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건강보험 개혁 논쟁

2012-06-12     앙드레 그리말디 외

지난 세월 동안 팽팽한 줄 위에 구축된 프랑스 의료 시스템이 현재 끊길 위험에 처했다. 부유층은 민간병원을 그 나머지는 공공병원을 찾는 가운데, 국민건강보험은 건강보험료 분담금으로 의료비를 충당하는 실정이다. 1927년 사회보장제도를 액면 그대로 인정한 적 없는 의사집단은 △의사 선택의 자유 △업무상 비밀 보장 △처방의 자유 △국민건강보험이 환자를, 의사노조가 의사를 통제 △의사들이 합의하에 또는 자유롭게 환자의 진료비를 결정할 수 있는 자유 등, 5가지 근본 원칙을 담은 자유헌장을 발표했다. 1971년에 이르러서야 자유의사노조는 비로소 열띤 공방 끝에, 진료비 자율화 원칙을 포기하고 자신들과 국민건강보험 쪽이 서명한 국민적 합의를 수용했다. 마찬가지로, 오랜 세월 동안 자신의 입장을 견지하던 의료공제조합 또한 전쟁(제2차 세계대전) 직후에야 비로소 피보험자들이 부담하던 진료비의 20%를 공제해주며 본연의 업무를 수행했다.

1980년 국민건강보험의 재정은 최고조에 달했다. 피보험자들은 진료비의 80%를 부담했고, 반면 공공병원은 1970년대 이후 막대한 장비 투자와 급여 인상 혜택을 누렸다. 덕분에 공공병원의 환자에 대한 의료서비스 여건이 개선되고 치료 효능 또한 현저히 호전됐다.

압력에 신음하는 환자들

하지만 이같은 개선은 톡톡한 대가를 치렀다. 의료비 지출이 급성장하던 시기에 프랑스의 경제위기가 닥쳤기 때문이다. 1970년대 후반부터 회계 감독관들은 당시 총리 레몽 바르의 집무실과 공조해 두 가지 시나리오를 작성했다. 첫 번째 시나리오는 (그때 이미!) 독일 모델을 참조한 포괄수가제, 이른바 보건 예산 제한안을 제시했다. 예컨대 보건비를 국내총생산(GDP)의 성장률을 초과하지 않는 선으로 책정해, 보건비 지출을 국가재정 내에서 안정화하려 한 것이다. 1970년대 후반, 회계감독관 시몽 노라와 장 샤를 나우리가 고안한 두 번째 시나리오는 (본인 부담) 보충의료보험이 보장해주는 '잔병' 치료에 대한 보장은 거부하고, 대신 '중병'의 집중 관리를 의무가입인 국민건강보험이 맡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치료를 소홀이 하거나 아예 하지 않은 잔병이 큰 비용이 들어가는 중병이 될 확률이 크다고 지적했다. 1987년 삼부회의 때 '사회보장제도의 아버지' 피에르 라로크 역시 이런 구분(잔병과 중병)이 프랑스의 보편적 보건 시스템 원칙에 위배된다고 지적해 이 시나리오는 채택되지 못했다. 그런데 이 시스템이 21세기 초반에 재등장했다.

