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전쟁 옹호’라는 신기루

2023-12-29     알렉세이 사킨, 리사 스미르노바 l 언론인

2023년 4월, 러시아 의회는 우크라이나 전쟁 병역회피를 원천차단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징병 대상자는 전자통지서를 받게 되며 출국이 금지된다. 이처럼 계속되는 전쟁은 국민에게 고통을 전가하고 있다. 국민들 간에는 전쟁 자체에 대한 견해와 별개로, 엘리트 계층에 대한 불신과 비난이 거세지고 있다.

 

러시아는 이웃 나라 우크라이나를 침공함으로써 일으킨 폭풍 속에 표류 중이다. 전쟁이 일어난 후 러시아 경제는 붕괴되지는 않았으나, 둔화세를 이어가고 있다. 2022년에는 전년 대비 –2.1%를 기록했다. 정부로부터 독립적인 기관에서 실시한 여론조사를 포함한 각종 설문 결과, 러시아 국민 대다수는 여전히 군사 작전 지속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1) 그러나 사회 구조의 균열이 확대되면서 전쟁에 대한 견해와는 달리, ‘엘리트 계층’을 불신하는 러시아인들이 늘고 있다. 2022년 2월 침공 전부터 감지되던 이 현상은 심화되고 있다.(2) 

 

전쟁 지지층 vs. 평화 지지층, 그리고…

공포 분위기가 러시아를 사로잡고 있는 지금, 사회의 흐름을 파악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독립적인 여론조사 기관이 조사 결과에 덧붙인 방법론 노트를 참고하면 유용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일례로 응답률의 부족을 들 수 있다. 마케팅·여론조사 기관 러시안 필드에 따르면, ‘특수 군사 작전’에 관한 전체 응답률은 5.9~9.3%로 전쟁 전에 시행한 설문 조사 응답률의 1/3에서 1/4 수준에 그쳤다.(3) 2023년 2월 러시안 필드가 실시한 설문 조사 결과, 확전은 지지율이 27%였고, 평화적 해법을 선호하는 비율은 34%로 나타났다.(4)

세 가지의 사회집단이 특히 눈에 띈다. 설문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25~37%를 차지하는 ‘전쟁 지지층’은 시위대 진압에 찬성했고, 군사 목표를 위해 기꺼이 복지정책을 희생할 수 있다고 응답했으며, 탈영병을 규탄하기도 했다. 이런 전쟁 지지층은 노년층과 고소득층에서 특히 높았다. 반면, 응답자의 10~36%에 해당하는 ‘평화 지지층’은 청년층과 극빈층이 많았다. 극단적인 이 두 집단 사이에 놓인 이들은 침묵하거나 상반된 답을 내놓았다. 확전에는 반대하지만, 당국의 공식 입장에는 찬성한다는 답변자가 상당수였다.

전쟁 지지층은 SNS에서 ‘극렬 애국자’들의 계정을 통해 ‘메가폰급’ 위력을 발휘한다. 이들의 표현은 현재 그 어떤 제재도 받지 않는다. 하지만 극단적인 대립을 걱정하는 정치인들은 이들을 두려워하는 분위기다. 2023년 2월, 푸틴 대통령의 정책을 적극 지지하는 정당 통합러시아당의 올레크 마트비체프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두려워할 대상은 마이단(Maïdan) 광장의 자유주의자들이 아니다. 그들은 이미 도망치고 없다. (...) 이제 우리 주에 남아 있는 유일한 위험은 좌파 성향의 과격한 애국주의 시위대, 그리고 부패에 관한 논쟁이다.”(5)

러시아의 침공 초기부터 군사적(혹은 준 군사적) 기술을 가진 극우 활동가들로 구성된 ‘전쟁 통신원들’은 SNS에서 작전 상황을 전했다. 그들 중 가장 잘 알려진 인물은 러시아 연방보안국(FSB) 전 장교이자 열렬한 군주제 지지자인 이고르 스트렐코프다. 스트렐코프는 2014년에 러시아 민병대를 이끌고 우크라이나 돈바스(도네츠 분지)에 있는 슬라뱐스크시를 침공했다. 당시 러시아 정부는 군사적으로 분리주의자들을 지원했지만, 지나치게 격앙된 이들의 성향을 우려했다.(6)

