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회의론이 고개를 드는 우크라이나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명 피해가 계속되고 있지만, 전쟁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우크라이나는 자원병 모집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정의를 요구하는 국민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우크라이나 정부는 반부패 정책을 내세우며 한편으로는 복지국가와 노동조합 해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여전히 전쟁이 한창인 가운데, 상이군인들은 변호사를 고용하고 이주민들은 휴대전화로 행정 서비스를 이용하는 나라, 우크라이나의 실상을 들여다보자.
지난해 8월 하순 크리비리흐를 방문했다. 예상과 달리 이 광업 도시의 분위기는 그리 무겁지 않았다. 다소 구식이기는 하지만 신고전주의 양식의 극장이 위엄을 뽐내는, 옛 소련의 매력이 잘 보존된 도시였다. 가가린 공원에 산책 나온 사람들이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천체투영대 아래를 한가롭게 거닐고 있었다. 아동들을 위한 에어바운스 놀이궁전 뒤에서는 노년 여성들이 정원에서 따온 산딸기를 팔고 있었다. 행인들은 발걸음을 멈추고 딸기 가격을 흥정했다. 대공 사이렌이 울렸지만 흥정은 계속됐다.
크리비리흐에서 100km 떨어진 드니프로강 좌안에는 러시아군이 주둔하고 있다. 전쟁이 2년 가까이 계속된 지금, 공습 사이렌이 울려도 하늘을 쳐다보는 사람이 없다. 바로 전날, 시내 중심가 인근에 떨어진 미사일로 20채 이상의 주택이 파손됐다. 8월 1일에는 미사일 공격으로 민간인 6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보다 두 달여 전인 6월 13일에는 9층짜리 건물이 러시아군으로부터 미사일 공격을 받았다. 11명의 사망자가 발생하자,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고향 크리비리흐를 찾았다.
직장에서 징집 통지서를 받는 노동자들
이렇게 전쟁의 여파를 고스란히 겪고 있는 크리비리흐는 광석 및 철강 수출로 살아가는 도시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제국에 속했던 1880년, 프랑스의 엔지니어 겸 은행가 폴랭 탈라보는 크리비리흐 최초의 제철소를 건설했다. 이후 크리비리흐에서 생산된 광석과 철강 제품은 해상으로 수출됐다. 하지만 전쟁이 발발하고 흑해 항구들이 봉쇄되자, 크리비리흐의 수출업체들은 높은 운송비용을 감수하며 육로를 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수출량은 급감했고, 수출지역도 전통적 시장인 근동, 북아프리카 대신 유럽으로 바뀌었다.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의 에너지 시설을 표적으로 삼은 이후 종종 발생하는 정전사태도 경제활동을 저해하는 요소다. 직원 수 2만 6,000명으로 크리비리흐 최대 고용 규모를 자랑하는 철강기업 아르셀로미탈 크리비리흐(AMKR) 경영진은 “생산인력의 20~25%만 활용 중이다”라고 설명했다.(1) 2023년 8월 말, 전일제 근무자는 1만 2,000명에 불과하며, 전체 노동자의 약 10%가 군대에 소집됐다. 이들 중 100여 명이 전장에서 돌아오지 못했다.
크리비리흐처럼 대규모 산업이 밀집된 도시에서는 노동자들이 우선적으로 군대에 동원될 가능성이 높다. 우크라이나에서 두 번째로 큰 노동조합인 우크라이나 자유노동조합연맹(KVPU)의 크리비리흐 지부 자문을 맡고 있는 올렉산드르 모투즈 노동법 전문 변호사는 “등록된 거주지가 실제 거주지와 일치하지 않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군인을 소집하는 것은 대규모 고용주들을 통하는 것이 더 편리하다”라고 설명했다.
“군 경찰은 직장을 통해 소집 통지서를 전달한다. 노동자가 소집에 응하지 않으면 군 경찰은 고용주에게 압력을 행사한다. AMKR의 노동자 한 명도 이런 경우를 겪었다. 회사는 그가 출근하면 군 경찰서에 다녀왔는지부터 확인했다. 이 직원은 결국 사표를 냈다. 노조 지도부는 군 경찰이 광산 바로 앞에서 회사 버스를 가로막는 사례도 보고받았다.” AMKR을 포함한 고용주들은 전체 직원의 50% 내에서 고위 간부나 숙련 노동자들을 ‘비축’, 즉 동원 대상에서 제외시킬 수 있다. 하지만 동원 규모가 커질수록 고용주들의 권한은 줄어들 것이다.
