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의 정부보조금과 사회적 치료제
종종 예술인들은 국가에 너무 손을 벌린다는 빈축을 사곤 한다. 하지만 이는 ‘공연예술’에 대한 정부보조금이, 엄격하고 민주적인 문화정책을 위해 필수적이라고 규정한 CNR(Conseil national de la Résistance, 레지스탕스 전국 평의회)의 정신을 도외시하는 것이다.
최근 연극 및 오페라에 대한 프랑스 정부 보조금이 축소 및 폐지되는 일이 늘고 있다. 이에 침묵하는 프랑스 언론을 자극한 사건이 일어났다. 로랑 보키에가 의장으로 있는 오베르뉴론느알프 지방의회가 리옹시를 따라 리옹 오페라단의 예산을 삭감하고, 극단 대표가 불편한 발언을 해 물의를 빚은 누벨 제네라시옹 극단에 대한 지원도 중단하기로 발표한 것이다.(1)
보키에의 해명이 걸작이다. 자신이 “문화를 상대로 이원화된 전쟁을 벌이고 있다”라는 것이다. 그리고는 ‘대중문화’ 즉 ‘대중 동원력을 갖춘’ 문화를 예찬했다(republicains.fr에 게재된 2023년 5월 30일자 인터뷰). 이에 리마 압둘 말라크 문화부 장관이 보키에 의장을 신(新)포퓰리스트라고 몰아세웠다. 그러자 보키에는 “문화부는 소수 인사들이 당연한 권리처럼 여기는 정부 보조금이나 뿌려대는 기계로 전락했다”(<르피가로>, 2023년 5월 28일)라고 응수했다. 사실 이런 식으로 예술계의 엘리트주의나 폐쇄적 태도를 꼬집는 비판은 이미 흔하다. 또한, 우파에만 국한된 주장도 아니다.
프랑스 헌법에도 명시된 문화평등권
그렇다면, ‘공연예술’에 대한 정부 보조금 지원 제도의 운영 방식과 범위를 새롭게 손질해야 한다는 주장은 과연 타당한가? 문화에 대한 공공지원 제도는 ‘레지스탕스 전국 평의회(CNR) 강령’에 기초하고 있다. (CNR 강령을 대거 반영한-역주) 1946년 프랑스 헌법(이후 1958년 헌법에도 존속)은 서문에 이렇게 명시하고 있다. “국가는 모든 국민에게 교육, 직업, 문화에 접근할 평등한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이 정신이 특히 빛을 발한 분야가 바로 문화다.
1946년 이후 지방의 연극 창작과 보급을 활성화 및 대중화하려는 목적에서 지방분권정책이 추진됐다. 1961년 앙드레 말로 문화부 장관은 프랑스 곳곳에 ‘문화의 집’을 건립했고, 1967년 ‘랑도브스키 계획’도 오케스트라, 오페라 및 음악 교육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프랑스 정부가 원하는 것은 명확했다. 국가 및 지자체가 공공재정의 일부를 구체적 사업 즉 예술 창작 및 공연에 지원함으로써 국민들을 위한 문화 환경과 교육의 토양을 마련하려는 것이었다. 가령 다양한 가격대의 공연이 가능하도록 재정을 지원해, 모든 프랑스 국민이 공연예술을 향유할 길을 열고자 했다.
하지만 1981년 좌파 집권 이후 상황은 복잡해졌다. 문화부의 예산은 정부 총예산의 1%를 차지했지만, 우선순위가 뒤바뀌었다. 1982년 5월 10일 법령은 문화부의 역할을 다음과 같이 규정했다. 문화부의 최우선적인 역할은 “모든 프랑스인이 창의력을 배양하고, 재능을 자유롭게 발휘하며, 원하는 예술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반면 “모든 예술 및 지적 작품의 창조를 활성화하고, 최대한 많은 관객을 창출하도록 지원”해야 할 역할은 3순위로 밀려났다. 예술 경영에도 변화가 일었다. ‘경제와 문화, 동일한 투쟁’ 자크 랑은 1982년 7월 유네스코(UNESCO) 회의에서 이런 구호를 부르짖었다. 공영방송은 민영화의 길이 열리고, 공공극장의 책임자는 직접 후원자를 찾도록 장려됐다. 그런가 하면 일정한 객석점유율을 달성할 필요도 생겼다. 따라서 대중성을 중심으로 공연이 기획됐다. 그러면서, ‘공공 문화 서비스’의 개념 자체가 변질되기도 했다.
2007년 니콜라 사르코지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경제주간지 <샬랑주(Challenges)>는 큰 꿈에 부풀었다. “이제 1945년의 그늘에서 벗어나, 레지스탕스 국가 평의회(CNR) 강령을 체계적으로 탈피할 때다.”(2) 이에 신임 대통령은 공공정책총검토사업(RGPP)(훗날 공공부문 현대화(MAP)로 이름이 바뀜)을 단행했다. 하지만 국가재정지출 ‘합리화’란 결국 공공지원의 축소, 그러고 더 나아가 프랑스 문화의 국제적 영향력 약화를 의미했다. 어느새 모든 것은 ‘목표치와 성과지표’의 논리에 따라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 결과 오늘날 예산의 20%를 자체 수입으로 조달해야 하는 38개 드라마(연극)센터(Centre dramatique, 지방분산정책의 일환으로 설치된 공공 연극기관-역주)는 78개 국립무대(3)에 직접 작품을 세일즈 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말하자면 민간시장에 버금가는 경쟁 체제를 감내하고 있는 것이다.
