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지구 편에 선 라틴아메리카

“필요하다면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단절할 것”

2023-12-29     메리엠 라리비 l 기자

“역사는 방관자들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미겔 디아스카넬 쿠바 대통령은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에 대해 이렇게 경고했다. 라틴아메리카는 팔레스타인에서 약 1만 킬로미터 떨어져 있다. 그러나 쿠바에서 칠레에 이르기까지,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은 근동지역에서 다시 불거진 폭력사태에 대해 이례적으로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국제법은 강제수용소를 금지하며 강제수용소를 건설하는 이들을 반인도적 범죄자로 규정한다.” 콜롬비아 최초의 좌파 대통령 구스타보 페트로가 2023년 10월 9일 X(구 트위터)에 올린 글은 큰 주목을 받았다. 이 글을 게재하기 이틀 전 페트로 대통령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점령”과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에 대한 서구 열강의 태도 차이를 지적하기도 했다. 

 

“이스라엘은 나치와 같은 짓을 하고 있다”

그 해 10월 8일 아침, 콜롬비아 외교부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재발 이후 처음으로 입장을 밝혔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대화”를 촉구하는 내용으로 시작한 이 성명서는 이스라엘 민간인에 대한 폭력 행위를 규탄했지만 하마스를 “테러리스트”로 규정하지는 않았다. 콜롬비아는 팔레스타인 민간인에 대한 공격도 동시에 비난했다. 

이어 10월 9일, 요아브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장관은 가자지구 봉쇄를 선언하며 이스라엘은 “인간의 탈을 쓴 짐승과 싸우고 있으며 그에 상응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페트로 대통령은 “나치가 유대인에 대해 한 발언들과 같다. 민주주의 국민은 나치즘이 국제 정치에 다시 자리 잡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 이스라엘인과 팔레스타인인은 똑같이 국제법의 적용을 받는 인간이다. 이런 혐오 발언이 계속된다면 홀로코스트로 이어질 뿐”이라고 반박했다. 

갈리 다간 콜롬비아 주재 이스라엘 대사는 페트로 대통령에게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를 방문해 볼 것을 제안했다. 페트로 대통령은 X에서 “이미 가본 적이 있으며 (...) 이 수용소가 가자지구에 다시 재현되는 상황을 지켜보는 중”이라고 응수했다. 

이스라엘 총리는 페트로 대통령의 발언을 “적대적이고 반유대적”이라고 평가하며 이스라엘 주재 콜롬비아 대사를 초치했다. 이에 대해 페트로 대통령은 “필요하다면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단절하겠다. 콜롬비아 대통령은 모욕을 참지 않는다”라고 경고했다.(X, 10월 15일) 이후 학살의 강도와 규모가 확대되고 가자지구 내 여러 병원이 폭격을 당했다. 페트로 대통령은 11월 10일 콜롬비아 정부 법무 부처가 이스라엘을 모든 국제 법원에 고소하는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고 발표했으며 11월 13일에는 X를 통해 “팔레스타인을 정식 회원국으로 인정하도록 유엔(UN)에 제안할 것”이라고 밝혔다. 콜롬비아의 이처럼 강경한 태도는 놀라움을 자아낸다. 라틴아메리카는 다른 지역들과 달리 한 목소리로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차별화된 입장으로 또다시 눈길을 끌었다. 

같은 해 10월 31일,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북부의 자발리아 난민캠프를 공습했다. 이후 이스라엘 주재 자국 대사를 소환한 라틴아메리카 국가는 콜롬비아만이 아니었다. 벨리즈와 칠레도 자국 대사를 소환했으며 볼리비아는 이스라엘과의 외교관계를 단절하기까지 했다. 볼리비아는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 시절(2006~2019)인 2009년 이미 한 번 이스라엘과 단교한 바 있으며 2019년 쿠데타로 모랄레스 대통령이 물러나고 독재자 자니네 아녜스가 정권을 잡으면서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회복했다.

