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몽드 디플로마티크>를 후원하는 이유

비동맹 노선을 지지하는 독립언론의 다짐

2023-11-30     브누아 브레빌 외

우리의 나침반은 흔들리지 않았다

2008년 금융위기, 기후위기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중동의 혼란 등 세계는 지난 15년간 지적·지정학적 나침반을 뒤흔드는 일련의 충격을 겪었다. 그러나 현재 거의 유일하게 독자적인 비동맹 노선을 지지하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이하 <르디플로>)의 나침반만은 흔들리지 않았다. 우리는 <르디플로>의 독자에게 그 투쟁을 지지해줄 것을 촉구하는 바이다.

약 1년 전인 2022년 10월 19일,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위원장은 브뤼셀의 EU 의회에서 엄숙한 목소리로 연설했다. 위원장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은 “겨울을 앞두고 남성, 여성, 어린이에게 물, 전기, 난방 공급을 막으려는 명백한 목적으로 민간 기반시설을 표적 공격하는 것은 전적으로 테러 행위이며, 우리는 그런 행위를 테러로 간주해야 한다”라고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서구진영 동맹이 ‘표적 공격’을 하는 경우에는 이 규칙이 적용되지 않는다. 10월 7일 하마스가 벌인 군사작전에서 이스라엘 민간인 수백 명이 떼죽음을 당한 뒤(300여 명의 군인을 비롯해 1,400명 이상이 사망했다), 이스라엘의 요아브 갈란트 국방장관은 가자지구를 전면 포위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전기, 식량, 가스 등 모든 것이 끊길 것이다. (…) 우리는 인간이라는 동물과 싸우고 있으며 그에 상응하는 방식으로 행동할 것이다.(10월 9일)” 이틀 뒤, 무차별적 폭격(러시아군이 주로 쓰는 진격 방식이나 다른 전투에서도 사용된다)으로 폐허가 된 주거지, 학교, 병원, 언론사 건물의 잔해에서 팔레스타인 시신 1,200구가 이미 수습됐다. 그곳에 대원들이 피신해 있을 가능성 때문이었다.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은 담대하게 이렇게 말했다. “유럽은 이스라엘을 지지한다.” 프랑스에서는 야엘 브론-피베 국회의장이 “프랑스를 대표하여” 이스라엘 정부를 “무조건 지지한다”고 발표했다. 

프랑스 언론은 하마스 대원들이 저지른 전쟁 범죄에 초점을 맞춰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전체를 ‘이슬람 테러리즘’의 관점에서 재구성했다. 이 같은 유형의 다각적 공격으로 초토화된 한 나라를 이런 식으로 재구성하기 시작하자, 이제 곧 언론은 정보 제공이 아니라 권력을 쥔 쪽의 강경한 입장을 전달하거나 그 문제를 논하는 이들을 집요하게 공격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코로나 당시 프랑스 정부는 이동제한 조치로 기본적 자유를 침해했으나 민주주의의 수호자라고 자처하는 이들은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고, 하마스 공격이 있고 난 그다음 주에 프랑스 정부는 팔레스타인에 대한 지지 표명을 금지함으로써 이 기본적 자유에 다시 한번 타격을 가했다. 10월 10일 프랑스 법무부 장관은 “하마스나 이슬람 지하드를 호의적으로 판단하도록 선동하는 메시지의 공개 유포 행위”를 금지하는, 자유 침해 성격의 공문을 검찰에 보냈다. “일반적 관심사를 논하는 범위 내에서 관련 이야기를 하거나, 정치적 성격의 대화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주장해도” 마찬가지다. 이런 내용의 공문이 공개되자 반대쪽 핵심 인물들은 즉시 ‘논쟁’을 시작했다. 논쟁 주제는 자신들이 보증한다고 주장하는 그 ‘표현의 자유’가 아니었다. 태생부터 테러리스트로 규정된 팔레스타인 저항의 정당성을 인정하는 정당을 추구하거나 해산해야 할 필요성에 관한 것이었다. 샤를 드골과 자크 시라크가 그들의 시대에 옹호했던 접근방식이다. 

