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놈펜, 뒤죽박죽된 도시 개발
훈 센의 영광을 위한 수도
훈 센 캄보디아 전 총리는 아들인 훈 마넷에게 권력을 넘기기 전, 신중히 선택한 민간 개발업자들과 함께 수도 재건설을 강행했다. 중산층은 새로운 상황에 최선을 다해 적응했지만, 빈곤층은 그럴 수 없었다.
옌 야트는 걱정을 한시름 덜었다. 도로를 양옆으로 10m씩 확장하는 공사에서 그녀의 200살 된 나무는 무사할 것이다. 공사장 인부들은 나무뿌리가 공사에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60대인 옌은 나무 그늘 밑 대나무 평상에 앉아 집 앞에서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을 지켜보고 있다.
이 집에는 네 가족이 마당 하나를 공유하며 산다. 수도 프놈펜의 변두리 지역인 이곳 스로크 체크에는 정원에 둘러싸인 집이 대부분이다. 옌 야트는 건너편 터에 세워진 ‘매매’ 표지판을 가리켰다. 1,328㎡의 땅을 60만 달러(약 8억 원)에 내놓았는데, 1㎡당 450달러(약 60만 원) 꼴이다. 1㎡당 5,000달러인 도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어떤 사람이 와서 우리 집을 100만 달러에 사겠다고 했다. 그런데 집을 팔면 나는 어디로 가겠는가?” 옌이 씁쓸하게 웃었다. 마을 근처에 있던 논들은 사라졌고, 우기가 되면 물을 머금는 거대 인공습지에는 물이 가득 고였다.
농사를 짓고 고기를 잡던 주민들은 이제 다른 일을 한다. 옌 야트의 가족도 음료와 음식을 파는 작은 가게를 운영한다.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인부들이 단골손님이다. 옌의 조카는 “도시가 조금씩 확장되더니 우리 동네까지 왔다”고 말했다. 실제로, 프놈펜의 규모가 바뀌었다. 2005년, 4개 도심 구역에 160만 명이 살던 이 도시는, 2019년 조사에 따르면 면적이 692㎢에 이르고, 16개 구역에 210만 명 이상이 거주한다.
사람들이 프놈펜으로 오는 이유는 학업과 직장 생활을 위해서다. 프놈펜 주민 1인당 소득은 90만 3,000리엘(약 28만 원)로 농촌 지역 주민 소득 45만 2,000리엘보다 두 배가량 많다.(1) 이 도시에는 메콩강 홍수와 그로 인한 침수에 대비하기 위해 20세기 초에 지은 제방 도로가 사방으로 다리를 뻗은 문어처럼 가득 들어차 있다.
톤레사프강 제방들 사이에 있는 중앙 우체국, 와트 프놈, 왕궁, 중앙 시장, 거의 훼손되지 않은 건축 문화유산을 제외하고 대부분 지역의 풍경은 변화했고, 건물의 층수는 점점 많아졌다. 2008년 건축된 32층짜리 캐나디아 은행 건물은 2014년까지 수도에서 가장 높은 곳이었다. 2년이 지나고, 프놈펜 시민들은 고층 건물의 수를 세는 것을 포기했다. 너무 많은 고층 빌딩이 들어섰기 때문이다. 보엥 켕 캉의 나무집과 정원들은 사라지고, 그 자리를 높은 호텔과 콘도, 세련된 건물의 카페와 상점들이 대체했다.
프놈펜의 현대 건축을 지휘하는 훈 센 전 총리
1953년 독립 이후 노로돔 시아누크 국왕(1922~2012)이 추진한 도시 개발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올림픽 경기장의 모습도 잘 보이지 않는다. 35층짜리 타워 2개 동으로 이뤄진 스카이 빌라 그리고 고급 사무 및 주거 단지인 올림피아 시티가 경기장 주변에 들어서 올림픽 경기장을 사람들의 시야에서 완전히 가로막았다. 올림픽 경기장은, 르 코르뷔지에의 제자이자 새로운 크메르 건축 양식을 고안한 건축가 반 몰리반의 작품으로, 독립을 기념하는 건축물이다. 영국 노팅엄 대학교의 스테파니 벵자켕코티에 부교수는 “경기장은 과거의 장소로 보존되고 있지만, 캄보디아의 내일을 상징하는 고급 고층 빌딩들에 비하면 보잘것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캄보디아의 수호신 같은 인물이자 독립의 아버지라 할 수 있는 시아누크 국왕을 조롱하는 듯한 변화다.
