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의 눈, 죽음의 시선
필름이 살상하는 것
<더이상 밤은 없을 것이다(Il n’y aura plus de nuit)>는 “감상용 영상이 아닙니다”라는 설명을 붙인 비공개 영상의 몽타주다. 군사작전과 그에 따른 동선, 매 순간을 포착하는, 영상 그 자체를 위한 영상이다. 실제와 허구 사이에는 더 이상 경계가 없다. 관찰하는 자와 움직이는 자의 시각을 동시에 보여주기 때문이다.
영상을 통해 전투 헬리콥터에 장착된 카메라로 조종사가 무엇을 보는지 알 수 있다. 카메라는 조종사를 따라 조종사가 바라보는 내용을 촬영한다. 그리고 조종사의 시력을 확장해 맨눈으로 볼 수 없는 것들까지 보여준다. 조종사는 몇 킬로미터 밖을 내다볼 수 있고, 어둠 속에서 열화상을 탐지할 수 있다. 하지만 카메라는 기술의 측면을 넘어 관계를 정의한다. 상황을 기록하고 조종사를 보조할 뿐 아니라, 조종사가 끊임없이 상황을 감시하게 한다. 하지만 감시 대상은 감시받는다는 사실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다.
밝은 대낮에 조종사는 목표물에서 수백 미터, 수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도 사람의 성별, 옷차림, 자동차의 세세한 정보, 어린이들의 작은 움직임까지 식별할 수 있다. 시리아, 이라크, 아프가니스탄을 비롯해 군사 강국의 군대가 투입된 곳에서는 대부분 이런 정찰대가 거의 신적인 경지에서 개인들의 삶을 감시한다. 밤낮을 가리지 않는다. 밤에도 대낮처럼 훤히 멀리 내다볼 수 있다. 반면 감시받는 사람들이 헬리콥터를 감지할 수 있는 정보는, 프로펠러 소리가 전부다.
엘레오노르 베베르의 <더 이상 밤은 없을 것이다>는 2021년 여름에 DVD로 출시됐다(배급 UFO, 총 75분). 나탈리 리샤르의 해설을 곁들인 이 파운드 푸티지 다큐멘터리는 불편한 현실을 보여준다. 파놉티시즘(Panopticism, 소수에 의한 다수의 감시 및 통제-역주)과 기술 전쟁이 결합해 누구든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때로는 군사 훈련의 일환으로) 감시당할 수 있다. 서구 국가도 예외는 아니다. 이 영화는 전투 헬기 조종사들과 기장들이 말리, 레반트 지역, 마슈레크 지역에서 작전을 수행하면서 무엇을 보았는지 보여준다.
파운드 푸티지(Found-footage)란, ‘발견된 영상의 몽타주’라는 의미다. 그것은 공포영화처럼 허구의 내용일 수도 있고, 군사 기록물을 종합한 몽타주인 이 다큐멘터리처럼 실제 영상을 사용하기도 한다. 이런 실제 영상의 출처는 대개 미국이다. 감독은 군인들이 자랑삼아 직접 인터넷에 올린 영상이라고 말한다. 소셜 네트워크에 거리낌 없이 올라온 이 영상의 시점은 살인자의 시각이다. 조종사의 시선은 카메라뿐 아니라 기관포로 향한다. 손을 쓰지 않아도 살상할 수 있다.
이제는 시선 그 자체 즉 보는 것 또는 보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 것을 수용하거나 또는 거부하는 것만으로도 살상이 일어날 수 있다. “더 많이 볼수록 실수할 가능성이 커진다”라는 해설이 이 영화의 주제를 함축한다. “(야간에) 조종사들은 어깨에 갈퀴를 든 농부와 칼라시니코프(러시아의 무기회사)표 무기를 든 전사를 잘 구별하지 못한다.”
영상에서 살상하는 자, 즉 카메라의 시선이 자신의 것이 될 때 관객은 어떤 관점을 취하게 될까? 이 영상은 군사작전을 날 것 그대로 보여줄 뿐이다. 조종사들이 영어와 프랑스어로 말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주저하고 머뭇거리기도 하는 조종사들의 눈은 목표물을 향하고 있다. 한 무리의 청년들이 이라크의 시내 인도에 서 있고, 차량 두 대가 사막 도로를 지난다. 이윽고 폭발이 일어난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지만, 화염과 연기, 무너져 내린 집과 내장이 튀어나온 시신들이 보인다. 조종사들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고 한다. 이 마당에, 의문을 품고 윤리를 따질 여지가 어디 있을까?
<더 이상 밤은 없을 것이다>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상대를 보지 못하는 사람들을 감시하는 전쟁산업과 첨단기술, 과시적 권력에 대한 소리 없는 외침이다. 무적의 경지에 이르려는 욕망, 그 자연법칙에 무릎 꿇는 복종의 최종 단계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등장한다. 카메라는 미국 사막의 풍경을 강렬하고 밝은 황혼의 빛으로 촬영해 비현실적인 느낌을 준다. 연보라색 하늘을 배경으로 별들이 선명히 빛나고, 땅은 누런 황톳빛이다. 미국의 최신식 카메라로 기록한 이 영상에는 어둠 속에도 대낮처럼 훤히 들여다볼 수 있는 밤이 사라진 세상, 상대방은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는 기록을 관객들에게 보여준다.
본질적인 불평등과 정보의 비대칭 속에서 적과 싸울 수 있을까? 나는 숨어 있다고 생각하지만 상대는 나를 볼 수 있다면? 몇 킬로미터 떨어진 헬리콥터가 바로 뒤의 차보다 내 차의 내부를 낱낱이 볼 수 있다면, 이런 밤에 어떻게 싸울 수 있을까? 패배가 예정된 이 싸움에서 적과의 격차는 점점 더 커질 뿐이다. 강자에게 밤은 걸림돌이 아니라 절호의 기회다. 민간인들의 죽음을 되돌아보거나, 토론하거나, 기뻐하거나, 때로는 조종석에서 이어지는 긴 침묵으로 문제를 제기하기도 하는 이 색다른 작품은 전쟁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전쟁의 실상에 접근할 수 있게 해 준다.
이미지 전쟁과 선전, 노골적으로 혹은 은연중에 SNS에서 일어나는 조작이 분쟁으로까지 번지는 지금, 역설적으로 <더 이상 밤은 없을 것이다>는 전쟁의 이미지에 그 어느 때보다 쉽게 다가설 수 있게 하는 동시에 전쟁의 극적인 본질을 끌어낸다. 전쟁은 서사와 이미지를 결부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욱 강력하고 격렬하게 정치적 문제를 제기한다. 엘리노어 웨버의 영화는 관객의 무의식 속에 메시지를 주입하고, 살상을 저지르는 사람이 서 있는 곳에 관객을 배치해 공범이 된 기분이 들게 한다. 이런 이미지, 편집용 필름, 영상, 오디오 추출물이 모두 어우러져 전체를 이루는 듯이 보인다.
왜 군인들이 “자기 행동을 판단할 여지가 없다”라고 했는지 이해할 수 있다. 이미지가 직접 이야기할 때,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 없기 때문이다.
글·에티엔 셰르슈르 Etienne Cherchour
프리랜서 기자
번역·이푸로라
번역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