 

탈식민지화와 비동맹운동에 동참한 <르디플로>

언론사 편집진의 편견은 악의적인 의도보다는 진지한 맹목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들이 ‘이중 잣대’로 상황을 판단한다고 비판하는 것은, 결국 그들이 오래전 포기한 인간에 대한 평등한 대우나 평등한 존엄성이라는 규범에서 멀어지는 것을 개탄하는 것과 같다. 공영 TV의 전직 간판 앵커 다비드 푸하다스는 LCI(10월 11일)에서 그야말로 초인적인 공감능력을 발휘하여 자신과 같은 직업에 종사하는 많은 고위직 인사들의 정신상태를 이렇게 정리했다. “러시아인들이 러시아 정부와 한패라면 가자지구 사람들은 하마스와 한패라고 생각해야 한다.” “가자지구의 민간인 한 명은 이스라엘의 민간인 한 명과 같다고 말해야 하는가?” 

아마도 그가 보기에, 하마스를 ‘테러리스트’로 규정하지 않았다고 해서 격렬한 비난을 받은 BBC 국제부 팀장의 반응보다 더 의아한 것은 없었을 것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시청자에게 사실을 제시하고 그들이 자신의 의견을 스스로 정하게 만드는 것이다.”(1)

2015년과 2016년의 공격으로 급진화된 프랑스 유력 언론인들은 미국, EU, 프랑스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는 관점을 본능적으로 선동이나 불법행위와 동일시한다. 그들에게 정보 제공이란 대서양주의의 가치라는 리트머스로 사실들을 걸러내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의 ‘국제 공동체’는 서구의 형제애를 말한다. 모스크바에서 한 여기자가 살해되자, 그들은 권위주의 체제에 문제 제기를 해야겠다는, 정당한 생각을 하게 된다. 팔레스타인 출신의 동료 기자들은 이에 축 처진 어깨를 으쓱했다. 2023년 전 세계에서 사망한 기자의 1/3이 10월 14일 이스라엘에 의해 살해됐다.(2) 러시아나 하마스에 관한 허위 정보에 대해서는 수천 건의 기사가 자세히 보도하지만,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 관련 가짜뉴스는 별문제 없이 빠져나간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에 관한 보도에는 역사의 진실을 오도한다는 또 다른 문제가 있다. 팔레스타인의 공격에 관한 TV 뉴스는 요약해서 짤막하게 보도된다. 그러나 식민지화, 추방, 살인, 우물과 농작물 파괴, 굴욕 등 공격에 앞서 벌어진 일들에 침묵하는 것은 결국 계획적으로 이스라엘을 자신을 방어하는 피해자로 보여주는 것이다. 예컨대, <BFM TV>의 벵자맹 뒤아멜 기자는 가자지구 폭격에 대해 “이스라엘 정부가 공격에 대응했다”라고 말했다(2023년 10월 13일).

<르디플로>는 언론 편집과 관련한 아파르트헤이트에 반대하는 뜻에서 설립됐다. 1954년 창설 이래 1980년대까지, <르디플로>는 두 진영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하기를 거부하고 대부분은 사회주의 기치 아래 자율적 발전을 통한 민족의 독립을 지지하는 국가들의 탈식민지화 운동과 비동맹 운동에 동참해왔다. 

당시 <르디플로>는 혼자가 아니었다. <렉스프레스>, <르 누벨 옵세르바퇴르>, <르몽드>가 민간인 학살의 주동자이기도 한 알제리 민족해방전선(FLN)의 ‘테러리스트들’에 대한 이해를 표명했고, 심지어 그들의 옹호자 역할을 했다.(3) 이 세 매체의 메시지는 ‘서구 쪽’에 퍼져나갔다. 그런데 오늘날 서구진영에 자신의 존재를 주장하는 남반구 저개발국가들은 반세기 전에 식민지의 굴레를 벗어버린 이 신세계와는 거의 관련이 없다. 자유시장 체제로 전환되고, 파편화되고, 해방의 유토피아가 없는 이 저개발국가들은 국제 세력의 균형이 재편되기를 요구하지만, 자신의 영역에서 북반구와 더 효과적으로 경쟁하기를 바라기도 한다. 따라서 <르디플로> 같은 매체로서는 서구 중심의 거품 위를 떠다니지 않기가 그 어느 때보다 힘들다. 첨예한 위기가 발생하는 시기 말고는, 국제 문제가 활발히 논의되는 환경은 위축된다. 또한 정치계가 미국의 입장을 따르면서 진보의 활력소가 부족해지는 상황이다. 새로운 정보기술의 급격한 변화도 이런 일반적 추세를 뒤집지는 못한다. 

