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열에 저항하는 팔레스타인 예술가들

존재, 증언, 투쟁을 위한 예술

2023-12-29     올리비에 피로네 l 기자

팔레스타인 예술가들에게 예술은 이스라엘 점령에 저항하는 투쟁수단이다. 이 예술 투쟁의 목표는 팔레스타인 민족의 집단기억을 보존하고, 추방과 강제이주의 해로운 영향력을 상쇄하는 것이다. 그 세계적 명성에도 불구하고, 팔레스타인 예술가들은 예루살렘에서 파리에 이르기까지 검열에 갇혀있다.

 

제 2차(2000~2005) 인티파다(Intifada, ‘봉기’를 뜻하는 아랍어, 팔레스타인의 반이스라엘 투쟁을 지칭-역주)가 한창이던 2002년 봄, 이스라엘군은 팔레스타인의 저항을 억압하기 위해 요르단강 서안 ‘자치’ 지구(전체 영토의 18%)에서 ‘방어막 작전’을 개시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에 한 획을 그은 이 공격으로 서안지구에서는 수백 명의 사망자와 막대한 물적 피해가 발생했다. 특히 이스라엘군의 메르카바 전차가 휩쓸고 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수도’ 라말라에서는 건축물들은 물론 도로에 세워진 민간 차량들까지 파괴됐다. 이스라엘군의 전차는 이렇다 할 이유 없이 1,000대가 넘는 차량들을, 심지어 구급차들까지 짓밟았다.

 

이스라엘 전차에 두 번 짓밟힌 도시

팔레스타인 예술가 베라 타마리(1)는 자신의 집 발코니에서 65톤짜리 강철 괴물(탱크)의 암울한 ‘발레’를 목격했다. 이스라엘의 침공 직후 타마리는 라말라 외곽의 알비레에 ‘드라이브 할래?(Masheen?)’라는 조롱 섞인 제목의 설치 미술작품을 선보였다. 마을 길을 따라 설치된 부서진 차량들은 이스라엘군의 잔인성을 드러냈다. 그러나, 이 전시는 얼마 가지 못했다. ‘전시회’ 개막일인 2002년 6월 23일, 이스라엘 전차가 들이닥쳐 작품들을 포격했고, 잔해 위를 여러 차례 오가며 산산조각을 낸 것이다. 심지어 이스라엘 군인들은 전차에서 내려 연기가 자욱한 잔해 위에 소변을 갈기기도 했다. 타마리는 군인들 몰래 이 장면을 촬영했다. 마르셀 뒤샹의 열렬한 추종자인 타마리는 이 순간조차 일종의 비통한 예술적 행위로 승화시켰다.(2)
이스라엘 군인들이 타마리의 작품을 파괴한 방식은 야만의 극치다. 1993년 ‘평화협정’ 체결 후 이스라엘은 1967년 정복한 팔레스타인 영토 일부에서 군대를 ‘철수’했다. 이전까지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민중의 저항운동을 전적으로 규제하는 법을 제정해, 팔레스타인 민중의 일상과 예술을 함께 억압했다. 타마리의 작품을 짓밟은 군인들은 아마도 그때를 떠올렸을 것이다. 이스라엘은 예술의 위력을 잘 알고 있었다. 수십 년 동안 식민지 억압으로 고통받는 민족의 기억을 일깨우며, 마음을 움직이는 예술의 힘을 잘 알고 있었다. 팔레스타인의 예술이 이스라엘의 위협 요소가 될 수 있음을 인지했던 것이다. 

 

 

색상까지 검열 당하는 참여예술

이런 이스라엘의 억압 때문에, 점령 기간 내내 서안지구에 예술가 공식 갤러리는 존재할 수 없었다. 팔레스타인 예술가들은 작품을 전시하려면 이스라엘군의 허가를 받아야 했고, 전시장은 학교, 교회, 시청 등으로 한정됐다. ‘참여적’ 성격이 강한 작품들은 검열 당했다. 게다가 이스라엘 군인들이 전시회장에 난입해 전시를 난장판으로 만들기도 했다. 마치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의 영토뿐만 아니라 문화 역시 지배한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려는 듯했다. 이스라엘 당국은 특정 색상의 시각 예술작품을 면밀히 주시했다. 당시 금지대상이었던 팔레스타인 국기를 구성하는 검은색, 흰색, 녹색, 붉은색뿐만 아니라 팔레스타인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다른 상징들도 마찬가지였다. 일부 예술가들은 팔레스타인 국기와 유사한 색 조합을 사용했다는 이유로 이스라엘 당국에 체포되기도 했다.(3) 

1993년 서안지구와 가자지구에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NA)가 수립되면서 팔레스타인 국기는 PNA의 공식기가 됐다. 이스라엘은 이후에도 팔레스타인 국기 사용을 여전히 규제했다. 이스라엘과 동예루살렘에 거주하는 팔레스타인인뿐만 아니라 평화를 지지하는 이스라엘인도 팔레스타인 국기를 시위에 동원하지도, 공공장소에 게양하지도, 착용할 수도 없다. 이를 위반할 시 금고형에 처해진다.(4)

