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데타' 위한 두 가지 협약

2012-06-12     라울 마르크 제나르

피에르 모스코비치 프랑스 재무부 장관은 "유럽 신재정협약이 그대로 비준되지 않을 것이고, 성장 정책을 추가해야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재협상이 이뤄지더라도 유럽 민주주의 메커니즘과 사회주의 체제 붕괴를 예고하는 협약의 본질이 수정될 수 있을까.

베르나데트 세골 유럽노동조합연맹(ETUC) 사무국장은 "'유로존 안정, 협력 및 거버넌스 관련 협약'(TSCG·신재정협약)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정치적 우방국들은 안심시켜주겠지만 결코 유럽 내 수백만 명의 실업자와 빈곤노동자, 계약직 노동자를 달래줄 수는 없다. 유럽연합(EU) 차원의 실질적인 지원을 기다려온 이들에게 돌아온 것은 실망감뿐이다. 따라서 우리는 협약에 반대한다"(1)고 말했다. 지금까지 한 번도 유럽 협약에 반대 의사를 표명한 적 없는 연맹으로서 사무국장의 이번 발언은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연맹이 EU에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에 대해 ETUC 창단 멤버 조르주 드뷘 벨기에 조합운동가는 "ETUC가 유럽 기업의 중개자로 전락했다"(2)고 개탄했다.

지난 3월 1일 25개 EU 회원국이 서명한 TSCG(국가 재정에 대한 '황금률' 의무화, 상자 기사 참조)는 앞으로 몇 달 안에 비준돼야 한다. 국가의 자산을 가둬놓는 자물쇠나 다름없는 TSCG의 합의와 함께 유럽재정안정메커니즘(ESM) 출범에 대한 협약도 체결됐다. 사회당과 녹색당 의원 대다수가 기권해준 덕분에 ESM은 지난 2월 21일 프랑스 국회에서 비준됐다. 일종의 국제통화기금(IMF) 같은 ESM은 2010년 재정위기에 처한 유럽 국가들을 지원하기 위해 임시 설립된 안정기금의 뒤를 이어 2013년부터 가동될 예정이다.(3)

두 협약은 민주주의 체제를 붕괴하고 유럽식 사회주의를 퇴보시키는 데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지금까지 유럽은 나름 조심스럽게 변화해왔다. 유럽사법재판소(ECJ)와 판례의 영향력이 증가하고 전 EU 집행위원장인 자크 들로르가 재임 기간에 제안한 협약들(1986년 유럽통합법, 1992년 마스트리흐트 조약)로 인해 등장한 강력한 기술관료제는 시민과의 소통을 무시하고 일부 노조를 무력화했다. 2000년 바르셀로나와 2002년 리스본 정상회담에서 도출된 합의는 이런 변화를 더욱 공고히 했지만, 그 와중에도 당시 EU 15개 회원국 중 13개국에서는 사회민주주의 정권이 집권했다. 2005년에는 프랑스와 네덜란드가 국민투표로 유럽헌법을 부결했지만, 2008년 이를 대체한 리스본 조약이 결국 채택됐다.

지금까지의 대변혁에 이어 나타난 또 다른 변화는 유로존 국가들의 이른바 '단순화된' 절차를 통한 ESM 창설이다. 이론적으로는 'EU 권한 강화를 위해'(4) 절차를 단순화할 수 없지만 ESM은 '사령관'이라 불리는 재무장관 회의에서 합의를 통해 그렇게 등장했다. 국가 속의 국가나 다름없는 ESM은 유럽 의회와 국회로부터 독립되고, 그 역할과 문서는 침범될 수 없으며, 제소 대상에서 제외된다.

반면 '사령관'들은 협약 미준수 국가를 유일하게 권한을 가진 유럽사법재판소에 제소할 수 있다. ESM의 목적은 '재원을 총동원해 엄격한 조건(5)하에' 유로존의 재정 안정을 위협할 만큼 심각한 재정난을 겪고 있는 회원국에 자금을 지원해주는 것이다. ESM은 국가와 시장에서 재원을 확충할 수 있다. 7천억 유로로 결정된 가용 규모를 확충하기 위해 '납입 요청을 받은 회원국은 7일 안'에 '확정적이고 무조건적으로' ESM에 분담금을 납입해야 한다. 프랑스에 할당된 납입금은 1427억 유로다. 또한 ESM은 해당국과 협의 없이 각국의 분담금 상향 조정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경쟁력의 명의변경

한 국가가 ESM에 지원을 요청할 경우 EU 집행위원회는 민주적·정치적으로 독립된 유럽중앙은행(ECB)과 함께 유로존에 파급될 위험성을 예측한 뒤 IMF와 공동으로 요청국의 공공부채 '지탱력'을 평가하고, 구제자금과 관련해 '실질적인' 지원금을 산정한다. 이후 지원이 승인되면 EU 집행위와 ECB, IMF는 요청국과 부채 상한 시기를 협상한다. 이때 트로이카(EU·ECB·IMF)는 의무조건을 준수할 책임을 진다.

