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나크바’에 대한 두려움
과격한 유대인 혐오증의 부활에 대한 두려움과 1948년 나크바(그해 이스라엘 건국 이후 약 70만 명의 팔레스타인인이 추방당한 사건-역주)의 재현에 대한 두려움이 맞선다. 평화를 이루기 위해 이 두 가지 공포를 이해할 필요가 있지만, 무엇보다 이 전쟁에서 가장 약한 존재이고,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이들은 팔레스타인인들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2023년 10월 7일, 하마스가 이스라엘 영토에 대한 유혈 기습을 시작해 대량 학살을 벌였고, 이스라엘도 유례없는 규모의 반격으로 엄청난 인명 피해를 일으켰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은 이제 새로운 양상으로 접어들었다. 두 나라의 미래도 바뀌었을지 모른다.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이래 두 나라의 대립은 다른 어떤 식민지 상황보다도 정치적인 문제로 남았다. 그동안 양국의 분쟁에 관해 증오가 많이 언급됐지만, 사실 이 증오는 두려움에서 시작됐다. 이스라엘이나 팔레스타인 모두 증오보다 두려움이 집단의 기억과 이야기 대부분을 차지한다.
유대인들의 두려움은 유럽에서 수백 년 동안 지속됐다. 이 두려움의 뿌리는 나치의 유대인 학살로 이어진 박해의 역사에 있다. 나치의 학살 이전에도 유대인 조상들은 반(反)유대주의 폭력을 겪었고, 자신들을 보호해 줄 조국을 건립해야 한다는 민족주의 운동인 시온주의를 탄생시켰다. 1948년 이후, 이스라엘이 강력한 군대와 미국의 빈틈없는 지원에 힘입어 스스로를 국제법도 무시할 수 있을 정도의 군사 강국으로 칭하면서 과거의 두려움은 사라진 듯 보였다. 이스라엘은 강했기에 두려울 게 없었다. 국민을 보호할 수 있고, 주변국들의 적대심도 누를 힘이 충분히 있었다.
자신들의 만행에는 침묵하는 이스라엘
전 세계 유대인 대다수에게 이스라엘은 생명보험과도 같은 존재였다. 이스라엘에 정착하지 않은 유대인들에게도 충분히 피난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일부 유대인들은 이스라엘의 식민지화 계획을 너그러이 용인하면서, 1947년 유엔의 팔레스타인 분할안에 포함된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 기회를 방해했다. 그러나 2023년 10월 7일, 수년에 걸쳐 당연하다고 여겨진 것들이 무너졌다. 하마스가 국제적으로 인정된 이스라엘 영토 내부를 처음으로 공격했고, 무적이라는 명성을 지닌 이스라엘 군대가 개입하기도 전에 민간인 수백 명을 학살했기 때문이다. 이제 피난처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고, 이스라엘인들은 낯설게만 느껴졌던 유대인으로서의 두려움을 다시 마주하게 됐다.
그러나 수많은 이스라엘인은 자신들이 원흉이 된 두려움에는 침묵한다. 팔레스타인인 약 70만 명이 추방당한 뒤 돌아오지 못했던 나크바 이후, 모든 팔레스타인인의 기억에는 두려움이 각인됐다. 1948년, 이제 막 탄생한 이스라엘이 자국 수립과 동시에 자행한 인종 청소는 다양한 방식으로 지속한 만큼 사람들의 기억에서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영원한 수도’라 공표하며 유대화를 진행한 것처럼, 이스라엘은 1967년 6월 옛 팔레스타인 위임통치령 전체를 정복하고 체계적으로 식민지화를 이끌었고, 팔레스타인인들에게는 얼마 남지 않은 영토마저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심어왔다.
2021년, 서안지구 이스라엘 정착민들의 지지를 받는 이스라엘 극우파가 집권하면서,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이스라엘 식민 민병대의 횡포와 권리 박탈에 시달리며 일상적으로 두려움을 안고 살아가게 됐다. 2023년 10월 7일 이후 가자지구를 주 무대로 하는 이번 전쟁은 팔레스타인인들의 이런 두려움을 공포로 바꿔 놓았다. 사실상 가자지구 내 모든 생명체를 조직적으로 파괴하고 있는 이스라엘의 하마스 소탕 작전은, 일부에 불과할지라도 거주민들을 그곳에서 내쫓으려는 욕구를 내재하고 있다.
가자지구 주민들을 시나이반도로 강제 이주시키는 방안이 고려됐지만, 이집트는 자국 땅에 그들을 수용하지 않겠다며 반대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인 수십만 명을 가자지구 내에서 강제 이주시켰다. 만약 이스라엘 극단주의자들이 자신의 공약대로 권력을 마음대로 휘두른다면, 대규모 추방이 이뤄질 것이라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도로로 밀려난 팔레스타인 군중의 모습은 첫 번째 추방의 상처를 되살림과 동시에 혹시 모를 두 번째 추방을 두려워하게 만든다.
