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들이 묶여있는 것을 싫어하는 이유

2023-10-31     쑨리핑 l 사회학자

현대 중국 종교 전문가인 데이비드 오운비 몬트리올 대학 교수는 비판적인 시각을 지닌 중국의 ‘공공 지식인’, 즉 중국 지도자들에게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길 바라는 연구원, 교수들이 주도하는 논쟁을 주시한다. 오운비 교수는 정기적으로 장문의 중국어 글을 번역해 자신의 블로그 ‘중국몽 읽기(Reading the China Dream)’에 게재한다. 2022년 9월, 그는 쑨리핑이 쓴 ‘양들이 묶여있는 것을 싫어하는 이유’라는 이야기를 번역해 블로그에 게시하며 저자 소개와 함께 쑨리핑이 이 글을 쓴 맥락을 조명했다.

 

1951년생인 쑨리핑은 2020년까지 칭화대 교수로 재직하다 은퇴한 저명한 사회학자로 중국판 페이스북(Facebook)인 위챗(WeChat)에 팬데믹, 우크라이나 전쟁, 중국의 출산율 저하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룬 글을 자주 게시한다.

상당한 추종자를 보유한 그의 글은 어려운 질문을 과감하게 던지는 양식 있는 진보주의자의 시각을 담고 있다. 이 때문에 가장 논란이 된 일부 글들은 위챗에서 삭제된 후 종종 다른 인터넷 공간에 다시 게재됐다. 쑨리핑은 때때로 지나가는 말로 이 사실을 언급했다. 

나는 중국 당국이 어떠한 방식으로 온라인 게시물에 압력을 행사하는지 정확하게 알지는 못한다. 대부분의 검열은 공안국이 직접 나서기보다 일선의 하급 담당자들이 무작위적이고 자의적인 방식으로 결정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나는 2022년 봄·여름 동안 쑨리핑의 글이 더 이상 위챗에 올라오지 않는 것을 보고 그에게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닌지 궁금했다. 7월 23일 다시 모습을 드러낸 쑨리핑은 다음과 같은 글을 게시했다. “지난 3개월 동안 나를 걱정하고 기다려준 온라인 친구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다. 특히 꾸준히 메시지를 보내준 이들에게 큰 감동을 받았다. 이제 다시 글을 올릴 수 있게 됐다. 어떤 주제에 대한 글을 쓰고 싶은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다시 글을 쓸 수 있게 되어 다행이다. (...)” 쑨리핑이 3개월 간 온라인에서 종적을 감췄던 이유는 휴가나 여행을 떠났던 것일 수도 있고 팔을 다쳤던 것 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맥락에서 볼 때, 쑨리핑의 글은 분명 “‘그들’은 내게 한동안 글을 쓰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이제는 다시 글을 쓸 수 있게 됐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에 비춰볼 때, 양들이 묶여있는 것을 싫어하는 이유에 대한 쑨리핑의 다분히 공상적인 사색은 특별한 의미와 간접적인 비판이 담긴 이야기임이 틀림없다.

다음은 그가 올린 글을 번역한 것이다.(1)

 

2020년 11월 31일, 나는 은퇴 후 주로 일상 속 사소한 사건들에 관심을 갖게 됐다는 내용의 글을 트위터(Twitter)에 게재한 바 있다. 최근 나는 3가지 사소한 문제에 대해 생각 중이다. 첫째, 양들은 왜 묶여있는 것을 싫어하는가? 둘째, 누군가 계속 당신을 빤히 쳐다보면 어떤 기분이 들겠는가? 셋째, 집에 놀러온 부모님이나 친구가 당신의 냉장고에 무엇이 얼마나 들어있는지 확인하려들면 괜찮겠는가? 괜찮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이 질문들을 트위터에 올리자 놀랍게도 많은 이들이 흥미로운 아이디어를 내놓으며 토론에 참여했다. 많은 사람들은 이 질문들은 결코 사소한 질문이 아니며 곰곰이 생각해 보면 매우 중요한, 더 나아가 우리가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할 근본적인 질문들이라고 생각했다.

양들이 묶여있는 것을 싫어하는 이유는 꼭 말썽을 피우고 싶어서만은 아니다. 양들에게는 아무런 목적이 없다고 말할 수도 있다. 양들이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싶어 하는 이유는 더 넓은 공간에서 더 많은 풀을 뜯어 먹기 위해서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맞는 말처럼 들리지만 이 이유가 전부는 아니다. 양들은 배불리 풀을 뜯은 후에도 여전히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요즘 그 이유에 대해 생각해 봤다. 우리가 흔히 보는 양들은 묶여있다. 인간이 사육하는 동물은 어느 정도 길들여진 가축이라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길들여진 양들은 묶어 놓아도 전혀 저항을 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양들이 묶여있는 것을 싫어하지 않는다는 잘못된 생각을 하게 된다.

