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들이여, 아무것도 허물지 말라
'녹색' 건물을 짓기 위해서 그곳에 있던 오래된 건물을 철거해야만 하는가? 건축하기 위해 소모되는 에너지를 고려할 때, 그 수식이 성립되기는 힘들어 보인다.
기존 주택의 철거와 재건축이 대개 도시정책의 유일한 해결책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건축물에 대한 리노베이션(개·보수와 증·개축, 용도 변경까지 포함. 이하 개축으로 번역)을 고려하지 않고, 대규모 주택단지를 허무는 것은 사회적·환경적 문제를 동시에 일으킨다.
이런 무모함은 중요한 사실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다. 오래된 건물에 새로운 창의성을 불어넣는 것이 생태학적으로 더 채산성이 맞고, 만족스러운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건축물 철거는 두 가지 면에서 이론(異論)의 여지가 있다. 첫째는 많은 거주자들이 스스로를 지역 정체성과 관련돼 있다고 느끼며, 전면적 변형보다는 점진적 변화를 선호한다. 둘째는 철거가 숲의 화재로 사라지는 이산화탄소(CO₂) 배출량과 비교될 만한, 자본이 되는 재산인 '회색 에너지' 자재(資財)의 분실을 초래한다. 이 개념은 건설(건축 자재의 채취와 인도(引渡), 기중기 설치, 노동자들의 이동 등)에서 철거(폭파작업, 운반, 건축물 쓰레기 매립 또는 재활용 등)까지 한 건축물에 투자된 모든 에너지의 합을 가리킨다.
효율 높은 에너지 절약형 주택을 재건축하기 위해 건물을 철거하는 것은 사회 통념과 다르게 환경 면에서 이득이 안 된다. 프랑스 에너지론 학자 올리비에 시들레르에 따르면, 한 건물의 철거와 재건축은 그 건물의 향후 25~50년간 에너지 소비량에 상당하는 에너지를 동원한다. 그는 "철거하고 재건축하는 것보다 가능할 때마다 개축하는 것이 천 배 낫다. 온실효과 가스 배출량도 훨씬 줄일 수 있다"고 말한다. 독일 취리히 연방공과대학(EPFZ)에서 영구적 건축물에 관한 강의를 하고 있는 홀거 발바움 교수는 "우리는 가끔 10년밖에 안 된 건물을 허문다. 그러고 나서 그것에 대해 감가상각(*)표에 의거해 회계상에서 세금 공제 등의 혜택을 받는다. 그래서 건물을 새로 짓기 위해 그 자리에 있던 복합적인 생활조직체를 지워버리는 행위를 한다"고 토로한다.
건축물에 대한 개축이 아직 풍습화되어 있지 않다면, 그 이유는 아마 건축가들이 교육과정에서부터 신축 건물에 대한 가치 부여를 배우고, 이 방법을 통해서만 자신을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현존하는 건물 위에 하는 작업은 결국 타인의 작품을 유지하는 것밖에 안 되기에, 이 점이 몇몇 자아가 강한 사람들을 실망시킬 수 있다.
2003년 카알 비리덴은 '패시브 기준'(1)에 의거해 1894년 지어진 취리히의 한 건물을 개축했다. 그는 EPFZ와 함께 이 개축작업에서 회색 에너지에 대한 연구를 실행한다. 모든 자재는 엄격히 검토했고, 전체 자료의 단위를 연간 1㎡당 킬로와트시(kWh/m²/년)와 톤(t)으로 표기해 이용 가능하도록 했다. 연구에 의하면, 건물 철거 후 패시브 기준에 맞춰 재건축할 때에는 에너지 소비량(회색 에너지와 운영 에너지)이 112kWh/m²/년이 될 것이고, 재래식으로 건물 철거와 재건축을 하면 200kWh/m²/년의 충격이 있을 것이라고 한다. 또한 패시브 기준에 의한 개축에서는 단지 82kWh/m²/년만 소비될 것이라고 했다. t으로 표기된 자료는 훨씬 더 명확하게 이런 상황을 보여준다. 건물의 무게는 대략 100t이다.
이 개축작업은 철저히 구상되었기에 필수요소들을 최소한으로 줄였다. 현장에서 1t의 자재(지붕의 기와, 대패로 다듬어 길이가 짧아진 문 등)가 재이용되었고, 건물 전체의 4%(4t)만이 철거 후 제거되었다. 10%(10t)의 새 자재가 특히 단열을 위해 운반돼왔다. 모두 합쳐서 14t의 물품만이 이동되었다. 대조적으로 신축건물을 짓는다고 가정하면, 100t의 기존 건물 철거와 대략 60t에 달하는 신축 건물 전체에 상응하는 양의 배달을 전제로 하게 된다- 요즘 자재들이 대개 더 가볍기 때문이다. 이 신축작업은 총 160t을 이동시켜야 한다. 결과는 14t 대 160t.
개축과 철거 사이에 선택은 흔히 그 건물의 용도에 따라 이루어진다. 우선 보기에도 칸막이벽과 하중을 지지하는 벽체가 많은 주거용 건물을 열린 공간의 사무실용 건물로 개조하는 것은 곤란하다. 어느 건물의 새로운 사용 용도는 본래 구조에 최대한 잘 부합해야 한다. 게다가 현명한 개축작업은 시간이 오래 걸린다. 비리덴은 "어떤 건물에 대해 잘 모르는 한 감정 평가를 할 수 없다. 많은 매개 변수가 개입된다"고 설명한다. 그러므로 건축가는 명령을 내리는 사람 이상의 팀장으로서 합의체 방식으로 일해야 하고, 어떤 타협을 요구하는지, 건물은 더 높일 수 있는지 또는 거기서 일부분을 없앨 수 있는지 등을 결정짓기 위해 구조 전문가, 에너지론 학자 같은 전문가들에게 둘러싸여 있어야 한다.
몇 년 전부터 독창적인 구상이 스위스 전역에 걸쳐 가득했다. 그 예로 추크주의 바아르시는 오래전부터 방앗간과 농산물 보관 창고의 도시이다. 높은 콘크리트 구조물들은 도시를 굽어보고 있다. 스위스 제분업 재정비의 일환으로 오버뮬레 방앗간은 2001년에 문을 닫았다. 이제 폐기된 큰 건축물은 무엇이 될 것인가? 무엇보다 과거를 일소하지 않았다. 2010년 개축된 오버뮬레의 보관 창고(2)는 20여 개 주택과 10여 개 사무실을 수용하는 11층 건물로 '진화'했다.(3) 그것도 아주 적은 에너지 비용으로.
글•필리프 보베 Philippe Bovet 언론인
번역•채미서 yarche@hanmail.net
(1) 스위스에서는 '미너지'(Minergie)라고 불리는 '패시브 기준'이 최대 에너지 소비량을 30kWh/m²/년으로 요구하고 있다. 이 기준은 독일의 패시브 기준과 다른데, 패시브하우스(Passivhaus)는 최대치를 15kWh/m²/년으로 정하고 있다.
(3) 리노베이션에 대한 미너지 기준에 맞춰 개축된 이 건물은 난방과 온수, 그리고 전기 사용을 위해 60kWh/m²/년 미만을 소비한다. www.minergie.ch 참조.
*감가상각 토지를 제외한 고정 자산에 생기는 가치의 소모를 셈하는 회계상의 절차. 고정자산 가치의 소모를 각 회계연도에 할당해 그 자산 가격을 줄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