현대 건축을 지휘한 이가 다름 아닌 훈 센 전 총리였기 때문에 그렇다. 전 총리는 옛 국왕처럼 자신의 유산을 도시의 모습에 새겨 넣었다. 크메르 루주 부대의 부지휘관으로 일했던 그는 1977년 베트남으로 도피했다가, 크메르 루주 지도자인 폴 포트와 그 세력을 전복시킨 베트남군과 함께 돌아왔다. 1985년 34세의 나이로 총리에 임명된 훈 센은, 올해 7월까지 총리직을 오랫동안 지켰다.
정치분석가이자 캄보디아 싱크탱크 ‘미래 포럼(Future Forum)’의 대표인 우 비라크는 “그는 실용주의를 앞세워 모든 시대를 넘나들었다”라고 평가했다. 냉전 시대에는 친베트남 성향의 정부 수반이었고, 1990년대 초 유엔 개입하에 치러진 선거에서는 패배했던 훈 센 전 총리는 유혈 쿠데타로 권력을 독점하며 모든 정치적 숙적을 제거했다. 그는 이와 함께 2012년 세상을 떠난 시아누크 국왕의 후계자 노로돔 시하모니 국왕을 소외시켰다.(2)
2021년 빈곤국에서 벗어난 캄보디아
71세의 이 독재자는 프놈펜이 자신의 성공을 기억하고 보란 듯이 드러내고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자신이 크메르 루주 독재 정권을 물리치고, 캄보디아의 평화를 확립했으며 경제를 되살렸기 때문이다. 실제로, 2021년 캄보디아 1인당 연간 국민총소득이 1,612달러를 기록해 캄보디아는 세계은행이 분류한 빈곤국 목록에서 벗어나 중하위 소득 국가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2017년 완공된 폭 70m짜리 긴 대로도, 캄보디아 정부가 세계 최대 규모라 자랑하는 2025년 개항 예정인 프놈펜 신공항도 훈 센 전 총리의 이름을 갖는다. 도심의 관청 건물들도 특정 권력을 표현한다. 전 총리가 황금으로 장식된 왕좌에서 외국 대표단을 맞이했던 평화 궁전처럼 말이다. 노로돔 대로에는 새로운 내무부 청사 건축 공사가 진행 중이다.
건축가 케오 말리카에 따르면, “100년간 자리를 지킬 예정인” 해당 건물의 값은 6,000만 달러다. 캄보디아 인민당(CPP)의 웅장한 본부 역시 최근 보수작업에 3,000만 달러가 소요됐다. 과거의 공산당은 이제 세계 기독교 민주주의 정당 연합체인 국제 중도 기독교 민주주의 모임에 가입했고, 정치 이념보다는 금전적 이익을 더 많이 따른다. CPP는 국가 기관들과 동등하게 도시 풍경의 일부가 됨으로써 정치 무대에서 핵심이 되고자 하는 염원을 드러내고 있다.
2022년 1월 31일 연설에서, 훈 센 총리는 1,600채의 건물이 지어진 것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1979년 1월 7일에는 7층짜리 건물들뿐이었지만 오늘날에는 50층짜리 건물들도 존재한다.” 총리가 아무 날짜나 언급한 것이 아니다. 이날은 크메르 루주 정권이 붕괴한 날이다.