“젠장, 나는 33세다!”
빅토르(2)는 8월 중순에 소집 통지서를 받았다. AMKR에서 현장감독으로 근무하며 ‘비축’ 인력에 속했던 그는 이제 35세 이상의 직원만 소집 면제 대상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나는 33세다. 젠장!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나이다. 34세만 넘기면 늙어 죽을 수 있을 텐데!” 빅토르는 노조가 소집을 앞둔 노동자들에게 지급한 간이 매트리스, 침낭, 카키색 배낭을 포장도 뜯지 않고 그대로 차 뒷좌석에 실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다음 날 빅토르는 자발적으로 모병소를 찾았었다. “이틀 동안 줄을 섰다. 모병관들은 나를 뽑지 않았지만 다시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18개월이 흘렀다. 빅토르는 “2014~2015년 전쟁터에 나간 친구 5명 모두 전사했다”라며 흐느꼈다. 당시 빅토르는 키이우 마이단 광장(독립 광장)에서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을 옹호하는 경찰과 대치했다. 대규모 시위 끝에 야누코비치 정권은 2월 22일 축출됐다. 이후 돈바스 지역에서 친러 분리주의 반군이 봉기했다.
“많은 친구들이 (2014년 4월 7일 올렉산드르 투르치노프 임시 대통령이 개시한) 대테러 작전에 자원했다. 이들은 극우세력인 우익 섹터(Pravyï sektor) 또는 아조우(Azov) 연대에 합류했다.” 이제 빅토르의 차례가 돌아왔다. 과거 몸싸움을 벌이다 두 손가락을 잃은 빅토르는 병역 부적격 판정을 받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군의관은 부적격 판정서 발급 대가로 4,000달러를 요구했다. “사람들은 암암리에 뇌물 브로커를 언급했다. 과거 나는 브로커를 고용해 유죄 판결을 피한 적도 있다. 하지만 이제 나는 결심했다. 전장에 나가야 한다면 피하지 않겠다.”
모병소 밖 줄은 사라졌다. 이제 모두가 병사들의 일상을 공유하고 있다. 중소도시의 시외버스 정류장에서 상이군인들과 마주치는 것은 흔한 일이 됐다. 전장의 병사들은 가족과 항시 연락을 주고받는다. 가족들의 휴대전화에는 병사들의 사진이 끊임없이 도착한다. 군 지휘부는 병사들과 가족 간 연락은 거의 검열하지 않는 듯하다. 크리비리흐에서 영어 교사로 일하는 다차는 31세인 아들과 8일째 연락이 끊겼다. 아들 걱정에 잠을 설치고 있는 다차는 아들이 보내온 영상을 보여줬다. 폭격으로 무너진 건물 잔해 속에서 생일을 맞이한 다차의 아들은 “생일파티를 하기 딱 좋은 날”이라고 빈정거렸다. <뉴욕타임스>가 취재한 익명의 미국 정부 관계자들에 의하면, 2023년 8월 중순까지 우크라이나 측 사망자는 7만 명, 중상자는 12만 명에 달한다.(3)
노동자의 권리까지 파괴하는 전쟁
그런데, 불만의 목소리는 우크라이나 법원에서도 높아지고 있다. 모투즈 변호사의 사무실은 새로운 고객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바로 우크라이나 병사들이다. 대부분은 급여 관련 소송이다. 2022년 7월, 우크라이나 의회는 고용주가 군대에 소집된 노동자의 임금을 계속 지불할 의무를 면제하는 법을 채택했다. 복무 중인 병사들은 목숨을 걸고 싸우면서도 군대에 소집되기 전보다 더 적은 대가를 받는 상황을 용납할 수 없다. 숙련 노동자들의 불만은 더욱 크다. 2만 흐리우냐(약 500유로)의 병사 급여로는 대출을 갚지도, 양육비를 지불할 수도 없다.