 

객관성이란 위선적 가면을 쓰지 않았다

스크롤. 스마트폰에서 길이가 짧은 동영상을 스크롤한다. 처음에는 찾고자 하는 정보와 관련된 동영상을 스크롤하다가 알고리즘이 선별해준 다른 관련 동영상을 스크롤한다. 그러다 처음에 찾으려던 주제와는 관련 없는 다른 동영상을 스크롤하게 된다. 손가락은 끝도 없이 기계적으로 화면을 터치한다. 이미지의 흐름에 따라 애초에 답을 찾고 있던 의식은 어느새 무감각한 상태에 빠져 자신도 모르게 사라지고 만다. 보고자 하는 억제할 수 없는 욕망을 뜻하는 스코픽 드라이브(scopic drive)는 시선을 화면에 고정시키고 뇌의 스위치를 꺼버린다. 디지털 산업은 정보 사용자를 고양이 사진과 학살 장면들을 오가는 몽유병자 부대로 만들고 싶어 한다. 그들은 지식에 접근하는 방식의 균형을 슬그머니 근본적으로 바꿔버렸다. 바로 읽기 영역을 축소시키고 이미지의 영역을 확장시킨 것이다. 

읽기. 종이나 화면으로 소설이나 에세이를 읽고 신문을 훑어보는 것. 실리콘밸리의 투자자들이 보기에 이 행위는 구시대적이고 위험하기까지 하다. 시간이 많이 걸리고 관심과 집중을 요하는 이 행위는 상상과 꿈과 회피에 열려 있는, ‘자기 자신이 되는’ 능력에 대해서도, 또한 신문의 타이틀 선택과 일정 관리에 대해서도 개인의 주권을 표현한다. 사용 가능한 뇌의 시간을 파는 새로운 판매자는 “읽고 있습니까? 대신 이미지를 보세요”라고 맞받아친다.

2006년 구글이 유튜브를 인수하고 소셜 네트워크가 발전하면서, 적나라하고 (대부분 잔인한) 짧은 동영상이 정보의 지배적 형식으로 자리 잡았다. 휴대폰, 드론, CCTV를 활용해 당사자나 목격자가 촬영한 이 영상들은 전체적인 맥락에서 분리되어 공감 또는 증오의 감정, 생각보다 행동이 앞서는 강박적 충동, 수익을 불러오는 바이럴 마케팅을 자극한다. 2015~2016년 이슬람국가(IS)가 교묘하게 자행한 공격과 학살은 그런 것들을 일상화했다. 의도적 무지를 조장하는 테러의 시각적 이미지는 뉴스채널 화면과, 미 서부해안 엔지니어들이 개설한 튜브를 배출구 삼아 제공됐다. ‘릴스’, ‘스토리’, ‘쇼츠’, ‘스냅스’ 등으로 불리는 숏폼 서비스에는 생일 케이크, 댄스 동작, 킬리안 음바페의 결승골, 살인 장면이 연속으로 이어지는데, 이런 숏폼은 이제 인스타그램, 틱톡뿐 아니라 X(트위터)처럼 초기에 구축된 문자 위주 플랫폼에서에서도 1위를 차지한다.

24시간 뉴스채널과 이런 서비스의 압박 속에서, 대다수 주요 언론사는 주로 은퇴자들인 기존 독자층보다 훨씬 젊은 독자들을 유인하기 위해 언론사 인터넷 사이트 홈페이지 메인 화면에 숏폼 콘텐츠를 개설했다. X(트위터)의 익명 사용자부터 정치인들까지, 모두가 그 이미지들이 마치 사건 그 자체인 것처럼 반응한다. <리베라시옹>은 녹색당 사무총장에게 “초기의 이미지들을 보고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라고 물었다(10월 13일). “모두가 볼 수 있었던 그 이미지들은 하마스가 자행한 테러 공격의 절대적 공포를 보여줍니다.”

 

