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외교의 현실주의와 이상주의

출판/서평

2012-05-14     정의길

미국에서 대외정책을 놓고 벌어지는 전선은 좌·우나, 리버럴·보수의 사이에 있지 않다. 독립 이후 '몬로주의'로 대표되는 고립주의와 이에 대비되는 국제주의 사이에도 있지 않다. 독립 이후 미국의 전통적 외교 노선인 고립주의(사실상 미주 대륙의 패권을 독점하는 대신 다른 지역에는 간섭하지 않는다는 비개입주의)도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부침이 있었으나, 미국이 세계 강대국으로 부상하면서 국제주의에 자리를 내주었다.

미국 대외정책의 노선 다툼은 국제주의에 바탕한 현실주의(리얼리즘)와 이상주의(아이디얼리즘)에서 벌어진다. 거칠게 정리하면, 리얼리즘이란 '현실에 맞춰 최대의 국익을 도출하는 데' 방점을 찍는다. 그래서 리얼리즘은 '국가의 동인을 이념이나 윤리가 아니라 경제·군사적 우위와 안전을 취하는 데' 두고, 이를 위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때로는 대화와 협상을, 때로는 공작과 폭력을 통해 평화와 전쟁 모두를 배제하지 않고 추구한다. 반면 아이디얼리즘은 가치와 이상의 전파를 국익 확보의 주요 동인이자 수단으로 둔다. 자유민주주의 체제 확산을 미국의 안보와 국익 확보에 최선으로 둔다. 눈앞에 놓인 현실의 국익보다 미국식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확산시키기 위한 시장경제와 인권의 가치, 이상을 추구한다.

20세기 이후 미국의 대외정책은 리얼리즘과 아이디얼리즘의 갈등과 충돌, 혹은 조합과 협조로 점철된다. 현실의 국익과 장기적 가치 사이에서 모든 국가는 대외정책의 기초를 닦고, 딜레마에 빠지지만, 미국에 이 과제는 훨씬 막중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패권국가인 미국에 헤게모니의 수호와 확산에는 현실의 국익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가치와 이상을 전파할 필요성이 그 어느 국가보다 훨씬 크기 때문이다. 어느 국가보다 아이디얼리즘의 필요성이 크다는 것은 미국 대외정책의 형성과 결정에서 가장 큰 특징이다.

제1차 세계대전 뒤 우드로 윌슨 당시 대통령은 전후 평화회의의 원칙으로 '민족자결주의'로 상징되는 '14개 조항'의 아이디얼리즘적 국제주의를 표방하며, 지금까지 이어지는 미국 대외정책의 기초를 닦았다. 이는 윌슨의 아이디얼리즘이 미국 대외정책의 주류가 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윌슨의 아이디얼리즘은 미국 대외정책을 비개입주의에서 전세계에 대한 개입주의로, 즉 확고한 국제주의로 자리를 굳히는 계기가 됐다. 윌슨이 공고히 한 국제주의 위에서 미국 대외정책의 주류 자리는 오히려 아이디얼리즘보다는 리얼리즘이 차지하게 된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대외정책의 주류학파는 리얼리스트들의 몫이었다. 전후 미국 대외정책의 큰 그림을 그린 조지 케넌, 조지 마셜, 헨리 키신저,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브렌트 스코크로프트 등이 대표적인 리얼리스트다.

미국 대외정책에서 리얼리즘과 아이디얼리즘의 갈등과 조합, 그리고 리얼리스트와 아이디얼리스트들의 대립이 가장 컸던 분야가 대중국 정책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미국 외교 당국은 중국 대륙에서 항일전쟁을 수행하는 공산당과 국민당에 대한 향후 관계를 놓고 갈등했다. '차이나 핸즈'(China Hnads·중국통, 19세기 중국 조차지의 외국인 상인을 일컫는 말에서 기원. 제2차 세계대전 전후의 중국 정세에 정통하고 미국의 중국 정책에 영향을 끼친 일군의 외교관과 언론인 등 지식인들) 학파는 중국 공산당의 항일 능력뿐만 아니라 인민의 지지, 그 민족주의 성향을 들어 제2차 세계대전 뒤에도 대소련 견제를 위해 중국 공산당과의 관계 정상화와 확장을 주장했다. 하지만 중국 내전에서 공산당의 승리는 소련의 급부상과 냉전 도래와 공포에 맞물려, 미국 조야에서 매카시즘적 숙청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차이나 핸즈 학파는 '중국 대륙에서 공산주의 승리'의 책임을 지고 외교 당국에서 일소됐다.