이는 사실이 아니다. 묶인 줄을 풀어주면 양들은 행복하게 날뛰며 도망친다. 이를 보면 양들이 묶여있는 것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알 수 있다.

아무런 제약 없이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싶은 것은 결국 동물의 본성이다. 자연은 자연의 섭리를 따를 뿐이다. 숨겨진 목적은 없다. 물론 동물마다 지각 방식은 다르다. 오랫동안 우리에 갇혀 살아온 양이나 새들은 이러한 제약에 어느 정도 익숙할 수 있다. 하지만 다른 동물들은 다르다. 예를 들어, 곤충과 거미를 손에 쥐면 필사적으로 도망치려고 할 것이다. 

과학자들은 동물들을 가둬놓으면 자살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예를 들어, 돌고래와 고래는 포획 후 한 곳에 너무 오랫동안 갇혀 있으면 자살을 시도하기도 한다. 여러 종의 새들도 마찬가지다. 태어나 처음 사슬에 묶인 개의 반응을 본다면 내 말을 이해할 것이다. 개가 사슬을 풀기 위해 몸부림치며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은 끔찍한 광경이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IQ가 높은 동물일수록 (자유에 대한) 본능도 더 강하다고 한다. 

 

뷔셰르의 과감한 추론 

당신을 지켜보는 시선이 있다는 것은 생각보다 심각한 문제다. 내 말을 믿지 못하겠다면 중국 동북부 지역 거리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싸움이 어떻게 시작되는지 관찰해 보라. “왜 맨날 쳐다보는 거야?” “그래 쳐다봤다. 그게 뭐 어때서?” 이러한 유형의 대화는 싸움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장 폴 사르트르에 의하면, 당신을 쳐다보는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당신을 객체화한다. 당신을 쳐다보는 사람은 지배적인 존재가 되고, 당신은 단순한 관찰의 대상으로 변한다. 이 과정은 당신의 자유의지를 부정한다. 타인의 노골적인 시선을 받는 사람은 불편한 억압감을 느낀다. 억압감은 때때로 마음을 어지럽힌다. 

이집트 피라미드를 건설한 인부들에 대한 끊임없는 논쟁은 잘 알려진 이야기다. 고대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역사』에서 30만 명의 노예가 피라미드 건설에 동원됐다고 저술했다. 하지만 1560년 피라미드를 방문한 스위스 시계제작자 한스 뷔셰르는 피라미드를 건설한 인부들은 절대 노예가 아니라 행복한 자유인 신분이었다고 주장했다.(2)

뷔셰르는 어떻게 이러한 결론에 도달했을까? 프랑스 가톨릭 신자였던 뷔셰르는 로마 가톨릭교회의 경직된 교리에 반대한 이유로 1536년 투옥돼 사슬에 묶인 채 생활했다. 시계 제작 명인이었던 그는 감옥에서도 시계 제작 노역을 했다. 자유를 빼앗기고 억압받는 상황에 놓인 뷔셰르는 일일 오차 1/10초 미만의 시계를 제작할 수 없었다. 감옥에 갇히기 전 자신의 공방에서 자유롭게 일할 때 그가 만든 시계의 오차 범위는 1/100초 미만이었다.

뷔셰르는 그 이유를 이해하기 힘들었다. 처음에는 감옥의 열악한 환경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뷔셰르는 이후 탈옥에 성공했다. 자유를 되찾은 후 그의 생활환경은 감옥에 있을 때보다 더 열악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시계 제작 능력은 놀랍도록 빠르게 회복됐다. 뷔셰르는 마침내 결정적인 요소는 시계 제작 환경이 아니라 시계 제작자의 감정 상태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불행하고 화가 난 상태에서는 손목시계 하나를 만드는데 필요한 1,200단계의 작업을 성공적으로 완수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원망과 증오를 품은 상태에서는 정확한 손목시계나 벽시계 제작에 필요한 254개의 부품을 정밀하게 갈고 다듬기가 힘들었다.