부패국가 순위 150위, 모든 행정기관에 부패의 고리
독재자의 야망은 2000년대 초, 외국 투자자들의 관심에 힘입어 더욱 커졌다. 높은 경제 성장률(2009~2019년 연평균 7%)과 저렴한 부동산 가격, 값싼 건축 비용 그리고 유연한 규제들은 이웃 아시아 국가 두 곳의 자본을 끌어들였다. 인도네시아 기업 치푸트라(Ciputra)는 프놈펜의 첫 ‘위성도시’ 그랜드 프놈펜 국제도시에 6억 달러를 투자했다. 이후, 캄보디아 정부는 한국 컨소시엄과 함께 부산 저축은행이 자금을 대는 캄코시티 사업도 추진했다. 119㏊ 면적에 15년간 총 20억 달러를 투입해 개발할 예정이었던 이 사업은 부산 저축은행의 파산으로 중단됐고, 한국인 예금자 3만 8,000명이 피해를 입는 결과를 낳았다.(3) 싱가포르, 일본 그리고 중국도 캄보디아에 투자한 바 있다.
대개 불법적인 목재 및 보석 판매, 토지 독점 등을 통해 부를 축적한 전 총리의 측근들과 CPP 임원들은 부동산 분야에 몰려들어 부를 재창조해냈다. 몬트리올 대학교의 가브리엘 포보에 따르면 “인맥 자본주의가 행해지고 있으며, 모든 행정기관에 부패의 고리가 자리 잡았다.” 국제투명성기구의 2022년 부패국가 순위에서 캄보디아는 전체 180개국 가운데 150위를 차지했다.
부동산 투기를 부추기는 또 다른 요인은 중산층이다. 부동산 투기로 노후준비나 의료 비용 대비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땅을 사고팔며 돈을 벌었다. 땅은 가치가 있지만, 건물은 그렇지 않다. 1990년대 파리 평화협정 체결 직후부터 프놈펜 외곽지역 주요 도로변에서는 울타리에 둘러싸인 공터를 쉽게 볼 수 있었던 이유도 그 때문이다. 땅값이 오르길 기다리며 땅을 비워둔 것이다. “어머니가 30년 전부터 부동산 투기를 한 것을 내가 비난하면, 어머니는 내가 해외에서 유학한 돈이 어디서 나왔겠냐고 반박하신다. 프놈펜에는 우리 어머니 같은 어머니들이 수천 명 존재한다.” 부동산 개발업자 소티의 이야기다. 포보는 “수도의 땅값 및 집값이 20년 동안 평균 세 배 올랐다. 반면, 도시 외곽지역 땅은 1990년대에 ㎡당 몇십 달러에서 현재 수백, 수천 달러에 이른다”고 덧붙였다.(4)
앙코르를 건국한 왕들의 방식대로
뒤죽박죽인 도시 개발은 현지 컨소시엄과 전 총리의 측근들에게 이득이다. 2010년대 초부터, 수도의 도심지구 12%에 해당하는 8,000㏊의 토지가 이들에게 양도됐다. 양도받은 토지의 정비도 이들 몫이다. 이러한 대규모 양도 덕분에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고 시청 담당자는 설명했다. 이는 훈 센 전 총리가 여전히 통치를 지속할 수 있는 방식이다. 캄보디아 민간인에게 부여되는 최고 작위 ‘옥냐(Oknha)’를 가진 이들에게 도시의 어느 부분을 할당할지 정하는 것도 전 총리다. 정권과 가까운 사업가들을 지정하는 것처럼 말이다.
도심 역사지구에서 북쪽으로 30km, 서쪽으로 톤레사프강, 동쪽으로는 메콩강을 끼고 있는 츠로이 창바르 반도의 땅 1,300㏊도 훈 센 전 총리의 자문관이자 수상한 분위기를 풍기는 사업가인 상원의원 리 용 파트에게 맡겨졌다.(5) 이곳에는 골프장, 동물원, 고급 호텔과 아파트, 쇼핑센터 등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대로를 사이에 둔 두 기념 건축물이 이 구역을 대표하는데, 하나는 2023년 5월 동남아시안 게임 개최를 위해 중국이 건축하고 기부한 새로운 경기장이다. 6만석 규모의 경기장은 ‘강자의 유산’이라는 뜻의 ‘모로도크 테크오’로 명명됐는데, 이는 훈 센 총리를 부를 때 반드시 사용해야 하는 존칭의 축약형이다. 그 앞에는 윈윈 메모리얼이 있다. 2018년 문을 연 이 현대 신전은 앙코르 시대의 건축 양식과 사회주의 시대의 브루탈리즘이 섞였는데, 평화를 이루기 위해 옛 크메르 루주들의 사회 복귀를 허락한 정권의 일명 ‘윈윈 전략’을 기념하는 건축물이다. 벽면에 저부조 기법으로 조각된 인물들 가운데 훈 센 전 총리의 모습이 가장 크게 두드러진다.