그 뒤 20년 이상 지속된 중국 공산당 정부에 대한 봉쇄정책을 풀고, 미-중 관계의 대전환을 가져온 이들은 리처드 닉슨과 헨리 키신저라는 리얼리스트였다. 전후 매카시즘 광풍 속에서 매카시 청문회를 실질적으로 주도한 닉슨이 미-중 관계 회복이라는 대전환을 주도한 것은 미국 리얼리스트들의 전형적 모습을 보여주는 사례다.

키신저의 방중 이후 미-중 관계의 주도권은 우파 아이디얼리스트들에서 좌우를 불문하는 리얼리스트들로 넘어가, 협력과 확대 일변도의 길을 걷는다. 전후 미국 대외정책에서 리얼리스트들의 영향력이 가장 축소되고, 우파 아이디얼리스트들이 가장 득세한 조지 부시 행정부의 네오콘 시기에도 미국의 대중관계는 미국식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확산에 바탕하기보다는 양국 간의 현실적 이익에 기초해 협력과 상호의존 관계를 확대했다.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는 양국의 관계를 협력과 상호의존에서 경쟁과 알력으로 밀어넣었다. 미국의 상대적 쇠락과 중국의 급부상은 미-중 양강체제인 G2 체제를 새로운 국제체제로 정착시키면서, 미국 내에서 차이나포비아 담론을 분출시키고 있다. 사실 중국의 부상과 이에 따른 세계 패권체제의 변화 양상은 미국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화두이기도 하다. 문제는 이 양자가 협력 가능한 관계로 보느냐, 아니면 본질적으로 대립과 경쟁이 불가피한 관계로 보느냐다.

애런 프리드버그 미국 프린스턴대학 교수의 <패권경쟁: 중국과 미국, 누가 아시아를 지배할까>는 미국 내에서 다시 득세하는 후자의 의견을 대표하는 결정판적 저서다. 네오콘의 대부 역할을 하던 딕 체니 전 부통령의 안보보좌관을 지낸 경력이 말해주듯, 프리드버그는 미국 대중정책의 목표가 공산당 독재체제를 종식하고 자유로운 민주국가로 진화시키는 것이어야 한다고 단언한다. 리버럴과 보수, 리얼리스트와 아이디얼리스트를 막론하고 '자유로운 민주국가 중국'은 미국 대중정책의 목표인 것은 분명하다. 문제는 그런 중국을 가능케 하는 것이 '협력과 화해'냐, 아니면 '봉쇄와 힘의 우위'냐다. 프리드버그는 단연코 후자 쪽에 선다.

이런 시각은 양국이 "기본적인 이해관계를 위협하는 전략적 목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역사적으로 지배적인 국가들과 떠오르는 국가들 간의 관계는 불편했으며, 때로는 적대적이었다"며 "미국은 최고의 지위에 오르는 동안 여러 강대국과 경쟁했으나… 중국과 같은 경쟁 상대, 자신보다 더 큰 경제 규모를 가진 전략적 라이벌을 만나본 적이 없다"고 중국을 규정한다. 그는 "지금의 추세가 지속되면 미국은 지정학적인 경쟁력에서 중국에 밀려날 것이다"라고 전망한다. 그 이유로 "20세기 이후 미국의 대외정책에서 변하지 않는 목표는 다른 강대국들이 유라시아 대륙의 양쪽 끝을 장악하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었는데 "적대 세력이 서유럽 혹은 동아시아 지역을 장악하게 되면 미국은 시장, 기술, 자원에 대한 접근이 차단된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마지막이지만 중요한 말이 남았는데, 독재국가가 유럽와 아시아를 지배한다면 미국의 정치인들은 미국이 품어온 더욱 자유로운 세계에 대한 비전을 오랫동안 고민해야 할 것이다"라고 미국 우파 아이디얼리스트들의 전형적 시각을 보여준다.

