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vs 9명의 대법관들
미국의 건강보험 개혁은 대법원 판결을 따르게 될 것인가? 2년 전, 9명의 대법관들은 선거자금의 공공재정에 관한 법을 폐기함으로써 보수주의적 면모를 보여준 바 있다. 하지만 대법원의 보수파 다수는 5 대 4로 아주 옹색하다. 오는 11월 대선에서 당선된 차기 미국 대통령은 대법원의 구성을 바꾸거나, 한 세대 동안 그대로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은 사법부의 쿠데타로 가고 있는가? 2010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끈질긴 협상을 통해 의회를 통과시킨 미국의 건강보험개혁법- 원래 법 명칭은 '환자보호 및 적정의료법'(Patient Protection and Affordable Care Act)- 은 의료비용을 낮추지 못했다. 점점 더 심각해지는 건강보험 체계의 위기도 해결하지 못했다. 건보 개혁안은 개혁의 본질적 내용이 빠졌음에도 보수파의 격렬한 분노 대상이 돼왔다. 보수적인 '티파티'(Tea Party)는 오바마 대통령이 노인환자들의 안락사 여부를 결정하는 '죽음의 위원회'(Death Panel)를 만들려 한다고까지 비난하기에 이르렀다.(1)
그러나 '오바마케어'(Obamacare) 반대 캠페인은 조만간 보수우파가 지배하는 대법원에서 최고조에 달할 것이다. 건보개혁법의 헌법 합치 여부를 판단하게 될 미국 최고사법기관의 결정은 6월 이전에는 내려지지 않을 것이다. 지난 3월 열린 대법원 심리에서 오간 공방만으로도 건보 개혁 지지자들에게 최악의 두려움을 안겨줬다. 2006년 9월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임명한 존 로버트 대법원장은 건보개혁법 가운데 가장 논란이 된 조처, 즉 개인건강보험에 추가 가입하지 않을 경우 실질적 벌금을 부과할 것을 규정한 '건보가입 강제조항'에 대해 적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대법원으로 넘겨진 미국 건보 개혁
건보개혁법은 단순한 보험체계 이상이다. 예외적으로 복잡한 가스공장과 닮았다고 할 수 있다. 2010년 3월 30일 공표된 이 법은 미국 내 50개 주에 각각 건강보험거래소(일종의 의료보험 상품의 쇼핑몰)를 설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거래소에서 민간보험회사들은 연방정부의 계약을 따내기 위해 자사의 보험상품을 홍보하고 경쟁한다. 여기서 승리한 행운의 보험사들은 3200만 명의 추가 보험가입자라는 보상을 받는다. 그러나 추가 보험가입자는 대부분 정부보조금을 받긴 하지만, 이런 절충식 사회보장 방식에 대가를 지급해야 한다. 4인 가족의 경우 연간 8400달러를 내거나, 추가 보험에 가입하지 않을 경우 최소 2천 달러 이상의 벌금을 내야 한다. 65살 이상 노인들을 위한 메디케어(Medicare)나 65살 이하 저소득층과 장애인을 위한 메디케이드(Medicaid) 같은 다른 사회보장 프로그램의 혜택을 보는 사람들만은 이 조항에서 면제가 인정된다.