그는 앙코르 시대에 도시를 건설한 왕들처럼 스스로 자신의 전설을 쓰고 있다. 돌에 새긴 조각품들은 훈 센의 정치적 혜안과 성공을 찬양한다. 미술사학자이자 문화이론가인 벵자켕고티에는 이렇게 말했다. “노로돔 시아누크 국왕의 논리와 오늘날 작동하는 논리는 너무도 유사하다. 시아누크 국왕의 시대처럼, 새로운 국가 서사의 초석이라 할 수 있는 기념비와 경기장이 세워졌다. 이 두 기념물 주위에 있는 리 용 파트 상원의원의 ‘위성도시’는 중산층 중심의 캄보디아라는 새로운 비전을 만들려는 시도의 일환이다.”
중산층 성공의 징표, ‘보레이’ 주택단지
NGO에서 일하는 30대의 팔리는 가족과 함께 이곳에서 살기로 했다. 팔리의 빌라는 경기장에서 북쪽으로 몇 km 떨어진 곳에 지어지고 있다. “광고에 나온 홍보 문구이긴 하지만 우리는 약간의 행복을 샀다”고 그녀는 농담조로 말했다. 팔리는 집을 계약하고 1년이 지났을 때 이미 집값이 두 배로 뛰었다고 강조했다. 팔리가 느끼는 또 다른 장점은, 비슷한 사람들과 함께 살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노동자들이나 ‘툭툭’ 운전기사들 같은 이웃들과의 소란스러운 일상은 이제 끝이다. 최근 캄보디아 중산층은 도심 외곽에 위치한 ‘보레이’라는 단독주택 단지로 이주하는 경향이 두드러지는데, 그녀 역시 사회적 성공의 징표로 중산층에 합류했다.
‘윈윈’, ‘엘리트’처럼 거창한 이름을 가진 보레이 단지들은 담장으로 둘러싸이고, CCTV가 설치돼 있으며 경비원이 지킨다. 수도 남쪽의 펭 후오트 스타 플랜티늄은 보레이 중에서도 최고급으로 손꼽히는데, 유로 파크라는 단지 내 여가 시설도 뛰어나다. 그곳에는 런던 타워, 에펠탑,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베니스의 수로와 곤돌라가 미니어처로 만들어져 있다. 이곳 거주민들은 바깥에 나갈 일이 거의 없다. 학교, 상점, 체육관, 식당 등 모든 게 단지 안에 마련돼 있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단지 안에서 자신들만의 새로운 사교 네트워크를 만든다.
정권이 승인한 민간 컨소시엄이 도시개발 진행
익명을 원한 한 건축가는 “보레이들은 도시 네트워크에서 분리된 파생물이다”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만약 어떤 단지가 배수로를 침범하는 경우, 해당 지자체는 배수 흐름이 느려지는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하수관의 우회로를 마련해야 한다. “지자체의 기술부서에서 이런 문제를 관리해야 하는 이상한 상황에 놓이게 됐다. 공공부처는 민간 업체들과 협상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한 위치에 있지 않다. 대부분의 경우, 공권력은 민간사업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존재한다”고 포보가 덧붙였다.
2015년에 채택한 20개년 마스터플랜에도 불구하고, 도시 개발은 정권이 승인한 민간 컨소시엄이 원하는 속도로 진행된다. 포보는 이를 ‘그림자 도시계획’이라 표현했다. 익명을 원한 또 다른 서양 건축가는 “프놈펜의 지도를 최신 상태로 유지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시청 공무원의 업무 속도보다 건설은 더 빨리 진행되기 때문이다. 새로운 구역들은 레고 블록처럼, 민간 프로젝트에 따라 땅에서 갑자기 솟아오르고, 서로 동떨어진 곳에 들어서며 도시의 통일성을 해친다.
