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군화소리가 들리는 파키스탄
경제를 지휘하는 군대
파키스탄에서는 종교 시설을 표적으로 한 테러 행위가 늘고 있고, 경제 상황과 사회 문제도 악화하고 있다. 하지만 올 초 구속된 임란 칸 전 총리의 지지세력들에 의해 크게 흔들렸던 정치 지도자들과 군 수뇌부의 관심은 오로지 자신들의 권력을 확고히 하는 것뿐이다. 그들은 선거를 통제하며 총선도 2024년 1월로 연기했다.
파키스탄의 경제금융 수도 카라치, 해 질 무렵 삼삼오오 모인 시위대가 샤라이파이살 대로로 향한다. 경찰과 싸우겠다는 결연한 표정으로 대나무 막대를 든 사람들, 가족과 함께한 사람들 그리고 많은 여성도 화난 군중 가운데 있었다.
몇 시간 전인 2023년 5월 9일 아침, 임란 칸 전 총리가 부패 혐의로 수도인 이슬라마바드에서 체포됐다. 총리의 지지자들은 거리로 나왔고, 여러 대도시에서 폭력 시위가 발생했다. 카라치에서 만난 시위 참가자들은, 국가를 바로 세우고 부패를 척결할 수 있는 유일한 지도자를 상대로 꾸민 음모라며 분노했다. 최루탄이 발포되는 사이, 임란 칸 전 총리의 파키스탄 정의운동당(PTI) 지지자들은 “진짜 테러리스트들은 군복 뒤에 숨어있다!”라며 자신들의 생각을 대변하는 반군부 구호를 목청껏 외쳤다. 좀 더 적극적인 사람들은, 카라치 군사력의 상징인 육군참모총장 관저를 목표로 삼기도 했다.
비록 카라치의 시위는 공권력 개입으로 좌절됐지만, 파키스탄에서 인구가 가장 많고 가장 많이 발전한 지역이자 파키스탄군의 주요 모병 장소이기도 한 펀자브주의 상황은 달랐다. 파키스탄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인 라왈핀디에서는 PTI 지지자들이 육군 본부(GHQ)를 습격했고, 펀자브의 주도 라호르에서는 시위대가 지역 군사령관 관저에 불을 지르기도 했다. 언론 검열 때문에 시위대의 모습은 TV에서 방영되지 못했지만, 인터넷 연결이 차단되기 전, 이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시위 영상은 빠르게 퍼졌다.
파키스탄의 파란만장한 역사에서 군대가 이렇게 직접적인 방식으로 표적이 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시위가 진행될수록, 극단으로 치닫는 상황에 대한 두려움이 모두의 마음에 자리 잡았다. 임란 칸 전 총리는 군대 내에 지지세력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고, 반란이 일어날 수 있다는 소문이 만연해, 내전 시나리오에도 불이 붙었다.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인구가 많고, 이슬람 국가 중 유일한 핵보유국인 파키스탄은 위기에 처한 듯하다.
‘딥 스테이트’ 조직이 주도하는 정치 협상
5월의 시위는 파키스탄에서 가장 강력한 군대라는 기관을 뒤흔들었지만, 결국 군부의 권위적 복귀로 끝이 났다. 이후 몇 달 동안 경찰은 PTI 간부들을 급습했고, 칸 전 총리에 대한 지지 철회를 거부한 이들을 투옥했다. 크리켓 챔피언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한 칸 총리는 보석으로 풀려났으나, 공적 선물을 불법적으로 판매하고 수익금을 은닉한 혐의로 8월 5일 다시 체포돼 징역 3년 형을 선고받았다. 칸 전 총리는 이번 유죄 판결로 인해 향후 5년간 선거 출마가 금지됐다. 파키스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정치인이자 PTI당 지도자인 그가 다음 선거에 출마할 수 없게 된 것이다.
