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화의 종말인가?

미국 통화의 가장 큰 적은 미국!

2023-11-30     도미니크 플리옹 외

2023년 8월 요하네스버그에서 개최된 브릭스(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 정상회의에서는 세계 경제에서 미국 통화의 역할과 정치적 목적으로서의 활용을 비난하는 공식 성명이 발표되었다. 러시아와 브라질은 달러 사용을 제한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달러 패권의 종말을 위해 이를 선언하는 것만으로 충분할까?

 

미국의 유명 작가 마크 트웨인은 1897년 한 통신사가 자신의 사망 소식을 잘못 보도하자 “내 사망 소식은 크게 과장된 것”이라고 비꼬았다고 한다. 최근 잇따른 달러 패권의 종말을 예고하는 발언은 마크 트웨인의 재치를 떠올리게 한다. 일부 선동적인 수사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국제통화시스템은 무너지지 않았다. 그러나 『허클베리 핀의 모험』의 저자인 트웨인의 잘못된 부고가 발표되었을 때 그의 건강 상태처럼 국제통화시스템은 온전치 못한 게 사실이다.

세계 경제에서 달러화의 역할에 대한 의문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2010년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G20의 프랑스 의장직을 이용하여 “세계의 일부가 미국의 통화 정책에 의존하게 만드는”(1) 모델을 비난했다. 약 50년 전,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 프랑스 재무장관은 달러의 국제적 사용이 미국에 부여한 “엄청난 특권”을 비난했다. 국제통화시스템이 구축된 지 15년이 채 지나지 않은 1958년, 벨기에 경제학자 로버트 트리핀이 “과거의 힘을 잃은 미국 달러에 위험이 임박했다”(2)고 지적했을 정도로 국제통화시스템 기능의 불균형은 이미 충분히 명백했다. 1976년, 미국 경제학자 찰스 킨들버거는 “달러는 국제 통화로서 끝났다”(3)라고 확신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러는 여전히 세계 경제 시스템의 최상위에 자리 잡고 있다. 큰 고비가 있을 때마다, 달러화의 존재는 좋은 와인에 비해 숙성이 덜 된 와인으로 취급받는 의례적인 눈치거리로 취급되는 건 아닐까? 그건 아닐 것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달러화의 ‘종말의 시작’(4)을 예고하고, 현재 브릭스(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5) 신개발은행의 수장인 지우마 호세프 전 브라질 대통령이 “더 이상 단일 통화에 의존하지 않는 방법을 찾겠다”(6)라고 공약한 것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국제통화시스템에 대한 불만이 크게 늘어난 배경에서 나온 말이다.

 

거대한 화폐 카지노의 귀환

2차 세계대전의 위대한 승리자인 미국은 전쟁이 끝난 후 전 세계를 지배했다. 이 ‘팍스 아메리카나’는 무엇보다도 1944년 7월 브레튼우즈 협정에 명시된 달러가 지배하는 통화 시스템의 확립에 근거하고 있다. 미국 통화는 금으로 직접 전환할 수 있는 유일한 통화였으며 모든 환율을 결정하는 구심점 역할을 했다. 협정이 제대로 적용되는지 감독하기 위해 설립된 국제통화기금(IMF)(7)과 세계은행은 워싱턴D.C.에 설치되었고, 미국은 전자의 경우 거부권을, 후자의 경우 총재를 임명할 수 있는 권한(비공식적이지만 매우 실질적인 권한)을 가졌다.

일반적으로 빚을 진 국가는 대출금을 갚기 위해 우방국으로부터 필요한 통화를 확보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1965년 2월 4일 기자회견에서 샤를 드골 프랑스 대통령은 “실제 가치가 있고 벌어서 소유할 수 있는 금이 아니라 발행을 통제할 수 없는 달러로 빚을 갚음으로써 공짜로 빚을 지는 나라가 있다”며, “미국이 그렇다”라고 비난했다. 미국은 이러한 ‘특권’을 통해 대외 적자를 누적할 수 있다. 즉, 사치스럽게 지출할 수 있다.

