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명성에 먹칠한 “살인자” 마크롱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혼란 그리고 그 이후
멀리서 보면 모든 것이 고요해 보였다. 게다가 최근에 이스라엘과 몇몇 아랍 국가 간에 협정이 체결된 이후에는, 모든 것이 정상화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하마스가 10월 7일 공격을 개시하자, 전 세계의 뉴스 채널들은 앞다투어 다양한 해석을 내놓았다. 갈등의 배후에는 이란이 있고, 우리는 공격의 본질에 집중해야 하며, 이번 사태의 명칭은 전쟁이 아닌 ‘테러’라고 말이다. 이스라엘에서는 민간인 학살을 막지 못한 무능한 정부를 향해 민심이 들끓고 있고, 팔레스타인인들의 사망자 수는 수천 명대를 넘어섰다. 프랑스는 자발적으로 미국의 외교 기조를 충실히 따르면서 무력감을 드러냈다.
1996년 10월 23일, 예루살렘의 경찰과 그 유명한 언쟁이 벌어졌던 다음 날,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은 당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수반이었던 야세르 아라파트 의장을 가자지구에서 만났다. 시민들의 열렬한 환호 속에서 두 정상은 샤를 드골 거리의 개통식을 마쳤다. 그로부터 약 10년 뒤인 2007년 4월에, 팔레스타인의 새로운 수장이 된 마흐무드 압바스는 파리를 방문해 라말라에 자크 시라크 거리를 조성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팔레스타인의 나블루스에 에마뉘엘 마크롱 거리가 만들어지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현 프랑스 대통령은 아랍 국가들로부터 미움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10월 7일 하마스의 공격에 대한 이스라엘의 반격을 규탄하며 거리로 뛰쳐나온 튀니스와 베이루트의 시민들은 곧 프랑스 대사관으로 이동해 “살인자 마크롱”을 외쳤다.
“‘네, 그렇지만(yes, but)’이라는 말은 없어야 합니다. (중략) 이스라엘에는 자국을 방어할 권리가 있습니다.” 10월 12일 프랑스 대통령은 미국과 완벽하게 똑같은 입장을 밝혔다. 그로부터 며칠 전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이스라엘은 반격할 권리가 있습니다. 심지어 이 끔찍한 공격에 반격할 의무도 있습니다. (중략) 테러는 어떠한 논리로도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어떠한 변명도 구실도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2008~2009년의 캐스트 리드(Cast lead) 작전, 2012년의 방어 기둥(Pillar of defense) 작전, 2014년의 가장자리 보호(Protective edge) 작전, 2021년의 벽의 수호자(Guardian of the walls) 작전, 2022년의 새벽녘(Breaking Dawn) 작전에서 그랬듯이, 이스라엘 정부는 철의 검(Iron swords) 프로젝트도 충분히 완수할 수 있다. 팔레스타인에 전기와 물의 공급을 끊고는, 팔레스타인 민간인들을 강제 이동시키는 한편 무차별적인 포격과 공습을 쉼 없이 가하는 이스라엘은 동맹국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원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카트린 콜로나 프랑스 외교부 장관은 그저 “가자 지역을 포함해” “가능한 한” 민간인들은 보호하자는 지시를 내린 것이 전부였으니 말이다.(<프랑스 앵포> 2023년 10월 11일)
드골, 이스라엘을 비판하며 팔레스타인을 지지
지금으로서는 믿기 어려운 일이지만, 사실 프랑스는 오랫동안 팔레스타인 민족의 친구였다. 수십 년 동안 양측의 수장들은 식민지화, 영토 점령, 추방, 굴복 등 오늘날 공식적으로 금지된 모든 ‘네, 그렇지만’ 부류의 표현을 한목소리로 비난했다. 드골 장군은 1967년 6월에 이스라엘이 일으킨 전쟁을 맹렬하게 비난하면서 이스라엘에 대한 무기 판매를 금지했다. 그는 같은 해 11월 27일에 열린 기자 회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금 이스라엘은 자신이 빼앗은 영토를 점령하고, 그곳 주민들을 억압하고 추방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에 저항하는 행위는 무조건 테러라고 규정합니다.”
니콜라 사르코지가 프랑스 대통령에 취임하기 전까지, 드골 장군 이후의 모든 프랑스 대통령들은 이스라엘과 미국의 심기를 건드릴 만한 돌발적인 행동, 상징적인 제스처, 외교적인 결정을 이어갔다. 조르주 퐁피두는 아랍 국가들에 프랑스산 무기를 수출했고,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은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와 대화를 시작하는 동시에 유럽공동체가 팔레스타인인의 자치권 보장에 관한 베네치아 선언을 채택하도록 압박했다.