모투즈 변호사는 “자원했던 병사들은 사기당한 심정을 호소한다. 100여 건의 임금 소송 중 (법률불소급의 원칙을 적용한) 판례를 남기길 바라는 마음에서 3건을 무료로 변호했다. 하지만 8월 초 비슷한 소송을 기각하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라고 설명했다. 부족한 임금에 대한 분노로, 우크라이나 병사들의 애국심은 식어버렸다. 다차는 “전쟁 초기 하나로 똘똘 뭉쳤던 우크라이나 사회는 이제 전방과 후방으로 분열됐다”라고 한탄했다. 그리고는 이렇게 덧붙였다. “SNS에 올라오는 휴가 사진들을 보면 화가 난다. 내 아들은 2월 24일 입대했다. 이제 병사들은 지쳤다. 정부는 18개월이 지나면 소집 해제를 허용하는 법을 만들겠다고 했지만,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라고 덧붙였다.
모두의 관심이 전쟁과 경제적 생존에 쏠려있는 사이, 우크라이나 국민의 사회적 권리는 해체되고 있다. 2022년 7월, 우크라이나 의회는 단체 협약을 중지하고 고용주가 일방적으로 노동조건을 수정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4) 노동자가 거부할 경우 고용주는 2개월의 사전 통지 기간을 지키지 않고 노동조합의 동의를 구할 필요도 없이 노동자를 해고할 수 있게 됐다. 2022년 8월 17일 대통령이 비준한 법률 제5371호는 (우크라이나 전체 노동력의 70%를 차지하는) 중소기업 노동자 대상 특별 제도를 도입했다.
노동자 수 250명 미만의 사업장은 임금, 휴가, 노동시간 등의 노동조건을 노사 상호 협상으로 결정할 수 있으며 (최저임금 절반 이상의 보상금 지급 의무를 제외하면) 아무런 제약 없이 노동자를 해고할 수 있게 됐다. 또 다른 법률은 최저 노동시간을 명시하지 않는 ‘제로 아워(Zero-hour)’ 노동계약을 도입했다. 모투즈 변호사는 “전쟁이 경제활동에 미치는 영향을 무시한 채, 고용주에게만 유리하게 만든 법이다. 격전지 자포리자에서 전쟁을 비껴간 트란스카르파티아 지역에 이르기까지, 동일한 원칙이 적용되고 있다. 이로써 정부의 반사회적 의도가 명백히 드러났다”라고 분노했다.
우크라이나 노동조합과 이들을 지지하는 국제적 압력(5) 그리고 국제노동기구(ILO)의 이의제기로 우크라이나 정부는 이 반사회적 법률들의 적용 기간을 분쟁 기간으로 한정했다. 모투즈 변호사는 “전쟁의 종식은 1991년 국경의 부활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는 당장 실현 가능한 일이 아니다. 이 법제는 계속 유지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과거 무산됐던 다른 개혁들도 전쟁을 계기로 정당성을 되찾았다. 사회보험(사고 및 실업) 기금을 해체하고 연금 기금으로 기능을 이전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이 개혁을 주도한 갈리나 트레티아코바 여당 의원은 “전시 상황에서 경제의 출혈을 막기 위해 필요한 개혁”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번 결정으로 사회보험 기금이 고의로 재정 위기를 초래한 사실이 드러났다. 2016년 이후 사회보장 분담금의 사회보험 할당 비율은 14%에서 9%로 감소했다. 사회보장 분담금도 반으로 줄었다. 2020년 1월 초, 트레티아코바 의원은 “사회보험의 탈공산화”와 보험시장 민간 개방을 촉구했다.(6)
전쟁 이후 무력해진 노동조합
우크라이나 최대 노동조합도 검찰의 칼날을 피해가지 못했다. 러시아 침공 이전 900만 명의 조합원을 보유했던 우크라이나 노동조합연맹(FPU)은 정부를 견제하는 역할을 전혀 하지 못했다. FPU는 파업보다는 노사협상을 통해 분쟁을 피하는 것을 선호하며, 대기업의 노사 문제를 고용주와 공동관리한다.(7) 하지만 현 정부는 이것도 용인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전쟁은, 우크라이나 검찰에게 30년 전 시작한 사법 게릴라전에서 이길 기회를 준 셈이다.
