퀘벡 대학생들의 끈질긴 등록금 투쟁
지난 5월 22일은 캐나다 퀘벡주의 대학생들이 등록금 인상 반대 휴업을 한 지 100일째를 맞는 날이었다. 이날 수만 명의 학생들이 몬트리올 시내에서 거리행진을 벌였다. 학생들이 지식에 대한 접근권과 공적 자유 수호를 위해 싸우는 동안 장 샤레스 정부는 집회의 자유를 제한하는 법을 의회 표결에 부쳤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퀘벡 대학생의 40%는 여전히 휴업 중이다. 그중 몇몇은 지난 2월 13일부터 수업을 거부했다. 일부에서는 퀘벡해방전선(FLQ)이 피에르 라포르트 퀘벡주 노동부 장관을 납치·살해한 1970년 10월 위기 이후 최고의 정치적 위기에 직면했다는 말도 나온다. 대학생 휴업의 목적은 무엇일까? 학생들은 장 샤레스 자유당 정부의 대학 등록금 인상 결정에 반대하고 고등교육 접근권 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퀘벡의 대학들은 연간 등록금이 2168캐나다달러(약 250만 원) 정도로 캐나다 전체에서 가장 싼 편이다. 온타리오나 브리티시컬럼비아 같은 몇몇 영어권 주에선 학부 등록금이 6500달러(약 750만 원)를 상회하는 대학들도 있다. 이는 '조용한 혁명'(1)을 통해 도입된 정책들 덕분에 가능했다. 퀘벡주 정부는 프랑스어권 엘리트를 양성하고 고등교육을 대중화하기 위해 대학 등록금을 낮은 수준으로 동결하고, 고등학교 졸업반과 예비대학 과정을 합쳐놓은 CEGEP 과정을 신설하는 한편, 주 전체 차원의 고등교육 네트워크를 구축했다(퀘벡주립대학의 캠퍼스는 몬트리올에서 르무스키까지, 시쿠티미에서 아비티비테디스카밍까지 흩어져 있다). 이런 정책은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다. 1971년 15~24살 중 정규학교 재학생이 66%에 달했고, 오늘날에는 80%까지 증가했다. 더 중요한 변화가 있다. 이른바 '1세대 대학생', 즉 전혀 대학 교육을 받지 못한 부모를 둔 학생이 전체 45%에 달했다. 캐나다 전체에서 가장 높은 수치다. 2006년 기준으로, 연간 소득 5만 달러 미만 가구 출신이 전체 학생의 40%였고, 농촌 출신은 20%에 달했다. 그러나 샤레스 정부의 등록금 인상 결정으로 이런 성과들이 위협받고 있다. 교육에 대한 경제적 접근권 자문위원회(교육부 산하이면서 독립기관이다)의 조사에 따르면, 예정대로 등록금이 인상될 경우 학생 7천 명(전체 학생의 2.5%)이 대학을 그만둬야 한다.
강력한 대학생조직의 위력
퀘벡주의 고등교육 모델이 위기에 봉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89년 로베르 부라사 자유당 정권은 1968년부터 유지돼오던 등록금 동결을 풀었다. 그 뒤 4년간 퀘벡주의 대학 등록금은 504달러에서 1668달러로 대폭 인상됐다. 6년 뒤 퀘벡 분리주의자 자크 파리조 총리가 등록금 인상에 제동을 걸긴 했지만, 퀘벡주의 대학들은 1990년대 초부터 등록금 고지서에 '기타 비용'- 도서관 사용료, 학사 관리, 스포츠·문화 시설 이용료 등 행정 비용- 을 추가할 수 있게 되었다. 학교마다 다르지만, 대략 연간 650달러 수준이었다.
2007년 선거 유세가 시작되기 직전 샤레스 정부는 향후 5년간 등록금을 500달러 인상하겠다고 발표했고, 그 결과 현재의 등록금 수준이 되었다. 샤레스 총리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등록금 추가 인상을 결정했고, 2010년 12월 '교육 대표자 협의회'(2)에 그 방안을 논의에 부쳤다. 노조와 학생단체는 즉시 등록금 인상 계획을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로부터 석 달 뒤 2011년 3월 17일, 퀘벡 정부는 5년 내 등록금을 75% 인상하겠다고 전격 발표했다. '기타 비용' 인상분을 제하고 계산해도 5년 뒤 등록금은 연간 3793달러에 달할 것이다. 물가상승률을 감안해 1968년 때의 등록금 수준을 회복하겠다는 게 정부가 제시한 근거였다. 정부는 등록금 인상으로 얻게 된 추가 수입 중 일부를 대출과 장학금으로 지원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전체 대학생의 4분의 1은 대출이나 장학금을 받을 수 있지만 8분의 1은 추가로 빚을 지게 될 것이다. 나머지 약 60%는 알아서 인상된 등록금을 감당할 길을 찾아야 한다.