확실한 자료분석으로 주변의 광란에 맞서

그 이미지들이 가하는 충격 속에서 끊임없이 발생하는 모든 사건에 반응하지 않으면 이제 몰상식하다는 말을 들을 것이다. 더 나쁜 것은 그것이 비인간성을 보여줄 것이라는 점이다. 프랑스 <앵테르>와 <리베라시옹>의 기자 토마 르그랑은 라 프랑스 앵수미즈(LFI)가 충분히 빨리 감정에 굴복하지 않았다고 비판하는 정치적 충동의 미덕을 이렇게 이론화했다. “정치운동의 진짜 본질은, 그것이 여전히 근본 원칙의 문제이고 해당 주제의 모든 요소를 따질 시간이 없을 때, 어떤 극적 사건에 보이는 최초의 반응으로 평가할 수 있다.”(<리베라시옹>, 2023년 10월 10일) 아찔한 반전이다. 선출직 공무원들과 지도자들은 이성의 저울로 원인과 결과를 따지기 위해 그 극적 사건으로부터 간신히 빠져나오는 자신들의 능력에 오랫동안 자부심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어떤 신문이 이 순간성의 영향력에 저항하고 그것이 정보에 부여하는 감정적 진동을 거부할 수 있을까? 거기다 젊은 세대는 소셜 네트워크나 인플루언서를 통해서만 정보를 얻는다고 (가끔 잘못) 알려진 공식까지 생각해본다면, <르디플로>는 이제 한물간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내년 5월이면 70주년을 맞이하는 우리 월간지는 국제 뉴스와 사상 논쟁이 요구하는 시간, 성찰, 관심을 우리 독자들에게 지속적으로 호소하고 있다. 

<르디플로>는 역사적 관점, 전문기자가 담당하는 보도, 참여적이지만 근거 자료가 확실한 분석으로 주변의 광란에 맞선다. 우리는 객관성이라는 위선적인 가면을 쓰고 우리 자신의 의견을 숨기지 않는다. 우리는 독자들 중에 우리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낀다. 그들은 특정 주제에 대해서는 우리 입장을 인정하지 않더라도, 우리의 칼럼에서 설교가 아니라 다른 데서는 볼 수 없는 날짜와 출처가 있는 팩트를 찾을 수 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한다. 이미지가 제공하는 재미랄 게 없는, 거의 금욕에 가까운 이런 절제가 매력적이지 않다는 것은 인정한다. 영상 토론도 없고 소파 인터뷰도 없고, 유명인의 사진도 없고 뉴스피드도 없으며, ‘최고의 여행용 쿠션’을 집중 분석하는 소비자 섹션도 없다. 1995년 2월에 서비스를 시작한 <르디플로> 인터넷 사이트는 광고 판매나 방문자 정보를 재판매할 목적이 아니라, 독자가 읽고 들을 수 있도록 우리 기사를 제공하기 위해 개설했다. 그럼에도 <르디플로>는 존재한다. 언론 위기가 신문을 휩쓸고 있는 동안에도 최근까지 발행부수를 유지하고 영향력을 확대해왔다.

 

자율성과 독립성을 보장해주었던 구독자들 

우리가 자유롭게 우리만의 길을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은 <르디플로>의 근간을 이루는 독특한 경제 모델 덕분이다. 1996년부터 이 조직은 우리에게 자율성과 독립성을 보장해주었다. 1996년에 <르디플로> 동호회에 모인 신문 구독자는 자본의 25%를 사들였다. 또한 군터 홀츠만(이 운동을 추진하는 데 도움을 준 유산을 기부한 통 큰 기부자의 이름) 협회로 통합된 팀이 지분의 24%를 소유한다. 이 두 주주는 회사에 중대한 결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이사진은 기자는 물론이고 <르디플로>에 소속된 소규모 팀 전체가 6년마다 선출한다. 

르몽드 출판그룹 내에서 당시까지 규모가 작은 서비스에 불과했던 <르디플로>의 자회사를 설립하면서 당시 이 신문을 이끌었던 이냐시오 라모네와 베르나르 카셍은 과감하게 소유권 문제를 제기했다. 그때는 그런 얘기를 꺼내는 것만으로도 언론사 간부들이 불같이 화를 내던 시기였다. 르몽드 출판그룹의 로랑 조프랭은 카날 플뤼스(1999년 6월 11일)에서 “우리가 경제적 이익에 사로잡히는 순간 자유롭지 못할 거라는 주장을 따른다면 자회사 설립은 어불성설이다”라며 독설을 퍼부었다. 파트리크 푸아브르 다르보르는 “지적 테러리즘”이라 평했고, 심지어 프란츠-올리비에 기스베르는 (극우주의자인 장마리 르펜의 포퓰리즘에 견주어) “비밀-르펜주의 포퓰리즘”이라고 반박했다.(4) 우리의 영역이 엉망이 된 건 확실했다.

25년이 지난 지금, “9명의 억만장자가 미디어의 90%를 소유하고 있다”는 말은 우리가 눈을 부라리며 개탄할 만큼 거의 기정사실처럼 들린다. 우리도 완전히 관련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프랑스 미디어, 누가 무엇을 소유했는가”를 보여주는 지도는 <르디플로>에서 가장 많이 참조된 기사 순위를 수년간 점유해왔다.

