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무슨 빚이냐?

2012-06-12     장 가드레

6월 17일 그리스 2차 총선은 그리스의 채무 재협상 문제에 대한 심판의 날이 될 것이다. 실제로, 그리스의 급진좌파동맹(Syriza)의 당수 알렉시스 치프라스는 "납세자들이 더 이상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를 거부한다"고 주장했다. 프랑스에서도 마찬가지로 국민들이 공공부채에대한 회계감사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2005년 봄의 분위기는? 당시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은 '유럽헌법 조약'(TCE) 비준을 위한 국민투표를 했다. 언론들은 한목소리로 TCE 비준 찬성을 지지했다. 그것도 모자라, 전대미문의 찬성 캠페인까지 동원됐다. 정치 및 노동조합 단체들은 하찮은 문건을 놓고 분석하고 설명하며 열띤 토론을 펼쳤다. 그러나 55%의 프랑스인들은 '전문가'들의 의견에 반대해 TCE 비준을 부결했다.

그로부터 7년 뒤, 언론들이 재차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번엔 TCE 비준이 아니라, 부채 부담 문제를 들먹이며 국민에게 허리띠를 졸라매라고 종용하고 있다. 국가 채무 문제에 대해 국민의 의견을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할 계획도 없고, 언론들은 이에 대해 침묵하고 있지만, '프랑스의 채무를 반드시 다 갚아야 할까?'란 주제로 공청회를 열자는 현장 캠페인이 진행되고 있다.

2011년 여름 이후, 각종 정당(1)의 지원을 받고 있는 29개 단체와 비정부기구(NGO), 노조들이 출범시킨 시민감사위원회(CAC)가 '공공부채에 대한 시민감사제' 실시를 국민에게 강력히 호소하고 있다. 6만여 명의 사람들이 이들의 호소에 동참했다.(2)

120개가 넘는 CAC는 2011년 가을에 출범한 '(공공부채)평가기관'을 자신들이 대신하겠다고 선언했다. 이같은 열정을 어떻게 봐야 할까?

이 캠페인을 주도하는 사람 중 철학자 파트리크 비브레는 사람들이 캠페인에 동참하는 것은 쇼크에서 벗어나기 위한 '욕망' 때문이라 했다. "쇼크는 피해자들에게조차 '달리 어쩔 수 없지'란 생각을 하게 만드는 특징이 있다. 경제적 측면에서 볼 때, 쇼크는 마거릿 대처의 티나(TINA·There Is No Alternative, 영국의 방만한 경제정책을 치유하기 위해 대대적 개혁 외엔 '다른 대안이 없다'는 말을 연일 외침) 사상이라 할 수 있다. 이를테면 '재앙은 맞는데, 달리 어쩔 수 없어'란 말만 하는 국가가 유발하는 쇼크."(3) 예컨대 이같은 쇼크는 (사람들의) 상상과 분노, 그리고 비판을 '차단'한다.

프랑스 부채에 대한 회계 감사

그러던 차에, 공청회 참가자들이 석연치 않은 쇼크의 특정 음모를 들춰내자, CAC 내에서 그간 차단한 질문이 봇물처럼 쏟아졌다.

뭐라고요? 지난 20년간 국내총생산(GDP) 대비 프랑스 정부의 지출이 증가하지 않았다고요? 1980년대 중반 24%였던 GDP가 2000년대 중반 22%로 하락하고, 심지어 정부 지출이 감소했다고요? 그게 확실합니까? 당신들(공청회 참가자들)은 국가 수익이 감소한 것이 지난 20년간 GDP가 22%에서 18%로 4%포인트 하락한 탓이란 것입니까? 그러니까 GDP 성장률 4%포인트 감소로 인해 국가 수익이 줄었다는 뜻입니까? 2000년대에 펼친 감세정책으로 확보하지 못한 연간 세수가 1천억 유로에 달한다는데, 그게 사실입니까? 미국과 영국 등 많은 세계 강국들은 중앙은행이 직접 거의 무이자로 국가에 대출해준다는데, 우리는 안 그러고 있습니까?

만약 유럽중앙은행(ECB)이 1%대 이자로 은행들에 대출해주듯 유로존 국가에 대출해줬다면, 그 어떤 국가도 지금 '채무 상환 불능' 상태에 직면하지 않았을 텐데, 안 그런가요? 갚기로 약속한 공공채무 상환을 거절할 수 있을까요? 혹, 그런 사례가 있나요?