도심의 고층 아파트는 대부분 거주민 없이 비어 있다. 프놈펜에서 아파트 구매는 투자다. 부유한 캄보디아인들뿐만 아니라 신실크로드 정책에 따라 캄보디아에 온 중국 고객들을 위한 투자다. “코로나 이전에는 여행사에서 이 구매자들을 위한 단기 체류 상품들을 준비했었다”고 포보는 설명했다.
물론, 쿠옹 스렝 프놈펜 주지사가 2019년에 다음과 같은 글을 쓰기도 했다. “녹색 도시로서 매력을 보존하고, 동남아시아의 진주라는 위상을 유지하기 위해, 프놈펜은 지속 가능한 도시 개발을 보장하고, 자연재해를 예방 및 통제할 수 있는 전략적 계획과 도구를 갖춰야 한다.”(6) 그러나 면적이 3,000㎡를 넘어서는 투자 계획은 자체 예산이 없는 지자체가 관리할 수 없다. 모든 것은 도시개발부, 내각 아니면 총리실에서 결정한다.
높아가는 홍수 위험, 지지부진한 쓰레기 처리
‘그림자 도시계획’은 주민들에게 필요한 것이나 기후 위기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는다. 프놈펜 도시개발청은 홍수를 방지하고 ‘열 배터리’로 변한 도시에 어느 정도의 냉기를 줄 수 있도록 초웅 에크 호수를 최소 500㏊ 이상 남겨둘 것을 권고했다. 하지만 민간 개발업자는 호수 매립을 중단하지 않았다. 2020년 7월 여러 NGO에서 작성한 보고서에서도 결과에 대한 경고만 담겼다.(7) 결국, 150만 명 이상의 주민이 거주하는 여러 구역에 홍수 위험이 증가했다. 프놈펜은 메콩강과 톤레사프강 홍수위 아래에 위치한다. 그래서 장마 기간 배수는 배수로, 펌프, 밸브 네트워크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이 시설들은 꼼꼼한 유지관리가 필수다.
프놈펜 시민들은 매일 3,000t가량의 쓰레기를 배출하지만, 쓰레기 수거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이 때문에 하수와 우수가 섞이고, 쓰레기와 인접한 주민들에게는 위생 문제도 생긴다. 프놈펜시는 일본 국제협력기구(JICA)의 지원으로 집수 및 수처리 시설 건설에 착수했다. 하지만 시설 관리에는 여전히 문제가 남아있다. 마찬가지로, 외곽지역에서는 물 공급이 고르지 않다. 수도관망 용량이 도시 확장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전 역시 흔해서 더운 계절, 아파트 안에서는 숨이 막힌다.
멈춰 선 개발공사 현장
‘미래 포럼’의 부연구원 세스 아론사카다는 걱정스러운 마음을 털어놓았다. “부동산으로 수십억을 벌었지만, 그 이익은 누구에게로 갔나? 싱가포르는 호수들을 메웠다가 나중에 다시 인공 호수들을 만들었다. 하지만 우리에게 그럴 돈이 있는가? 어쩌면 우리가 이런 수고를 덜 수 있을지 모른다. 우리보다 발전한 이웃 국가가 한 실수들을 우리가 똑같이 되풀이하지 않도록 노력해보자.” 하지만 이미 너무 늦은 것은 아닐까?
캄보디아 최대 부동산 및 도시 개발 기업 OCIC의 티에리 테아 부사장은 10년간의 열광적인 도시계획 끝에 이제는 속도를 늦춰야 한다고 인정했다. “국가를 재건한 세대는 전쟁을 겪은 세대다. 빠르게 움직여야 했고, 이웃 나라들을 따라잡아야 했다. 이제 새로운 세대가 나라를 이끈다. 판도가 바뀔 것이다.”(박스 기사 참조)
그런데 새로운 지도자들은 수도에 대해 어떤 비전을 갖고 있을까? 세계적인 유행병, 우크라이나 전쟁, 그리고 금리 인상이 발전의 열의를 꺾었고, 중국 고객들은 사라졌다. 도심의 고급 콘도 건물들도 더는 구매자를 찾지 못했다. 공사 현장도 멈췄다. 정부는 지난 4월, 부동산과 건설 분야에 특별 지원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들 분야는 국가 경제 성장의 10%를 차지하고, 20만 명 이상이 고용돼 있다.