2007년 미디어 비평 및 사회조사 격월간지 <르 플랑 B(Le Plan B)>에 게재된 첫 번째 지도는 무슨 부끄러운 물건처럼 은밀하게 세상에 나왔다. 당시 언론사 대표들은 윤리 강령, 주주 협약 및 소유권과 지배권을 분리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기타 서류더미에 기대를 걸었다. 2016년 <i-Télé> 방송국이 뱅상 볼로레에 의해 갑작스럽게 무너졌고, 이 유명 뉴스 채널은 <CNews>라는 이름 아래 극우의 보루로 탈바꿈했다. 

<르 주르날 뒤 디망슈>도 비슷한 운명을 겪었고, 일론 머스크는 트위터를 인수하여 이념적 변화를 꾀했다. 이런 일들은 로랑 조프랭이 혐오했던 그 주장이 결국 그렇게 허술한 건 아니었다는 사실을 순진한 사람들에게 보여줬다. 이후 고등학교 및 여러 교육기관에서 수많은 교무실을 환하게 비춰줄 이 지도를 무료로 사용할 수 있게 해달라고 수시로 <르디플로>에 승인 요청을 한다(물론 항상 허용된다). 우리는 12월호에, 이제 꼭 필요한 마법의 주문이 된 이 지도를 업데이트하여 새 버전을 게재할 예정이다. 

그러나 그 성공은 오해를 가린다. 이런 형식으로 주요 커뮤니케이션 수단의 소유권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르디플로>는 구조적 접근방식을 제안했다. 정보는 필수적인 집단 서비스인데도 낮은 비용으로 생산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회보장 모델에 따라 정보를 사회화하여 시장과 국가의 검열로부터 정보를 보호하는 것이 적절하다.(5)

이제는 누구나 다 아는 ‘9명의 억만장자’라는 허수아비는 중대한 결과를 빚어내는 미디어의 일탈을 무시할 수 있게 해주지만, 주주의 힘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을 절대 설명할 수 없다. 즉 민영방송(<TF1>, <RTL>)이든 공영방송(<프랑스 텔레비지옹>, <프랑스 앵테르>)이든, 독립 출판물(<메디아파르>)이든 기업 관련 출판물(<리베라시옹>, <르 피가로>)이든, 2020년 보건위기로 인한 이동제한이나 우크라이나 전쟁 같은 특정 주제를 같은 비중으로 다루는 것이 관찰된다는 점이다.

 

팬데믹 2년 후, 줄어든 유료 발행부수 

편집진의 친서구적 급진화, 이미지와 감정으로 압도하는 정보, 자동화로 인한 싸구려 저널리즘의 득세, 유통망의 마멸 등, 이런 요인들은 확실히 <르디플로>에 호의적이라고 할 수 없다. 코로나로 인한 이동 제한으로 구독이 급증했으나 팬데믹 이후 2년이 지난 지금은 잦아든 상태다. 올해 초부터 단권 판매는 감소했다. 2023년 전체 유료 발행부수는 전년 대비 약 8% 감소해 월 16만 부를 간신히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편집부나 구독 서비스로 접수된 메일을 보면 반복해서 드러나는 두 가지 감소 원인은 바로 시간과 돈이다. 읽을 기회를 찾지 못한 채 신문이 탁자 위에 몇 주간 그대로 놓여 있다면 누가 굳이 신문을 사겠는가? 그리고 인플레이션으로 구매력이 약화된 이 시점에, 먼 바다 쪽을 향해 있는 월간지를 정말 필수품에 넣어야 할까?

다른 많은 신문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2023년 8월 프랑스 전국 일간지 판매량은 전년 대비 8.6% 감소했고, 주간지는 10.4%, 월간지는 12.1%까지 하락했다. 지역 언론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이며, 1월부터 해고 계획을 늘리고 있다. <쉬드-우에스트(Sud- Ouest)>에서 19개, <미디 리브르(Midi libre)>에서 45개, <라 부아 뒤 노르(La Voix du Nord)>에서 55개 일자리가 사라졌다. 이런 인명 손실로 언론 방송 네트워크는 더 약화되고, 그 수는 2011년에 2만 8,579개에서 2022년 2만 232개로 줄었다. 지난 18개월간 라 불트 쉬르 론(La Voulte-sur-Rhône), 사르부르(Sarrebourg), 리지외, 테랑(Teyran), 퐁 생트 막상스(Pont-Sainte-Maxence)의 중심 도시들에서 지역 신문 직판점이 없어졌다. 신문사가 법정청산에 들어가고, 인수인계 받을 사람 없이 퇴직해야 하며, 급여를 일정하게 받을 수도 없는 마당에 누가 주 60시간씩 일하고 싶어 하겠는가?