2023년 11월로 예정된 선거는 2024년 1월 말로 연기됐다. 국회는 임기를 마치고 해산됐고, 2022년 4월부터 정권을 잡은 셰바즈 샤리프 정부를 대신할 과도 정부가 8월 17일 출범했다. 선거관리위원회는 수백 개의 선거구를 재조정하겠다고 발표하며 선거 지연을 합리화했다. 선거가 늦어지면, 군부가 PTI의 적들과 함께 위기에서 벗어날 방법을 협상할 수 있게 된다. 셰바즈 샤리프 현 총리의 형으로 오랜 기간 군부와 불화를 겪고 2019년부터 영국에서 망명 중인 나와즈 샤리프 전 총리의 귀국이 협상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사실 이런 상황은 파키스탄 정치무대에서는 새로운 일이 아니다. 1977년 줄피카르 알리 부토 총리 정권이 무함마드 지아 울하크 장군에 의해 전복된 이후, 베나지르 부토 총리(1988~1990, 1993~1996), 나와즈 샤리프 총리(1990~1993, 1997~1999, 2013~2017) 그리고 칸 총리(2018~2022) 등 강한 개성을 가진 정치 지도자들이 군대에 맞서려 했었다. 국민의 지지를 확신한 이들은 국가기구, 즉 군대와 정보기관은 물론, 사법부와도 힘겨루기를 했다.
그러나 이들은 권력 싸움에서 하나같이 패배했고, 공직 출마 금지 명령과 함께 감옥에 갇히거나 망명을 택했다. 갈등은 매번 육군참모총장과 정보부(ISI) 부장 임명에서 시작됐고, 칸 전 총리도 예외는 아니었다. 자신의 측근들을 ISI 수장과 육군참모총장으로 앉히려는 시도를 반복해 스스로 몰락을 부추겼고, 결국 2022년 4월 국회에서 불신임안이 통과돼 총리직에서 물러나게 됐다.
늘 그렇듯이, 파키스탄에서 정치 지도자의 실각은 새로운 정치 동맹을 만들기 위한 협상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협상은 파키스탄에서 ‘딥 스테이트(군대와 군대의 강력한 정보기관)’라 불리는 조직이 주도하고, 군대와 군대의 이익을 지지하는 정치인들이 새로운 동맹을 구성한다. 나와즈 샤리프 본인을 비롯해 지아 울하크 장군의 총애를 받던 이들이 1993년 창당한 ‘파키스탄 무슬림 연맹 나와즈파(PML [N])’는 군사 권력과의 협력과 협약에 익숙하다. 정당 지도자들이 군부의 동의 없이 독자적인 행동을 했을 때는 장군들의 분노를 사기도 했지만 말이다.
최근 위기를 통해 여당의 기회주의가 드러났는데, 이는 본의 아니게 군사 권력에 유리한 상황을 만들어줬다. 지난 5월 칸 전 총리의 체포 이후 확산한 폭력 시위로 군대는 심각한 위기를 맞닥뜨렸고, 그래서 PML(N)이 이끄는 집권당 연합이 우위를 점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정부는 서둘러 군대를 전폭 지원했고, 군대에 가해진 모욕을 씻어낼 수 있는 자유로운 권리까지 부여했다. 셰바즈 샤리프 총리는 폭동에 연루된 혐의로 기소된 민간인 100여 명을 군사법원에 회부하는 것을 승인했다. 또한, 임기 막바지에는 정보기관의 권한을 강화하고, 군대의 기반시설과 이익 심지어 이미지에 해를 입히는 행위를 범죄로 규정하는 일련의 법안들을 채택했다. 2023년 7월 27일 상원에서 승인한 1952년 파키스탄 군법 개정안에 따르면, 파키스탄이나 파키스탄 군대의 이익에 해를 입히는 정보를 공개한 사람은 징역 5년 형에 처하는데, 부패 사건에 대한 공익 제보를 위축시키는 조치라고 할 수 있다. 군대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군대에 대한 증오심을 조장하는 사람에게도 최대 2년의 징역형이 선고된다.
