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 지구환경 위기의 거울
그랜트 밸러드 박사는 지난 21년간 미국, 뉴질랜드, 남극을 오가며 생태계를 연구해온 학자다. 아델리펭귄의 생태, 남극의 로스섬과 로스해의 조류 생태계를 연구하고 있다. 한국 극지연구소가 주최하는 18차 극지연구 심포지엄 참석차 지난 5월 21일 제주에 온 그를 만나 남극 보존에 관한 견해를 들었다.
당신이 과학자인 것은 알고 있다.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소개해달라.
생태학자(Ecologist)다. 공항에서 직업란을 쓸 때, 나는 생태학자라고 쓴다.
왜 남극에서 펭귄 같은 조류를 연구하게 되었나.
스승인 데이비드 에인리 박사를 만난 것이 계기다. 남극에서 연구하는 사람을 우연히 만났는데, 그로부터 지금 우리가 사는 곳과는 완전히 다른 환경과 생태계에서 새로운 것을 배우고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얻었다. 우연한 만남과 호기심으로 시작한 일이 자연에 대한 경외와 열정으로 이어졌다.
남극에서도 특히 로스해(Ross Sea)에서 연구하는 것으로 안다. 로스해는 어떤 곳인가.
지구의 바다 중 가장 오염이 안 된 원시바다다. 과학적 이유에서 로스해는 지구상에서 인간의 영향을 받지 않은 무결한 생태계를 연구할 수 있는 곳이다. 그동안 인간은 지구의 많은 바다를 훼손시켜 본래 자연 상태가 어떠했는지 모른다. 우리 인간의 역사와 기억은 짧지만 로스해는 수천∼수만 년을 기억하고 있다. 로스해에는 수백 마리의 고래, 바다표범, 펭귄, 각종 물고기 등 다양한 생물종이 살고 있다. 이들을 통해 생명은 원래 어떠했는지, 지구는 어떤 곳이었는지를 보여준다. '생명에 대한 경외'(Biophilia)를 일깨우는 곳이다. 생명이 그대로 보존돼 있을 때 그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말이다.
최근 로스해 같은 남극의 바다를 해양보호구역(MPA·Marine Protected Area)으로 설정하려는 국제사회의 움직임이 일고 있다. 로스해를 온 인류의 MPA로 설정하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인간들은 자신이 영리하고 능력 있다고 생각하지만 절대 아니다. 자연 생태계의 균형이 어떻게 기능하는지, 그 균형을 회복시키기 위한 여러 자료와 지식을 얻을 수 있는 모델이 필요한데 이미 지구상에 그런 모델은 대부분 파괴돼 사라졌다. 로스해와 남극해 전체는 그 점에서 자연 균형의 한 모델이다. 이곳은 생물다양성이 풍부해서 남극해를 MPA로 설정하게 되면 상당한 넓이의 바다 전체를 지금 그대로 보호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자원관리 측면에서도 후손에게 아름다운 자연과 자원을 물려줄 수 있다. 그리고 로스해에는 아주 많은 플랑크톤이 살고 있다. 플랑크톤은 육지의 숲처럼 이산화탄소를 상당량 흡수해 심해에 저장하는 순기능을 한다. 기후변화 측면에서도 이 바다를 보존해야 하는 이유 중 하나다.
6월에는 '리우(RIO)+20' 정상회의가 열린다. 인류가 지난 20년간 지구 전체의 기후변화와 환경변화 문제에 대해 얼마나 진정으로 고민했는지 스스로 질문을 던져보아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지구 기후변화의 바로미터인 남극을 매년 방문하는데 기후변화를 실제로 체감하고 있는가.