 

미국에서는 최근 샌프란시스코 현대 유대 미술관이 주최한 전시회 ‘티쿰:우주와 공동체 그리고 우리 자신을 위하여(Tikkun: For the Cosmos, the Community, and Ourselves)’ (2022년 2월~2023년 1월)를 계기로 팔레스타인 국기에 대한 논쟁이 벌어졌다. 미국 조형 예술가 토샤 스티마지(Tosha Stimage)는 이 전시회에서 ‘아무도 우리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No one is listening to us)’라는 제목의 작품을 선보였다. 세 점의 작품 아래, 팔레스타인에서 흔히 피는 꽃들과 유사한 종이꽃이 꽂힌 도자기 화병이 놓여있다. 화병마다 팔레스타인 국기가 붙어 있다.(5) 스티마지의 작품에 대해, 일부 관람객과 이스라엘 언론은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으나 대다수의 관람객은 높이 평가했다.(6) 2008년 시카고 스퍼투스 유대학 연구소에서 이스라엘인과 팔레스타인인이 생각하는 조국의 개념을 주제로 한 전시회가 열렸었는데, 그때는 정반대 상황이 펼쳐졌었다. 연구소 문화 센터는 개막 몇 주 만에 전시회를 종료해야 했다. 지역 유대인 공동체가 팔레스타인 국기와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사진 전시에 강한 분노를 표명했기 때문이었다. 

 

팔레스타인 예술을 향한 서구의 차가운 시선

팔레스타인 예술에 대한 논란은 프랑스도 예외가 아니다. 2013년 여름, 죄드폼 국립미술관에서 팔레스타인 사진작가 아흘람 시블리의 전시회 ‘유령의 집(Foyer fantôme)’이 열렸다. 이 전시회는 극우성향으로 유명한 프랑스 유대인 기관 대표 협의회(CRIF)의 강한 반발을 샀다. 서안지구와 가자지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제2차 인티파다 사망자의 사진들로 구성된 시블리의 전시회는 팔레스타인 사회에서 비극적인 죽음이 얼마나 흔한지, 점령당한 민족이 어떤 고통을 받고 있는지 증언했다. CRIF는 이 전시회가 반유대주의와 ‘테러리즘을 옹호’한다며 전시회 종료를 요구했다. 미술관 앞에서 집회가 열렸고, 전시회를 향한 위협이 쏟아졌다. 심지어 폭탄 테러 경보까지 발령됐다. 

 

1990년대 부르주 미술학교를 거쳐 2006년 프랑스에 정착한 가자지구 출신 조형 예술가 타이시르 바트니지 역시 2002년 파리에서 첫 전시회를 개최하기 전까지 수많은 갤러리에서 문전박대를 당했다. 바트니지는 프랑스와 해외에서 예술성을 인정받았음에도, 프랑스의 일부 문화시설은 그의 작품을 전시하지 않고 있다. “미술계의 일부 주요 기관과 관계자들은 여전히 팔레스타인 작가들을 ‘기피’하고 있다. 프랑스, 특히 파리 시내에서 팔레스타인 예술가의 작품을 전시하는 것은 팔레스타인 지지 표명으로 간주된다.”(7)

 

 

저항 속에 피어난 팔레스타인 현대예술

1948년 이스라엘의 건국과 함께, 약 80만 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이 고향에서 추방됐다. 이것이 나크바(Nakba), 팔레스타인 대재난의 시작이다. 이후 팔레스타인 예술은 땅, 뿌리, 정체성을 박탈당한 민족이 당했던 역사적 불의를 상기시키는 강력한 정치적 의미를 담아냈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상대로 벌인 전쟁은 처음부터 팔레스타인의 문화 파괴를 시도했다. 이스라엘은 영토 약탈을 넘어 예술, 문학, 문화재를 공격하며 ‘집단기억 말살’ 전략을 펼쳤다. 1948~1949년, 제1차 이스라엘-아랍 전쟁 당시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내 530여 개 마을을 파괴 및 약탈했고 수만 점의 책, 필사본, 악보, 그림, 수공예품을 파기 및 압수했다. 박물관, 도서관 등 문화시설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1982년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의 근거지인 베이루트를 침공한 이스라엘군은, 역시 집단기억 말살을 위해 팔레스타인연구센터를 파괴하고 많은 문화예술 자산을 압수했다. 

전쟁의 불씨 속에서 피어난 팔레스타인 현대예술은, 시작할 때부터 반이스라엘 애국 투쟁을 함양하는 역할을 했다. 화가 이스마일 샤무트(1930~2006)와 슬리만 만수르(1947~), 그리고 1987년 피살된 삽화가 나지 알알리 등 팔레스타인 예술가들은 이스라엘의 과거 말살 시도와 억압에 맞서는 기억과 저항의 문화를 작품에 녹여냈다. 이들이 창조한 상징들은 팔레스타인 민중 문화유산의 일부가 됐다.

