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와 정치, 떠들썩한 빈자리
지금 우리는 소셜 미디어를 분석하는 데 여념이 없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대표되고 통칭되는 기술과 이를 적극적으로 '잘' 활용하는 집단들의 정치적 힘에 대한 찬탄이 이어지고, 오는 12월 대선 때 SNS를 지배하는 후보가 승리할 것이라는 'SNS 결정론'이 배회하고 있다. SNS 같은 신종 미디어를 경계하거나 경쟁 상대로 여기고, 전통적인 매스미디어 진영도 '미디어 선거 결정론' 혹은 '미디어 정치 결정론'을 은근히 즐기는 형국이다. 왜? 미디어는 세고, 결정적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사람들이 믿어야 하니까. 정치인과 정당, 후보자와 유권자가 함께 '미디어 결정론'을 믿어야 결국 미디어의 영향력을 인정받고 대접받을 수 있으니까.
선거와 정치에서 빠지지 않는 미디어
이와 함께 <나는 꼼수다>(이하 <나꼼수>)와 같은 팟캐스트의 부상이 미디어 결정론을 확대재생산하는 데 기여했다. <나꼼수>는 2030 세대에게 '무엇을 향한 어떤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할지에 대한 방향을 쉬운 언어로 제시했다. 또한 김대중-노무현 자유주의 정권에 실망하며 오히려 반동·퇴행적인 이명박 정부를 탄생시키는 데 일조했던 '멘털 붕괴' 상태의 과거 386세대가 '반MB'의 멘털을 재조직화는 데 다리를 놓았다. <나꼼수>는 이후 여러 정치 팟캐스트를 비롯한 대항적 언로(言路)의 선행 모델이 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끊임없이 묻고 진단하고 비평한다. 미디어와 정치, 그리고 선거에 대해서. 특히 '누가 SNS 세계의 정치적 주인공이 될 것인가', 그리고 이 질문은 결국 누가 2012년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고, 미디어는 이 승리나 패배에 어떻게 관련될 것인지의 문제로 귀결된다.
정치로서의 미디어
정치적 행위자와 미디어의 관계에서 보면, 지금 전통적인 매스미디어 영역은 보수와 우파, 자본과 기득권 집단의 결정적인 영향력과 통제력 아래 놓여 있다. 일간지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문화일보>와 방송사 한국방송·문화방송·SBS는 두말할 필요도 없고, 케이블을 포함한 대부분의 유료 방송은 보수·우파·자본·기득권 집단을 대변하고 옹호하며 재생산하는 언어와 상징체계의 핵심적인 축이다. 이들은 일상적인 정치적 의식과 판단을 형성하는 무대의 80% 이상을 차지한다.
인터넷은 매스미디어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진보적인 정치가 발생할 수 있는 장소다. 보수우파 정부와 권력이 인터넷을 감시·통제하려고 끊임없이 시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인터넷이 진보적 정치의 독점적 장소만은 아니다. 인터넷에서는 보수·우파·자본을 지지하고 생명력을 유지하려는 집단의 정치도 확장된다. 인터넷은 매스미디어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린 정치의 공간이며, 여러 정치적 집단의 경쟁과 갈등, 충돌과 대립의 장소다.
SNS도 인터넷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온라인과 모바일 SNS는 더 빠른 속도와 광범위한 파급력을 활용한 '속도'와 '집결', '동원'의 정치적 장소일 수 있다. 동시에 강력한 정치 팬덤의 근원지다. 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 노무현의 당선은 인터넷을 중심으로 거대한 정치 팬덤이 형성됐다는 점에서 팬덤화된 정치 현상의 시발점으로 간주할 수 있다.
정치 팬덤은 인터넷과 SNS와 같은 미디어가 정치 커뮤니케이션을 변화시키는 방식을 잘 보여주는 현상이다. 좀더 개인화되고 친밀한 커뮤니케이션의 공간과 채널을 제공하는 인터넷과 SNS가 정치(인)의 스타일을 변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 과정에서 정치인은 스타의 역할로 탈바꿈하는 경우가 많고, 이를 통해 대중과 더 친밀하고 사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다.
더 나아가 정치 팬덤은 정치인이 아닌 정치평론가나 언론인, 사회운동가나 여론 지도자, 지식인 등 여러 사람을 중심으로 형성되기도 한다. 이들은 특정 정치인이나 정당, 혹은 특정한 정치적 가치의 지지자이고, 시민들을 이런 지지의 대열에 동참하도록 유도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미디어를 활용해 자신들의 시각과 해석을 제공하면서 또 다른 정치 팬덤의 마당을 만들어낸다. <나꼼수>를 통해 우리는 이미 경험했고, 유명인들의 트위터나 페이스북, 블로그를 매개로 확장되는 정치 팬덤은 매우 흥미로운 대상이다.
