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창녀의 귀환

최근 프랑스 영화계의 한 경향

2012-05-14     모나 숄레

프랑스 영화인들은 마치 중산층 · 서민층의 젊은 여성들에게 두려운 운명의 저주를 떨쳐버리는 방법을 가르쳐주기로 작정이라도 한 듯했다. 그 운명이란, 하나 마나 한 공부를 한 뒤 또는 아예 학업을 생략한 뒤, 쥐꼬리만 한 봉급을 받겠다고 보람도 없는 일을 장기간 해야 하는 삶이다. 물론 영화인들은 여성에게 자신이 처한 상황을 정치적으로 분석하라고 권하지는 않는다. 이를테면 부자와 빈민이 있는데 이들은 과거에도 있었고 미래에도 있을 것이며, 인류 역사에서 일정한 수치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아니, ‘대체로’ 일정하다는 표현이 맞겠다. 가난한 이는 더욱 가난해지고, 부유한 이는 더욱 부유해지는 요즘의 추세를 눈치 채지 못한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런 현실에는 모종의 정치적 메커니즘이 작동한다고 추측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여기에 반론을 제기하는 건 천박한 포퓰리즘으로 치부될 우려가 있다. 더군다나 아름다운 숙녀가 고상치 못하게 그럴 수는 없지 않은가! 궁색한 처지에서 벗어나는 데 필요한 모든 것, 즉 젊고 매력적이고 건강한 육체를 갖추고 있는 마당에 굳이 골치 아프게 이것저것 생각할 이유가 있을까?

‘기획임신’ 17명의 소녀들

2011년 12월 프랑스에서는 델핀 쿨랭과 뮈리엘 쿨랭이 공동 감독한 영화 〈17명의 소녀들17 Girls〉이 개봉했다. 2008년 동시에 임신을 하기로 한 미국 여고생 17명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작품은, 현실을 이상적인 모습으로 그렸다. 감독은 청소년들의 임신을 마치 부모와 교사들의 갑갑한 세상에 대한 낭만적 반항처럼 표현하면서 날씬하고 예쁜 배우들의 매혹적인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1

조기 임신의 ‘전복성(기존 질서를 새롭게 뒤엎음)’을 강조하는 이면에는 여성들에게 출산을 장려하는 분위기가 숨어 있다. 수년 전부터 이미 미국과 유럽의 대중문화에서 그 조짐을 보였다. 2007년 미국 영화 〈주노〉가 개봉한 데 이어 MTV는 미국에서 〈틴맘〉, 프랑스에서 〈16살 그리고 임신〉이라는 리얼리티 쇼를 제작했고, TF1은 드라마 〈너무 일찍 엄마가 된 클렘〉, 〈청소년, 벌써 엄마〉를 선보이는 등 곳곳에서 이런 추세가 드러났다. 프랑스 가수 콜로넬 레옐이 부른 〈오렐리〉의 뮤직비디오는 유튜브에서 조회 수 2,300만 건을 기록하며 낙태 반대론자들을 흐뭇하게 했다. 가사는 이렇다. “오렐리는 겨우 16살이지만 곧 아기를 낳아요. 친구들과 부모님은 낙태를 권했지만 싫다고 했어요. 그녀의 생각은 달라요. ‘엄마’라는 호칭을 받아들일 준비도 됐다고 하네요.”

시야를 넓혀보자. 잡지 가십란에서도 유명인들의 임신을 둘러싼 관심이 확인된다(심지어 복부 비만 초기 증세도 임신의 의혹을 산다). 그들의 가정생활도 미화되기 일쑤다. 이는 모성을 통해 여성성이 궁극적으로 완성되고, 그와 더불어 장밋빛 탄탄대로가 펼쳐진다는 사고를 조장한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여성들이 일찌감치 결혼과 임신을 통해 존경받는 사회적 지위에 서는 게 좋지 않을까?