ESM은 회원국들로부터 분담금을 받을 뿐만 아니라 자본시장에도 도움을 청할 수 있다. ESM이 신용평가사의 영향권하에 있다는 뜻이다. 은행들은 ECB에서 연 1%의 이자로 돈을 빌려 그보다 훨씬 높은 이자를 받고, ESM에 돈을 빌려주고, ESM은 또 더 높은 이자로 국가에 빌려준다. 이 돈은 부채를 상환하는 데 쓰이기 때문에 결국 은행 금고만 두둑이 채워주는 격이다. 다시 말해 새로운 메커니즘은 국민보다 은행가들에게 훨씬 이득인 셈이다. 그렇지만 이양될 수 있는 지배력을 지닌 대표단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확정적이고 무조건적'인 협약에 의한 자주권 상실이다.

이미 두 번째 단계가 윤곽을 드러냈다. 일부 녹색당 의원들이 ESM을 '상호조합'(6)에 비유한 것과 달리 한 국가가 지원금을 받으려면 TSCG가 규정한 긴축재정을 수용해야 한다. 두 협약은 분리될 수 없다. 하나를 건드리지 않고 다른 하나만 재협상하는 것은 헛수고일 뿐이다. 하지만 프랑스 대통령으로 선출된 프랑수아 올랑드는 후보 시절 TSCG 재협상을 선거 공약으로 내세웠다.

TSCG는 협약 가입국에 '황금률'을 법제화할 것을 강요한다. 유일하게 권한을 부여받은 EU 집행위원회로부터 '구조적 재정적자'(7) 감축 지원을 받으려면 국가들은 '국회의 표결 없이' 이른바 '자동' 시정 메커니즘을 도입해야 한다. 국회의원 대신 헌법재판소가 새로운 규율에 대한 재정의 적합성을 통제하게 되는 것이다. 기준치(재정 적자가 GDP의 3% 이상, 국가 부채가 GDP의 60% 초과)를 벗어난 국가는 위원회와 헌법재판소가 강제하는 구조개혁 프로그램을 추진해야 한다. 그 구조개혁이 노동시장 개혁, 퇴직연금과 임금 삭감, 사회보장 및 건강, 교육예산 축소, 민영화 실시를 의미하는 것임은 쉽게 추론할 수 있다.

TSCG는 수입과 지출을 결정하는 국회의 역할을 무력화하고 대신 EU 집행위원회에 막대한 권한을 이양했으며, 유럽사법재판소에는 국가 간 분쟁을 해결하는 임무를 위임했다. 지금까지 EU법 강제의 역할을 수행해온 유럽사법재판소는 자유주의 논리가 우선시되는 문제에 더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왔다.(8)

협약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TSCG 덕분에 '공동 경제운영' 체제가 마련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새로 등장한 메커니즘의 목표는 엄격한 규율 틀에 재정 및 경제 정책을 끼어 맞추고 각국의 상황을 무시한 일률적인 자동제어 장치를 실시하는 것이다. '운영하다'라는 단어의 의미가 무조건적인 규율 적용으로 축소될 수 없고, 집행위원회와 헌법재판소의 면책특권으로 인정될 수도 없다. 프랑수아 미테랑 전 프랑스 대통령이 ECB의 독립을 주장한 헬무트 콜 전 독일 총리의 의견을 따랐던 것처럼, 니콜라 사르코지 전 프랑스 대통령도 ESM와 TSCG에 대한 메르켈 독일 총리의 뜻을 따랐다. 다만 미테랑 전 대통령은 마스트리흐트 조약을 국민투표에 부친 반면, 올랑드 대통령은 TSCG가 주권 이양과 관련되지 않는다며 국민투표 가능성을 배제했다. 그러나 선거운동 기간에 메르켈 총리를 겨냥해 성장 조항의 추가를 주장하며 재협상 요구를 선거 공약으로 내걸었다.