이런 연쇄적 폐업은 구매자 수가 감소하면서 직판점이 문을 닫는 악순환으로 이어지며, 결국 하나의 출판물을 직접 접하고, 표지와 목차를 훑어보고, 그것을 구매하고, 그것에 열중할 기회도 줄어들게 된다. 그러자 언론사들은 디지털을 활용하고, 할인된 가격으로 구독 제안을 늘리고 있다(일간지 <리베라시옹>의 연 구독료는 36유로이고, 구글에서 보조금을 제공한다). 이런 파격적인 가격으로 구독자는 소셜 네트워크에서 수집한 링크에 접속할 수 있고, 대형 플랫폼에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이제는 어떤 중심축(편집진의 의도)을 따라 조직된 메시지를 페이지 위에 구성하는 게 아니라, 거대한 디지털 바다 위에 뉴스 기사를 흩뿌리는 것이다. 

 

배우들이 읽어주는 기사 오디오 자료

이 전략에 장점들만 있는 것 같지만, 자칫 지지자들을 실망시킬 위험이 있다. 언론에 저작권을 지불하고 (2021년 1월 도널드 트럼프 지지자들이 미 국회의사당에 난입한 이후 그랬던 것처럼), 몇몇 플랫폼은 정치적 분열을 악화시킨다는 비난을 듣는 데 이골이 난 나머지 언론기사에 미칠 피해를 감수하고 알고리즘을 수정했다. X(트위터)는 논쟁의 여지가 있는 인플루언서를 선호한다. 페이스북은 개인 게시물과 사생활을 선호한다. 테스트 결과, 마크 저커버그의 회사는 <뉴욕타임스>나 <월스트리트저널> 사이트로 유입되는 트래픽을 40~60%까지 줄일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예를 들어 정치 및 사회 문제를 주로 다루는 미국의 좌익 월간지 <머더 존스(Mother Jones)>는 2022년에 자사의 페이스북 방문자 수가 75% 감소했다고 봤다.(6) <르디플로>도 이런 부정 조작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르디플로>는 소셜 네트워크에 거의 의존하지 않지만,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많은 새로운 독자가 <르디플로> 사이트로 유입됐다. 물론 극적인 국제 뉴스는 여전히 사람들을 우리 칼럼으로 이끈다. 그러나 요즘 이런 주제는 흥미를 유발하기보다는 사람들을 성가시게 만드는 경우가 훨씬 많다.

그러므로 프랑스 언론의 성향에 반하는 우리의 ‘독자적 비동맹’ 세계관을 대중화하려면 <르디플로>는 아직 더 많이 배포돼야 한다. 한발 물러서서 현재의 사건을 보고자 하는 우리의 의지는 예술의 규칙, 즉 온라인과 종이 위에 손수 엮은 신문으로 우리의 주장을 제시하려는 의지와 맞물린다. 각 기사란, 제목, 이미지는 프로덕션 아티스트, 교정자, 사진제판공, 도판 담당자, 그래픽 디자이너가 구현한 보이지 않는 작업의 결과물이다. 우리의 ‘동료들’은 이런 전통적인 일들을 자동화한다. 이 분야의 선구자이자, 대형 일간지 <빌트(Bild)>와 <디 벨트(Die Welt)> 소유주인 독일 그룹 악셀 스프링거는 지난 2월, AI 시대에 불필요하다고 판단한 수백 개 직위를 없애겠다고 발표했다. 경영진은 “우리는 앞으로 수익성이 전혀 없을 제품, 프로젝트, 업무 수행 방식과 갈라설 것이다”라고 설명했다(2023년 6월 19일, <샬랑주(Challenges)>). 소프트웨어는 오탈자를 수정할 수는 있지만, 수치 오류, 불명확한 표현, 일관성 없는 논리를 찾아내지는 못한다. <르디플로>에서는 각 기사를 2명의 교정자가 검토한다. 과거에는 대부분 이런 방식으로 일했지만 지금은 이런 관행이 거의 사라졌다.