기업의 독주, 정부의 방관, 지자체의 고충
문제는, 민간시장도 공공지원을 누린다는 점이다. ‘컬처 패스’(청소년 문화생활을 지원하는 문화 바우처 사업-역주)가 대표적인 사례다. 이 사업의 주된 수혜자는 만화, 음반, 영화, 게임 관련 산업으로 ‘문화 마크롱주의의 실패작’(4)이라는 비난이 무성하다. 이 분야는 2023년 예산 중 약 3억 달러의 수혜를 누렸는데, 가히 공연예술 부문에 대한 전체 정부 보조금 총액과 맞먹는다.
심지어 오늘날 세계 제2위의 콘서트 기획업체, 안슈츠 엔터테인먼트 그룹(AEG)과 마티외 피가스가 설립한 미디어 그룹 콩바(‘라디오 노바’, <레젱록> 소유), 이 두 굴지의 공룡기업이 소유한 ‘록 앙 센느’ 뮤직 페스티벌도 공공지원의 혜택을 누리고 있다. 일드 프랑스 지자체의 지원이 대표적이다. 이 음악축제는 음악 생태계를 파괴할 법한 규모의 수익을 낳는 대형 스타들을 앞세운다.(5) 이에 심지어 자크 랑(<유럽1>, 2017년 7월 22일)마저 “공룡기업의 음악계 장악은 다양성을 파괴하는 행태”라고 분개하며, ‘정부의 방관적 태도’에 놀라워했다.
여기서 우리는 테오도르 아도르노와 막스 호크하이머가 기술한, 문화유산 산업정책이 초래할 수 있는 영향에 대해 주지할 필요가 있다.(6) 가령 문화 산업화 정책은 비판 정신을 말살하고, 수익성에만 치중해 모든 예술을 획일화할 위험이 있으며, 모든 것을 돈을 포함한 숫자의 논리로만 판단하는 문화를 심화할 수 있다. 지당한 말씀이다. 그에 더해, ‘정부의 방관적 태도’ 또한 매우 위험하다.
오늘날 프랑스 정부는 중장기적으로 보조금을 지원하는 대신, 프로젝트별로 지원하거나, 민관협력을 확대하는 등의 소극적 역할에 머무르고 있다. 심지어 ‘공공 문화 서비스’의 개념 자체가 왜곡 또는 소멸될 위기에 처해 있다. 과거 중앙정부의 책임은 지자체(도시, 도시권연합, 도, 광역도)로 전가되고 있다. 이제 지자체는 전체 문화 부문 공공지원의 3/4을 부담해야 하는 상황에 몰렸다. 이미 예산 적자에 대해 엄격한 규제를 받는 지자체는, 인플레이션과 에너지비용 상승의 여파까지 감당해야 한다. 각 지역 상황의 불안정성과 지역 격차는 모든 안정적인 국가 정책과 지역별 중장기 사업을 위협하고 있다.
지난 15년 동안 예산 지원이 약 25% 축소됐으며,(7) 최근 경기 악화로 구조적인 예산 감축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8) 올해 오페라 및 심포니 오케스트라단의 공연 취소 건은 200회가 넘는다. 20만 명 이상의 관객 손실이 발생한 것이다. 몇 주 내내 극장이 문을 닫거나, 상영이 취소된 경우도 흔하다. 이런 문화의 위기에, 정부의 대책이라고는 소액의 긴급지원금 처방이 전부다. 그나마 그 처방을 받은 기관도 극소수다.(9) 사실상 프랑스의 우수한 저력으로 손꼽히는 예술 부문에 대한 공공지원 제도는 완전히 철폐되기는 힘들 것이다.