1980년대 후반부터 좌·우파 정부는 첫 번째 시나리오를 모델로 한 '보조금 총량제'를 단행했다. 1983년엔 환자의 입원 일수에 따라 병원에 총보조금이 할당됐다. 이런 시스템에선 병원들이 보조금을 더 타내기 위해 환자들의 입원 일수를 최대한 늘려야 했지만, 보조금 총량제 때문에 이론적으론(1) 환자들의 입원 일수를 제한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1980년대 후반부터 진료비 중 입원비가 대폭 감소했다. 하지만 이런 대책은 부분적인 성공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민간병원들(클리닉이나 개인병원)이 '회계 통제'라며 이에 거세게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유의사노조는 심한 반발과 함께 이유를 불문하고 모든 형태의 포괄수가제를 거부하고 있고, 병원장·의사·의사노조 등 의료계는 보조금 총량제를 완화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1995년 당시 총리인 알랭 쥐페가 신(新)사회보장기금 개혁법안(PLFSS)을 의결해, 이른바 전국건강보험지출목표량(ONDAM·Objectif National des Dépenses d'Assurance Maladie) 계획을 발표했지만 모두가 반대했다. ONDAM은 의료비 지출을 막기 위해 환자뿐만 아니라 의사까지 통제하겠다는 것이 그 골자다. 1997년 총선 때 의사노조는 곧바로 자신들의 분노를 표심으로 표출하며 좌파에 승리를 안겼다. 이어 노조는 법정 싸움을 벌여 ONDAM을 초과했을 때, 단체나 개인에게 부과하던 모든 처벌에 대한 취소 처분을 받아냈다. 이후 ONDAM은 의료비 지출을 막기 위한 정부의 결단 수준을 암시하는 정책의 기준선 정도로 전락했다. ONDAM이 1997년을 제외하고 항상 초과하자, 좌파 연립정부는 사회보장세(CSG)를 신설해 세금으로 건강보험 수익의 상당 부분을 충당했다.

이 실패는 신자유주의 보건정책의 전환점이 됐다. 2002년 정권을 잡은 우파는 의사들에게 '더 이상 배반하지 않겠노라' 약속했다.(2) 이후 정부는 사회보장연금공제(불법노동으로 유발되는 80억~140억 유로) 사기나 두 자릿수의 연간 수익을 올리는 제약회사들은 거의 건드리지 않은 상태에서, 사회보조금(연간 30억 유로)에 대한 오·남용과 사기와의 전쟁을 빌미로 모든 책임을 피보험자들에게만 전가했다.

그러자 당시 은행과 보험사에 휘둘리던 프랑스 기업의 '신(新)운동'(MEDEF)- 옛 프랑스 경영자협회(CNPE)- 이 보험업에 뛰어들었다. 1670억 유로에 달하는 건강보험 시장에 군침이 돈 것이다. 클로드 베베아르, 드니 케슬레르, 프랑수아 에왈드 등은 경쟁적으로 보험상품, 특히 보충보험업자들의 입지가 강화된 보험상품을 고안해냈다. 곧이어 여러 내각에서 떵떵거리던 질 조아네 같은 옛 사회주의자들이 이들과 합류했다. 그는 생명보험회사 AGF-알리안츠로 자리를 옮긴 뒤, 2006년 상류층을 겨냥한 이른바 명품 (본인 부담) 보충보험인 '부자들을 위한 보험'을 선보였다. 2004년 보건의료 개혁 단행과 함께 이들은 노사 대표와 같은 자격으로 전반적인 정부의 (의료 재정) 관리에 공식적으로 참여해 자신들이 근무하는 기업 총수의 결정에 대한 견해만 밝히며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했다.

이를 방증하듯, 이후 실제 기업 총수가 국민건강보험공단 사장직에 올라 고위 공직자 신분으로 내각 자문위원에 임명됐다. 사람들은 노라와 나우리 프로젝트의 장점을 재발견하게 된다. 요컨대 기본보험료의 인상과 의료비 미환급 파동의 여파로, 2011년엔 흔한 질병 치료의 의료비 환급률이 50%로 추락한 것이다.(3) 유럽연합(EU)의 주도로 공제보험법이 붕괴되자, 어쩔 수 없이 민간(보험)회사에 동조했던 복지기관과 상호공제조합 등 보험업자들은 입원을 요하지 않거나 장기 질환(ALD)이 아닌 이른바 '잔병'에 대한 의료비를 부담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