이런 편리한 지원은 이제 너무 비용이 많이 들어서 사라질 거라고 우리 동료들이 확신했을 때, 우리는 오랜 시간에 걸쳐 더 질 좋은 종이를 쓰기로 했다. 언론계에서 <르디플로>는 음반업계의 LP판 같은 존재일 거라고들 한다. 잡음과 저급한 통신이 판치는 세상에서, 선구자가 품격 있는 것을 찾으러 오는 섬 같은 존재라고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보루에 갇혀 있을 생각이 없다. 우리는 10월 27일 새 애플리케이션을 출시했고, 이 앱을 통해 <르디플로>와 <마니에르 드 부아르>의 호별 기사를 쉽고 우아하고 편안하게 읽을 수 있으며, 배우들이 기사를 읽어주는 오디오 자료도 이용할 수 있다.

어떤 발언을 하면 금세 유행, 화제, 논쟁으로 변하는 시기에, <르디플로>는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가 맞서 싸우는 세력이 우리 노선을 어용화하고 왜곡한다 해도, 그 때문에 우리 노선이나 명분을 바꾸지는 않을 것이다. (극우주의자인) 마린 르펜과 에릭 제무르는 보호주의의 미덕을 찬양하는 동시에 EU와 단일 통화 비판도 서슴지 않는다. 도널드 트럼프와 헝가리 총리 빅토르 오르반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특정 상황에 개입하는 것을 비난한다. 미국의 ‘대안 우파(alternative right)’는 거대 인터넷 기업의 검열에 맞서 표현의 자유를 수호한다고 주장한다. <르디플로>는 환경이 좋지 않다는 핑계로 사상 투쟁을 포기하는 대신, 바람에 날리는 깃발처럼 새로운 전향자의 위선을 꺾어버릴 것이다. ‘대안 우파’는 인터넷에서 (인종차별적 발언을 하기 위해)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지만, 교과서나 진보 성향의 저작물을 금지하고, 팔레스타인인을 옹호한 미국 민주당 의원 일한 오마르를 외교위원회에서 축출했다. 

폭풍우 치는 날에 흔들림 없이 경로를 안정시킬 수는 없다. ‘적색파시즘’, ‘음모론자’, ‘저널리즘의 난파’, ‘친러시아 걸레’, ‘서구의 적들’, ‘테러리스트집단 하마스의 친구들’, ‘항상 범죄를 옹호하는 신문’. 소셜 네트워크에는 이런 류의 글들이 넘쳐나는데, 이런 글이 매번 우리가 적으로 선언해온 존재들에 의해 퍼지는 것은 아니다. 공동의 대의를 바탕으로 단결할 수 있는 사람들 사이의 분열을 분석하고 미래의 승리를 위해서라면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정치적 패배를 이해하려고 애쓰는 것은, 의심할 이유보다 믿고 싶은 의지가 더 큰 사람들에게 짜증과 실망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이것은 냉철한 정신이 치러야 할 대가이며, 이런 형태의 저항이 없으면 싸움은 싸워보기도 전에 끝난다. 게다가 독자의 확신을 부풀리려고 만든 신문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장폴 사르트르가 언급했듯이, 때로는 “어떤 이념이 우리에게 불만을 야기한다면, 그 불만을 기준으로 그 이념의 증거를 측정해야” 한다.

 

<르디플로>를 알리자

장인정신으로 국제신문을 만드는 이런 야망은 여러분의 굳건한 지원과 참여가 있어야만 실현될 수 있다. 우리 신문이 어려운 고비를 넘을 때마다, 여러분의 열정이 우리와 함께했고 영감을 주었다. 우리는 아직 <르디플로>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르디플로>를 알리고 구독을 독려해주기를 이번에도, 다시금 요청한다. 친구, 가족, 동료, 동지들을 동원하자. 이 구독 캠페인은 <르디플로>와 친구들 모임이 공동으로 주관한다. X(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이 언론을 망가뜨리려고 로봇을 재프로그램한다고? 우리의 남녀 독자들이 가장 강력한 소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으므로, 우리에겐 무엇보다 독자가 굉장히 중요하다. 아마도 당신은 이 독특한 출판물을 설명할 방법을 우리보다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런 말도 흔하게 들을 것이다. “시간이 없어요.” 그러나 끊이지 않는 정보와 플랫폼에서 때로 쓸모없이 탕진되는, 시간이라는 이 희귀한 자원(프랑스 현역 노동자의 경우 하루 평균 1시간)조차도 무언가에 다시 빼앗기고 있다. 이냐시오 라모네는 “정보를 찾는 것도 귀찮다”고 말한다.(7)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독자적인 판단을 깨워줄 조건이자 집단 해방의 근간이다. 