결국 스트렐코프는 돈바스 반군의 사령관직에서 물러났고, 지금은 팔로워가 100만 명에 달하는 <텔레그램> 채널에서 러시아 당국이 적국 우크라이나에 대해 우유부단하게 대처한다고 비난한다. 2022년 가을에 러시아군의 공세가 둔화한 이후, 스트렐코프와 여타 급진 민족주의자들은 푸틴 정권의 단점(부실한 군수품 보급체계, 취약한 무기산업, 무능하고 부패한 장성들, 엄중한 시기에 사치에 빠진 지배 엘리트 계층의 안일함)을 비난해왔다. 푸틴 대통령의 측근 중 일부는 비밀리에 서방과 화해전략을 펴고 있다. 

2023년 2월 3일, 스트렐코프는 “그들은 러시아가 이 전쟁에서 패한다면 소중한 서방국을 감히 건드리지 못하겠지만, 서방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이다”라는 글을 게재하기도 했다. 스트렐코프는 러시아 현 정부가 전쟁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본다. 스탈린의 강력하고 팽창주의적인 정책을 찬양하는 스트렐코프의 동료 막심 칼라시니코프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 대혼란은 피할 수 없다. 상부에서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이들의 개입을 우려한다. 우리의 목표는 혼란을 국가의 승리로 바꾸는 것이다.”(7) 

 

푸틴에게 충실했던 프리고진의 돌변

충성파 전쟁 지지층에게까지 번진 제도 밖 ‘애국자들의 분노’는 러시아 정부의 걱정거리다. 정규군 장성들과 경쟁해 우크라이나에 배치된 러시아의 군사 용병 단체 바그너 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은 급기야 러시아의 사회적 불평등, 부패, 무능하고 수직적인 군대 서열 문제를 비판하고 나섰다. 그런 공개적인 활동은 푸틴 대통령에게 불쾌감을 심어줬고, 결국 재소자들을 상대로 용병대를 모집하던 프리고진은 교도소 출입이 금지됐다.

당시 러시아 육군 총참모장 발레리 게라시모프는 바그너 그룹에 공급되는 탄약 지원을 감축했다. 그러자 과거에 푸틴 대통령에게 매우 충실했던 프리고진은 용병들에게 스트렐코프 못지않게 군 지휘관들과 관료들을 거세게 비판하는 영상을 찍게 했다. 어느 용병은 시신 앞에 서서 “허튼짓하지 마라. (...) 고국은 우리가 지키겠다”라고 선언하는 영상을 찍기도 했다.(8) 5월 9일 러시아 전승절에 게시한 영상에서 프리고진은 푸틴 대통령을 겨냥하는 것으로 보이는 “만사형통이라고 생각하는 행복한 할아버지”라는 발언에서 한술 더 떠서 “이 할아버지가 천하의 얼간이라는 것이 밝혀지면 러시아는 어떻게 되겠습니까?”라고 덧붙였다. 

이런 분노는 전선에 있는 병사들과 장교들에게도 영향을 줬다. 2022년 9월 말에 발표된 동원령으로 32만 명(공식 통계치)에서 50만 명(독립기관 추산)이 징집됐다.(9) 2023년 4월에 러시아 의회가 채택한 전자화된 징병 통지서, 징집 대상자 영토 이탈 금지, 망명자 재산 동결 조항으로 징집자 수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 동원령은 극빈 지역, 특히 푸틴의 전통적인 선거 기반인 인구가 적은 지방의 소도시와 마을에 영향을 미쳤다. 러시아 당국은 우선 예비역 장교와 군 경력이 있는 남성들(모스크바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 출신으로 소득이 낮거나 평균적인 중년층)을 대상으로 자원병을 모집했다. 군국주의 신념이 아닌 애국심으로 전쟁을 지지하는 이른바 ‘중립론자’의 사회적 초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전쟁의 부담은 고스란히 이들의 어깨 위에 지워졌다.