샤무트의 그림 ‘어디로?(Where to?)’(1953) 속 난민의 모습이나 알알리가 1969년 창조한 유명 캐릭터 한달라가 대표적인 예다. 1964년 카이로에 수립된 PLO는 민족주의를 장려하기 위해 그래픽 아트와 회화를 적극 활용했다. 1960년대 PLO는 팔레스타인 예술 전담 부서를 창설해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역내 및 국제사회의 공감을 끌어냈다.(8) PLO가 선호한 매체인 정치 포스터는 1970~1980년대 여론의 연대를 고취하는 역할을 했다.

 

 

세계에서 인정받아도, 식민지 폭력에 갇혀있는 예술 

제1차 인티파다(1987~1993) 동안 새로운 예술 세대가 등장했다. 저항적인 성격의 벽화나 그래피티가 이 시기에 번성했다. 하지만 에밀리 자키르, 알라 유니스, 칼레드 후라니, 나빌 아나니, 타이시르 바트니지와 같은 일부 예술가들은 전통적인 회화 영역과 지배적인 서사 체계를 벗어난 색다른 시각 예술의 길을 모색했다. 이들은 팔레스타인 추상 미술의 선구자인 화가 겸 사회운동가 사이마 할라비(1936년생)나 구상적 아카데미즘을 탈피한 슬리만 만수르의 발자취를 따라 보다 개념적이고, 주관적이며, 실험적인 표현 방식을 추구했다. 이들 중 일부는 도자기, 구리, 천, 나무, 점토, 모래, 진흙 등 일상에서 찾은 재료와, 팔레스타인 순수 예술 영역에서 제외됐던 사진 및 비디오 등을 활용했다.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부터 팔레스타인 예술가들은 세계 각지의 전시회와 비엔날레에 참여해 인지도를 높였으며 국제 현대 미술계의 일원으로 자리매김했다. 이들의 작품은 심미적 가치와 혁신성으로 충분히 인정받았지만 더 많은 주목을 받은 것은 실향, 망명, 향수, 대대로 물려받은 땅의 해체와 같은 주제다. 바트니지는 오늘날의 팔레스타인 예술가들은 “인간적이고 보편적인 차원의 접근법”을 추구하지만, 계속되는 식민지 폭력을 홀로 감당해야 하는 팔레스타인의 “정치 및 사회적 맥락을 무시할 수 없다”(9)라고 지적했다.

2023년 5월,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에서 또 한 번 유혈 군사작전을 펼쳤다. 이후 가자지구 해안가 중심부 데이르 알발라에는 독특한 ‘전시관’이 세워졌다. 가자지구 예술가들은 이스라엘의 미사일에 파괴된 아파트 단지에서, 몇 개 남지 않은 벽을 찾아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겪는 비극을 그려냈다.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망각에 맞선 것이다.(10) 부상을 입고 붕대를 감은 채 눈물을 흘리는 어린 소년의 모습을 담은 한 벽화가 눈길을 끈다. 소년의 시선은 마치 관람객들을 증인으로 남기려는 듯 응시한다. 소년 뒤에서 날아오는 전투기와 폭탄은 곧 소년을 산산조각 날려버릴 기세다. 마치 바로 몇 달 후 이스라엘이 이 작은 땅에서 벌이는 대규모 섬멸 작전으로 수천 명의 아동이 겪게 될 운명을 예고하는 듯하다. 

 

 

글·올리비에 피로네 Oilivier Pironet
기자

번역·김은희 
번역위원


(1) Malu Halasa, ‘The creative resistance in palestinian art’, <The Markaz Review>, Los Angeles(California), 2021년 5월 14일.
(2) Penny Johnson, ‘Ramallah Dada: the reality of the absurd’, <Jerusalem Quarterly>, Columbia University(New York), n° 16, 2002년 11월.
(3) Eray Alım, ‘The art of resistance in the palestinian struggle against Israel’, <Turkish Journal of Middle Eastern Studies>, Sakarya(튀르키예), vol. 7, n° 1, 2020년 6월.
(4) ‘Flag restrictions are the latest attempt to silence Palestinians and reduce their visibility’, Amnesty International, 2023년 1월 11일.
(5) Rabbi Peretz Wolf-Prusan, ‘The deep listening of Tosha Stimage’, Contemporary Jewish Museum, 2022년.
(6) ‘At a jewish museum, a non-jewish artist’s use of the palestinian flag sparks debate’, <The Times of Israel>, Jerusalem, 2022년 11월 16일.
(7),(9) Taysir Batniji, 전시회 ‘Quelques bribes arrachées au vide qui se creuse, 깊어지는 공허에서 건진 단편들’ 도록에 실린 인터뷰 ‘Habiter le temps 시간 속에 살다’, 발드마른 현대미술관(MAC VAL), Vitry-sur-Seine, 2021년.
(8) Marion Slitine, ‘Les réseaux de l’art contemporain en Palestine 팔레스타인의 현대예술 네트워크’, 『Penser la Palestine en réseaux 인터넷을 통한 팔레스타인 문제 고찰』(공저), Diacritiques Éditions - Presses de l’IFPO, Marseille - Beyrouth, 2020년.
(10) ‘Gaza graffiti artists bedeck houses destroyed by Israel in war’에 실린 사진들, <Reuters>, 2023년 6월 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