그러나 프랑스의 비판보다 더 중요한 점은, 미국이 이러한 상황으로 인해 세 가지 이득을 본다는 사실이다. 첫째, 미국은 냉전과 관련된 군사비를 쉽게 조달할 수 있다. 둘째, 인위적으로 국민 대다수의 생활 수준을 높인다. 마지막으로, 미국 기업은 저렴한 비용으로 해외직접투자(FDI)를 할 수 있어 세계 경제에서 세력 확장을 장담할 수 있다. 그 결과, 2023년 초 미국은 24조 9520억 달러(23조 6720억 유로)로 추정되는 세계 최고 수준의 외채를 보유한 국가가 되었다.

그러나 ‘달러 교환 표준’이라고도 불리는 달러 중심의 국제통화시스템은 1950년대 말 경제학자 트리핀이 이미 파악한 위협적인 모순에 시달리고 있음이 분명해졌다. 이 시스템은 양립할 수 없는 두 가지 기능을 수행해야 했다. 한편으로 국제통화시스템은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가 국제 무역의 성장에 발맞추기 위해 정기적으로 달러를 발행하도록 강제한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이를 통해 ‘특권’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유통되는 달러가 포트 녹스(미국의 군사기지로 미국 정부 소유의 금괴 보관소)의 금 재고보다 더 빠르게 증가하여 달러화를 금으로 전환할 수 있다는 외국의 신뢰를 약화시킨다. 그런데 국제통화시스템은 달러와 금의 패리티(등가) 원칙에 따라 이러한 확신을 기반으로 한다. 다른 한편으로 국제통화시스템은 이와 동시에 미국이 국제 무역을 방해하고 세계 경제를 침체시키더라도 재정 적자를 줄이도록 요구한다.

미국이 패권을 공고히 하는 체제를 포기할 의사가 없다는 것은 분명했지만, 드골 장군은 미국을 벽으로 몰았다. 1965년 그는 프랑스가 보유한 달러를 금으로 전환할 것을 요구했는데, 이 결정은 백악관을 불쾌하게 만들었고 그에게는 1964년에 개봉된 제임스 본드 007 시리즈의 에피소드인 <골드핑거>에서 따온 ‘골핑거’라는 별명이 붙여졌다. 1971년 8월 15일,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미국의 금 보유량이 프랑스의 요청과 비슷한 수요의 증가세를 충족하기에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고 브레튼우즈 체제를 무너뜨리기로 결정했다. 그는 달러의 금 전환을 중단하고 자유변동통화제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미국의 일방적인 결정은 경제학자 제임스 K. 갤브레이스가 말한 것처럼 ‘거대한 화폐 카지노의 재개’(8)로 이어졌을 뿐만 아니라 통화가 자유롭게 이동하는 시대로 점차 되돌아가게 했다. 브레튼우즈 체제로 억제하려 했던 메카니즘이 양차 대전 사이의 그 파괴적인 영향 때문에 되살아난 것이다.

익명을 조건으로 기자와의 대화에 동의한 러시아 경제부의 한 고위 관리는 “이 시스템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볼 수 없었던 잠재적인 불안정성을 회복시켰다”라고 지적했다. “그리고 지금은 ‘기축통화’가 국가적 목표에 의해 주도되는 국가 통화로 남아 있는 상황”이다. 1971년 존 코널리 미 재무장관은 닉슨 대통령의 결정에 놀란 유럽 외교관들에게 “달러는 우리의 통화이지만, 당신들에게는 골칫거리”라고 응수했다고 한다. 이 점에서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인플레이션에 직면한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국내 경기 상황을 우려해 2022년 3월부터 금리를 인상하고 있다.(9) 브릭스의 신개발은행 총재 호세프 여사에 따르면, 이러한 국내 정책은 “다른 나라의 성장 전망을 낮추고, 더 큰 경기 침체를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10)