정부와 FPU 간 분쟁은 1990년대에 시작됐다. 소련 붕괴 이후 소비에트 노동조합 중앙위원회의 우크라이나 지부는 모스크바 본부로부터 독립했다. 이 과정에서 탄생한 FPU는 주식회사 형태의 영리법인 2개를 설립하고 우크라이나 지부가 관리해왔던 우크라니아 영토 내 요양소와 휴가 및 레저 센터들의 재산권을 등록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1997년부터 검찰을 내세워 이를 무효화하고 법원을 통해 해당 시설들의 국유화를 시도했다. 그러나, 이런 정부의 시도는 실패했다. FPU는 유럽인권재판소로부터 (정부가 곧 다시 민영화할) 이 시설들을 국유화해도 국민에게 이익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판결을 받아냈다.(8)
그러자 정부는 형사 분야로 전환했다. FPU의 2인자 볼로디미르 사엔코는 “심각한 규모의 횡령 또는 조직적 횡령” 혐의로 10개월 이상 구금 상태다. FPU가 보유한 총 50개 시설 중 40개 이상이 가압류 상태다. 2014년 시위대와 경찰의 충돌로 화재 피해를 입었던, 마이단 광장의 노동조합회관이 대표적인 예다. 러시아의 크름반도 합병으로 이미 많은 자산을 잃은 FPU는 팬데믹 이전 연맹의 재정 수입의 50~60%를 차지했던 시설들도 빼앗겼다. 실업급증과 경제위기로 조합원 수와 회비가 대폭 감소해, FPU는 파산 위기에 처해있다.
FPU 지도부는 정부의 위협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듯 보인다. 내부 자료에 따르면 FPU는 전쟁 초기 9개월 동안 아동 3,000명을 포함한 총 2만 명의 전쟁 이주민에게 연맹이 소유한 시설을 숙소로 제공했다. FPU는 재정 악화에 시달리고 있으며, 진행 중인 소송들의 결과에 따라 전쟁 부상자 재활 프로그램을 중단해야 할 수도 있지만, 여전히 전쟁 이주민들에게 잠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FPU 자산 관리 책임자 드미트로 도브하넨코는 개탄했다. “전쟁으로 보건 등 사회적 지원에 대한 국민 수요가 폭증한 상황 속에서, 정부는 상식 밖의 정책을 펼치고 있다. 이 때문에 FPU가 정부에 맞설 역량이 영구적으로 약화될 것이다.”
발랑탱은 차에 타기 위해 진땀을 뺐다. 양쪽 목발을 한 손에 쥔 그는 뻣뻣한 다리를 차 안으로 밀어 넣었다. 발랑탱을 만난 곳은 키이우 서쪽으로 350km 떨어진 중소도시 크멜니츠키의 한 대로변이었다. 우리는 차량 공유 서비스 블라블라카(Blablacar)를 이용하는 과정에서 발랑탱과 같은 차를 탔다. 하늘길에 이어 바닷길까지 막히자 철도는 화물 운송으로 포화상태에 이르렀다. 현재 우크라이나에서 차량 공유 애플리케이션은 사설 시외버스와 함께 가장 널리 쓰이는 이동수단이다.
우크라이나 군대에 동원됐던 24세 청년 발랑탱은 폭발에서 살아남았다. 드론 공격에 의한 폭발이었는지 러시아군이 로켓포로 살포한 지뢰에 의한 폭발이었는지 알 길은 없다. 폭발물은 적진을 향해 전진하던 우크라이나군의 소규모 부대를 덮쳤다. 7명이 부상당하고 1명이 사망했다. 발랑탱은 19차례의 수술 끝에 다리 절단을 피할 수 있었다. 그는 휴대전화에 저장된 엑스레이 사진을 보여줬다. 경골과 대퇴골을 가로지르는 금속 지지대가 선명하게 보였다. 그의 종아리에는 파편의 흔적들이 여전히 남아 있다.
“우리는 국가의 노예로 전락했다”
다른 많은 제대 군인과 마찬가지로 발랭탱 역시 원활한 행정 절차를 위해 변호사를 선임했다. 그의 목표는 일단 연금 수령액이 가장 높은 제3군 상이군인 지위를 인정받는 것이다. 그는 또한 정부가 약속한 월 2,500달러의 “격전 지역 복무” 수당 수령도 기대하고 있다. 발랑탱은 현재 키이우의 한 재활센터에 입원한 상태다. 치료비 중 일부는 본인이 부담하고 있다. 그는 가족을 만나러 가끔 주말에 외출한다. 육아휴직 중인 그의 아내는 크멜니츠키에서 생후 18개월 된 아기를 혼자 키우고 있다.