오바마 대통령이 옹호하는 건보 개혁은 확실히 몇 가지 부족한 점이 있다. 주로 불법이민자들인 2300만 명을 무보험 상태에 방치하고 있다. 대부분 보수적인 공화당이 지배하는 주정부들이 법의 적용 범위를 제한해 법으로 정한 정부환급금을 40%까지 줄일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임신중절(낙태)을 원하는 환자들은 별도의 보험에 가입해야 한다. 약간의 제약이 있지만, 민간보험회사들은 건보 개혁으로 4470억 달러의 정부보조금이라는 이득을 얻게 된다. 그러면서도 보험회사들은 마음대로 보험료를 올릴 수 있다. 오바마케어에 반대하는 몇 안 되는 진보적인 단체 가운데 하나인 '전 국민 건강보험을 위한 의사모임'(PNHP)의 선임연구원 돈 매캔 박사는 "적정하지 않은 일부 보험(Under-insurance)에 불과하다"고 오바마케어를 한마디로 평가절하했다.(2)
이런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오바마케어는 이론의 여지가 없는 장점을 지녔다. 과거에는 정상 요율로 보험에 가입할 수 없기에 무보험자였던 3200만 명에게 건보 혜택을 제공할 수 있게 됐다. 게다가 건보개혁법은 '위험에 노출된' 가입자, 즉 비용이 많이 들거나 이익을 남길 수 없다고 판단되는 질병에 걸린 환자들에 대한 서비스 제공을 보험회사들이 거부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니 이 금지 조항은 보험회사들이 법망을 교묘히 피할 수 있는 허점이 없지 않다.
건보개혁법의 위헌 여부에 대한 대법원의 심리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이로 인해 의회의 민주당 의원들은 오랫동안 정치적 마비 상태에 빠질 위험이 있다. 어쨌든 이 때문에도 민주당 의원들은 반동적이고 호전적인 몇 안 되는 대법관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 것을 염려해 법안 발의를 자제하게 될 것이다. 노동조합 활동가였다가 변호사와 언론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네이선 뉴먼은 "대법원이 비난을 받지 않고 우리 사회입법의 주요 요소를 파괴할 수 있게 된다면, 좌파들은 한 세대 동안 궁지에 몰리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헌법과 사회적 진보 사이의 부조화는 오랫동안 미국 정치를 무겁게 짓누르게 될 것이다.
미국이 어떻게 해서 여기까지 오게 됐는지 이해하려면 미국 정치 시스템의 특수성을 살펴봐야 한다. 전쟁이나 혁명 덕분에 정부 기능을 근대화했던 서구의 다른 민주정치와는 달리, 미국 정치는 연방헌법이 제정된 1787년 이래 변함없는 일련의 규칙에 맞춰 유지돼왔다. 장수하는 헌법은 미국인들이 자랑하는 원천이지만, 실제 적용에선 재앙적인 결과를 낳고 있다. 하원은 민주적으로 기능한다고 하지만, 미국 상원은 아마 영국 상원을 빼고 지구상에서 가장 엉성한 입법부일 것이다. 오히려 오페라의 희가극에서 한 가지 역할만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주별로 동등한 대표성의 원칙에 따라, 와이오밍주에서도 인구가 80배 많은 캘리포니아주와 똑같은 의석수(2석)가 부여된다. 연방헌법은 법안 통과에 상원에서 60% 이상의 다수표 지지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 전체 인구의 8분의 1을 대표하는 상원의원 41명이 어떤 법안도 매장시킬 수 있다는 점을 상상해보라.
보수우파적인 판결들
유권자들이 불만을 표시할 때, 상하 양원의 의원들은 자신이 할 게 아무것도 없다고 응수한다. '동맥경화' 증상을 보이는 의회는 변호사, 상인, 노예제도 주창자로 구성된 소수 집단인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Founding Fathers)의 신성한 의지를 따르며 200년 동안 이를 지켜왔다고 한다. 존 보너 하원 공화당 원내대표는 지난해 11월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들어보세요. 건국의 아버지들이 우리에게 533명의 선출직으로 구성된 위원회를 유산으로 물려줬습니다. 솔직히 말해, 이건 기능할 수 없도록 고안된 것이었습니다. 어떻게든 기능하게 하는 것이 제가 맡은 일입니다. 그래서 기능하고 있습니다. 천천히 움직인다고요? 물론, 그건 확실히 그렇습니다. 실망스럽다고요? 예, 그것도 맞는 말입니다." 같은 달, 의회에 대한 지지율은 9%까지 하락했다. 민주당의 한 의원이 지적한 대로, 이 기록적인 지지율은 제트기를 타고 다니며 스캔들을 뿌려대는 연예인 패리스 힐턴의 지지율보다 6% 낮은 것이었다.(3)
건보 개혁이 대법원의 심판대에 세워진 것은 이런 시스템의 기능 장애가 반영된 것이다. 법조문은 백악관이 입안한 것이 아니라, 민주당과 공화당에서 각각 3명의 상원의원으로 구성돼 이른바 '6명의 갱'으로 불리는 상원 내 건보 개혁 협상실무팀이 입안한 것이다. 이들은 몬태나·노스다코타·와이오밍주 같은 주민이 거의 살지 않는 농촌 주 출신이다. 대법원에서 공화당 대법관 5명이 민주당 대법관 4명에 맞서 개혁법의 무효화를 결정하게 된다면, 의회에 '대외 통상과 주 사이의 통상을 규제하는' 권한을 부여한 미국 연방헌법 1조 8절의 규정을 넘어서서 대법원이 월권행위를 했다는 근거가 될 것이 확실하다.