그는 "중국을 적으로 대하라, 그러면 중국은 적이 된다"는 대중화해협력파 리얼리스트들의 고전적 경구를 반박하기 위해 중국의 현실과 그 부상에 대한 정치한 분석을 제공한다. 중국이 군사력 등 힘에서는 여전히 미국보다 모자라는 현실을 직시하고, 싸우지 않고 이기는 전략을 바탕으로 특히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축소시키는 전술을 채택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그는 대중화해협력파들의 주장에 따른 현재의 대중정책을 '전략적으로 잘못된 자제력'이라고 표현한다. 그래서 미국의 대중정책이 중국의 오산과 도발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힘의 우위를 굳게 지키는 가운데 대중 경제·군사·외교를 봉쇄하고 압박하는 것을 주장한다. 물론 그가 현재 양국의 협력·의존 관계에 대해 손을 놓자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중국을 압박하는 봉쇄 속에서 미국이 믿는 가치와 이상을 가지고 중국에 할 말을 하면서 중국의 민주적 변화를 촉진하자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힘의 우위와 관련해 △중국의 반접근 전략(미국의 대중봉쇄을 저지하려는 전략)을 분쇄할 동아시아 주변의 동맹국과 미 군사력의 확충 △더 나아가 대만 카드의 부활 △냉전시대 버팀목이던 허브-스포크(Hub-Spoke·강대국을 중심으로 주변국가들과의 양자 간 동맹관계) 관계에 바탕한 동아시아 국가와의 동맹 강화를 주문한다.

특히 범아시아 4개국 연대를 제시하며, 미국과 양자 동맹관계인 일본과 오스트레일리아에 인도를 더해 4개국의 다자 동맹체제까지 나아간다. 또 "미국은 일본과 한국이 최근의 긴장관계를 해소하고 화해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며 "나타났다가는 사라지는 삼자 간의 군사회담도 확고한 기반을 토대로 이뤄져야 한다"고 한-미-일 삼각 군사동맹의 공식화와 확대라는 한반도 정세에 극히 폭발적인 의제도 마다하지 않는다.

네오콘이 득세한 부시 행정부에서도 꺼리던 프리드버그의 이런 주장이 현재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 행정부 내에서 반향을 보이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는 지난해 '아시아로의 귀환'을 선언했다. 향후 10년 동안 재정 적자 감축을 위한 군사력 삭감에도 불구하고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군사력은 확충한다고 밝혔다. 남중국해를 둘러싼 중국과 동남아 국가의 영유권 분쟁에 개입해 동남아 국가의 손을 암묵적으로 들어줬다. 남으로는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시작해 북으로는 한국까지 사이에 있는 동아시아 국가들과의 군사동맹을 재조정해 강화했고, 중국이 독점하던 버마(미얀마)와도 수교에 들어갔다. 최근 인권변호사 천광청의 미국 대사관 피신 사건은 우파 아이디얼리스트들의 대중압박 주장을 더욱 거세게 했다.

이 책은 비슷한 시기에 나온 키신저의 <중국 이야기>와 대비된다. 대표적인 대중화해파 리얼리스트인 키신저는 프리드버그로 대표되는 대중압박 우파 아이디얼리스트의 주장을 공박한다.

"중국과 미국은 충돌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는 주장은 두 나라가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경쟁하는 블록으로서 서로를 대한다는 가정하에서만 가능하다. 그러나 이것은 양쪽 모두를 파멸로 끌고 가는 길이다. 지금 세계 상황에서 전략적 긴장이라는 측면은, 미국이 중국을 억지하려고 노력한다는 중국의 두려움에 기인한다. 거기에 중국이 미국을 아시아로부터 몰아내려 한다는 미국 쪽의 우려도 평행선을 달린다. (미국과 중국, 다른 나라들이 모두 속해 있고 평화적 발전에 모두 참여하는) 태평양 공동체라는 개념은 그 두 가지 두려움을 모두 완화해줄 수 있다. …역사가 과거를 기계적으로 반복하는 것에 불과하다면, 변화라는 것은 한 번도 생기지 않았을 터, 모든 위대한 업적은 현실로 변하기 전까지는 하나의 비전이었다. …이마누엘 칸트는 영구 평화가 인류의 직관과 통찰에 의해서, 아니면 인간에게 다른 선택을 허락하지 않는 갈등과 재앙에 의해 찾아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금 우리는 바로 그 기로에 서 있다."

미국과 중국은 이제 선택에 몰리고 있다. 어느 쪽의 주장이 옳은지는 역사가 판별할 것이다. 하지만 역사가 인간의 노력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비결정론적 세계관에 선다면, 우리가 어느 쪽의 주장과 노력에 서야 할지 분명하다.

글•정의길 <한겨레> 선임기자. 전 국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