크리비리흐 출신인 에브게니 미카일리우크는 발랑탱과 비슷한 처지지만 변호사를 선임할 형편이 되지 않는다. 미카일리우크는 자신이 받은 부당한 대우를 비난하는 영상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위장용 군복에 훈장을 달고 영상에 등장한 그는 제대를 요구했다. 그는 간질 발작을 앓고 있다. 2014년 돈바스 분리주의 반군과의 전투에서 뇌진탕을 입은 후 생긴 간질 발작이 이번 전쟁 동안 재발했다. 군의관의 부적절한 치료로 혼수상태에 빠졌던 그는 7일간 입원했다가 귀가한 후 부대 복귀 시한을 넘겼다. 탈영죄로 징역 5년을 선고받을 위험에 처한 그는 당장 야전병원으로 복귀해야 했다. 문자 메시지로 다시 연락이 닿은 그는 야전병원의 열악한 상황에 분노했다. “지금까지 소련의 망령과 싸우고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그 망령 속에 살고 있다. 많은 이들이 권리를 박탈당한 채 이곳에 갇혀 있다. 우리는 국가의 노예로 전락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국내·외적인 이유로 부패와 특혜 척결에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전쟁 이전에도 부패와 특혜는 존재했다.(9) 하지만 전쟁이 터지자 우크라이나 국민의 분노도 터졌다. 신규 예산의 절반 이상을 책임지고 있는 해외 출자자들 역시 부패 및 특혜 척결의 성과를 요구하고 있다.(10) 지난해 8월 11일, 젤렌스키 대통령은 텔레그램에서 지역 모병소 책임자 전원을 해임하겠다고 발표했다. 검찰은 이들이 “병역 연기 및 회피 목적의 (...) 장애 증명서나 일시적 부적격 판정서 발급에 도움을 제공”한 혐의를 제기했다. 같은 해 9월 5일, 올렉시 레즈니코우 국방장관의 해임도 뒤따랐다. 사흘 전에는 과두정치인 이호르 콜로모이스키가 사기 및 자금 세탁 혐의로 구금됐다. 콜로모이스키는 2019년 우크라이나 대선 당시 젤렌스키의 후원자로 국내·외 언론에 소개된 인물이다.
우크라이나 국가와 국민 사이에는 협력과 불신이라는 양가적 관계가 형성됐다. 군대는 구급상자, 방탄조끼, 헬멧, 드론 등 병사들에게 지급할 장비를 확보하기 위해 개인의 기부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노동조합, 자원봉사단체 또는 일시적으로 생성된 왓츠앱(Whatspp) 그룹이 모금 운동을 벌이고 장비를 기부받는다. ‘빅토리드론’ 협회는 2만 8,000명에게 드론 조작법을 가르쳤으며(군대가 양성한 드론 조작병은 1만 명에 불과하다) 전선에 드론을 지원했다.(11)
크멜니츠키에서 건축업을 하는 유리 루치우크는 돌격 소총 조준경, 야간투시경, 군용 수송 차량으로 개조한 민간 지프 차량 등 수천 유로 상당의 장비를 조달했다. 루치우크는 “모든 영토를 되찾아야 한다. 가장 실현 가능한 목표는 크름반도 수복이다. 육교를 파괴해 보급을 차단하기만 하면 된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는 정작 아들의 입대를 허락하지 않았으며 동료 기업가들의 입대도 막았다. “나는 이들을 설득했다. ‘당신들이 죽으면 누가 이 나라를 떠받치고 경제를 재건할 것인가?’ 가장 애국심이 강한 국민들이 죽어가고 있다. 이대로라면 체제를 바꿀 사람이 아무도 남지 않을 것이다.”
루치우크는 당국의 신망을 받는 인물은 아니다. 2014년, 크멜니츠키 중앙 경찰서 앞에서 그를 처음 만났을 때, 전투복을 입은 청년 10여 명으로 구성된 ‘그의’ 민병대가 그를 호위하고 있었다.(12) 그는 “혁명을 끝까지 완수하기 위해” 크멜니츠키 관공서들을 돌면서 힘을 과시하는 중이었다. 당시 우크라이나는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축출된 직후로 친러시아 반군을 진압하기 위해 돈바스 지역에 군대를 파견하는 상황이었다. 2022년 2월 러시아가 침공하자 그는 300명의 지원자를 모아 국토방위군 합류를 요청했다.