인터넷 공청회 때 쏟아진 이 질문들에 대해 답변한 글들이 떠돌았다. 하나같이 긍정적 답변들뿐이었다.(4) 쇼크나 터부시되던 주제인 공공부채 문제를 좌지우지한 사람들이 주도한 답변들이었다. 2010년 연금 개혁 때, 그리고 2005년 TCE 프로젝트 때 그랬던 것처럼, 이들에게는 (CAC 공청회 때 쏟아진 질문들이) '호재'였다. 따라서 한편에서는 이와 관련된 책, 논문, 슬라이드 영상이 봇물을 이루고, 다른 한편에서는 단체들이 카툰을 통해 이런 문제들을 점유하려는 수많은 징후가 나타났다. 엄마인 유럽중앙은행(ECB)이 비만 아기에게 '은행'이란 로고가 새겨진 턱받이를 받친 채 젖을 먹이는 카툰을 비롯해, 퀴즈(채무자 찾기 ①은행 ②보험회사 ③석유 왕국들 ④모른다),(5) 영화 포스터나 연극 장면을 왜곡한 동영상들이 인터넷(웹사이트 '빚은 멋진 것이다')상에(6) 유포됐다.

네트워크상에 공공채무 문제를 다루는 본부(웹사이트)가 생긴 셈이다. 이 본부는 국내 집회와 국제 연락망을 구축해, 현재 '부채비율이 높은 부자 국가들'이 1990년대 '부채비율이 높던 가난한 국가들'이 겪은 것과 동일한 유형의 정치·금융 독재를 겪고 있다고 분석했다. 제3세계 부채탕감위원회(CADTM)를 비롯한 일각에서는 1979년부터 미국의 일방적인 결정으로 인해 개발도상국들이 떠안은 부채가 어떻게 자국을 신식민지화하는 주된 수단이 되는지 규명했다. 또한 이들은 이같은 역동성(신식민지화)이 남유럽에서 작동해, 이 전염병이 약화된 유럽 은행들을 통해 독일과 전 유럽으로 확산될 수 있음도 어렵지 않게 납득시켰다.

다양한 성향을 지닌 이 단체들의 민주주의 요구가 모든 것을 도마 위에 올려놨다. 웹사이트 '빚은 멋진 것이다'에서 국내 전문가들- 충격에 휩싸인 경제학자, 국제금융관세연대(ATTAC), 코페르니쿠스 재단, CADTM, 탈세계화 지지자들- 혹은 지역 전문가들 사이에 논쟁이 불붙었다. 2012년 1분기의 주된 논란은 불어난 공공부채의 누적이자 상환에 관한 것이었다. 한편에서는 프랑스 정부가 1980~2009년에 지급한 누적이자 규모가 1조3400억 유로로, 2009년에 진 채무(1조5천억 유로)의 90%에 달한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부각시켰다. 다른 한편에서는, 프랑스의 부채가 부차적 문제일 수 있다고 했다. 이들은 장기간 누적된 이자는 의미가 없다고 했다. 왜냐하면 인플레이션과 성장을 감안하면, 무이자 대출이 정당하다고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들은 과도한 (공공)부채의 1차적 책임을 불평등을 키운 부자 감세 정책과 은행들에 대한 구제금융 탓으로 돌렸다.

국내 전문가들은 또 다른 토론, 특히 '한 국가는 지속적으로 부채를 져야 하는 것일까?' 혹은 '국가 또는 지역 간(7) 파괴적인 경쟁과 사업 로비(사업 인허가 유지에 필요한 로비자금)로 인해 사회적·생태학적으로 볼 때 백해무익하고 유해하다고 판단되는 공공지출은 존재하는 것일까?'란 주제로 공공부채에 관한 토론을 전개했다.

민중의 등을 엎고, 엎치고

지역 전문가들은 불거진 논란들이 상반된 것이 아니라 상호보완적이라 간주한다. (집단들마다) 분석은 제각각이었지만, 모두 한목소리로 금융시장에서 국가의 독점자본을 추출하고 초저금리 대출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 모두는 불평등 해소와 근본적 세법 개혁인 '루스벨트식'(정부가 시장경제에 적극 개입한 뉴딜정책) 개혁을 강력히 주장한다.

이론보다는 실용성을 중시하는 지역 전문가들은 공청회 때 케인스의 '절대소득 가설'(소비의 크기는 주로 소득의 절대적 크기에 의존한다는 가설)을 주로 부각시켰다. 이 가설에 따르면, 채무관계를 잘 따져봐야겠지만, 프랑스의 일부 공공부채는 국가 수익이 크지 않아서 생긴 것이기 때문에 정당성을 확보하게 된다. 그러나 지역 전문가들은 그런 빚은 일부에 지나지 않고, 프랑스도 다른 국가들(벨기에, 독일, 여러 남유럽 국가 등)처럼 세 가지 근거(도덕적·지적·물질적 측면에서 볼 때 법과 공정성에 부합하지 않는)를 토대로 점검해보면 각 부문에서 공공부채의 부당성이 여실히 드러난다고 주장했다.