우리에게는 사회적 치료제가 절실하다
공공지원 제도에 대한 비판에는, 경제 논리 외에 ‘문화 민주화’의 실패에 대한 개탄까지 더해진다. 거의 모든 정치 진영이 한목소리로 비판하고 있다. 보키에의 말을 다시 들어보자. “오늘날 관객의 사회적 비율이 요지부동”이라는 주장이 이론의 여지가 없는 논거처럼 동원된다. 그는 특히 예술계의 ‘엘리트주의’나 ‘부르주아적’ 문화생활 양식에 반대하며 이런 주장을 편다. 하지만 오늘날 정부 지원을 받는 기관의 관객 중 1/3이 ‘초등학생’이다. 이 사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렇다면 전적으로 민간후원제를 실시해야 할까? 2019년 이후 프랑스 심포니 오케스트라 연합(AFO)과 음악의 힘(오케스트라 오페라단 연합)의 노력에 힘입어, 신규 ‘심포니 오페라 협약’(오케스트라 오페라단과 공공 파트너 간 협력에 관한 협정-역주) 체결을 위한 두 사업준비단이 출범했다. 문화부, 지자체, 협회가 함께 공동의 논의를 거쳐 새로운 ‘심포니 오페라 협약’의 내용을 규정하자는 것이었다. 프랑스 문화부는 신규 협약을 승인했다. 2021년 사업준비단이 제출한 두 보고서에는 ‘프랑스식 문화적 예외’(10)의 기본적 원칙에 입각한 여러 구체적인 요구들이 담겼다. 압둘 말라크 장관은 2023년 7월 고전·창작 음악의 발전을 모색하기 위한 협의의 장인 ‘아크로 마죄르’ 회의에서 해당 보고서 내용을 발표하기로 약속했다. 하지만 그녀는 대부분의 연설을 정작 음악인들을 훈계하는 데 할애했다. 음악인들이 “더 많은 관심을 받으려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물론이다. 수익성이 없는 분야가 보조금을 받으려면 “더욱 노력해야 한다!” 먼저 정의로운 대의에 봉사해야 한다. 가령 기후정의에 관심을 가지고 문화시설과 그 공공 파트너가 기후정의를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함께 실천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11) 또한 장관의 연설에서 명확하게 언급된 개념처럼, 다양성과 평등을 위해 문화가 사회적 관계를 공고히 하는 사회적 치료제(참여, 몰입, 포용의 역할)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일부 ‘권위적인’ 작품을 제외하고는, 작품은 요약이 가능하고 사회적으로 합의된, 일반양식에 어긋나지 않는 이데올로기 함양에 도움이 돼야 한다.
결국 모든 국민이 고급예술을 향유할 수 있도록 재정을 지원하고, 고급예술을 상업주의 압력으로부터 보호하며, 불가피한 갈등을 국가가 포용하겠다던 프랑스 정부의 야심찬 기획은 퇴색하고 있다. 1987년 6월 17일, 수많은 국민과 예술인, 창작인, 관객들이 ‘문화 권리선언’의 투표를 앞두고 파리 제니스 야외 콘서트장에 운집했다. 이 선언의 첫마디는 다음과 같았다.
“상업지상주의에 문화적 상상계를 내던진 민족은, 위태로운 자유라는 운명에 처할 것이다.”
글·마리노엘 리오 Marie-Noël Rio
작가. 최근 저서로는 『함부르크, 한자플라츠 7번(Hambourg, Hansaplatz n° 7)』(Delga, Paris, 2021)이 있다.
번역·허보미
번역위원
(1) 2023년 3월 21일, 음악인협회 ‘음악의 힘’이 배포한 보도자료. www.lesforcesmusicales.org.
(2) ‘Adieu 1945, raccrochons notre pays au monde 1945년이여 안녕, 이제 우리나라도 세계의 흐름에 발맞추자’, <Challenges>, 2007년 10월 4일.
(3) Scène nationale, 연극을 전문으로 하는 프랑스의 공공극장은 국립극장, 드라마센터, 국립무대, 이렇게 세 가지다. 국립극장과 드라마센터는 상설극단을 보유한 반면, 문화행정가가 책임자인 국립무대는 해당극장과 결합된 극단이 없고, 연극만이 아닌 다양한 복합문화공간으로 기능하며 주로 프로그램 배포망 역할을 한다.(-역주)
(4) Antoine Pecqueur, ‘Le pass Culture procure surtout des passe-droits 컬처 패스가 특히 제공한 것은 특혜’, 2019년 11월 1일, <Mediapart> ; ‘L’ImPass Culture 컬처 노패스’, <Le Canard enchaîné>, 2023년 8월 2일.
(5) ‘Les multinationales à l’assaut des festivals 페스티발 공격에 나선 다국적기업’, <L’Humanité>, 2023년 4월 20일.
(6) Theodor W. Adorno, Max Horkheimer, ‘La production industrielle des biens culturels, raison et mystification des masses 문화유산의 산업적 생산, 이성과 대중 기만’, in 『La dialectique de la raison 계몽의 변증법』, Gallimard, Paris, 1983년.
(7) 2022년 회계감사원 보고서를 통해 확인.
(8) ‘Madame la Ministre, la fermeture de nos établissements n’est plus une chimère 장관님, 우리 기관들이 문을 닫는 것은 더 이상 단순한 공상이 아닙니다’, <르몽드>, 2022년 12월 10일.
(9) <Challenges>, 2023년 3월 29일.
(10) 문화란 한 국가와 사회의 정체성을 담고 있으므로, 다른 상품과는 차별화돼야 한다며 자유무역협정에서 문화를 배제하는 근거가 된 견해.(-역주)
(11) 정부 지원을 받는 공연예술계를 대표하는 프랑스 최대 기업인단체, 예술문화기업연합회(SYNDEAC)의 현 지도부는 이 문제를 임기 내 최우선과제로 삼았다. 이런 사실은 다음의 소책자에서도 확인이 가능하다. <La Mutation écologique du spectacle vivant, Des défis, une volonté 공연예술의 생태학적 변화, 도전과제, 의지>, 2023년 3월 23일, www.syndeac.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