 

 

글·브누아 브레빌 Benoît Bréville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발행인
피에르 랭베르 Pierre Rimbert
기자

번역·조민영
번역위원


(1) John Simpson, ‘Why the BBC doesn’t call Hamas militants “terrorists” 왜 BBC는 하마스를 ‘테러리스트’라고 부르지 않는가’, BBC, 2023년 10월 11일, www.bbc.com 
(2) 출처 : Reporters sans frontières et Committee to Protect Journalists 국경 없는 기자회 및 언론인 보호위원회. 
(3) Gisèle Halimi, ‘Avec les accusés d’El Halia 사형 선고를 받은 엘 알리아의 무고한 피고인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20년 8월호, 한국어판 2020년 9월호 참고. 
(4) 세르주 알리미의 저서 『Les Nouveaux Chiens de garde 새로운 경비견』(1997년 출간)이 불러일으킨 밀어들의 즐거운 모음집을 2022년 레종 다지르(Raisons d’agir) 출판사에서 펴낸 개정 증보판을 통해 만날 수 있다. 
(5) Pierre Rimbert, ‘Projet pour une presse libre ‘자유 언론’을 다시 살리는 길은 상호부조!’,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한국어판, 2014년 12월호 참고. 
(6) 〈The Wall Street Journal〉, New York, 2023년 1월. 
(7) Serge Halimi, ‘“On n’a plus le temps 시간이 없어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2년 10월호, Ignacio Ramonet, ‘S’informer fatigue 정보를 찾는 것도 귀찮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1996년 2월호 참고.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33개 외국어판
언어학적 다양성, 풍부하고 까칠한 저널리즘

 

구글 출시 이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는 25주년을 맞이했다. 전 세계의 모든 언어학적 다양성은 자동번역 소프트웨어로 손쉽게 번역되거나 (기본적인 영미식) 글로비시의 기초 구문이라는 비난을 받는다. 전부 그럴까? 아니다! 뚝심 있는 많은 언론인이 포진해 있는 한 일간지가 아직 저항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규모 팀들이 매달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기사들을 전 세계 곳곳의 가장 많이 사용되는 언어(영어, 스페인어 등)에서 가장 적게 사용되는 언어(쿠르드어, 한국어, 노르웨이어, 에스페란토어 등)에 이르기까지 자신들의 언어로 계속해서 번역하고 있다.

이런 국제적 개방성은 새로운 일은 아니다. 일찍이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는 외국에서 판매되는 프랑스어 정기간행물이 아니라, 프랑스에서 제작되는 국제신문을 지향했다. 1970년대 중반 포르투갈과 그리스에서 독재정권이 무너진 뒤로, 이 두 나라에서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포르투갈어판과 그리스어판이 나왔다. 이어서 중남미에서, 1990년부터는 중유럽과 동유럽 국가들에서,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시아에서 다른 판들이 이어졌다. 2021년에는 스웨덴의 온라인 신문 플라망(Flamman)과 우루과이의 일간지 <라 디아리아(La Diaria)>가 이 독보적 네트워크에 합류했고, 현재 24개 국어와 33개 출판 파트너십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완전히, 전 세계적인 언론 제국을 상상하는 것은 아니다! 각국 판들의 대부분은 자신의 시간을 아끼지 않고 한정된 자원만을 사용할 수 있는 아주 작은 그룹의 사람들이 품은 강한 동기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런 이유로 독자들의 지지가 이들의 생명력과 자질을 가장 잘 보장해주는 것이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국제판 네트워크는 전 세계 지성들의 삶에 함께한다. 이를 테면 2022년 2월, 그리스어, 마케도니아어, 알바니아어, 세르비아어, 튀르키예어, 불가리아어 판이 파리의 국립동방언어문명연구소(Inalco)에서 열린 발칸도서전에 참여했다. 2022년 9월부터, 브라질어, 포르투갈어, 러시아어, 페르시아어, 영어, 스페인어 등 6개 판이 국제방송국 <라디오 프랑스 앵테르나쇼날(RFI)>의 관련 부서와 협력해오고 있다. 풍부하고 까칠한 저널리즘에 대한 인정. 언어학적 다양성은 마법의 묘약 같은 맛이 난다.

다음 인터넷 주소에서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국제판 목록과 연락처를 확인할 수 있다.

https://www.monde-diplomatique.fr/diplo/int   

 

 

글·안 세실 로베르 Anne-Cécile Robert

번역·조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