최근 몇 년간 군대가 뒤에서 중재만 하던 ‘하이브리드 정권’은 이제 과거의 일이 되어버렸다. 아심 무니르 현 육군참모총장은 경제 분야는 물론 정치 분야에서도 유일한 지도자처럼 등장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통화 정책에 직접 개입하고 투기와 밀수, 전력 남용을 퇴치하기 위한 싸움을 시작했으며, 기업가들을 회유하고, 걸프만 국가들로부터 1,000억 달러의 투자를 유치하겠다는 약속도 했다.
국가의 경제 및 금융 정책도 이제 완전히 군부의 감독 아래에 들어갔다. 해당 분야의 모든 중요한 결정은, ‘특별 투자 촉진 위원회(Speical Investment Facilitation Countil)’라는 최고 기관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이 위원회는 군부가 관리한다. 이 위원회는 연방 부처들은 물론 지방 당국들의 역할까지 대체하는데, 2010년 이후 실시한 지방분권화 절차에도 문제를 제기했다. 이렇게 경제 정책 수립과정에서 군대의 역할을 제도화하면, 농경지와 도시의 토지 시장, 수자원과 광물 자원 분야, 심지어 에너지 부문과 인공 지능 부문까지 군부가 넘볼 수 있다.
군부, 무기판매와 IMF 대출로 지배력 유지
1980년대 이후 외교 및 전략 문제에 영향력을 집중했던 군대는 이제 경제 정책까지 지휘하며 자신들의 이익을 보호한다. 군대는 계속해서 커지고 있는 거대 금융 제국의 수장이다.(1) 공로가 있는 장교들을 포상한다는 미명 아래 농경지와 도시의 토지를 독차지하고, 이들 토지를 활용하거나 고급 부동산 사업을 관리하며 상당한 수입을 얻는다. 공식적으로는 퇴역 군인과 그 가족을 위한 복지 활동을 담당하는 재단들 특히, 육군이 운영하는 파우지 파운데이션(Fauji Foundation)과 아미 웰페어 트러스트(Army Welfare Trust)는 각각 수십억 달러 규모의 자산을 관리하며, 파키스탄 내 최대 산업 그룹의 형태를 갖추게 됐다.(2)
군부는 자신의 이익을 확보하는 것 외에도, 전략 산업 부문들(외화 수입의 60% 이상을 창출하는 섬유산업 포함(3))을 보호하고, 해외 자본 출자자에 대한 재정적 의존도를 관리하며,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이들의 요구를 이행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1950년대 말부터, 군인들은 국가의 취약한 조세 자원을 보완하기 위한 재정 의존도 협상에 능숙해졌다. 이런 외향적인 협상의 기술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며, 국내에서도 큰 영향을 미친다. 온라인 뉴스 사이트 <디인터셉트(The Intercept)>는 파키스탄과 미국 소식통을 통해, 최근 미국이 파키스탄이 우크라이나에 군사 장비를 판매하는 대가로, 국제통화기금(IMF)에서 추가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왔다고 밝혔다. 이러한 군사적 협력은 (1970년대 이후 아프가니스탄 분쟁 때와 마찬가지로) 외부 갈등을 이용해 내부 지배력을 확고히 하는 군부의 능력을 다시 한번 보여줌으로써 PTI를 억압하는 데에도 도움이 됐을 것이다.(4)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분쟁에서 공식적으로 중립을 유지하고 있는 파키스탄은 이 기사의 내용을 강력히 부인했기 때문에, 정확한 정보는 확인이 필요하다. 하지만 확실한 사실은, IMF의 지원금 30억 달러(약 4조 680억 원) 덕분에 군인들은 잠시나마 안도할 수 있었고, 이 기회를 이용해 다시금 난폭한 방식으로 국내 문제들을 통제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미국과 유럽 국가들은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래도 확산되는 사회적 갈등과 대규모 시민불복종
새로운 구제 금융 계획 덕분에 파키스탄의 국고는 다시 채워졌지만, 인플레이션(2023년 8월, 연간 인플레이션 비율이 30%에 가까워졌다)과 전반적인 경제성장 둔화로 큰 타격을 입은 이 나라에서 사회적 갈등이 촉발할 가능성은 매우 크다.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1년 만에 6.1%에서 0.3%로 떨어졌고, 루피화의 가치는 30% 하락했으며, 이로 인해 수입품 특히 석유 가격이 상승했다. 제조업은 물론이고 서비스 분야에서도 대규모 해고가 이뤄지고 있다. 이는 특히 섬유 분야에서 두드러지는 현상인데 2022년 이후 수백만 명의 노동자가 해고됐지만, 대부분은 그 어떤 금전적 보상도 받지 못했다.