이틀 뒤인 11월 2일 온두라스 역시 이스라엘 주재 자국 대사를 소환했다. 만약 이미 오래전 이스라엘과 외교관계를 단절하지 않았다면 쿠바와 베네수엘라 역시 그 뒤를 따랐을 것이다. 사회주의 국가인 쿠바와 베네수엘라는 가장 강한 어조로 이스라엘을 규탄하고 있다. 2023년 11월 1일, 타우피크 타하니 프랑스팔레스타인연대협회 명예회장은 X에 “아랍연맹(AL)에서 아랍 국가들을 퇴출시키고 칠레, 볼리비아, 콜롬비아로 대체해야 한다”라는 글을 올렸다.

유대인 인구의 비중이 높아 상대적으로 온건한 입장을 유지했던 아르헨티나 역시 (10월 7일 하마스의 공격으로 자국민 9명이 사망하고 21명이 인질로 붙잡혔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공습을 규탄했다. 페루와 멕시코도 마찬가지다. 브라질, 콜롬비아, 볼리비아, 칠레, 아르헨티나는 가자지구를 위한 인도주의적 지원 계획을 발표했다. 여전히 극심한 경제 위기에 시달리는 베네수엘라 역시 팔레스타인에 30톤의 구호품을 지원했다.

라틴아메리카 대륙에 거주하는 팔레스타인인은 60만~100만 명으로 추산된다. 특히 칠레에는 근동지역 외 최대 규모의 팔레스타인인 공동체(35만~40만 명)가 존재한다. 파나마를 제외한 모든 라틴아메리카 국가는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한다. 독특한 경우에 속하는 멕시코는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하지는 않지만 멕시코에는 모하메드 사다트 팔레스타인 대사가 주재 중이며, 요르단강 서안지구 팔레스타인 행정수도인 라말라에는 멕시코 대표부가 있다. 

 

쿠바-팔레스타인 vs. 미국-이스라엘

이번 전쟁이 발발하기 전까지 대다수의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은 이스라엘과 외교관계를 유지했다. 과거 쿠바는 팔레스타인 탄압을 기탄없이 규탄하면서도 역사적으로 유대인이 겪은 고통을 감안해 이스라엘의 존재를 합법으로 인정한 적이 있다. 하지만 10년 이상 고심한 끝에,(1) 쿠바는 1973년 이스라엘과 단교했으며 제4차 중동전쟁인 ‘욤키푸르 전쟁’ 당시 시리아군을 지원하기 위해 골란 고원에 군대를 파견하기까지 했다. 

사회주의 혁명세력이 집권하기 전부터 쿠바는 이미 아메리카 대륙에서 유일하게 1947년에 수립된 팔레스타인 분할안에 반대하고 팔레스타인 침탈에 항의한 국가였다. 1992년 이후 미국의 편에 선 이스라엘은 쿠바에 대한 미국의 금수 조치를 규탄하는 유엔 총회 결의안 표결에서 매번 반대표를 던졌다. 가장 최근인 2023년 11월 2일 개최된 유엔 총회에서는 31회 연속으로 절대다수인 187개국이 대(對)쿠바 금수 조치 해제에 찬성했다. 표결에 기권한 우크라이나를 제외하면 반대표를 던진 국가는 미국과 이스라엘뿐이었다. 

베네수엘라는 우고 차베스 대통령 시절인 2009년 이스라엘과 단교했다. 당시 가자지구에서는 1년간 전쟁이 이어졌고 1,000명 이상의 팔레스타인인이 사망했다. 차베스 대통령은 한편으로는 베네수엘라가 테러를 지원한다고 비난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이스라엘의 테러를 지원하는 미국 정치의 ‘이중성’을 규탄했다. 그는 또한 이스라엘 대외정보국 모사드(MOSSAD)가 자신의 암살을 시도하고 있으며 이스라엘이 베네수엘라 야당을 지원 한다고 비난했다. 

