사 MAP(Maghreb Arabe Presse)는 “프랑스 대통령의 방문은 일정에도 계획에도 없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했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공식 입장이 나온 시점이다. 카트린 콜론나 프랑스 외무부 장관이 “조만간 마크롱 대통령이 모로코를 방문할 수도 있다”라는 내용의 발표를 한 지 몇 시간 만에 갑자기 공식 입장을 내보낸 것이다.
그에 며칠 앞서, 마크롱 대통령은 프랑스의 지원을 거부한 모로코 정부 및 국민들을 향해 엑스(X·구 트위터)에 동영상 메시지를 올렸다.(1) 모로코 측에 지원 의사를 표명한 이 메시지에, 모로코 당국은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아랍에미리트와 스페인, 카타르, 영국의 지원만 수용하고 (다른 40개 국가를 비롯해) 프랑스의 지원을 거부한 모로코 측에 ‘가진 자로서의 아량’을 과시하려 했다는 게 관련 책임자들의 해석이다.
모로코와 프랑스, 두 나라의 갈등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번 지원 거부 논란으로 더욱 고조되고 있다. 사실 2020년 12월, 미국이 서사하라 지역에 대한 모로코 주권을 인정한 이후 모로코와 프랑스의 관계는 악화일로를 걸어왔다. 모로코의 나세르 부리타 외무장관은 서구권 동맹들이 미국과 같은 입장을 취해줄 것을 촉구했다. 2022년 8월 모로코 국왕도 한 연설에서 “앞으로는 사하라 문제가 왕국의 동맹 관계를 결정짓는 유일한 잣대가 될 것이며, 이는 모로코의 우방과 파트너십을 정하는 유일한 척도”라고 단언하며 왕실의 요구를 거듭 강조했다. 2022년 12월, 모로코 국민의 비자 발급과 관련해 “원만한 영사 관계”가 회복되며 양국 갈등이 완화 조짐을 보였다. 이때에도, 부리타 장관은 모로코를 찾은 콜론나 장관에게 단호히 같은 입장을 피력했다.
모로코가 프랑스를 비판하는 표면적 이유는, 프랑스가 서사하라 지역에 대한 모로코의 영유권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2) 하지만 프랑스를 향한 모로코의 불만은 꽤 복잡한 배경을 가지고 있다. 과거 트럼프 전 대통령 재임 시절, 미국은 유엔 주도 해법에 대한 지지 입장을 철회하고 갑작스레 외교 노선을 선회해줬다. 그 대가로 모로코는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정상화해야 했다. 모로코 국민 대다수는 팔레스타인을 지지했으므로, 정부로서는 국민의 지지를 잃는 위험까지 감수하고 미국의 노선 변경을 얻어낸 셈이었다.
이스라엘-모로코-프랑스의 역학관계
하지만 정부가 이스라엘과의 관계 정상화를 통해 얻을 국익에 대해 언론에서 대대적으로 홍보를 하고 나섰음에도 2022년 기준 모로코 국민의 67%는 여전히 이스라엘과의 관계 정상화에 대해 반대 의사를 드러냈다.(3) 이런 상황에서 프랑스가 서사하라 지역에 대한 모로코의 영유권을 인정하면, 국민들에게 이스라엘과 손을 잡을 만하다는 명분을 보여줄 수 있다.
프랑스가 미국처럼 모로코의 손을 들어주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프랑스에 대한 모로코의 적대감은 그것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사실 프랑스는 모로코의 요구를 받아들여 서사하라 주민의 자결권도 인정하지 않았다. 미국도, 스페인도 이점에 대해 입장을 분명히 하지 않고 있다. 게다가 바이든 정부는 서사하라 지역에 대한 모로코의 주권을 인정한 트럼프 정부와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모로코 왕실로서는 당혹스러운 상황이다. 2021년 1월, 미국의 바이든 신임 정부는 유엔을 통한 절차적 해법을 다시 한번 지지하고 나섰다. 이렇게 되면, 서사하라 주민의 자결권 문제는 유엔 서부 사하라 선거지원단의 임기 연장을 위한 안보리 연간 결의안에 즉각 포함된다.
모로코는 2007년부터 ‘서사하라 자립안’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해당 제안은 국제사회의 신뢰는 얻어냈으나, 서사하라 자결권 박탈이 분쟁 해결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은 관철시키지 못했다. 따라서 미국 정부의 입장은 서사하라 문제의 전환점이라 할 수 있다. 서사하라 주민들이 투표를 통해 자신의 운명을 결정할 권리를, 미국이 인정할 것인지 아닌지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이든 정부는 모로코에게 우호적이었던 이전 트럼프 정부의 입장을 변경했다. 모로코의 반발에 아랑곳하지 않고 말이다.