이런 문화 전반의 분위기가 우려스럽기는 하나, 일단 통계상으로는 큰 변화가 없다. 프랑스의 청소년 출산은 연간 수천 건에 달하지만 미국에 비하면 10분의 1 수준이다. 그러나 전 연령대 여성들로 폭을 넓혀보면 가정을 온갖 매력이 가득한 터전으로 여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고용시장의 저임금 · 비정규직 폐해를 여성이 최전선에서 경험한다는 사실도 여기에 일조한다. 1970년대 페미니스트들은 일자리가 경제적 독립을 보장해준다고 봤지만 오늘날 여성들에게는 더 이상 그렇지도 않다.

엄마가 나왔으니 이제 창녀가 나올 차례다. 2011년 2월 개봉한 마우고시카 슈모프스카 감독의 영화 〈엘르Elles〉는 ‘학생 매춘’ 실태를 다룬 픽션이다. 학생 매춘은 일부 대학에서 예방 캠페인을 벌일 정도로 프랑스에서 증가하고 있다. 영화의 두 여주인공 중 하나는 서민 임대주택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뒤 지금은 엘리트 교육기관 그랑제콜 입시를 준비하지만, 패스트푸드점 아르바이트 때문에 공부할 시간이 부족하다. 또 다른 주인공은 폴란드에서 유학 온 여학생으로, 파리의 비싼 방값에 놀란다. 하지만 그들은 이내 중요한 섭리를 깨닫는다. 돈 많은 남자들은 육체적 교감을 나누는 쾌락의 순간만 제공해주면 얼마든지 자기 수입을 나눠줄 용의가 있다는 사실 말이다. 따지고 보면 세상은 그런대로 살 만하다고 그들은 생각했을 것이다.

어느 날 두 여자는 잡지 〈엘르〉 기자에게서 성매매 취재를 위한 인터뷰 요청을 받는다. 편견에 기인한 동정심과 세상 물정 모르는 답답함이 돋보이는 중년의 여성 기자는 자신의 매력을 돈벌이에 이용해본 적이 없다는 이유로 마치 성적 성숙에 눈뜨지 못한 여인처럼 묘사된다. 영화는 성매매에 내재한 여성 혐오적 이미지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항상 성매매의 고객인 욕구불만의 부르주아 남성은 마음이 여리고 감수성이 풍부하다. 한마디로 아이 같은 영혼의 소유자다. 반대로 욕구불만의 부르주아 여성은 멍청하고 고약하며 기괴한 피조물로 그려진다. 여자의 불행은 (그다지 심각하지는 않지만) 오로지 그 자신의 책임이다. 아내로서 가장 성스러운 의무를 게을리 한 탓이다.

주간지 〈텔레라마〉(2012년 2월 1일 자)에 따르면, 영화 속에서 인터뷰하던 여기자는 ‘기쁨을 준다’는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하는 여학생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본다. 여기서 기쁨을 ‘취한다’가 아니라 ‘준다’라는 것이 중요하다. 영화는 이런 종속 관계를 당연시하면서 매춘을 성性의 참된 모습인 양 제시한다.

성매매 고객과 매춘부가 함께하는 장면은 감동적인 휴머니티와 매혹적인 장난, 관능적인 파격, 그리고 아름다운 멜로디로 점철된다. 이는 시사주간지 〈렉스프레스〉(2012년 2월 12일 자)의 ‘콜걸’ 특집 기사에 묘사된 풍경과 흡사하다. 기사에 따르면, “이제 여성 지침서에는 고생하는 여공이나 싱글맘만 등장하지 않는다. 시크하고 해방된 매춘부도 그 안에서 제자리를 찾았다. 실제로 여성들이 금전적 궁핍으로 이런 상황에 불가피하게 처하곤 한다.” 이 모든 것을 조심스럽게 ‘금전적 궁핍’이라는 말로 설명하고 있다.

돈을 사랑하는 ‘시크하고 해방된 매춘부’

전직 고급 매춘부 자히아 드하르는 고급 란제리 브랜드를 출시하면서 일간지 〈리베라시옹〉(2012년 2월 4일 자)의 패션 섹션 ‘넥스트’의 1면을 장식했다. 드하르는 미성년자였던 2009년 축구선수 프랑크 리베리에게 ‘생일선물’로 성관계를 가지면서 이름을 알렸다. 샤넬 패션디자이너 칼 라거펠트는 드하르가 “프랑스 궁녀들의 계보를 잇는다”며 이는 “전 세계가 감탄하고 모방하는 프랑스 고유의 전통”이라고 주장했다(드하르는 칼 라거펠트와 함께 란제리 브랜드를 런칭했다). 해당 기사를 쓴 여기자는 드하르의 사연이 “상속자들의 시대에 매몰된 이 사회에 크게 숨통을 터주었다”고 보았다.