여기까지 달러에 대한 비판은 그리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러나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은 국제통화시스템의 또 다른 역기능을 부각시켰다. 미국이 달러의 이중적 지위(자국 통화이자 국제통화시스템의 기축통화)를 이용해 적대적으로 여겨지는 민간 또는 국가 경제 주체에게 제재를 가하거나 혹은 2022년부터 익숙해진 표현을 사용하자면, ‘달러를 무기로 전환’하는 것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미국 재무부의 강제 조치 목록은 2,206쪽으로, 12,000개 이상의 이름이 올라가 있고 22개 국가에 영향을 미친다. 영국 싱크탱크 채텀 하우스의 크리스토퍼 사바티니에 따르면 “세계 경제의 4분의 1 이상이 어떤 형태로든 제재를 받고 있다”(11)라고 한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외교 정책 문제를 해결하려고 투입되는 노력과 유혈 사태 측면에서 역대 미국 대통령들이 비용이 적게 든다고 여겨지는 전략을 선택함에 따라 이러한 유형의 조치는 지난 10년간 폭넓게 사용되었다”라고 분석한다.(12) 그러나 달러는 손쉬운 부채와 통화 압박이라는 특권 외에도 치외법권이라는 특권이 있다. 달러 덕분에 미국은 자국 통화를 사용하고자 하는 모든 경제 주체에게 자신의 결정을 강요할 수 있다. 2015년 프랑스 은행 BNP 파리바는 쿠바, 수단, 이란에 대한 미국의 금수 조치를 준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89억 달러의 역대 최고 벌금을 부과받았다. 이 은행이 자국 영토 밖의 ‘적성국’ 3개국과 거래할 때 대부분이 미 달러로 표시되었기 때문에 미국 소재 청산소를 거쳐야 했고, 그래서 미국 법률의 적용을 받아야 했다.

 

“오늘날 달러의 주적은 미국이다”

쿠바, 북한, 아프가니스탄, 이란, 베네수엘라에 적용되었던 제재는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발발하면서 전례 없는 차원으로 확대되었다. 미국과 그 동맹국들은 스위프트 국제 결제 시스템에서 러시아를 축출하고 달러와 유로로 표시된 3,000억 달러의 러시아 외환보유고를 압류했는데, 앞서 언급한 러시아 관리는 이것이 “순수하고 단순한 절도”라고 평가했다.

기축통화가 패권국의 자국 통화이기도 한 국제통화시스템은 “종속 국가 입장에서 단점보다 상업 및 금융 통합을 통해 더 많은 혜택을 제공한다고 인식될 때만 안정적”이라고 경제학자 미셸 아글리에타, 궈 바이, 카밀 마케르는 설명한다.(13) 반대로 “미국이 제재하고자 하는 국가와 관련된 사적 거래를 차단하려고 국제 결제 시스템을 달러로 의도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순수한 정치적 지배 수단으로서 달러를 도구화하는 것임을 확인할 뿐”이라고 덧붙였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020년에 “달러를 없애는 것은 우리가 아니다. 달러가 우리를 없애려고 한다”(14)라고 반박했다. 2007년부터 2015년까지 브라질이 IMF로 유입시킨 국가 그룹의 실무이사였던 파울루 노게이라 바티스타 주니어는 “오늘날 달러의 주적은 미국이다”라고 이 상황을 표현했다. 

따라서 미국과 대립하고 있거나 달러화와의 관계 냉각화를 두려워하는 모든 국가에게 시급한 문제는 ‘탈달러화’일 것이다. 그러나 이는 ‘달러 대신 어떤 통화를 사용해야 하는가?’ 라는 까다로운 질문을 던진다.

첫 번째 대답은 분명하다. 다른 나라의 통화를 사용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면 자국 통화를 사용하는 것이다. 여러 나라에서 국경 간 무역을 위해 이러한 조치를 취하기 시작했다. 2023년 4월, 인도와 말레이시아는 인도 통화인 루피로 거래하겠다고 발표했다. 한 달 전에는 중국과 브라질이 브라질 헤알화와 중국 위안화 거래를 장려하겠다고 발표했다. 프랑스도 이러한 움직임에 동참하고 있는데, 현재 중국과의 무역의 5분의 1이 중국 화폐의 다른 이름인 런민비(인민폐, 중국통화)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15) 이러한 움직임을 ‘반미 반란’으로 보는 일부의 시각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모든 시도가 반드시 달러의 지배력에 도전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다. 지정학적 의도를 품은 상업적 탈달러화는 보다 실용적인 접근 방식으로 시작됐는데, 이는 때때로 통화 A에서 달러로, 다시 달러에서 통화 B로 여러 번 환전함으로써 가중되는 거래 비용을 줄이려는 노력에서 비롯되었다.