10년 후인 2019년, 야당 출신 후안 과이도가 자신이 임시 대통령이라 선언하자, 이스라엘은 자국 내 베네수엘라 대사관 개설을 승인했다. 같은 해 베네수엘라 정부는 “이스라엘의 테러리스트” 단체가 니콜라스 마두로 현 베네수엘라 대통령 암살계획에 가담했다고 비난했다. 10월 15일, 구스타보 페트로 콜롬비아 대통령은 X에서 이스라엘 출신 야이르 클레인과 라파엘 에이탄을 거론했다. 페트로 대통령은 이들이 콜롬비아에서 학살을 촉발시켰다고 비난하며 “언젠가 이스라엘 군대와 정부가 자국 군인들이 콜롬비아에서 저지른 일에 대해 사죄할 날이 올 것”이라고 덧붙였다. 역대 콜롬비아 우파 정부는 안보 및 국방 분야에서 이스라엘과 오랜 협력관계를 유지했다. 이스라엘군은 교관을 파견해 콜롬비아군(EJC)의 특수부대를 훈련시켰다.(2)

이스라엘에서 모사드의 ‘일류 스파이’로 불리는 라파엘 에이탄은 비르힐리오 바르코 바르가스 전 콜롬비아 대통령(1986~1990년)이 주도한 계획의 배후로 지목된 인물이다.(3) 1985년, 콜롬비아무장혁명군(FARC)과 공산당은 정부와 협상한 평화안에 합의하고 애국연합을 창설했다. 바르가스 대통령의 특별 고문으로 활동한 에이탄은 애국연합 당원 6,000여 명을 학살한 계획을 설계한 혐의를 받았다.(4)

야이르 클레인은 이스라엘군 중령 출신으로 콜롬비아에서 용병회사를 운영하며 마약밀매조직과 협력한 인물이다. 2001년, 콜롬비아 법원은 궐석재판을 열어 “군사적 테러의 전술, 기술, 방법을 교육 및 훈련시키고 용병을 개입시켜 테러를 더욱 악화시켰으며 범죄 음모를 꾸민 혐의”로 클레인에게 징역 10년 8개월을 선고했다. 또한 콜롬비아 사법당국은 1980년대부터 암살부대를 조직해 대지주와 정치인, 콜롬비아연합자위대(AUC)의 사주를 받은 혐의로 클레인을 기소했다. AUC는 민간인에 대한 대규모 잔학 행위로 지탄받는 준군사조직이자 마약밀매조직이다. 1985~2005년, AUC의 민간인 탄압으로 발생한 사망자 및 이주민 수는 각각 7만 명, 300만 명에 달한다. 이스라엘은 클레인의 신병 인도를 거부했다. 자국에서 여생을 보내고 있는 클레인은 자신이 콜롬비아에서 벌인 활동은 이스라엘과 콜롬비아 정부의 사전 승인을 거쳤다고 주장했다.(5)

 

침탈을 합리화하는 이스라엘의 복음주의

오늘날 이스라엘은 복음주의를 통해 라틴아메리카에서의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6) 복음주의는 2020년 기준 라틴아메리카에서 1억 3,300만 명의 신도를 보유한 개신교의 한 갈래다. 복음주의 신도들은 모든 유대인이 이스라엘 땅에 정착해야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고 그리스도가 재림할 수 있다는 종교적 믿음을 바탕으로 이스라엘 지지를 핵심 대의로 내세운다. 최근 전례 없는 확장세를 보이는 이 “기독교적 시온주의”는 라틴아메리카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복음주의 운동은 2018년 자이르 보우소나루의 브라질 대통령 당선에도 큰 역할을 했다. 그렇다면 루이스 이그나시오 룰라 다 실바 현 브라질 대통령이 팔레스타인 지지를 망설이는 이유도 자국 내 복음주의의 정치적 영향력 때문일까?

룰라 대통령이 공인된 국제주의자라는 점을 고려할 때, 가자지구 전쟁에 대한 브라질의 반응은 때때로 예상 밖이었다. 룰라 대통령은 서구 국가들과 한 목소리로 하마스의 ‘테러’ 공격을 규탄함과 동시에 ‘두 국가 해법’을 위한 협상을 촉구했다. 현재 교착 상태에 빠진 ‘두 국가 해법’은(7) 대다수 라틴아메리카 국가가 폭력의 악순환을 끊을 해결책으로 지지하는 방안이다. 10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순번제 의장국을 맡았던 브라질은 현재 안보리 상임이사국에 입후보한 상태다. 