개발업자 소티는 과열된 엔진에 뿌려진 이 차가운 물 한 동이에 만족한다. “건설을 해야 한다.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들을 위해서 말이다.” 세스 아론사카다 역시 변화를 믿는다. “5년 전에는 토지의 면적과 가격에 대한 이야기밖에 하지 않았다. 하지만 요즘에는 중산층에서 삶의 질과 관련한 새로운 요구가 나오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는 더욱 인간적인 도시계획을 꿈꾸며 톤레사프강을 따라 이어진 강변을 보행자와 자전거용으로 확보하자는 등의 제안을 했다. 주민들은 하루가 끝날 무렵 톤레사프강 강가에 와서 반대편으로 건너가기 전, 도시가 변화하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본다. 하지만, 그들의 미래 거대도시는 언제까지 살기 좋은 곳으로 남을 수 있을까?
글·크리스틴 쇼모 Christine Chaumeau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특파원
번역‧김자연
번역위원
(1) ‘Final report of Cambodia socio economic survey 2021’, 캄보디아 통계청
(2) Christine Chaumeau, ‘Le rêve monarchique du premier ministre cambodgien 군주 정치 꿈꾸는 캄보디아 총리’,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8년 7월호, 한국어판 2018년 8월호.
(3) Yoon Young-sil, ‘S. Korea Seeking to Retrieve 650 Bil. Won Loans Locked in Camko City Project’, <Business Korea>, Seoul, 2019.9.27.
(4) Gabriel Fauveaud, ‘Géographies de la spéculation et urbanisation du capital dans le sud global : une perspective à partir de Phnom Penh au Cambodge 개발도상국 내 자본의 투기 및 도시화에 관한 지리적 연구: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바라본 관점’, Annales de Géographie, N°746, Paris, 2022.7-8
(5) Clothilde Le Coz, ‘The canes of wrath’, South East Asia Globe, Phnom Penh, 2013.5.10.
(6) 『Phnom Penh, extensions et mutations 프놈펜, 확장과 변화』, 프놈펜시, 파리시, 파리 도시공학 연구소(APUR) 공동 발행, 2019.5., www.apur.org
(7) ‘Smoke on the water : A social and human rights impact assessment of the destruction of the Tompoun/Cheung Ek wetlands’, Cambodian League for the promotion and defense of human rights, Phnom Penh, 2020.7, www.licadho-cambodia.org
왕조의 전환 1996년, 훈 센 캄보디아 총리는 자신의 장남 훈 마넷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물러나면 네가 내 뒤를 이을 것이다.”(1) 당시 19세의 청년이었던 훈 마넷은 미국 육군사관학교에 막 입학한 참이었다. 27년 후, 아버지는 약속을 지켰다. 지난 8월 22일, 훈 마넷은 아버지의 뒤를 이었다. 훈 마넷의 총리 취임은 정치 권력에 있어 캄보디아 인민당(CPP)의 확고한 기반과 정치 및 경제 기관들에 대한 이들 가문의 영향력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지난 7월 23일 선거에서 인민당은 전체 125석 가운데 120석을 차지했다. 2017년 이후, 정치적 반대파들을 제거하거나 추격해온 상황에서 이런 승리는 전혀 놀랍지 않다. 유일한 야당이었던 촛불당은 선거 참여가 허락되지 않았다. 인민당의 강력한 맞수였으나 2017년부터 활동이 금지된 캄보디아 구국당(PSNC)의 켐 소카 전 대표는 가택연금 27년형을 선고받았고, 공동 창립자인 현재의 부대표는 해외망명 중이다. 다른 당원 삼십여 명도 감옥에 갇힌 상태다. 유엔 특별 보고관은 지난 7월에 있었던 선거가 “매우 불공정했다”고 평가했지만, 선거에 정당한 야당 후보가 출마하지 않은 것은 캄보디아 내에서 별다른 반응을 일으키지 않았다. 정부가 표현의 수단들을 검열하고 언론의 입을 막기 때문이다. 지난 2월, 훈 센 총리는 캄보디아의 인권 침해를 조명한 최후의 공간이었던 독립언론사 ‘민주주의의 소리(VOD)’ 폐쇄 명령을 내렸다. 캄보디아 싱크탱크 ‘미래 포럼’의 정치분석가이자 대표인 우 비라크에 따르면 “캄보디아 국민들은 어느 정도 체념한 상태다. 다른 정치적 대안이 없기 때문에 현재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뿐이다. 국민들은 기존의 정치 체제 안에서 실현 가능한 것으로 만족한다. 정치적 안정을 깨뜨리는 행동은 절대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은 인민당에게는 매우 유리하다.”