 

루블, 루피 또는 디르함

 동기가 무엇이든, 이러한 무역 재조정을 추구하는 주요 움직임은 전 세계 61개국(미국은 30개국(16))의 주요 무역상대국인 중국이 구축한 막강한 국제 무역 네트워크 덕분에 촉진되고 있다. 하지만 한 가지 큰 어려움이 있다. 노게이라 바티스타 주니어는 “무역 수지가 완벽하게 균형을 이룰 수 없기 때문에 이러한 유형의 무역에서는 두 국가 중 한 국가가 상대국의 통화를 축적할 수밖에 없다”라고 설명하며, “그런데 어떤 경우에는 이것이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특히 해당 통화가 가치 변동이 심하거나 쉽게 전환할 수 없는 경우라면 더욱 그렇다”라고 덧붙였다. 사실상 대부분의 통화가 그렇다. 이는 지난 5월 러시아와 인도 간 루피화 거래를 위한 회담이 실패한 이유다. 양국 간 무역이 러시아에 크게 치우친 상황에서 러시아는 사용할 수 없는 루피화 다발이 쌓일 것을 우려했다. 그래서 인도는 러시아 석유를 아랍에미리트 디르함으로 구매한다.(17)

노게이라 바티스타 주니어는 “자국 통화로 거래가 제대로 이루어지려면 해당 통화를 외환보유고로 전환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즉, 쉽게 사용할 수 있고 급격한 가치 하락에 노출되지 않는 유동성이 있어야 한다. 지금으로서는 달러화를 대체할 수 있는 전통적인 후보인 유로화와 위안화 중 어느 것도 이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다. 유로화는 2010년 국가 부채 위기 이후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전 세계를 불안하게 하고 있다. 위안화는 중국이 자본 계좌를 자유화하지 않았기 때문에 중국 통화는 전환이 불가능한 데다 엄격한 외환 통제를 받고 있다. 일부 성급한 분석가들이 이미 예측하고 있는 전환점으로서 위안화가 달러를 대체하기 위해서는 중국이 통화 정책에서 예상치 못한 전환을 해야 한다.

 

브릭스에 별도의 ‘공동 계정 단위’를 제안한 러시아

중국은 비거주자가 위안화를 사용하면 경제 모델이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해외에서 수요가 많은 통화일수록 다른 통화에 비해 가치는 더 상승하며 수출 가격이 더 비싸진다는 것은 ‘세계의 공장’인 중국에 큰 위험요소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또한 1997년 금융 위기 당시 규제 완화가 이웃 국가에, 2008년 위기 때 선진국들의 경제에 초래한 위험에 대해서도 잘 파악하고 있다. 연구원 네이선 스페버는 2015~2016년 금융 자유화 시도 이후 중국 시장이 불안정해지자 중국 정부가 “금융 위험을 국가 안보에 대한 잠재적 위협으로 재정의”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고통스러운 상황으로 인식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중국 당국의 관점에서 자본 통제는 단순히 재정적인 문제만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부유한 중국인들이 제한 없이 자본을 국외로 이전할 수 있다면 자산과 특권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을 것이다. 자본 통제로 인해 중국에서 자본의 소유권은 여전히 상대적이기 때문에 정치권력의 영향을 받으며, 정치권력은 처벌하고자 하는 개인에게 개입할 가능성을 여전히 가지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당분간 중국은 자국 통화의 국제화와 중국식 경제발전 모델의 옹호 사이에서 선택해야 한다. 위안화를 선호하는 형태의 탈달러화가 발생하더라도 이는 ‘제약을 받는’ 과정이며, 스페버가 지적한 것처럼 “위안화가 시장참여자들의 교환 수단이나 보유고 통화로서 달러보다 우월해서 진행되는 탈달러화가 아니라 외교적 합의를 통한 국제화”라고 할 수 있다. 2008년 서브프라임 위기 때처럼 금융 위기가 미국 금융 시장의 부실에서 비롯된 경우에도 미 달러는 여전히 시장에서 가장 선호하는 안전자산으로 남아 있다는 것은 달러의 변함없는 매력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미국의 금융 패권은 끝났다”(18)라는 시끄러운 선언 뒤에서 숫자들은 좀 더 신중한 그림을 보여준다. 국제결제은행(BIS)의 최근 3년 주기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2022년에도 달러가 단연 가장 널리 사용되는 통화로, 외환 거래의 88%가 달러를 사용하며(1989년 이후 변동이 없는 비율), 유로화는 32%, 엔화는 17%, 스털링 파운드화는 17%에 그친다.(19) 중국 위안화(7%)의 비중은 강세를 보이고 있지만(2019년 +4%), 여전히 미미하다.