이 경험을 통해 뷔셰르는 피라미드처럼 수많은 단계를 거치며 세심한 공을 들여야 했을 거대한 건축물을 건설한 사람들은 성심을 다해 일한 자유인이었을 것이라고 과감히 추론했다. 일에 대한 열정 없이 저항 욕구를 가진 노예 집단이었다면 칼날 하나조차 들어갈 틈이 없이 완벽한 방식으로 돌을 쌓아 올려 피라미드를 건설하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러므로 과도한 조언과 삼엄한 감시를 받는 사람에게서 기적을 기대하지 말자. 인간은 몸과 마음이 조화를 이룰 때만 최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방해받지 않을 권리, 자유의 일부

다른 사람들이 당신 냉장고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알고 있다고 해서 해가 될 일은 없다. 하지만 동네 부녀회 할머니들이 당신 집 냉장고에 생선은 몇 마리가 있는지, 돼지 갈비는 몇인분이 들어있는지 확인하려 든다면 어떤 기분이 들겠는가?

하루는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계산을 마치자 종업원은 내게 식당 회원 가입을 제안하며 회원이 되면 할인 혜택이 제공된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129위안(약 19유로) 요리를 주문했을 때 10위안(약 1.4유로)이 할인되는 식이었다. 내가 동의하자 종업원은 회원 가입에 필요하다며 이름, 전화번호, 신분증 번호, 집 주소 등을 물었다. 너무 과도한 요구였다. 당국에서 이런 정보를 요구한다면 거부할 수 없겠지만 겨우 식당에서 이처럼 온갖 개인 정보를 요구한 것이다. 차라리 돈을 조금 더 내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 나는 결국 회원 가입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는 이 식당에서 밥을 먹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회원 가입은 자발적인 선택이며 가입을 원하지 않으면 정상가를 지불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실 이는 터무니없는 생각이다. 나는 할인가가 실제 가격이며 정상가는 비회원에게 부과된 가산금을 포함한 가격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여행을 좋아한다. 특히 대초원 지대를 비롯한 황량한 지역을 좋아한다. 물론 최근 몇 년 동안은 여행을 거의 하지 못했다. 많은 이유가 있지만 그중 하나는 호텔 투숙 시 요구하는 안면 스캔 절차 때문이다. 요즘은 어디를 가든, 심지어 외딴 오지에 가더라도 호텔 체크인 시 안면 스캔은 피할 수 없는 절차가 됐다.

물론 안면 스캔이 해가 될 게 뭐가 있겠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안면 인식은 항상 거부감을 유발한다. 호텔에 투숙하는 관광객일 뿐인데 도둑 취급을 받아야 하는 것인가?

사생활은 존엄성의 일부다. 사생활 존중은 자유의 경계를 설정하고 신뢰를 구현한다. 상대방의 위챗을 끊임없이 확인하는 커플은 서로를 불신하기 때문이다. 잘못한 것이 없다면 두려워할 이유도 없다고 반박할지도 모른다.(3) 이는 언뜻 들으면 합리적으로 들리지만 실제로는 정말 터무니없는 주장이다. 만약 당신이 떳떳하다면 다른 사람들이 아무 이유 없이 당신을 하루 종일 귀찮게 해도 된다는 말인가? 더 중요한 것은, 무슨 권리로 아무 이유 없이 타인을 계속 괴롭힐 수 있단 말인가? 방해 받지 않을 권리는 자유의 일부다.

물론 공동체 생활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사람들은 어느 정도 사생활을 희생하는 등의 일부 제약은 받아들여야 한다. 하지만 나는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조건을 충족할 때에만 이러한 제약을 부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사생활 제약이 반드시 필요한 경우여야 한다. 둘째, 사생활 제약으로 인한 장점이 불편함보다 반드시 커야한다. 셋째, 사생활 제약을 결정하는 이들은 그에 따른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한다. 넷째, 무엇보다도 법이 허용하는 사생활 침해와 일부 제약만을 부과해야 한다.  

 

 

글·쑨리핑 Sun Liping
사회학자

번역·김은희
번역위원


(1) 데이비드 오운비의 동의를 얻어 재번역한 글. 참고 기사 : Sun Liping, ‘Des chercheurs chinois réclament des réformes dans leur pays 중국이여 ‘항의’를 제도화하라’,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1년 7월호.
(2) 데이비드 오운비의 주석 : 이 이야기는 여러 중국 자료에서 찾아볼 수 있지만 이 시계 제작자의 정확한 이름이나 생년월일, 사망 날짜는 알려지지 않았다. 중국어로 ‘부커(Booker)’라고만 알려진 한스 뷔셰르는 실제로 16세기 이름을 날린 스위스 시계제작자였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서양 자료에서는 같은 이야기를 찾을 수 없었다. 
(3) 데이비드 오운비의 주석: 중국어 원문은 ‘귀신이 문을 두드려도 두려워하지 않는다’로 부도덕한 행동, 특히 누군가를 죽음에 이르게 한 행동을 하면 고인의 ‘넋’이 찾아와 복수한다는 중국 속설을 일컫는 표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