디지털 독재의 시작
하지만 우크라이나 보안국(SBU)은 4시간 반에 걸친 거짓말 탐지기 조사 끝에 루치우크의 요청을 거부했다. 다른 모든 대도시는 시가전을 대비해 정규군을 지원하는 민간부대를 조직했다. 아우디 대리점에서 우리를 만난 루치우크는 인터뷰 동안 자신의 아우디 실린더 정비를 맡겨 놓고 “그들은 내가 크멜니츠키 당국을 전복시키려고 한다고 의심했다”라고 어이없어했다. “2014년 이후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상황은 오히려 더 악화됐다. 이제 디지털 독재가 들어섰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꿈꾸는 미래의 국가는 외세의 침입과 낡은 보호주의 법률에서 자유롭고 온라인에서 진화하는 국가다. 1,900만 명의 우크라이나 국민과 마찬가지로 루치우크도 DIIA 애플리케이션을 휴대전화에 설치했다. 2020년 디지털전환부가 출시한 DIIA는 우크라이나 정부의 자랑이다. 여권, 운전면허증, 세금 및 벌금 고지서 등 모든 신원확인 및 행정 서류가 이 애플리케이션에 모여 있다. DIIA를 설치한 국민은 클릭 몇 번만으로 사업자 등록을 하고, 폭격으로 부서진 가옥 재건 지원을 신청하고, 러시아군의 존재를 신고하고, 국내 이주민 지위를 획득할 수 있다. 정부에 따르면 총 120종류의 공공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 애플리케이션의 도입으로 공무원 수를 10% 줄일 수 있다고 한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미국국제개발처(USAID)에서 850만 달러를 지원받아 DIIA를 공동 개발했다. 구글과 비자카드도 DIIA 개발에 참여했다. 미국 정부는 이 애플리케이션을 전 세계에 수출할 계획이며 우크라이나의 젤렌스키 대통령을 미국 정부가 장려하는 창업국가(Start-up Nation)의 선구자로 소개하고 있다.(13) 유럽에서 디지털화 선도 국가로 손꼽히는 에스토니아 정부는 DIIA를 기반으로 한 애플리케이션을 개발 계획을 발표했다. 루치우크는 “법원 판결문조차 애플리케이션에 뜬다!”고 분개하며 직접 여러 페이지의 판결문을 스크롤하며 보여줬다. 그는 이것이 자신에 대한 정치적 보복이라고 주장했다.
경제위기와 전쟁 장기화로 군대에 대한 민간의 지원은 줄어들고 있다. 군사적 전망에 대한 비관적인 시각도 이에 일조한다. 크멜니츠키에 호텔을 소유한 나자르 바라노프는 담담한 목소리로 “전선에 있는 친구들은 병사도 탄약도 부족하다고 말한다”라고 설명했다. 그의 호텔 로비에는 50캔들이 에너지 음료 3박스가 호송대를 기다리고 있다. 호송대는 매달 두 번씩 후방의 지원 물자를 수거해간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보다 인구수가 많다. 모두 미국의 F16 전투기를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이조차 전쟁의 흐름을 바꾸기에는 역부족일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러시아와 협상을 해야 하냐는 질문에 그는 고개를 저었다. “이미 너무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다. 이제 타협은 불가능하다. 푸틴의 사망이 유일한 희망이다.”
최근 실시된 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30%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전쟁이 끝나기를 원한다”고 답했다.(14) 그러나 수용 가능한 협상 조건에 대한 질문에는 응답자 대부분이 모든 조건을 거부했다. 응답자 23%만이 영토 일부를 되찾지 못하더라도 전쟁을 중단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답했다. 영토 양도를 받아들이겠다는 응답자는 13%에 불과했다. 나토와 유럽 연합 가입을 포기할 수 있다고 한 응답자는 각각 28%, 27%였다. 평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러시아에 영토 또는 정치적 양보를 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답한 응답자는 8%에 불과했다.
우크라이나는 전쟁이 한창인 와중에도 여전히 표현의 자유를 상당 수준 보장하는 나라다. 도로와 거리에서 경찰의 검문을 받는 일은 드물다. 국민들은 외신 기자들 앞에서 정부와 공직자의 무능과 부패를 거리낌 없이 비판한다. 하지만 우크라이나는 더이상 평범한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다. 모든 TV 채널은 우크라이나 지상군의 진격, 우크라이나군이 새로 도입한 군사 장비, 민간 인프라를 겨냥한 러시아의 공격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지루한 뉴스만 내보내며 국민을 안심시킨다.