스페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2022년 3월, 모로코 왕실은 국왕 모하메드 6세가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로부터 서한을 받았다고 공표했다. 모로코가 제시한 자립안에 대해 산체스 총리가 서사하라 지역 갈등 해소를 위한 “가장 진지하고 믿을 만하며 현실적인 대안”이라 단언했다는 것이었다. 스페인 총리가 보냈다는 이 서한으로 스페인과 알제리 사이에는 심각한 외교 위기가 초래됐다. 알제리는 자결권을 인정하는 유엔 중재 하의 해법에 호의적인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스페인 우파는 물론 소속당의 반대가 거센 가운데 언론의 질문을 받은 산체스 총리는 해당 사실 일체를 부인함은 물론 서한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9월 21일 유엔 총회 연설에서도 산체스 총리는 유엔을 통한 해법에 대한 지지 의사를 재차 확인시켰다. 하지만 이 또한 모로코와의 외교 불화로 이어지진 않았다.
이런 상황들을 종합해보면, 프랑스가 미국, 스페인보다 더 모로코의 반발을 살 이유는 없어 보인다. 오히려 프랑스는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들 중 모로코의 이익을 가장 존중해준 국가라고 할 수 있다. 2014년, “유엔 선거지원단 역할에 인권존중 감시업무도 추가해야 한다”라는 폴리사리오 인민해방전선(서사하라 해방을 위한 무장조직)의 요구를 오바마 정부가 지지했을 때, 그것을 막아준 것도 프랑스였다. 그 요구가 모로코 왕실을 언제든 위협할 소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유독 프랑스에 날을 세우는 모로코
모로코가 미국, 스페인과 달리 유독 프랑스에만 날을 세운 사례가 또 있다. 언론의 자유를 침해한 모로코 당국을 규탄하는 2023년 1월 19일 유럽의회 결의안을 마크롱계 의원들이 지지하자, 프랑스의 친정부 언론에서는 이를 두고 긍정적인 평을 내놓았다.(4) 그날 이후, 모로코는 프랑스 주재 대사를 두지 않는 처사까지 강행했다. 이에 따라 2021년 10월부터 프랑스 주재 모로코 대사직을 수행하던 모하메드 반샤분은 국왕의 명으로 대사 업무가 종결됐다. 그러나 2022년 11월 모로코의 스파이웨어 사용에 대해, 그리고 유엔인권이사회 앞에서 인권운동가들에게 압력을 가한 것에 대해 미국이 모로코를 비난했을 때는, 모로코는 이렇다 할 대응을 하지 않았다.
이스라엘과의 관계 호전 이후 프랑스 당국자에 대한 모로코 측의 냉대는 보다 노골적인 양상을 띤다. 그나마 예전에는 절제된 방식으로 불만을 표했으나, 이제는 태도가 달라졌다. 모로코-이스라엘 간의 관계 정상화로 서구권, 특히 미국 쪽 친 이스라엘 세력의 로비를 통해 절대권력이라도 손에 쥔 듯한 태도다. 더욱이 군사 및 첩보 분야에서는 이스라엘의 노골적인 지원까지 받고 있다.
기자인 조르주 말브뤼노와 크리스티앙 셰노의 최근 저서 『프랑스의 실추(Le Déclassement français)』(Michel Lafon, 2022)에는, 모로코 정보국이 마크롱 대통령 등 프랑스 정계 인사에 대해 ‘페가수스’라는 스파이웨어를 사용한 사실이 담겨있다. 프랑스 정보기관에 따르면, 모로코 정보국이 프랑스 내 이스라엘 정보국에서 비밀리에 일한 정황이 포착되기까지 했다. 토탈, 에어버스 등 전략기업에 고용된 이중국적자에 대한 수사도 여러 건 진행됐다. 그중 두 건에서는 간첩혐의로 유죄 판결까지 내려졌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프랑스와 모로코 정보국 간의 갈등이 촉발된 시점은 이 스파이웨어 사건이나 간첩 수사 사건 때가 아니다. 그보다 한참 전인 2014년 2월이다. 프랑스 법무부에는 반인륜범죄 및 고문 혐의로 다수의 고소가 접수됐다. 피의자는 압델라티프 아무치로, 모로코 국토감시총국(DGST) 및 국가안보총국(DGSN)을 아우르는 막강한 안보 총책임자였다. 프랑스 사법 경찰관들은 파리에 온 그를 급습해 관련 범죄 혐의 중 하나를 관할하는 예심 판사의 법원 소환 명령서를 전달했다. 아무치 국장은 정부 내 거물이었던 만큼, 모로코 당국은 거세게 반발했다. 같은 해 5월, 한 친 정부 계열 언론에서는 프랑스 해외 보안 총국(DGSE)의 모로코 지국장 신원을 공개했다. 그에 따라 프랑스는 해당 인사를 황급히 본국으로 불러들여야 했다.
하지만 2015년 11월에는 파리 테러 당시 모로코 정보국이 프랑스 측에 도움을 준 덕분에 양국 간 긴장 완화의 길이 열리는 듯했다. 앞선 2월에도 이미 긴장 완화의 조짐이 보였다. 프랑스의 베르나르 카즈뇌브 장관이 모로코를 방문해 아무치 국장에게 레지옹도뇌르 훈장을 수여했기 때문이다.