1996년 처음 남극에 가서 연구를 시작할 때 연구원들끼리 정한 규칙이 있다. 바깥 바람이 20mph가 넘을 경우 바깥 활동을 자제한다는 것이다. 왜냐면 그 정도의 바람이 불면 바깥에서 만나 일하기가 매우 힘들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로부터 5년이 지나서는 그 기준을 30mph로 올려야 했다. 최근에는 40mph로 올렸는데 낮 동안에 평균 바람의 세기와 속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어서 날씨와 상관없이 일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연구하는 지역의 바람이 이렇게 세진 것은 기후변화 영향 때문이다. 게다가 1996년 이전에는 볼 수 없던 매우 많은 눈을 동반한 폭풍도 잦아지고 있다. 눈이 증가한다는 것은 이 지역의 기온이 따뜻해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직은 눈에서 비로 바뀔 정도로 따뜻하지는 않지만 머지않아 비를 볼 날이 올 것이다. 이 지역은 지난 10만 년 동안 비가 내린 적이 없는데 말이다. 기후변화 문제는 이미 심각하다.
당신 말대로 기후변화의 위기는 심각하지만 관련 국제회의에서 과학자들은 연구 결과와 데이터만을 제시할 뿐, 모든 결정은 정책 결정자들의 몫이다. 과학자들은 왜 그리 쿨한가.
목소리를 크게 높이는 과학자들도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의 칼 세이건 같은 과학자는 TV 프로그램에 나오며 유명해졌는데 그는 매우 대중적이었다. 그러나 그가 제시한 한 가설이 과장됐다는 동료 과학자들의 비판에 직면하면서 그의 명성은 빛을 잃었다. 과학자들은 동료들이 나의 가설을 어떻게 평하는지에 두려움을 갖고 있다. 그래서 너무 자만하거나 확신하거나 실수하지 않기 위해 조심한다. 하지만 자신의 일에 대해 너무 소심해지거나 주변을 의식하지 않았으면 한다. 많은 과학자들이 그들의 연구가 결국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될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환경 위기에 직면한 지금 우리에겐 시간이 없다. 우리가 일반 대중에게 과학이 무엇인지, 이론과 함께 행동에 참여하는 것이 중요함을 알려줄 필요가 있다.
한국은 세계에서 7번째로 자국 쇄빙선을 건조했고, 세종기지에 이어 로스해 근처에 제2기지인 장보고기지를 건설 중이다. 그러나 한편으론 한국 원양업계가 최근 몇 년간 보존 조처 위반과 남획 등으로 구설에 오르고 있다. 향후 남극해 보존과 남극 연구의 평화적 이용을 위해 한국에 기대하는 바가 있는가.
쇄빙선도 갖추고 이제 남극에 기지를 2개나 갖게 되면서 한국은 정말 중요한 남극 당사국이 되었다. 남극에서 얻은 과학적 성과가 남극 보존에 기여할 수 있게 노력하는 리더십을 보여줘야 한다. 한국은 남극 생태계를 이해하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는 중요한 위치에 있다. 그 기여를 통해 인류 전체가 지구환경 보존 노력의 정당성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남극의 미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지금은 정부 간 남극조약으로 남극의 광물자원 개발이 금지돼 있고, 남극에서는 어느 나라도 영유권을 주장할 수 없다. 하지만 언젠가 석유가 고갈되는 에너지 위기가 닥친다면, 많은 강대국들이 석유 개발을 위해 남극에 몰려가지 않을까.
그럴 가능성이 있고, 실제 많은 사람들이 걱정하는 문제다. 그러나 이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믿고 싶다. 복잡미묘한 문제지만, 석유의존도를 줄여야 한다. 만약 에너지 위기가 와서 남극을 개발하는 일이 벌어진다면 정말 슬픈 일일 것이다. 그러나 본질적인 문제는 우리가 이미 너무 많은 석유를 태워버렸다는 것이다. 여기저기 많은 석유를 채굴해 고갈시켰고, 남아 있는 지역의 석유 자원 개발도 용이하지 않다. 우리 행동을 당장 바꾸어야 한다. 이산화탄소 농도는 이미 한계를 넘어 최악의 시나리오가 예상된다. 기술 혁신을 믿고, 많은 사람들이 이를 알아야 한다. 젊은이들이 이 일에 관심 가지고 늘 지켜봐야 한다. 그리고 광기의 질주에 '안 돼!'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남극의 광물자원 개발은 무슨 일이 있어도 막아야 한다.
인터뷰•박지현 sophil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