오는 9월을 기점으로 등록금을 인상하겠다는 결정이 발표되자 대규모 반대운동이 시작돼 전례 없는 규모로 확산됐다. 2011년 가을부터 이미 봄학기 휴업에 대한 소문이 떠돌았다. 휴업이 14주째에 접어든 지난 5월 15일, 참여 학생 수는 15만6천 명에 달했다. (전체 학생 수는 같은 제도로 운영되는 영어권 학교를 포함해 약 40만 명이다. 3월 22일에는 무려 22만5천 명이 휴업에 참여해 최고 기록을 세웠다.) 몬트리올 경찰에 따르면, 휴업 이래 170여 회의 집회가 열렸다.
이처럼 휴업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학생들의 조직력 덕분이다. 1980년대부터 학생들은 법에 의해 학생조직 결성의 권리를 보장받았다. 퀘벡주 학생조직들의 위상은 서구사회 내에서도 독특한 편에 속한다. 이 조직들은 노동자들의 공제비로 운영되는 노동조합과 비슷한 행태를 띤다. 즉, 자금력과 힘을 갖추었을 뿐 아니라 매우 조직적으로 운영된다. 모든 학생은 각 단위를 독점적으로 대표하는 학생조직에 속하게 된다. 예를 들어 몬트리올대학의 정치학과 학생은 정치학·국제학 학생회에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한다. 각 단위의 학생회들은 상위 연합조직에 속해 있다. 학생들은 총회에 참석해 다수결로 결정되는 사항에 대해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다.
학생회 연합조직들은 매우 분산적으로 기능한다. 같은 대학 내에서도 어떤 과는 휴업하고 어떤 과는 평소대로 수업을 계속할 수 있다. 2005년에는 (학자금대출과 장학금 관련 사안에서) 분열적인 모습을 보여준 이 조직들은 이번에는 매우 단결된 투쟁을 벌여나가고 있다. 학생들의 분노를 달래기는커녕 극단으로 치닫게 한 건 린 보샹 교육부 장관과 샤레스 총리 때문이다.
두 달간 학생 휴업이 계속되자 마침내 정부는 학생 대표들과의 만남을 수락했고, 대학 재정 방안을 토론에 부쳤다. 그러나 등록금 문제에 대해서는 협상 불가를 선언했다. 토론은 이틀도 안 돼 장벽에 부딪혔다. 학생들의 반대운동은 더욱 거세졌다. 4월 25일부터 매일 저녁 5천~1만 명의 학생들이 몬트리올에서 거리집회를 열었다. 4월 27일, 정부는 대출과 장학금 수혜 기회를 확대하고, 등록금은 향후 5년간 매년 325달러 인상하는 대신 7년간 매년 254달러 인상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럴 경우, 총인상액은 당초 계획인 1625달러보다 더 많은 1778달러가 되고 만다.
분노한 학생들은 정부가 '오만하고 고압적이며 냉소적'이라고 비난했다. 5월 4일에는 시위대와 경찰 사이에 큰 충돌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날 샤레스 총리는 노조 대표들과 각 대학 총장을 비롯한 책임자들을 모두 소집해 회의를 열었다. 장장 20시간의 협상 끝에 합의가 도출됐는데, (등록금이 아닌) 기타 비용 인하 가능성이 주요 내용이었다. 그다음 주에 학생조직들은 단체로 이 합의안에 대한 거부를 선언했다. 위기의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가을 개강 전에 보강이 가능할지 여부도 불투명해졌다. "휴업 중인 학생들은 이제 더 잃을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한 철학과 학생이 설명한다. "이 운동의 결과에 따라 학생들의 장래도 간접적으로 결정된다. 오만한 정부는 학생들에게 암울한 전망만 주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운동을 지속할 충분한 이유가 된다."
학문공동체의 권리를 위하여
현 정부의 태도를 설명하는 다양한 가정이 나오고 있다. 일부 사람들은 정부가 그토록 단호한 태도를 취하는 것은 젊은이들의 투표율이 낮고(30% 전후) 유권자로서도 우선 고려할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본다. 다른 이들은 위기 상황 속에서 선거가 시작되면 현 정부에 유리할 것이라고 분석한다. 또한 자유당 소속 장관들의 비리가 밝혀질지 모르는 건설업 관련 청문회 등 올가을 다른 문제들로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는 것을 막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더 비판적인 이들은 최근 몇 년간 정부의 분쟁 해결 능력이 부족했음을 지적한다. 환경문제가 대표적이다. 가령 정부는 국민의 강한 반대에 부딪혀 국립공원 민영화, 가스 화력발전소 건설 등의 계획을 포기했다. 정부는 아마 학생들의 조직력과 탄력성을 과소평가했던 게 아닐까?