갈등 속에서도 공생하는 두 나라
모로코 정부가 프랑스의 지원을 거부하고 프랑스 주재 자국 대사관까지 철수했고, 양측 언론에서도 서로 신랄한 비판을 주고받는 상황이라면, 두 나라의 관계는 끝장이 날까? 그러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양국은 여전히 상당한 규모의 경제 교류를 지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 부품 수출을 확대하려는 모로코에서는 프랑스의 자동차 제조사 르노 및 스텔란티스를 자국의 산업 성장 동력으로 삼고 있다. 프랑스 기업 측에서 봤을 때도 모로코는 꽤 중요한 시장이다. 각 기업의 주요 시장과도 지리적으로 인접해있고 인건비도 저렴할 뿐 아니라 현대적인 인프라 시설도 구축돼 있다. 게다가 기업 활동에 유리한 조세 제도까지 갖춘 상황이다. 이런 식으로 모로코가 이들 다국적 기업에 제공하는 이점은 여러 가지다. 프랑스는 몇 년 전부터 스페인에 모로코의 1위 무역상대국 자리를 내줬지만,(5) 여전히 모로코의 2위 무역상대국이자, 최대 관광소비국이다. 게다가 모로코는 재외국민의 송금액이 GDP의 10%를 차지하는데, 이 송금액 중 32%가 프랑스에서 온다.
양국의 교류가 단절되기 어려운 이유가 또 있다. 모로코와 프랑스의 정계 및 재계 고위급 인사들이 공동의 이해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모로코 국왕 소유의 알마다(Al-Mada) 상사는 프랑스 기업 다수를 사업 파트너로 두고 있으며, 그중 하나는 프랑스 정부 통제 하의 에너지 기업 엔지(Engie)사다. 알마다 상사는 개방도가 높아 국제 경쟁이 치열한 시장보다도 금융과 에너지 등 정부 감시도가 높은 분야에서 주로 개인 투자를 진행한다. 모로코 왕실 통제 하의 정부에서 직접 규제하는 분야인 만큼 왕실이 어느 정도 경쟁 우위를 점하고, 엔지 사를 비롯한 파트너 기업 또한 그에 따른 이득을 얻는다. 엔지가 화력발전소 사피에너지 측에 알마다 사와 함께 공동 주주로 이름을 올리고 있는 이유다. 사피에너지는 역내에 미치는 환경영향 문제로 인해 비정부기구 다수로부터 비판을 받고 있지만, 그에 따른 시정은 딱히 이뤄진 바가 없다.
이렇듯 프랑스와 모로코 양국은 각자 상대방에게서 이득을 취하고 있다. 한쪽에선 모로코 왕실 소유의 권위주의 정부가 프랑스와의 관계에서 이득을 보고 있고, 다른 한쪽에선 이 같은 정권 구조에 기대어 경제적 이득을 본다. 그런데, 인간의 허점이 관계의 균형을 위태롭게 하는 경우가 있다. 프랑스 언론에서 정권 친화적 성향으로 활동하는 소설가 타하르 벤 젤룬은 현재의 갈등이 알제리 국왕에 대한 마크롱 대통령의 예의 부족에서 부분적으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지적한다.
페가수스 사건이 한창일 때 모하메드 6세 국왕이 개인적으로 마크롱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모로코 정보국은 그를 정탐하지 않았다고 설득하려 했음에도 마크롱 대통령이 왕의 말을 믿지 않았다는 것이다. 국왕의 분노가 가라앉지 않는 한, 양국관계는 긴장 상태가 지속될 전망이다.
글·아부바크르 자마이 Aboubakre Jamaï
액상프로방스 소재 American College of the Mediterranean 대학 국제교류학 교수
번역·배영란
번역위원
(1) @EmmanuelMacron, “Marocaines, Marocains, Nous sommes à vos côtés. 모로코 국민 여러분, 우리(프랑스)는 당신들 곁에 있습니다” 2023년 9월 13일, https://twitter.com/EmmanuelMacron/status/1701656893226205493?s=20
(2) Réda Zaïreg, ‘Consensus marocain sur le Sahara 사하라 건에 관한 모로코 합의’, <마니에르 드 부아르> 제181호, ‘Le Maghreb en danger 위기의 마그렙 지역’, 2022년 2-3월호.
(3) Arab Opinion Index 2022, 2023년 1월, https://arabcenterdc.org
(4) ‘Résolution du Parlement européen du 19 janvier 2023 sur la situation des journalistes au Maroc, en particulier le cas d’Omar Radi 모로코 언론 현황에 대한 2023년 1월 19일 유럽 의회 결의안 : 오마르 라디 사례를 중심으로’, 유럽연합 관보, Luxembourg, 2023년 1월 19일.
(5) ‘France-Maroc. Les relations économiques impactées par la crise politique 정치 위기로 타격 받는 프랑스-모로코 경제 교류’, 2023년 6월 21일, https://econostrum.inf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