1787년 연방헌법이 제정될 때, 이 조항의 목적은 명확했다. 막 편입된 북부 연방주들을 단합시키기 위해, 13개 주가 서로 반대되는 통상 블록을 결성하지 못하게 연방의회가 충분한 권한을 보유해야 했다. 1930년대 뉴딜정책 이래로, 이 조항은 미국 경제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미치는 활동에 대해 연방 차원에서 규제하는 근거가 됐다. 1942년 대법원이 어떤 주의 우유 판매가 주변 주의 우유 판매에 영향을 미친다는 이유에서 워싱턴의 연방정부에 백지 위임장을 줬던 것은 그 때문이다. 대법원은 오하이오주의 농부가 자신의 소비를 위해 경작할 수 있는 밀의 양을 정해주는 권한을 연방정부에 부여하기도 했다. 이는 전체 곡물시장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가정한 것이다. 1964년, 대법원은 조지아주 애틀랜타의 한 모텔에서 인종차별을 금지할 수 있는 권한을 연방정부에 부여했다. 이는 다른 주에서 온 여행자들이 이 모텔에 숙박할 수도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건보 개혁의 경우, 의료산업계가 움직이게 되는 2조 5천억 달러가 주들 간 통상 거래의 일부가 된다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대법원에 회부된 사안은 연방정부가 개개인의 보험 구입을 강제할 권한이 있는지에 대한 것이다. 대법원 심리에서 궤변이 쏟아지고 있다. 정부가 경제활동을 마음대로 규제할 수 있다고 한다면, 보험 구입을 하지 않겠다는 개개인의 '비활동' 결정도 규제할 권한이 있는가? 건국의 아버지들은 이 문제에 대해 뭐라고 했을까? 대법관들이 이런 문제를 풀기 위해 골머리를 싸매는 동안에, 21세기에 채택된 법률이 1787년에 세운 원칙에 일치하는지 시시콜콜 따지는 데 매진하는 정치는 점점 더 줄타기 곡예가 되고 있다. 이는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이 이끄는 프랑스 정부의 정책에 대해 루이 16세가 동의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는 얘기와 같다. 미국은 민주주의라기보다는 '죽은 자들의 정치'(Mortocracy)에 살고 있다. 즉 미국의 정치는 죽은 자들에 의한, 죽은 자들을 위한 정치다.