반란을 막기 위해 국가는 수단을 아끼지 않는다. 병사의 한 달 급여는 평균 20만 루블(약 2,500유로)에 달한다. 산업화되지 않은 작은 마을에서 벌 수 있는 수준의 10배에 달하는 액수다. 2023년 4월, 푸틴 대통령은 유가족과 참전 용사를 위해 특별 기금을 조성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칼라시니코프는 그해 2월 5일 유튜브 채널 <로이(Roi)>에 올린 동영상에서 오직 승리만이 정권의 존속을 보장한다고 전망했다. “완전히 새로운 현실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남자들은 무기를 쥐고 전선에서 돌아올 것입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과 이탈리아 참전용사들처럼 정의를 강하게 불신하는 과격주의자가 돼 있을 것이고, 통합러시아당이 쏟아내는 말은 믿지 않을 것입니다.”

 

희생자 추모 물결, 전쟁 반대 운동으로

지금까지 병사들은 다른 방식으로 ‘과격주의’를 표출했다. 동원된 군인들은 부대를 이탈하거나 장교들과 싸우고, 수송 열차 가동을 중단해 장비와 훈련 부족에 항의하는 등 비록 산발적이긴 하지만 자발적으로 폭동을 일으켰다. 당국은 단속으로 불만의 첫 물꼬를 틀어막았다. 반란 군인들을 지하실에 가두어 구타하고 협박했고, 반란군 중 일부는 중형을 선고받기도 했다.(10) 1월에는 후방 부대에서 전방 부대로 병력이 대거 이동하면서 사상자가 급증했다. 2022년에 기자들이 확인한 러시아 전사자 수는 주당 200~250명(실제 규모는 훨씬 더 클지도 모른다)이었지만, 2023년 3월에는 800명을 웃돌았다.(11)

언론이 보도하는 사례보다 실제 탈영은 더욱 많을 것이다. 러시아 병사들은 병원에서 탈주하기도 하고,(12) 전방으로 이동하는 열차에서 뛰어내리기도 하며,(13) 수십 킬로미터의 행군 끝에 사라지기도 한다.(14) 징집병들의 지인들은 온라인 토론 그룹을 만들어 탈영병들이 길을 찾고, 숙소를 구하고, 정찰대 순찰을 피할 수 있게 도움을 줬다. 2월과 3월 초에는 징집된 부대 단위 전체가 전투 임무를 거부하고 후방 복귀를 요청하는 영상이 인터넷에 18건 이상 올라왔다.(15)

인류학자 알렉산드라 아르키포바는 사람들이 꽃과 인형을 들고 65개 도시, 최소 85개 장소를 찾았다고 집계했다.(16) 자발적인 행동이었음에도 ‘헌화 추모비’ 근처에서 체포되는 사람이 생겼고, “러시아군을 모욕했다”라는 이유로 유죄 선고를 받았다. 하지만 수천 명에 달하는 러시아인이 이런 위험을 알면서도 추모비를 찾아 헌화했다. 조사단은 이들의 상당수가 전쟁 반대 집회에 한 번도 참석하지 않은 사람들이라고 밝혔다. 반정부 시위의 중심지였던 적이 없는 오렌부르크, 니즈니타길, 옴스크, 고르노알타이스크 같은 도시에도 추모비가 생겨났다.

꽃 기념비 중 우크라이나어로 된 거리처럼 우크라이나와 관련된 추모 장소는 4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 85곳 중 47곳은 스탈린주의 테러나 체르노빌과 같은 인재 발생지, 반정권 투사가 사망한 장소 등 국가 범죄 또는 위법 행위의 희생자와 관련된 장소였다. 아르키포바는 이렇게 말한다. “여기에 담긴 메시지는 분명하다. 국가는 사람들을 죽였고, 지금도 사람들을 죽이고 있으며, 앞으로도 더 많이 죽일 것이다.” 샤흐티와 사라토프 시민들은 파시즘 희생자 추모비를 헌화 장소로 택해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과 나치의 소련 침공 간의 유사점을 드러냈다. 전쟁 발발 1주년을 맞아 또 다른 ‘헌화 시위’ 물결이 일어났다. 더 경찰의 강력한 단속에도 59개 도시에서 최소 82개의 추모비가 시민들의 의지로 다시 생겨났다.(17) 국가 희생자 기념물에 헌화하는 행위는 전쟁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집단행동의 형태로 자리 잡았다.