10월 18일, 브라질은 “인도주의적 전투 중단”을 요구하는 소극적인 입장의 결의안을 제출했다. 이 결의안은 예상대로 미국의 통상적인 거부권 행사에 가로막혔다. 그 사이 이스라엘은 이미 16년간의 봉쇄와 3차례의 전쟁을 겪으며 모든 부분에서 질식상태에 처한 가자지구를 또다시 포위 및 포격했으며 수도, 식량, 전기, 연료 공급 차단했다. 브라질이 제안한 결의안은 “하마스의 추악한 테러공격”과 민간인 인질 납치를 비롯해 “민간인에 대한 모든 형태의 폭력 및 적대행위와 테러 행위”를 규탄했다. 하지만 이 결의안에는 룰라 대통령이 X에 올린 글에서 촉구했던 휴전을 요구하는 내용은 빠져있다. 

그러나 10월 25일, 룰라 대통령은 기자들 앞에서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학살’을 언급하기 시작했다. 브라질의 안보리 순번제 의장국 임기 종료를 앞둔 시점이었다. 10월 27일, <르몽드>는 “유엔 결의안 채택은 어렵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결의안 채택을 위해 끝까지 노력할 것이다”라는 한 브라질 협상가의 발언을 실었다. “끝까지”, 즉 10월 31일까지 결의안 채택을 이끌어내지 못한 룰라 대통령은 하마스를 에둘러 비난했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폭격 24일째, 룰라 대통령은 X를 통해 “전쟁을 일으킨 무책임한 자들이 이제 아이들의 죽음을 애도하는 것인가? 이제서야 책임을 통감하는가?”라고 꾸짖었다. ‘국제사회’로부터 인정받으려면 이 정도 대가는 치러야 하는 것일까? 

 

 

글·메리엠 라리비 Meriem Laribi
기자. 중남미와 팔레스타인 현안을 주로 보도한다. 

번역·김은희 
번역위원


(1) Éric Rouleau ‘L’attitude de Cuba à l’égard du problème palestinien diffère de celle des pays arabes “progressistes”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해 “진보적인” 아랍 국가들과 다른 태도를 보이는 쿠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1968년 2월호.
(2) Erich Saumeth, ‘Israel capacita a las Fuerzas Especiales del Ejército Colombiano’, 2020년 10월 1일, infodefensa.com
(3) Dan Cohen, ‘Une nouvelle enquête révèle le rôle d’agents israéliens dans le “génocide politique” en Colombie 추가 조사로 콜롬비아에서 벌어진 “정치적 집단 학살”에서 이스라엘 요원의 역할이 밝혀지다’, <Mintpressnews>, 2021년 6월 2일.
(4) Luis Reygada, ‘Pourquoi le président colombien a accusé Israël d’avoir “suscité des massacres” dans son pays 콜롬비아 대통령이 콜롬비아에서 “학살을 선동”한 혐의로 이스라엘을 비난한 이유’, <L’Humanité>, Saint-Denis, 2023년 10월 24일.
(5) Dan Cohen, ‘El rol de agetes israelíes en el genocido político colombiano’, 2023년 10월 16일, https://misionverdad.com ; Brandon Barret, ‘Israeli mercenary Yair Klein trained paramilitary “with the approval of the Colombian authorities”’, 2012년 3월 26일, https://colombiareports.com
(6) Akram Belkaïd & Lamia Oualalou, ‘Eglises évangéliques, une internationale réactionnaire 기독교 복음주의, 반동적인 초국가기구’,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20년 9월호.
(7) Thomas Vescovi, ‘L’échec de la solution à deux États 해법 없는 하마스-이스라엘 전쟁의 뿌리’,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23년 1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