오바마 대통령은 대법원을 더 진보적으로 바꾸기 위해 노력해왔다. 2009년 소니아 소토마요르, 2010년 엘리나 케이건 등 두 명의 진보적인 대법관을 임명했다. 그러나 이들은 퇴임한 진보적인 다른 두 대법관을 단지 대신한 것이기 때문에 정치적 효과는 전무하다. 오바마 대통령은 대법원이 하나둘 넘겨준 보수우파적 결정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2009년 6월, 대법원은 유죄가 확정된 재소자들이 자신의 결백을 입증하기 위해 DNA 검사를 요청하는 것을 금지하는 결정을 내렸다. 2010년 1월, 대법원은 기업의 선거자금 기부 제한을 없애 선거자금 모금에 대한 모든 제한을 철폐하는 판결을 내렸다.(4) 최근에는 끈에 묶지 않고 개를 산책시키거나, 소리 나는 벨을 달지 않은 자전거를 탔다는 하찮은 이유로도 사람들을 체포해 검문·검색할 수 있는 권한을 경찰에게 부여하는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에 대한 도전을 시도한 마지막 진보적인 대통령은 프랭클린 델러노 루스벨트였다. 1937년 1월, 루스벨트 대통령이 일련의 뉴딜정책 조처들을 무효화했던 대법관들에게 분통을 터뜨리면서 "문제는 헌법이 아니라 대법관들의 반동적인 해석"이라고 선언했을 때 의회의 민주당 의원들은 큰 박수를 보냈다. 그는 "모든 것을 잘 고려해보면, (헌법은) 어떤 행동에 걸림돌을 만드는 수단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진보의 도구로 활용할 수 있다"고 했다.(5) 루스벨트 대통령은 최상의 전술가였다. 그는 실제로 헌법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대법원의 판결을 뒤엎을 수 있는 권한을 의회에 부여하기 위한 헌법 수정 방안을 보좌진들과 논의한 적도 있다. 그러나 헌법 수정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루스벨트 대통령은 대법관의 권한을 타깃으로 삼았다. 진보 진영 판사들로 대법원의 구성을 바꾸는 쪽을 선택했던 것이다.
손댈 수 없는 '제도'인가
루스벨트 대통령은 대법원 구성을 바꾸는 싸움에서 이기지 못했다. 그러나 몇 달 뒤, 대법관들이 과거 거부했던 조처들과 거의 차이가 없는 뉴딜정책의 조처들을 승인하면서 그는 이 싸움에서 승리를 거뒀다. 민주당 의원들은 불만을 속으로 삼키면서 갑자기 진보의 수호자로 변신한 대법원에 대한 충성을 다짐했다. 1950년대 초부터 대법원은 흑백분리 교육 폐지, 공립학교에서 기도 시간 금지, 출산 통제와 낙태의 합법화에 대한 판결을 내렸고, 포르노와 동성 간 섹스 금지와 같은 일련의 낡은 법률을 정비했다.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사법주권의 심장부에 보수우파가 다시 자리를 잡았다. 대법원이 오바마케어를 무효화한다면, 진보 진영은 1936~37년 루스벨트 대통령과 똑같은 입장에 처하게 될 것이다. 헌법학 교수였던 오바마 대통령은 워싱턴의 어떤 제도에 대해서도 불경한 발언을 내뱉은 적이 없다. 만약 오바마 대통령이 대법원이 내린 이런저런 해석에 유감을 표시하더라도, 대법원이 미국의 정치 시스템에서 차지하는 엄청난 위상에는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것이다. 이 단계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대법원이 제발 자신의 건보 개혁의 일부분만이라도 남겨주기를 기도하는 것이다.
글•대니얼 라자레 Daniel Lazare 저서로 <벨벳 쿠데타: 헌법과 대법원, 그리고 미국 민주주의의 쇠퇴>(베르소 출판사·런던·2001)가 있다.
번역•류재훈 <한겨레> 온라인 국제판 에디터.
(1) Olivier Appaix, '보험 약관만 고친 오바마 의료 개혁',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0년 5월호.
(2) '건보 개혁은 적정하지 않은 일부 보험으로 전화될 것이다', www.healthcare-now.org, 2011년 12월 9일.
(3) Chris Cillizza, '하나의 도표로 살펴본 의회에 대한 지지도 흐름', www.washingtonpost.com, 2011년 11월 15일.
(4) Robert W McChesney, John Nichols, '미국 권력의 막후, 금·언 복합체 시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1년 8월호.
(5) Jeff Shesol, <최고권력: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 대법원>, 노턴출판사, 뉴욕,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