프랑수아 미테랑은 1982년 크네세트(이스라엘 의회)에서 연설하던 중에 ‘PLO’와 ‘팔레스타인국’이라는 단어를 사용했고, 1989년에는 야세르 아라파트를 엘리제궁으로 초청했다. 자크 시라크는 다양한 이유로 많은 팔레스타인인의 기억 속에 각인되었는데, 1996년 이스라엘을 방문해 팔레스타인 관련 지원을 요청했다. 2003년에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강력하게 비난했으며, 건강이 악화된 야세르 아라파트를 프랑스 병원에 입원시켜 치료했다. 그가 사망한 이후에는 전 세계 수장들 중 프랑스 대통령이 가장 먼저 애도를 표했다.
이러한 프랑스의 ‘비동맹주의’는 프랑스가 마그레브 국가 및 중동 국가와 아직 제대로 된 관계를 정립하지 못하고 있던 1967년에 드골 대통령이 펼쳤던 ‘아랍 정책’에 따른 것이었다. 그 이전에 프랑스는 여기저기서 외교 문제를 일으키고 있었다. 1956년 수에즈 위기 때 이스라엘과 영국에 맞서 군대를 파견했고, 1961년에는 튀니지 비제르테의 해군 기지에서 철수하는 과정에서 튀니지 군대와 전투가 벌어지기도 했다. 이는 프랑스가 튀니지의 사키에트 시디 유세프 마을을 폭격한 지 고작 3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알제리 전쟁으로 수천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던 사건도 빼놓을 수 없다. 당시의 프랑스는 스스로 나쁜 이미지를 쌓아가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르코지 이후부터 미국의 친이스라엘 정책 따라가
그러나 드골은 아랍 세계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다. 식민지 시대와 위임통치 시절부터 오랜 인연을 이어온 곳이기 때문이다. 이 지역은 석유 매장량이 풍부해 전략 지정학적인 중요성이 나날이 커지고 있었지만, 냉전 체제의 국가들과는 상대적으로 교류가 적었다. 프랑스는 냉전 중인 국가들과는 다른 독자적인 노선을 구축하고, 아랍 국가들에게 일종의 중개인 또는 제3세계를 위한 공명 상자와 같은 역할을 자처하면서, 이 지역에서 주도권을 잡기를 원했다. 식민지 시대가 끝난 후에도 프랑스의 영향력을 계속해서 유지하기 위해, 드골은 독립적인 핵 억지력을 개발하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탈퇴했으며, 1966년 프놈펜에서 미국의 베트남전 개입을 비판함으로써, 미국의 그늘에서 벗어나고자 애썼다.
“프랑스에는 대(對) 아랍정책이라는 것이 특별히 없습니다. 대중 정책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렇지만 아랍 국가들을 대할 때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여기겠다는 방침은 있습니다.” 드골의 전력을 설계한 인물 중 하나인 미셸 조베르의 설명이다.(1) 프랑스는 때때로 자국의 이익을 위해 미국과 한 편에 서기도 했다. 1991년 걸프전이 그 예로, 당시 프랑스는 아랍 국가들로부터 배신자 취급을 받았다. 그러나 프랑스는 대부분의 경우에 미국과 입장을 달리했고, 이 덕분에 미국을 제외한 다른 국가들에서는 인기가 꽤 높았다. 2003년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이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비판한 뒤 알제리의 알제와 오랑을 방문했을 때, 그는 알제리 국민들 수천 명의 환호 속에서 영웅 대접을 받았다. 말리의 통북투에서도 뜨거운 환대를 받았다. 그러나 니제르, 레바논, 부르키나파소, 튀니지, 차드, 이란의 프랑스 대사관은 현지인들의 항의 시위로 한동안 몸살을 앓았다.
최근의 프랑스 대통령들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에 있어서 미국의 길을 그대로 따르면서, 이스라엘을 지지하고 이들의 영토 분쟁을 ‘대테러 투쟁’으로 취급하고 있다. 2009년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 폭탄을 대량으로 투하하고 3주가 지난 시점에, 당시 프랑스의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은 “유럽인들은 이스라엘이 자국의 안전을 지키는 것을 지지한다”라고 발표했다. 5년 뒤 가자지구가 또다시 폭격을 당하자, 이번에는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이 “자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모든 필요한 조치를 동원하고 있는” 이스라엘 정부에 깊은 “연대감”을 표했다. 그리고 현 대통령인 마크롱의 행보도 이 둘과 별반 다르지 않다.