“시온주의에 반대하는 이들은 모두 히틀러”
이 두 가지 두려움은 서로 마주한 두 민족의 각기 다른 역사적 경험을 바탕으로 하는 진실을 담고 있다. 그러나 현대적 관점에서 이들의 두려움은 동등하지 않다. 이스라엘 지도자들과 지지자들이 여론을 설득하려 주장하는 것처럼 모든 게 10월 7일에 시작된 건 아니기 때문이다. 이 분쟁에는 점령자와 점령당한 자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피점령국인 팔레스타인은 누구의 보호도 받지 못하고 있지만, 점령국 이스라엘은 추종자들이 무엇이라 말하든, 모든 실존적 위험에서 자국을 보호할 수 있는 무기고를 갖고 있다. 물론, 이스라엘 군대와 정보기관은 하마스의 공격을 예측하지 못했다. 하지만 가자지구를 강타한 불의 폭풍은 이스라엘이 여전히 강력한 힘을 가졌고, 그 힘을 제한 없이 사용할 계획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정식 휴전 협정이 아직 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스라엘 정부는 해결 불가능한 역설적 상황에 처했다. 이스라엘은 자국의 힘에 한계가 없다는 점을 드러내 보여야 한다. 적에게 공포를 심어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자국민들이 계속해서 두려움을 느끼게 해야 한다. 강력한 국가가 돼야 하지만, 목숨을 앗아갈 위험도 있다는 사실을 국민이 다시금 느껴야 한다. 이런 모순된 조건들을 절충할 도구는 나치주의와 집단 학살의 기억이다.
실상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이 기억을 항상 이용해왔다. 가말 압델 나세르부터 야세르 아라파트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의 정책에 적대적이었던 아랍과 팔레스타인 지도자들은 ‘히틀러’ 취급을 당했다. 이스라엘 내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평화를 위해 양보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한 지도층은 악명 높은 수식어를 얻었고, 오늘날 정권을 잡은 극우파들에게 암살당한 이츠하크 라빈 전 총리는 자신을 나치 독재자로 꾸민 인형이 거리에서 행진하는 모습을 목격하기도 했다.
‘노란색 별’의 남용이 초래할 자기 파괴
2023년 10월 7일 이후, 이런 현상은 정점에 다다랐다. 이스라엘 정부의 성명 가운데 하마스의 학살을 묘사하며 ‘포그롬(19세기에서 20세기 초에 제정 러시아에서 일어난 유대인에 대한 조직적인 탄압과 학살을 이르던 말-역주)’이라는 용어나, 유럽 유대인들의 역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시기에 대한 언급은 빠지는 법이 없었다. 분열된 사회를 재앙의 공포를 이용해 단결시키려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는 유엔 주재 이스라엘 대사가 유엔 내부에서 노란색 별을 착용한 것이다. 반유대주의에서 비롯된 학살을 묵인하는 유엔을 비난하려는 행동이었다. 즉, 이스라엘 정책에 무조건적인 지지를 하지 않는 이들은, 모두 나치라고 간주하는 것이다.
대다수의 서방 관료들과 여론 조성자들은, 늘 그렇듯 상황을 진정시키려는 대신 과거에 대한 편향된 시각으로 이 용어를 남발한다. 10월 7일 하마스가 자행한 대학살은 용납할 수 없지만, 그날 이스라엘이 겪은 트라우마를 쇼아(홀로코스트)와 동일시할 수는 없다. 역사는 반복되는 측면이 있지만, 결코 똑같은 조건에서 똑같은 형태로 반복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유럽인들은, 현대 나치주의의 대표적 형태로 부상하는 하마스로 초점을 옮기며 자신들이 저지른 대학살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 한다. 유럽이나 미국 유대교 지도층 중 이스라엘이 이렇게 과거 유대인의 순교를 악용하는 것을 반대하는 이는 없다. 우연일까? 유일하게 비판의 목소리를 낸 인물은, 대니 다얀 예루살렘 쇼아 기념관장이다.
“유엔 주재 이스라엘 대표단이 노란색 별을 단 모습이 매우 유감스러웠다. (…) 홀로코스트 희생자들과 이스라엘 모두를 불명예스럽게 만드는 행위다. 노란색 별은 유대인들의 무력함과 타인에 대한 의존성을 상징한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독립된 국가와 강력한 군대가 있다. 우리 운명의 주인은 바로 우리다.”
그는 또한, 이런 행위는 기대와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할 위험이 있다고 말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이런 식의 비교는 너무 황당한 수준에 도달해, 스스로 파괴되는 단계에 이르렀다. 이제는 이스라엘과 서구 지도자들만 이런 표현을 사용하는 게 아니다. 가자지구에 대한 잔인한 포위 공격, 수천 명의 민간인 사망자들, 어떤 장소도 가리지 않는 폭격은 끔찍한 비교를 하게 만든다. 어떤 이들은 가자 주민들이 처한 상황을 설명하며, 폴란드 바르샤바 게토(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 강제 거주 구역-역주)의 기억을 언급하기도 하는 등, 국제 여론의 눈에 이스라엘은 점점 피해자가 아닌 학살자에 가까워지고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자국의 미래까지 위태롭게 할 이런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한 듯 보인다. 지금까지 이스라엘이 내세울 수 있었던 유일한 정당성은 박해받는 민족의 국가, 그 후손의 국가라는 사실이었다. 이스라엘의 오만함은 이런 정당성을 훼손하며, 스스로를 깊은 수렁으로 몰아넣고 있다. 그러니 무장 해제 약속은 평화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존속의 조건이기도 하다.
글·소피 베시 Sophie Bessis
역사학자
번역·김자연
번역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