우크라이나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 연방의 무력 침략을 정당화, 합법화 또는 부정하거나 그 가담자를 미화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형법 제436조 2항을 신설했다. 이 조항은 러시아에 대한 협력 행위 외에도 러시아를 지지하는 의견도 처벌 대상으로 삼는다. 우크라이나 검찰청 홈페이지에 게재된 수치에 따르면 전쟁 발발 이래 이러한 이유로 기소된 경우가 2,471건에 달한다.(15)
블라디미르 체메리스의 쓰라린 경험이 대표적인 예다. 전 소련 반체제 인사이자 우크라이나 독립운동가인 그는 최근 몇 년 동안 구타와 살인을 저지르는 신나치 극우단체에 부여된 면죄부를 비난하면서 러시아에 대한 유화책을 주장해 왔다.(16) 러시아의 침공이 시작되자 그는 우크라이나군의 항복, 러시아와의 즉각적인 협상을 촉구했다.
2022년 7월 19일, SBU는 그의 집을 급습해 가택 수색을 진행했다. 그는 이 과정에서 갈비뼈 여러 대가 부러졌다. 신설된 형법 제436조 2항에 의거해 기소된 그는 아직도 재판을 받고 있다. 아내와 떨어져 홀로 키이우의 고층빌딩에 거주하며 백혈병으로 투병 중인 그는 “우리는 전체주의 체제에서 살고 있다”라고 말했다.
“물론 젤렌스키를 비판할 수 있지만 국가의 전략적 방향 설정에 반대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됐다.” 체메리스는 현재 우크라이나 감옥에 10여 명의 정치범이 갇혀 있다고 추정했다.
글·엘렌 리샤르 Hélène Richard
언론인
번역·김은희
번역위원
(1) 경영진이 보내온 서면 답변서. 2022년 8월 10일.
(2) 익명을 요구한 이들의 이름은 가명으로 표기했음.
(3) ‘Troop Deaths and Injuries in Ukraine War Near 500,000, U.S. Officials Say’, <New York Times>, 2023년 8월 18일.
(4) Pierre Rimbert, ‘L’Ukraine et ses faux amis 우크라이나와 그들의 가짜 우방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22년 10월호.
(5) ‘ITUC & ETUC Letter to the European Commission and European Council regarding Law 5371 on workers' rights in Ukraine’, 2022년 8월 24일. 유럽노동조합총연맹(ETUC) 홈페이지에서 열람 가능. www.etuc.org
(6) Sergueï Gouz, ‘La réforme de l’assurance sociale en Ukraine. Pourquoi détruire ce qui fonctionnait? 우크라이나 사회보장제도 개혁. 효과를 입증한 제도를 왜 바꾸려 하는가?’ (러시아어), Opendemocray, 2022년 10월 11일, www.opendemocracy.net
(7) Denys Gorbach, ‘Underground waterlines: Explaining political quiescence of Ukrainian labor unions’, Focaal, 네이메겐(네덜란드), n°84, 2019.
(8) ‘Case of Batkivska Turbota v. Ukraine (no. 5876/15)’, 2018년 10월 9일, https://hudoc.echr.coe.int
(9) Sébastien Gobert, ‘Vaine réforme policière à Kiev 우크라이나의 무의미한 경찰 개혁’,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8년 6월호.
(10) Ben Aris, ‘Ukraine releases 2024 budget plan, more spending on military, but raising enough funding will be tough’, <Bne Intellinews>, Berlin, 2023년 9월 28일.
(11) 텔아비브 엘롬센터 사라마샤 펜버그 연구원 인터뷰, <France info>, 2023년 9월 14일.
(12) Hélène Richard, ‘Dilemme pour les “miliciens ukrainiens” 우크라이나 민병대 ‘보그단’의 저항운동’,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4년 9월호.
(13) ‘US will help to export Ukrainian Diia app to other countries’, AIN, Kiev, 2023년 1월 19일, https://ain.capital
(14) ‘Rapport analytique sur les résultats de l’enquête Guerre, paix, victoire, avenir 설문조사 결과 분석 보고서 전쟁, 평화, 승리, 미래’(우크라이나어), <Opora>, Kiev, 2023년 7월 27일.
(15) ‘Bilan des infractions pénales 형법 위반사례 집계’, 2022년 1~12월 ; ‘Bilan des infractions pénales 형법 위반사례 집계’, 2023년 1~9월 (우크라이나어), 공개 데이터 포털 사이트, 디지털전환부.
(16) 체메리스는 특히 민스크 협정 준수를 지지한다. Igor Delanoë, ‘Qui veut la paix en Ukraine NATO? 문턱에서 어긋난 우크라이나 평화 열망’,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20년 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