외환보유고 측면에서 미 달러의 비중은 2000년 72%에서 2023년 59%로 감소했지만, 감소액은 주로 미국의 지정학적 동맹국인 호주와 캐나다 달러, 한국 원화, 스웨덴 크로나 등의 통화로 전환되었다. 같은 기간 위안화의 비중은 0에서 2.6%로 상승했다. 이는 한 국가가 부채가 표시된 통화가 아닌 다른 통화로 준비금을 보유하는 것이 매우 복잡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위안화 채권 시장의 대대적인 국제화는 중국 자본 계좌의 자유화 없이는 상상할 수 없다.

국제통화시스템의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정통성 붕괴, 국가 통화를 사용한 국제 거래의 한계, 달러를 대체할 후보의 부재 등 교착 상태와 매우 흡사한 상황에 직면한 러시아에 이어 브라질도 브릭스(BRICS) 차원에서 조치를 취하자고 제안했다. 러시아가 고안한 초기 계획은 통화가 아닌 ‘계정 단위’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통화 간 화폐 가치의 등가를 설정하고 달러 변동에 영향을 받지 않는 원자재 가격을 붙이기 위한 통화 도구를 마련하는 것이다. 정상회의 전날인 2023년 8월 21일, 인도의 비나이 모한 콰트라 외무장관은 기자회견을 통해 계좌 단위가 아닌 ‘공동 통화’를 만들려는 것으로 보이는 프로젝트에 대해 인도의 반대를 표명했다. 하지만 우리가 연락한 러시아 담당자는 “그게 문제가 아니다”라고 흥분하며 “경제계에 있는 사람들은 공통 통화에 대해 이야기하기에는 너무 이르다는 것을 알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문제가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러시아 외무부에서도 아무도 통화 문제에 대해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고 확신한다. “심지어 더 높은 지위에서도 마찬가지”라고 말할 정도다.

이런 견해를 이해할 수도 있다. 오해를 풀어보자면, 통화(공동 통화 포함)는 계좌 단위의 기능 외에도 두 가지 중요한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 즉, 가치를 저장하고 거래를 가능하게 하는 준비 수단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따라서 브릭스 국가를 위한 ‘공동’ 통화를 상상하는 것은 러시아가 염두에 둔 프로젝트가 요구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조율이 필요했다. 요하네스버그 정상회담을 계기로 중국이 주최한 심포지엄에서 통화 문제에 대한 다양한 방안을 제시해 달라는 요청을 받은 노게이라 바티스타 주니어는 계좌 단위를 만드는 것은 “비교적 간단하고 (중략) 신속하고 저렴한 비용으로 구현할 수 있는” 반면, 공동 통화를 만드는 것은 “아직 시작도 되지 않은 숙고와 계획이 필요하다”(20)라고 정리했다. 이 프로젝트는 요하네스버그에서도 논의되지 않았으니 확실히 이미 너무 늦었다.

하지만 오해가 모든 상황을 설명해주지는 않는다. 때로 오해는, 반대한다는 사실을 명확히 설명하고 싶지 않은 프로젝트를 방해하기에 편리한 수단이 되기도 한다. 지정학적 차이와 내부 갈등, 특히 미국과 계속 교역하기를 원하는 중국과 인도 간의 갈등은 브릭스의 일을 복잡하게 만든다. 창립 회원국이 5개국이었을 때도 그랬고, 2024년 1월 1일부터 6개국이 새로 가입한다고 해서 논의가 더 원활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은 창립 회원국들도 잘 알고 있다. 지역 통화 조합을 결성한 예전 경험에 미루어 알 수 있듯이 통화 문제는 특히 까다롭다.