물론 이런 ‘현대 동화’에 모든 여성이 매혹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모든 여성이 자신을 주체보다는 대상으로서 가꾸도록 강력한 권유를 받는 게 사실이다. 여성에게 기대하는 정형화된 섹시함은 심미성과 의상을 기준으로 규정된다. 이 기준은 어릴 적부터 여성에게 강요되고 여성이 자발적으로 동조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곧 패션과 아름다움은 사회적 신분 상승의 열쇠인 동시에 꿈꾸는 세상으로의 탈출구인 셈이다.2

금융위기가 발발하고 미래에 대한 불안이 커지면서 가장 구태의연한 형태의 여성성이 되살아나는 듯하다. 즉 거칠고 경쟁이 치열하고 무자비한 사회에서 도피해 숨어버리거나(가정), 아니면 그런 사회 속에서 자기 자리를 만들고자(팜므파탈로서의 온갖 장비) 무기로 활용하는 것이 요즘 말하는 여성성이다. 엄마의 모습이든 창녀의 모습이든 간에 이런 여성성은 오로지 타인의 필요와 기대에 따라 규정된다. 여기에 부합하려는 여성들은 정작 자신의 욕구, 견해, 야망은 꼭꼭 숨겨야 한다. 마리즈 바이양은 이렇게 말한다. “과거의 여성 정복자, 자유 여성, 여류 지식인, 여성 권력자 등으로 대표되던 이상향과 완전히 동떨어진 모습의 오늘날 여성성은 단 한마디 ‘유혹’으로 정의되고, 목적은 단 하나 ‘모성’이다. 결국 남성과 아이들이 우선이라는 얘기다.”3 바이양은 이것이 여성의 성과 지성에 가해지는 일종의 지속적 검열이라고 본다. ‘넥스트’ 기사에 따르면, 자히아 드하르는 알제리에서 보낸 어린 시절에는 우등생이었고 수학을 좋아했고 비행기 조종사가 되는 게 꿈이었다.

자신이 원하는 직업을 갖고, 모성과 성 또는 유혹이 아닌 다른 능력을 통해 사회에서 존재를 인정받으며, 이로써 경제적 독립을 이뤄 자신이 원하는 이와 잠자리를 할 수 있게 되는 것, 재벌가 딸로 태어나지 않은 이상 이것을 여성이 쟁취하기란 옛날부터 쉽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이것이 아예 목표조차 되지 못하는 세상이 된 듯하다.

 

글·모나 숄레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대표적인 페미니즘 전문기자로, 여성들이 곤경에 처한 사회 환경에 관심이 많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만평 전문지 〈샤를리 에브도〉의 계약직 기자였으나, 2000년 편집 책임자가 팔레스타인인들을 야만적인 사람들로 규정지은 편집방향에 항의해 사표를 냈다. 주요 저서로 『리얼리티의 폭군(La Tyrannie de la réalité)』(2006) 등이 있다.

번역·최서연 qqndebien@naver.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역서로 <르몽드 세계사 2>(공역·2010) 등이 있다.

 

1 Mona Chollet, ‘17 Filles et pas mal d’objections(17명의 소녀들, 그리고 적지 않은 반론)’, Peripheries.net, 2012년 1월 1일 참조.
2 Mona Chollet, Beauté fatale. Les nouveaux visages d’une aliénation féminine(치명적 아름다움, 여성 소외의 새로운 얼굴), Zones‒La Découverte, Paris, 2012.
3 Maryse Vaillant, Sexy soit‒elle: Propos sur la féminité(섹시하여라: 여성성에 대한 소고), Les liens qui libèrent, Paris, 2012. 이 책에서 아쉬운 것은 최근 추세에 반대되는 ‘진정한 여성성’을 상정하면서, 이를 더 긍정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갖은 클리셰를 동원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