학생들은 단지 등록금 인상 반대만 외치는 게 아니다. 퀘벡주는 2008년 금융위기가 발생했을 때 이웃나라 미국만큼 피해를 입지는 않았다. 그러나 퀘벡의 사회모델을 문제 삼는 움직임이 말과 현실 속에서 조금씩 확산되고 있다. 의료 분야를 비롯해 갈수록 많은 공공서비스들이 유료화되고 있다. 전기요금이 오르고, 공공기관 경영에 경쟁 논리가 도입됐다. 학생들의 운동에 다른 조직들이 지지를 보내는 이유다. 노조단체들뿐 아니라 이번에 새로 결성된 단체들도 지원에 나섰다. 그중 '등록금 인상에 반대하는 부모들', '등록금 인상에 반대하는 교수들'이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학생조직들 역시 몽루아얄 공원에 30만 명이 모인 4월 22일 '지구의 날' 행사, 5월 1일 노동절 집회 등 여러 번에 걸쳐 타 조직과 연대 활동을 펼쳤다.
그러나 퀘벡 학생들의 운동을 칠레나 스페인과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퀘벡 학생들의 상황은 스페인과 차이가 있다. 물론 이들의 실업률은 다른 연령대에 비해 높지만(15~24살 실업률 14%, 전국 평균 8%), 미래가 완전히 어둡기만 한 것은 아니다. 이들은 우선적으로 교육의 상업화 반대, 지식에 대한 집단적 접근권과 사회적 정의 수호 등 복잡한 주제가 뒤섞인, 일종의 정치적 이상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
2012년 봄, 학생 투쟁은 결론이 어떻게 나든 한 세대 전체를 정치화하고 퀘벡 사회에서 분열의 골을 더욱 깊게 만들 것이다. 학생들의 휴업이 시작된 이후, 여론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절반은 정부 계획에 찬성하고 절반은 반대한다고 응답했다. 야당인 퀘벡당(사민주의 및 분리주의를 지지한다)은 다음 선거에서 승리하면 등록금 인상안을 철회하겠다고 약속했다. 좌파인 퀘벡연대당(QS)의 경우 무상 교육을 주장하고 있다. 반면 새로 창당된 우파 정당 퀘벡미래연합(CAQ)은 현 정부의 결정을 지지했다.
학생들 내부에서도 의견이 갈린다. 휴업에 반대하고 등록금 인상에 찬성하는, '사회적으로 책임 있는 학생운동'이라는 이름의 그룹도 등장했다. 이 그룹 소속 학생들은 각 개인의 수업을 들을 권리, 대학과 CEGEP의 수업 의무 등을 보장하라며 법정 소송을 벌이고 있다. 일간지 <라 프레스>에 따르면, 4월 말까지 25건의 수업 재개 요구 소송이 접수됐고 그중에는 대학 캠퍼스 내 집회 금지 요구도 포함돼 있었다.(3) 그들은 경제문제(학기 연장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과 여름방학 때 취업 기회 상실)와 학사문제(가을학기 추가 강의 개설)를 근거로 제시했다. 그러나 법원의 명령은 제대로 준수되지 않았다. 긴장이 고조되고 학내에 경찰들이 진입하기도 했다. 이런 사태들은 퀘벡 사회 전체에 다음과 같은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한다. 시민 불복종과 엄격한 법 적용의 악순환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을까? 휴업을 통해 항의를 표출하는 집단적 권리와 '교육 소비자'의 개인적 권리 중 어느 쪽이 우선할까?
글•파스칼 뒤푸르 Pscale Dufour 캐나다 몬트리올대학 교수·정치학
번역•정기헌 guyheony@gmail.com 파리8대학 철학과 석사 수료.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주요 역서로 <프란츠의 레퀴엠> 등이 있다.
(1) Benoit Breville, '퀘벡 민족주의, 조용한 혁명은 오지 않았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0년 11월호 참조.
(2) 대학 당국, 재계, 노조, 학생 대표들(학생조합연대회의(ASSE)는 불참 선언), 옵서버들이 참석했다.
(3) '학생 휴업: 잇따르는 소송', <La Presse>, 몬트리올, 2012년 4월 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