 

미국 적대국가 사이에 ‘달러 외’ 지역 출현할 가능성

 유럽에서는 통화의 일반적인 변동성으로부터 관련 경제를 보호하려는 목적으로 추진된 1972년 ‘유럽 통화 스네이크 체제’가 1999년에야 단일 통화 구성으로 이어졌으나 성공 여부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린다. 2010년에 라틴 아메리카 8개국이 수크레(Sucre, 중남미 지역 단일 결제 시스템)와 같은 이름의 계좌 단위를 출범시켰다.(21) 그러나 관련 국가 간의 무역 통합이 부족하여 프로젝트의 영향력은 제한되었다. 아시아에서는 2008년 금융 위기로 인해 환율을 규제하기 위해 아시아 통화 기금이 설립되었다. 그러나 그 이후 통화 통합에 대한 논의를 확대하기 위한 프로젝트는 거의 진전이 없었다. 최근 분석에 따르면 중앙은행 발행 디지털 화폐(CBDC)가 향후 발전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분야의 선두에 있는 중국은 전자 위안화로 스위프트와 같은 결제 시스템을 우회하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나 전자 위안화는 중국의 관리 능력에 대한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따라서 당분간 달러화를 중심으로 구성된 시스템은 위협을 받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제지정학적 긴장이 고조되면 미국이 적대국으로 간주하는 국가들 사이에서 ‘달러 외’ 지역이 출현할 수도 있다. 경제학자 갤브레이스는 중국이 “다극 구조의 고정점으로서 두 체제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할 것”이라고 평가했다.(22) 그러면서 “만약 중국이 러시아에 부과된 것과 같은 심각한 제재를 받게 된다면 세계를 두 개의 고립된 블록으로 나누는 진짜 분열이 일어날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중국과 미국 간의 무역 규모를 고려할 때 미국에게는 엄청난 비용이 소요되고 달러 부채에 대한 자금 조달이 복잡해질 수 있는 상황이다.(23)

이런 상황으로 인해 미국 행정부가 현재 일어나고 있는 달러에 대한 동요에 귀를 기울일까? 그런 반응을 기대하는 것이 사실 일부 브릭스 국가들의 숨은 목표일 수 있다. “브릭스 이니셔티브를 통해 마침내 미국이 진정한 국제 통화를 만드는 데 동의한다면 저는 완벽하게 만족할 것”이라고 인터뷰 말미에 러시아 대담자가 말했다. 아글리에타도 이 점에 대해 묻자 “중국이 원하는 것도 바로 그것”이라고 확신했다.

 

극심한 경제위기에서만 세계경제질서 격변 일어나

사실 이 “진정한 국제 통화”는 IMF가 발행하는 특별인출권(SDR, Special Drawing Rights)의 형태로 이미 존재한다.(24) 1969년 브레튼우즈 체제가 붕괴될 위기에 처하자 1944년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구상한 방코르(Bancor, 일종의 국제결제시스템)와 유사하게 만들어진 SDR은 세계가 필요로 하는 통화 도구, 즉 국제 통화 관리라는 목적을 위해 설계된 기관인 IMF 내에서 공동의 방식으로 운영되는 국제 통화가 되는 데 필요한 모든 특성을 갖추고 있다. 2009년 중국 중앙은행 총재 저우 샤오촨은 IMF에서 물가 안정을 목표로 국제 유동성을 관리할 수 있는 글로벌 중앙은행의 시작을 보았고, 이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이 제안을 추진하려면 필연적으로 미국의 거부권을 박탈하기 위해 IMF를 개혁해야 하는데, 미국 엘리트들은 달러가 자신들에게 부여한 특권을 내려놓을 의사가 없었다.

적어도 현재 상황은 이렇다. 아스트리드 비오와 폴아서 루주가 지적했듯,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2017~2021년)은 재임 기간 동안 “달러의 지배를 허용하는 미국의 영구적 적자 정책”에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해 왔기 때문이다. “적자는 전 세계에 달러를 공급하려는 미국의 의지에 대한 의구심을 불러일으킨 강력한 신호”라는 지적이었다.(25) 

이렇듯 공식적인 연설과 언론의 보도가 ‘강한’ 달러를 국가의 위대함의 상징으로 간주하도록 이끄는데도 불구하고, 미국 국민들은 더 이상 달러화의 국제적 지위에 의해 가치를 부여받지 않는다. 갈브레이스가 지적한 바와 같이, “화폐 다극성은 과두제로서 좋지 않을 수 있지만 민주주의, 지구 보호 및 공공의 이익에 좋다. 하지만 그런 날은 결코 너무 빨리 오지 않을 것이다.” 불행하게도, 그는 “세계 경제 질서의 큰 격변은 극도의 위기에서만 일어난다”고 경고한다.(26) 