새로운 미디어가 출현하고 대중화될 때마다 큰 관심사는 우선 그것이 '돈'을 만들어낼지와 '정치'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의 문제였다. 인터넷과 모바일 기술의 혁신 속에서 이 기술적 공간에 모여드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질 때도 한편에는 비즈니스, 다른 한편으로는 정치의 관심사가 꿈틀거린다. 특히 사람들의 선택을 받아야 하는 정치인과 정당에 소셜 미디어는 유령 같은 존재다. 붙잡고 싶지만 미끄러져 달아나기도 하고, 이해할 듯하면서도 이해할 수 없고, 예측할 수 있을 듯하지만 그 예측은 어긋난다. 스타로 부상하기도 쉽지만 반대로 순식간에 정치판을 떠나야 할지도 모를 정보와 언설이 순식간에 모여들었다 흩어지기도 한다.
주식시장의 풍경처럼 정치인들은 자신의 팔로어 수 변동을 주시하며 어떻게 해서든 주가를 높여 팔로어가 늘어나게지 하려는 정치 마케팅 전략을 고민한다. 한 정치인의 정치 철학과 이념, 지향하는 가치와 정책은 소셜 미디어에 적합한 형태로 축약되고 상징화돼 순식간에 보급돼야 한다. 그래서 소셜 미디어의 정치 언어는 분석적이고 논리적인 언어보다 시적 언어가 되기 쉽고, 또 이 시적 언어가 대접을 받는다. 순간의 감동과 느낌, 공감을 강렬하게 불러일으키는 시적 언어의 생산 능력이 정치적 능력으로 평가받기 쉽다. 정치의 시화(詩化)라고 할까.
정치와 미디어, 떠들썩한 빈자리
정치의 속도전. 수십∼수백만 명의 사람들에게 얼마나 빠른 시간 안에 나를 도달시킬 것인가? 정치의 양화(量化). 누가 가장 많은 팔로어를 확보하고 있는가? 정치의 아이돌화. 소셜 미디어상의 인기가 정치 팬덤을 확장하고 팬덤화된 정치 속에서 어느 날 갑자기 대중적 스타로 부상한 정치인이 정치판을 휘저을 가능성이 크다. 부산의 손수조의 탄생은 미디어의 작품이 아니고 무엇이었을까? 정치의 중앙화. 김대중·김영삼·김종필과 그 후속 세대의 대표 정치인들이 매스미디어를 통해 정치를 중앙화했다면, 지금의 정치인들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정치를 중앙화한다. 소셜 네트워크의 집중과 수렴은 가속화된다. 지금 우리 입에 오르내리는 정치인 수는 과연 몇 명이나 되고, 이들에 대해 우리는 무엇을 알고 있을까?
정치의 게임화. 정치인은 스스로 자신을 키워나가기도 하지만 주변 사람들에 의해 양육되고 키워진다. 특정한 세력과 이해관계, 가치와 연결된 정치인을 온라인게임을 하듯이 길러내고 변화시키면서 자신들의 전사로 앞세우는 정치의 게임화. SNS는 이 정치 게임을 더 역동적이고 가변적이게 만든다.
정리해보자. 정치와 미디어. 분명 한쪽에는 새로운 정치와 집단의 출현을 야기하고, 이들의 집단적 힘을 정치적 무대로 끌어올리는 미디어의 가능성을 부정할 수 없다.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 환경에서 새로운 형태의 사회·정치·문화적 참여가 이뤄지고 정치적 의견, 라이프스타일, 소비, 취향, 일상생활, 오락 등 다양한 공·사적 이슈가 정치적 차원으로 확장되고 있다. 동시에 과거의 전통적인 미디어가 기술적 혁신에 힘입어 오래된 역할과 기능을 넘어 새로운 기술 활용의 가능성을 확장하고 있다.
그러나 미디어에 대한 과잉된 믿음과 기대보다, 그리고 미디어 활용 전략보다 더 앞서 고민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 미디어와 그것을 활용하고 있는 우리가 만들어가는 정치의 모습이 무엇이고, 그 정치는 누구에게 이로운가? 소셜 미디어를 어떻게 점령하고 지배할 것인지에 앞서 나는 어떤 가치를 추구하고, 이 가치를 위해 누구와 어떻게 연대하며, 이 과정에서 어떤 정치적 지형을 만들어낼 것인가? 미디어는 이런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여러 수단 중 하나일 것이다. 그리고 이런 고민을 하는 사람들에게 매스미디어와 인터넷, 소셜 미디어 모두 중요한 정치의 장소가 될 것이며, 우리에게 중요하지 않는 미디어는 결코 없다. 그래서 소셜 미디어를 통한 정치만이 아닌 모든 미디어에서 어떤 정치적 언어와 관계, 담론과 가치를 생산하고 연대할 것인지 생각하자.
글•이영주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