전쟁으로 국민이 단결한다면, 집단마다 어느 정도 차이를 보이기 마련이다. 하지만 사회의 모든 계층과 진영에서 같은 과정이 진행되고 있고, 바야흐로 ‘우리’와 ‘그들’에는 새로운 의미가 부여됐다. ‘우리’에는 다양한 의미(평범한 시민, 진정한 애국자, 국가의 희생자)를 포함하지만 ‘그들’의 의미는 더 명료하다. ‘그들’은 외부의 적뿐 아니라 정부 당국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러시아가 전쟁에서 새로운 국면을 맞지 못한다면, 러시아의 전선은 후방으로 밀려날지도 모른다. 

민족주의자부터 평화주의자에 이르기까지, 모든 국민들의 눈에는 나라를 파국의 경지로 몰고 간 유일한 주범은 다름 아닌 현 정권일 것이며, 그런 점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은 곧 새로운 러시아를 위한 전쟁이 될 것이다.

 

 

글·알렉세이 사킨 Alexeï Sakhine, 리사 스미르노바 Lisa Smirnova
언론인, ‘전쟁에 맞선 사회주의자들의 연대’의 회원 

번역·이푸로라
번역위원


(1) 이 기사의 통계 수치는 공적 지원을 받지 않는 레바다 연구소(Levada Institute), 리:러시아(Re : Russia), 러시안 필드(Russian Fields) 등 3개 기관의 설문 조사를 바탕으로 했다. 이들 기관의 설문에서 1~2월 ‘특별군사작전’에 찬성하는 응답은 56~77%에 달했다.
(2) Karine Clément, 『Contestations sociales à bas bruit en Russie. Critiques sociales ordinaires et nationalismes 러시아의 소리 없는 사회 저항. 일반적인 사회비판과 민족주의』, Éditions du Croquant, Vulaines-sur-Seine, 2021년.
(3),(4) ‘Une année d’opération militaire spéciale : l’opinion des Russe 특별 군사 작전 1년: 러시아 여론’, 2023년 1월 31일~2월 6일에 실시된 설문 조사, Russian Field, Moscou, www.russianfield.com
(5) ‘극렬 애국 시위대의 위협을 언급한 통합러시아당’(러시아어), <Politnavigator>, 2023년 2월 3일, www.politnavigator.net
(6) Juliette Faure, ‘Qui sont les faucons de Moscou ?(한국어판 제목: 러시아의 매파는 누구인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한국어판, 2022년 4월호.
(7) ‘대혼란의 위험과 악’, <Livejournal>(블로그), 2023년 1월 7일, www.m-kalashnikov.livejournal.com
(8) <텔레그램> 채널 <Razbruzka_vagnera>, 2023년 2월 17일.
(9) ‘결혼합시다. 혼인 건수 증가는 10월 중순 징집 인원이 최소 49만 2,000명에 달한 다는 것을 알 수 있다’(러시아어), <Mediazona>, 2022년 10월 24일 www.zona.media
(10) “장교를 공격한 병사에게 5년 6개월의 징역형이라는 중형 선고”, Gazeta.ru, 2023년 1월 11일, www.gazeta.ru
(11)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가 입은 손실”, 인포그래픽은 정기적으로 갱신됨, <Mediazona>, www.zona.media/casualties
(12) ‘튜멘주에서 부상병이 미르니 병원 탈출’(러시아어), <튜멘 온라인>, Tioumen, 2023년 2월 7일, www.72.ru
(13) ‘징집병들이 보로네시주에서 기차에서 도주’(러시아어), <RBK>, 2023년 2월 5일, www.rbc.ru
(14) ‘로스토프주 돈바스 국경에서 탈영병 체포’(러시아어), <Bezformata>, 2023년 2월 3일, www.rostovnadonu.bezformata.com
(15) ‘불만을 제기한 징집병들’, <텔레그램> 채널 <Viorstka>, 2023년 3월 9일, www.t.me/svobodnieslova/1566
(16) Alexandra Arkhipova, ‘공감으로 항의 표시’, <Kholod>, 2023년 2월 2일, www.holod.media
(17) 2023년 2월 27일 알렉산드라 아르키포바가 텔레그램 피드에 게시한 수치 www.t.me/anthro_fun/20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