군주제를 꿈꾸는 훈 센 전총리 스웨덴 룬드 대학교의 연구원 아스트리드 노렌닐손은, 캄보디아 인민당이 대중의 인기를 얻는데 성공했다고 평가했다. “코로나19와의 전쟁에서 거둔 승리는 젊은 자원봉사 의사협회장인 훈 마넷과 공중보건의인 그의 부인 피츠 찬모니에게 공이 돌아갔다. 2022년 동남아시아 국가연합 정상회의 개최도 성공적이었다. 덕분에 1년간 계속된 대규모 재판과 정치적 반대파들에 대한 유죄 판결에도 불구하고, 지도자들의 정치적 위상과 권위가 높아졌다.” 훈 마넷과 그의 남동생 훈 마니는 매우 중요한 유권자층인 청년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각각 청년 단체를 이끌고 있기도 하다. 캄보디아 국민 중 75%가 25세 이하다. 이렇듯 젊어진 이미지는 왕조의 전환에 도움이 된다. 캄보디아 인민당 주요 지도자들의 자녀 다수가 새 정부에 포함됐다. 정부 각료 28명 중 8명이 퇴임 장관과 친인척 관계에 있다.(2) 내무부 장관과 국방부 장관의 아들들은 부친의 직무를 물려받았고, 훈 마니는 건설부 장관에 임명됐다. 이들은 대부분 서구권 대학에서 공부를 마쳤다. 미국 선더버드 경영대학원의 이어 소펄 교수는 경고했다. “환상을 가지지 말자. 런던에서 안과 전문의 과정을 공부했던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을 기억하자. 새로운 총리는 그가 물려받은 정치 문화 안에서 움직일 것이다. 즉, 가문의 이익을 위해 일하게 될 것이다.” 이런 체제는 1990년대, 내전의 전투원들이 충성심과 정치적 지지, 금전을 대가로 호의를 베푸는 특권 계급을 형성하며 만들어냈다. 가문 구성원 간의 결혼은 체제에 대한 충성과 충실함을 보장한다. “그러나 새로이 조종대를 잡게 된 세대는 역사적으로 동지애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으므로 운영 방식을 달리해야 한다.” 이런 조건에서 새 정부에 국무장관과 국무차관 직위가 1,422개 신설되고, 이전 정부보다 전체 인원수도 121% 증가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3) “모두에게 파이를 보장해 주면 충성심을 얻기에 충분하다”고 익명을 요청한 한 정치 평론가가 말했다. 훈 센 전 총리라는 종석 없이 건물이 서 있을 수 있을까? 2024년 1월, 훈센 전 총리는 명예 상원 의장직을 맡기로 했다. 국왕이 부재중이거나 아플 때 임시 국가 원수직을 맡게 되는 것이다. 군주제 야망의 실현이 머지 않았다.
글·크리스틴 쇼모 Christine Chaumeau 번역‧김자연 (1) Ker Munthit, ‘Like father, like son : Hun Sen’s boy a budding politician’, <The Phnom Penh Post>, 1996.1.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