영국과 체코는 세제 문제가 국가주권에 속하는 것이라며 세제 권한의 양도를 강제하는 협약에 서명을 거부했다. 협약 가입국들은 회원국의 만장일치로 비준해야 하는 EU의 기존 원칙을 포기하고 25개국 중 12개국만 비준해도 TSCG가 발효되는 데 합의했다. 정부들은 2005년 프랑스와 네덜란드의 국민투표 부결 사건을 망각한 채 다시 한번 모두에게 동일한 정치와 경제, 재정을 합헌적으로 강요하고 있다.

글•라울 마르크 제나르 Raoul Marc Jennar 저서로 <거부 후 유럽은?>(파야르·파리·2007)이 있다.

번역•배영미 petite0222@hotmail.com


(1) 2012년 1월 31일 공식 발표.

(2) 2005년 4월 20일 파리에서 앙리 에마뉘엘리가 개최한 유럽헌법조약 반대 집회에서 한 말이다.

(3) 베르나르 카상, '유로화 역습과 SF식 대응',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2년 1월호.

(4) 유럽연합 조약 제48조 6항3문 (리스본 조약의 첫 판).

(5) 유럽재정안정메커니즘 창설 조약, DOC/12/3, <유럽연합 관보>, 2012년 2월 1일.

(6) Jean Paul Besset,, 다니엘 콩방디, 알랭 리피에츠, 샤행 발레, '유럽재정안정메커니즘: 좌파의 역사적 실수', <르몽드>, 2012년 2월 24일자.

(7) 구조적 적자는 경기변동과 상관없이 재정 적자와 관련된다.

(8) Anne Cecille-Robert, '정치적 게임에 질식하는 사회운동',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9년 5월.

(9) <르몽드>, 2012년 2월 10일자.


8가지 기본 원칙

지난 3월 1일 유럽연합 27개 회원국 중 25개국 정상이 TSCG에 서명했다. 하지만 아직 비준을 완료한 국가는 없다. TSCG의 8가지 주요 조항은 다음과 같다.

1. 정부는 재정 균형을 이뤄야 한다. 특수한 경제상황이나 심각한 불황기일 경우에만 일시적으로 적자를 허용한다. EU 집행위원회로부터 구조적 재정 적자(1)가 GDP의 0.5%를 넘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을 경우 규정 준수국으로 인정된다. 프랑스의 경우, 회계감사원에 따르면 2010년 구조적 재정 적자가 GDP 대비 5%, 즉 965억5천만 유로에 달했다. 이를 0.5%로 낮추려면 870억 유로를 절약해야 한다.

2. 각 회원국은 이른바 '황금률'을 자국 헌법에 명시하고 '국회의 승인을 거치지 않아도 되는' 자동 시정 메커니즘을 설치해야 한다. 따라서 더 이상 국회가 아닌 유럽사법재판소가 새로운 규정을 기반으로 국가의 재정건전성을 감시하게 된다.

3. 공공부채가 GDP의 60%를 초과할 경우, 해당 국가는 1년에 20분의 1씩 3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부채를 해소해야 한다. 공공부채가 GDP의 87%에 달하는 프랑스는 부채 규모를 60% 수준으로 줄이기 위해 260억 유로 규모의 경제성장과 별개로 1년에 20분의 1, 즉 GDP의 1.35%씩 줄여나가야 한다.

4. 지정된 황금률(재정 적자는 GDP의 3%, 국가 부채는 GDP의 60%)을 초과하는 적자를 기록한 국가는 EU 집행위원회와 유럽 이사회가 강제하는 구조개혁 프로그램을 시행해야 한다.

5. 해당 국가는 EU 집행위원회와 유럽 이사회에 국가적인 채무 감축 계획을 제시해야 한다.

6. 집행위가 기준을 위반했다고 판단한 국가에 대해서는 EU 차원의 제재가 자동적으로 가해진다. 과반의 다수가 반대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든 국가가 이를 지지해야 한다.

7. 회원국들은 TSCG 규정을 위배한 것으로 보이는 국가를 유럽사법재판소에 제소할 수 있다. EU 집행위원회는 사법재판소에 소환될 한 국가, 또는 여러 국가를 지정한다.

8. 협약은 25개 서명국 중 12개국이 비준을 완료하면 늦어도 2013년 1월 1일부터 발효된다.

(1) 본문의 각주 7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