첫 번째 근거인 도덕적 측면에서 보면, 부자 감세 같은 계층 간 조세 형평성이 불평등을 키움으로써 (중략) 부채 규모가 늘어났다. 두 번째 근거인 지적 측면에서 보면, 공공부채를 시장 즉 투기꾼에게 맡긴 것은 보편적 이익에 부합되지 않는 선택이었다. 세 번째 근거인 물질적 측면에서 보면, '국민들 몰래, 국민에게 책임을 전가'한 결정이 잘못됐다. 민주주의 부재와 신자유주의 과두정치가 정보를 독점한 탓에 국민은 경제위기 발발과 무관하지만 정부가 자신에게 책임을 전가해도 이를 알지 못했다.

지역 전문가 위원회는 불법 채무 규모를 수치로 나타내기 원치 않는다. 정책 결정을 위법으로 규정하는 것은 부채의 일부가 '정치계'에서 비롯됐다는 추론을 도출하는 것이고, 국민이 부채를 상환할 필요가 없다고 규정하는 것 또한 시기상조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힘의 균형에 따라 휘둘리기 십상인 이런 특징들을 꼬집기 전에 위법의 개념을 확장시킬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지역 전문가들은 정치적 혹은 기술적 불확실성 때문에 생긴 '지급이행 불능' 문제를 거론했다. 역사적인 사례, 2000년대 초반에 터진 아르헨티나의 경제위기,(8) 1998년 러시아의 경제위기, 2007~2008년 터진 에콰도르의 경제위기, 2008년 은행이 도산하며 터진 아이슬란드의 경제위기 등은 이 전문가들에겐 많은 성찰의 계기가 됐다. 하지만 프랑스는 아직 이 국가들은 물론이고 그리스와 아일랜드와도 상황이 다르기에, 채무의 일부를 탕감받기 위해서라도 채권자들에게 채무 상환 거부 정책, 즉 연체이자는 내지 않은 채 일부 부채에 대한 수년간의 지급유예 정책을 펼칠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 나머지는 부채를 야기하고 종종 부채로 빚잔치를 벌인 사회계층과 금융기관들에 세금으로 환수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이런 복합적인 결정들은 경제위기 책임을 국민에게 전가하는 것을 막아준다는 공통점이 있다.

글•장 가드레 Jean Gadrey 경제학자

번역•조은섭 chosub@ilemonde.com 파리7대학 불문학 박사로 알리앙스 프랑세즈에서 강의 중. 주요 역서로 <착각>(2004) 등이 있다.


(1) 유럽생태녹색당(EE-LV)을 비롯한 반자본주의 신당(NPA)과 사회당(PC) 등.

(2) www.audit-citoyen.org 참조.

(3) <회복력을 키워, 쇼크에서 욕망으로>, 부다페스트 클럽의 제13회 대학총회, 2011년 9월 19일.

(4) 2011년 봄부터 출간되고 있는 ATTAC의 도서 <공공부채의 덫>은 공공부채에 대한 많은 면을 다루고 있다.

(5) 3번을 뺀 모든 답변이 정답 처리됐다.

(6) http://vimeo.com/33392696 참조.

(7) '국가들은 빚을 져야 하는 것일까?', 2011년 9월 26일, http://alternatives-economiques.fr/blogs/gadrey 참조.

(8) 모리스 르무안, '채권자들 앞에서 뻔뻔한 아르헨티나와 소심한 그리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2년 4월호 참조.


빚의 악순환

유럽중앙은행(ECB)이 유럽 채무국에 직접 대출해준다고 문제가 해결될까? 일각에서는 ECB가 부채에 시달리는 국가에 초저금리로 대출해주면, 유럽의 부채위기가 종식될 거라 주장한다. 물론 이런 조처가 당장은 효과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시장의 자금줄을 막고, 공공기관을 상대로 한 투기를 종식시킬 테니까.

하지만 불평등(조세혁명과 부가가치세법으로 인한 불평등)을 줄이지 못하거나 금융을 통제하지 못한다면 시장은 부동산, 원료, 농산품, 외화, 신기술 등 다른 곳에 투기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또 다른 서브프라임 위기와 금융권 위기를 맞게 될 것이다. 금융기관에 또 다른 구제금융이 단행되고, 또 다른 유형의 불법 부채가 생기고, 또 다른 긴축정책이 실시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ECB가 채무국들에 직접 대출해줘야 한다고 설파하는 것은 권력층이 금융권의 기본 시스템과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꼼수에 불과하다. 미국 모델이 설파하는 것이 그런 것 아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