 

 

글·도미니크 플리옹 Dominique Plihon
경제학자. 소르본 파리 노르 대학교 명예교수 겸 국제금융과세연맹(Attac) 학술위원회 위원

르노 랑베르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번역·서희정
번역위원


(1) ‘Nicolas Sarkozy s’attaque aux paradis fiscaux et à la suprématie du dollar 니콜라 사르코지가 조세천국과 달러 패권을 공격하다’, <르 푸엥>, Paris, 2010년 12월 13일.
(2) Herman Mark Schwartz, ‘American hegemony: intellectual property rights, dollar centrality, and infrastructural power’, <Review of International Political Economy>, Vol. 26, n°3, Routledge, Milton Park, 2019.
(3) Charles Kindleberger, ‘The Dollar Yesterday, Today, and Tomorrow’, <Banca Nazionale del Lavoro Quarterly Review> n°38, Rome, 1985.
(4)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국제경제포럼 당시, 2023년 6월 16일.
(5) Martine Bulard, ‘Quand le Sud s’affirme 저개발국들이 존재를 드러낼 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프랑스어판, 2023년 10월호.
(6) <CGTN>의 인터뷰, 2023년 4월 14일.
(7) Renaud Lambert, ‘FMI, les trois lettres les plus détestées du monde (IMF,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세 글자)’, <르몽드 디플로마티크>프랑스어판, 2022년 7월호.
(8) James K. Galbraith, ‘The Dollar System in a Multi-Polar World’, <International Journal of Political Economy>, Vol. 51 n°4, New York, 2022.
(9) Renaud Lambert, ‘Les Calimero de l'euro 유로화의 칼리메로(병아리 만화 캐릭터)’, <르몽드 디플로마티크>프랑스어판, 2023년 1월호.
(10) <CGTN>의 인터뷰, op. cit.
(11) Michael Stott & James Kynge, ‘China exploits sanctions to undermine dollar’, <파이낸셜 타임스>, London, 2023년 8월 28일.
(12) Michael Stott & James Kynge, op. cit.
(13) Michel Aglietta, Guo Bai, Camille Macaire, 『La Course à la suprématie monétaire mondiale à l’épreuve de la rivalité sino-américaine 국제통화 패권을 향한 경쟁, 중미간 경쟁 관계를 이겨내다』, Odile Jacob, Paris, 2022.
(14) ‘America’s aggressive use of sanctions endangers the dollar’s reign’, <The Economist>, London, 2020년 1월 18일.
(15) ‘China wants to make the yuan a central-bank favourite’, <The Economist>, 2020년 5월 7일.
(16) 국제통화기금(IMF), 무역통계국(Direction of Trade Statistics, DOTS).
(17) Nidhi Verma & Noah Browning, ‘Insight: India’s oil deals with Russia dent decades-old dollar dominance’, 2023년 3월 8일, reuters.com
(18) Tom Benoît, ‘La fin du dollar roi 황제 달러의 종말’, <르 푸엥>, Paris, 2023년 9월 26일.
(19) 이 퍼센티지는 총 200%가 기준인데, 거래의 양방향을 고려할 때 두 개 통화가 사용되기 때문이다.
(20) 본인의 연설문을 전달해준 노게이라 바티스타 주니어에게 이 자리를 빌려 감사 인사를 전한다.
(21) Bernard Cassen, ‘Le Sucre contre le FMI IMF에 맞선 수크레’, <르몽드 디플로마티크>프랑스어판, 2008년 12월 2일.
(22) James K. Galbraith, ‘The Dollar System in a Multi-Polar World’, op. cit.
(23) 중국이 보유한 미국 부채는 약 1조 2천억 달러에 달한다. 
(24) Dominique Plihon, ‘Une “monnaie” mondiale contre le dollar? 달러에 맞서는 국제 ‘통화’라고?’, <르몽드 디플로마티크>프랑스어판, 2023년 10월호.
(25) Astrid Viaud & Paul-Arthur Luzu, 『Entre dollar et cryptomonnaies. Le défi des sanctions pour L’Europe 달러와 암호화폐, 유럽에 가해진 제재의 도전』, Arnaud Franel 출판사, 2022, Paris.
(26) James K. Galbraith, 『The Dollar System in a Multi-Polar World』, op. c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