이런 위험한 상황에 기름을 들이붓기라도 하듯 가스와 전기 요금까지 치솟아, 상인과 기업들은 물론 일반 사용자까지 분노하기 시작했다. 사실, 에너지 가격 재인상은 IMF에게 새로운 구제 금융을 받는 대가로 협상한 조건 중 하나였다. 이에 따라 셰바즈 샤리프 정부는 가스 요금을 50% 인상하겠다고 약속했고, 전기 요금은 이미 1년 만에 76%나 치솟았다. 하루 최대 16시간까지도 정전이 지속하는 상황에서, 일반 이용자들은 물론 보조 발전기를 써야 하는 기업가 입장에서도 에너지 비용 부담 증가는 받아들이기 힘들다.
대중의 분노가 공개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9월 초부터다. 파키스탄 북동부 아자드 카슈미르주에서 시작한 대규모 시민 불복종 운동은 주요 도심으로 확산하며, 시민들에게 더는 전기 요금을 내지 말 것을 독려하고 있다. 라호르, 라왈핀디, 카라치, 퀘타, 페샤와르에서는 상인, 기업가, 개인들이 모여서 청구서를 불태우고 도로를 봉쇄하는 등 항의 시위를 벌였는데, 시위는 때때로 폭동으로 번지기도 했다.
현재, 국가에 대한 신뢰를 상실한 수많은 파키스탄 국민은 ‘출국’을 택하고 있다. 기후 변화의 직격탄을 맞고 있는 나라에서 정치, 경제, 환경 위기가 누적되면 완전한 집단 탈출이 시작된다. 전 세계적으로 2023년 상반기에만 80만 명이 넘는 예비 망명 신청자들이 더 나은 삶에 대한 희망을 품고 자국을 떠났다. 하지만 많은 이들에게 그 희망은 비극적인 결말로 끝이 날 것이다. 2023년 6월, 이주민들을 태운 어선이 그리스 해안에서 침몰했다. 이 사고로 수백 명이 목숨을 잃었는데 희생자 중 약 300명이 파키스탄 국적자였다.
글 · 로랑 게이에 Laurent Gayer
파리정치대학 국제연구소(CERI) 연구책임자. 저서로 『Le Capitalisme à main armée. Caïds et patrons à Karachi 무기를 든 자본주의. 카라치의 두목들』(CNRS Éditions, Paris, 2023.)가 있다.
번역‧김자연
번역위원
(1) Ayesha Siddiqa, ‘Mainmise des militaires sur les richesses du Pakistan 부를 통제하려는 파키스탄 군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8년 1월호.
(2) Ayesha Siddiqa, 『Military Inc. – Inside Pakistan’s Military Economy』, London, Pluto Press, 2016 (2차 개정판).
(3) Laurent Gayer, Fawad Hasan, ‘Au Pakistan, un capitalisme à main armée 파키스탄, 무기를 든 자본주의의 폭력’,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22년 12월호, 한국어판 2023년 2월호.
(4) Ryan Grim, Murtaza Hussain, ‘US helped Pakistan get IMF bailout with secret arms deal for Ukraine, leaked documents reveal’, <The Intercept>, 2023.9.17. https://theintercep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