프랑스, 팔레스타인 동조 집회 금지
이처럼 미국의 편에 서는 것은 아랍 국가들이 프랑스에 대해 갖고 있는 이미지에 악영향을 줄 뿐만 아니라, 이미 그것 자체로도 합리적이지 않다. 우크라이나부터 중동 문제에 이르기까지 모든 전략적인 문제에 있어서 미국의 입장을 그대로 따름으로써, 프랑스는 쇠퇴의 길에 접어들었다. 많은 이들의 반감을 사고 있는 강대국 미국과 한배를 탄 셈이 되었기 때문이다. 많은 국가가 다극적인 국제질서를 원하는 상황에서, 프랑스는 전 세계 대부분의 국가들과 등을 돌릴 것이 아니라 새로운 동맹국을 찾아 나서고 과거에 누렸던 중재 국가로서의 위상을 되찾아야 한다. 이번에 가자 지구에서 벌어진 전쟁은 다시 한번 서구권의 위선을 보여주었다.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면서 근거로 내세웠던 국제법은 팔레스타인 문제에서는 전혀 거론되지 않고 있다. 이쯤 되면 블라디미르 푸틴의 ‘이중 잣대’를 비난할 자격도 없다.
미국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며 프랑스의 국제적인 신뢰를 떨어뜨린 것도 모자라, 마크롱 대통령은 자유의 수호자로서의 프랑스의 명성에도 먹칠을 했다. 외교 정책에 관해 발언하는 도중에 마크롱 대통령은 자유, 민주주의, 관용의 가치를 들먹이며 독재 체제를 비판했다. 이 가치들은 21세기에 떠오른 새로운 종교로, 그것을 문제로 삼거나 심지어 입에 올리기만 해도 이단으로 취급받을 수 있다. 게다가 마크롱 대통령은 ‘자유주의적인’ 외교 정책을 설명하면서 자유를 침해하는 각종 방침을 제시했다. 빅토르 오르반이 이끄는 헝가리와 함께, 프랑스는 유럽국들 가운데 팔레스타인의 입장에 동조하는 집회가 금지된 유일한 국가이다. 브뤼셀, 바르셀로나, 코펜하겐, 비엔나 곳곳에서는 ‘Boycott Israel’이라는 팻말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러나 프랑스에서 만약 그런 문구가 등장한다면, ‘반(反)유대주의’(antisémitisme)라는 낙인이 찍혀서 언론은 그에 관해 각종 기사를 쏟아내고 장관들은 TV 토론회에 출연해 주동자를 당장 고소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일 것이다.
내무부 장관의 요청으로 종종 ‘테러 옹호’와 관련된 조사가 이루어지곤 했는데, “팔레스타인들과 그들이 저항을 위해 선택한 투쟁 수단을 지지한다”라고 밝힌 반자본주의신당(NPA), 하마스를 “저항 단체”라고 어설프게 정의한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당(LFI) 소속 국회의원 다니엘 오보노, 극우파 정당인 공화국원주민당이 그 대상이었다. 그리고 니스 출신의 축구선수 1명, 노조 위원 2명, 에시롤의 사회당 소속 의원 1명도 조사를 받았다. 또한 제랄드 다르마냉 내무부 장관은 “하마스 또는 하마스 주변 단체들을 비공식적으로 은밀히 추종하면서 재정적으로도 지원하는 일부 단체들”에 대해 “해체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발랑스의 한 식당이 시 소속 경찰들로부터 간판의 네온사인을 당장 끄지 않으면 영업 정지 명령을 내리겠다고 위협을 받은 사건이 발생했을 때, 이 마녀사냥은 돌연 코미디로 장르가 바뀌었다. 전구 몇 개가 불이 나간 탓에 본래 상호인 ‘Chamas Tacos’가 ‘Hamas Tacos’로 바뀌어 일어난 촌극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촌극이 때로는 우려스러운 상황으로 돌변하기도 해서 우리는 마냥 웃을 수만은 없다.
최근 미국에서는 일부 하버드 대학생들이 하마스 공격의 책임은 이스라엘에 있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한 뒤로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 초기 문서에는 서명한 학생들의 이름이 나와 있지 않았지만, 그 명단은 소셜네트워크를 타고 빠른 속도로 퍼져나갔다. 그러자 월스트리트의 임원들은 곧 ‘블랙 리스트’를 만들어 해당 학생들의 채용을 금지했다. 또한 한 보수 압력단체는 대형 스크린이 설치된 트럭을 마련해 하버드 대학교 캠퍼스 주변을 돌게 했는데, 그 스크린에는 “하버드의 유명한 반유대주의자”들의 이름과 얼굴이 계속해서 등장했다.(2) 미국의 외교 노선을 따라가면서, 프랑스는 과대망상증과 매카시즘 등 미국이 가진 최악의 결점들까지 문명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도입하고 있는 걸까?
글·브누아 브레빌 Benoît Bréville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발행인
번역·김소연
번역위원
(1) Cf. Ignace Dalle, ‘Les relations entre la France et le monde arabe 프랑스와 아랍 세계 간의 관계’, <Confluences Méditerranée>, vol. 96, n° 1, Paris, 2016.
(2) Anemona Hartocollis, ‘After writing an anti-Israel letter, Harvard students are doxxed’, <뉴욕타임스>, 2023년 10월 1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