이와 때를 같이해 '보건국가' 이미지가 강화된다. 국가적인 차원에서 여태껏 행정·정치적으로 왜소증을 앓던 보건복지부에 대대적인 물적 지원과 전문 인력 보강이 이뤄진다. 정치권의 책임자들은 의료비 지출을 비롯해 오염된 혈액 사건(1991년)을 필두로 확산되고 있는 공중보건을 둘러싼 스캔들을 관리하기 위해 보건행정기관을 키웠다. 1980년대 초반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감염 환자가 속출했을 때 전염성이 있거나 전염병, 즉 의사와 생물학자가 보건 당국에 꼭 신고해야 하는 질병을 담당하는 보건복지부 직원은 단 2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2007년엔 직원 380명이 국민 질병 관리를 책임졌다.(4) 2010년 국가의 빈약한 분산 서비스 기관들(각 도와 지방으로 분산돼 있던 각종 보건복지부 산하 기관들)과 지방 건강보험이 보건위생지방행정기관(ARS) 산하로 통폐합됐다. 이후 직원의 '비정규 계약직화' 같은 새로운 공공정책이 끊임없이 도입됐다. 보건복지부의 전 직원이 연봉성과급제에 따른 다년 계약으로 서로 얽히며 이들 간 '새로운 공공 관리'의 위계질서(연봉에 따른 위계)가 확립됐다. 요컨대 적어도 국가적 차원에서 볼 때(5) 보건복지부가 전례 없이 강해진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6) 복지국가를 붕괴시킨 동력과는 정반대의 경향을 보이는 동력에 주목하고 있다는 뜻일까?

보건 당국이 현재 모든 선진국에서 유행하고 있는 '새로운 공공 관리' 규범에 맞춰 재정비되면서 보건 당국의 본질도 변했다. 2007년 대통령에 당선된 니콜라 사르코지가 공공정책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를 발표하며, 2011년 리오넬 조스팽 정부 때 비준된 공공재정 개혁안인 '재정에 관한 조직법률'(LOLF)이 만들어낸 동력을 무력화한 것이다. 국가는 전통적인 공공서비스 분야인 재정 및 의료서비스의 임무를 공기업과 민간업체 간 경쟁 입찰에 붙였다. 우리가 미국에서 익히 알려진 메커니즘, '복지위임국가'(Delegated Welfare State) 시대에 돌입한 것이다. 복지위임국가란 "복지수당에 할당된 공적자금의 관리를 정부와 무관한 기관에 맡기는 것이다. 이를테면 공공 관리기구나 행정기관을 가동시켜 복지수당 배급이나 공공서비스 제공 등과 같은 몇몇 목표를 달성하기보다는, 이같은 임무를 영리나 비영리 민간기업에 맡겨 목표를 완수하는 것을 말한다".(7)

그러자 1945~50년 사회보장제도의 창설을 막았던 의사자유주의연맹은 설욕전에 나서고, 보충의료보험업자들은 수익성이 있는 '잔병' 보장 보험상품에 눈독을 들였다. 자유의사노조 의사들은 보수 혁명을 주도하며 1927년에 정한 5가지 원칙의 전면 이행을 요구했다. 이들은 특히 진료비의 자율화를 원했다.

의료비 100% 보장을 향해

2009년 국회를 통과한 프랑스의 '병원, 환자, 보건, 지방' 법안(HPST)은 병원의 공공서비스를 14가지 임무로 제한하고, 이 임무들을 자유 재량으로 공공 및 민간 병원에 맡겨 처리할 수 있게 했다. 하지만 진료비 자율화와 공공 및 민간 병원의 진료비 담합은 공공병원들의 재정난을 부추겨 공공병원들은 결국 문 닫을 수밖에 없었다. 또한 거만한 의사노조가 금융 지원을 하는 도시 의사들에 대한 개편 작업(가격 협상 및 실력과 자질을 기준으로 의사를 뽑겠다는 협약 등)을 하며 정부가 쓴 정치적 비용이 조금씩 보충의료보험업자들의 손에 흘러 들어가고 있다.

