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터 바이스의 귀환
『저항의 미학』(1)은 총 3권, 900페이지에 달하는 대하소설이다. 작가 페터 바이스(1916~1982)는 그의 인생 마지막 10년을 이 소설의 집필에 바쳤다. 이 작품에는 실존 인물과 가상 인물이 공존하는데, 화자인 ‘나’와 그의 부모는 가상 인물이다. 화자는 젊은 독일 노동자로 페터 바이스의 분신 격이다. 또한, 파시즘이 팽배했던 1937~1945년 시대에 실존했던 인물들도 등장한다.
페터 바이스는 파시즘이 부상했던 이 시대를 희망과 배신이 공존했던 시기인 1917년 소비에트 혁명과 스페인 내전 시대와 비교하며 질문을 던진다. 그는 역사가이자 철학가, 시인이자 예술가로서 이 시대를 살았다. 페터 바이스는 또한 화가이자 영화감독이었다. 자유로운 주체를 형성하는 데 있어 예술의 위치와 예술 작품의 미학 구성은 그에게 중요한 문제였다. 이 소설이 출판됐을 때 영향력은 대단했다. 오늘날, 이 작품의 광대한 서술에 도전한 독자는 드물 것이다.
페터 바이스는 독일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와 일하며 그의 영향을 받았다.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다큐멘터리 연극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다. 페터 바이스의 주요 작품인 <마라/사드>,(2) <수사>(3)는 오늘날까지 꾸준히 무대에 오르고 있다, 반면, 제목에서 그의 사상이 드러나는 작품들은 무대에 오르는 일이 드물다. <베트남 토론>으로 알려진 <베트남의 기나긴 해방 전쟁의 기원과 전개에 관한 토론, 압제자에 대한 군사 투쟁의 필요성과 혁명의 토대를 소멸시키려는 미국의 의지>(4)와 <루지타니나의 허수아비 노래>(5)가 그런 작품들이다.
페터 바이스는 『저항의 미학』이 연극 무대에 오를 것이라고 상상할 수 있었을까? 이 야심차고 거대한 도전은 실뱅 크뢰즈보 감독의 빛나는 지혜 덕분에 가능했다. 그는 이미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연극무대에 올린 적이 있으며(<자본과 그의 원숭이>, 2014), 도스토옙스키의 작품 중 일부분을 연극으로 연출한 적이 있다(<대심문관>, 2020,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2021). 자신의 기업 르 생주(Le Singe) 소속 4명의 배우(부타이나 엘 페카, 블라디스라브 갈라드, 아르투르 이구알, 프레데리크 노아유)와 함께 해낸 것이다. 또한, 스트라스부르의 국립 연극 학교에 소속된 그룹47의 청년 배우들도 함께였다. 그들은 조나단 베네토 드 라프레리, 쥘리에트 비아레크, 야니스 뷔페라슈, 가브리엘 다마니, 아메자 엘 모마리, 하메자 엘 오마리, 제이드 에마뉘엘, 펠리페 폰세카 노브르, 샤를로트 이사리, 뱅상 파코드, 나이샤 랑드리아나솔로, 뤼시 룩셀, 토마스 스타코르스키, 마농 자르델까지 13명이다.
당시 세대를 보여주는 요소는 서사에 힘을 부여하며 무대를 탄탄하게 잡아주고 있다. 실뱅 감독은 무대 미술가 및 무대 의상, 무대 기술을 담당하는 학생들과 함께 훌륭한 무대를 연출했다. 장장 6시간의 연극을 3개 파트로 나누고, 휴식 시간까지 포함시켜 무대에 올린 것은 도박이라고 할 수 있다.
1장에서는 페터 바이스의 실루엣과 명언이 나오면서 주요 인물들을 소개한다. 우리는 1930년대 말 벌어진 토론의 현장에 와 있다. 화자 ‘나’와 베를린의 청년 공산주의 노동자들이 페르가몬 제단 앞에서 논쟁을 벌인다. 건축물의 아름다움이 이것을 세운 노예제도와 건축 과정에서 죽어간 이들의 희생을 정당화할 수 있는가? 노예들의 끔찍한 처지가 건축물의 미학을 훼손하는 것은 아닌가? 반(反)파시즘 전선을 구축하고, 노동자의 현실을 반영하고 공산주의 유토피아를 찬양하는 ‘프롤레타리아’ ‘사회주의적 현실주의’ 예술을 창조함으로써 나치 이데올로기에 맞서 싸워야 하지 않을까?
페터 바이스가 창조한 화자 ‘나’는 1917년생이다. 페터 바이스는 1916년 베를린에서 태어났다. 히틀러 정권이 들어서자 가족과 함께 망명했다(여기서 히틀러는 ‘작은 콧수염’이라고 언급된다). 런던을 거쳐 체코슬로바키아 그리고 스웨덴으로 갔다. 길고 고통스러운 여정이었다. 한편, 화자는 국제여단에 입대하고 독일-소련 조약에 반대하며 프랑스에서 ‘붉은 오케스트라’ 멤버들을 만났다. 그리고 스웨덴에서 베르톨트 브레히트를 만난다.
2장은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쓰고 직접 연출했던 연극 <어머니>를 연상시킨다. 인형 속에 더 작은 인형이 들어있는 마트료시카 인형처럼, 액자형 연출방식을 선택했다. 그는 이 작품에서 아동들의 희생을 보여줌으로써, 성인들이 결코 전쟁의 책임을 벗어날 수 없으며, 전쟁으로는 얻을 것이 없음을 보여준다. 또한 화자는 “서방세계는 공산주의보다 파시즘을 선호한다”라는 것을 깨닫는다.
마지막 장에서는 스탈린주의가 이미 공산주의 혁명을 집어삼키고 있는 상황에서도 변화된 공산주의를 통해 희망을 찾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 장에서는 1943년부터 1945년까지 유대인, 반(反)파시스트, 그리고 모든 기피 인물들이 강제수용 당한다. 또 대규모 범죄에 무감각해진 이들에게 맞서는 레지스탕스들의 신념을 보여준다. 그리고 패배한 도시와 사람들에게 가해진 동맹국의 폭격으로 어떤 참극이 벌어졌는지 숨김없이 이야기한다.
단계마다 화자는 정치적 상황과 그가 길을 가면서 마주치는 예술 작품들을 분석한다. 피카소의 <게르니카>, 피터르 브뤼헐의 <영아 학살>, 제리코의 <메두사호의 뗏목>, 단테의 <신곡> 등인데 이를 통해 “절대 세상을 오해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배우들의 잘 짜여진 연기가 엄청난 비극 속에서 빛나는 숭고함을 부각시킨 이 연극은, 많은 관객들을 매료시킬 것이다.
글·마리나 다 실바 Marina da Silva
연극 평론가
번역·이정민
번역위원
(1) Éliane Kaufholz-Messmer 번역, Klincksieck, Paris, 1989-1992, 3권, 2017.
(2) Jean Baudrillard 번역, 연극, Le Seuil, 1965, Peter Brook 감독, 영화, 1967.
(3) Jean Baudrillard 번역, 연극(오라토리오 11곡), Seuil, 1966.
(4),(5) Jean Baudrillard 번역, 연극, Seuil, 19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