특히 보건정책 개혁이 의료비 개인할당제를 도입했지만, 이는 실패한 정책이었다. 왜냐하면 개인할당제가 한정적인 예산의 굴레 속에서 의료수가 기준(9)에 맞춘 일상적인 의료행위에 대해서만 보장됐기 때문이다. 요컨대 복지위임국가가 의료행위를 제한할 수밖에 없는 의사들과 본인의 생명을 자신이 책임져야 하는 환자(소비자)들에게 중병에 대한 책임을 전가한 셈이다. 이런 위임 전략의 이면에는 정부가 시장과 유럽 기관들에 공공 보건서비스 지출을 제한하겠다는 결심을 보여줘, 국가 신용등급을 최고 등급인 'AAA'로 유지하기 위한 포석이 깔려 있었다. 그러나 그건 허황된 꿈이었다.

보건정책을 둘러싼 신자유주의 논쟁을 종식하려면 △사회보장제도 △개인병원 △(대형)병원 △위생을 보장하기 위한 집단 예방접종 등 4가지 주요 공공보건 의료서비스에 대한 효과를 희석시키지 말아야 한다. 국민건강보험이 80%의 의료비를 보장해주던 때로 회귀해야 한다. 심지어 국민건강보험이 의료비를 100% 보장해줘, 보충의료보험의 전면 폐지도 고려해봐야 한다. 다만 의사들이 의료행위에 대한 타당성, 유용성, 서비스 질에 따라 더 낮은 보수를 받아야 하겠지만 이같은 방침은 먼 얘기다. 그리고 비용 및 유용성을 고려한 평가 원칙에 따라 진료와 보장 범위를 재검토해야 한다.

국민건강보험은 피보험자들의 돈인 건강보험료를 국민의 건강을 위해 쓰지 않고, 수익을 올리거나 전문가(의사)들과 의료산업체의 배를 불리는 데 써서는 안 된다. '독일 모델'에서 영감을 얻는 것도 좋지만, 그게 뭐가 좋은지도 잘 살펴봐야 한다. 이를테면 보험료를 조금 높게 받지만 보편적인 보험제도보다 의료비 보장률도 높고, 심지어 재정 흑자를 내는 독일 건강보험을 롤모델로 한 알자스·모젤 지방의 건강보험제도를 눈여겨봐야 한다.

글•앙드레 그리말디 André Grimaldi·로랑 세델 Laurent Sedel·프레데리크 피에뤼 Frédéric Pierru

앙드레 그리말디는 파리 피티에살페트리에르병원 당뇨병학 교수다. <수익을 올리는 데 혈안이 된 종합병원>(Fayard·파리·2009)의 저자. 로랑 세델은 외과의사로 프랑스 국립과학연수소(CNRS) 소장이며, <환자를 구해야 한다!>(Albin Michel·파리·2011)의 저자다. 프레데리크 피에뤼는 CNRS 소속 정치학자 및 사회학자로서 <심폐소생술 전문병원>(Le Croquant·Bellecombe-en-Bauges·2011)의 공동 저자다.

번역•조은섭 chosub@ilemonde.com


(1) 이론적으론 그렇다. 왜냐하면 시장과 지역 행정기관 수장들이 주도한 지역 연대가 국가적 차원에서 정치적 중재 역할을 하고, 행정부가 정한 보건예산안을 완화했기 때문이다.

(2) Gerard Badou, <의사들은 피해자인가 죄인인가?>, <렉스프레스>, 파리, 1996년 1월 18일.

(3) Pierre- Louis Bras et Didier Tabuteau, <건강보험>, PUF, 파리, pp.83~86, 2012.

(4) INVS의 웹사이트 참조.

(5) 도(都) 차원에서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왜냐하면 공공정책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로 국가가 기득권을 상실해버렸기 때문이다.

(6) Laurent Boneli et Willy Pelletier, <붕괴된 국가, 조용한 혁명에 대한 설문조사>,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파리, 2010.

(7) Kimberly J. Morgan와 Andrea Louise Campbell, <The Delegated Welfare State: Medicare, Markets and the Governance of Social Policy>, Oxford University Press, p.19, 2011.

(8) 프랑스 개인병원 연맹의 기자회견 내용, 2012년 1월 26일.

(9) 쥘리앵 뒤메닐, <의료 예술과 진료의 정상화>, PUF, 파리,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