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칠하지만 생기 넘치는 사람들
멜리사 루카셴코 『까마귀와 대화하는 여자』 (영어 원서, 2023년)
“내 가족들은, 살면서 한 번은 이 책에 나온 폭력에 시달린 적이 있다.”
멜리사 루카셴코는 책 초반부에 이렇게 털어놓는다. 그리고는 “이 책의 내용은 역사적 사료나 아보리진(Aborigène, 호주 원주민-역주)의 민담에서 따온 것”이라 덧붙인다. 일례로, 작가의 고조할머니 이야기가 있다. 1907년 자신을 겁탈하려던 남자에게 총을 쏜 혐의로 체포된 고조할머니는, 비록 ‘몸을 파는 원주민’이었지만 그 남자를 죽이지 못한 걸 후회했다.
멜리사 루카셴코는 1967년에 태어났다. 어머니는 호주 동부 해안의 뉴사우스웨일즈주 분자룽족 출신이고, 아버지는 유럽 출신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폭력 사건들은 작가와 가족은 물론, 주인공의 삶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주인공인 케리 솔터는 반항적인 폭주족 여성으로, 강도 사건 가담 혐의를 받고 있으며 그녀의 애인은 감옥에 갇혀있다. 케리는 훔친 할리데이비슨을 타고 죽어가는 할아버지를 찾아 고향인 두롱고 마을로 향한다. 그리고는 고향 땅에 감옥이 들어설 계획임을 알고 반대 투쟁을 하다가, 복잡한 집안 문제와 얽히게 된다.
이 줄거리만 보면, 호주 원주민 버전의 <노마 레이(Norma Rae)>(1)라고 할 수 있다. 쩌렁쩌렁한 케리의 목소리에는 생동감 넘치는 에너지와 블랙 유머가 들어있다. 카드 점을 치는 어머니, 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 밉상인 할아버지… 등장인물들을 보면 에토레 스콜라 감독이 로마 빈민가를 배경으로 만든 이탈리아 영화, <추하고 더럽고 사악한 사람들>(1976)을 연상시킨다. 예상 밖의 전개와 배신, 사라졌다 다시 나타나는 환영들, 가족의 비밀과 활기찬 열정 등이 담겨있다.
케리의 할아버지는 1950년대 호주 원주민 동화정책에 따라, 케리가 어릴 때 원래의 가족과 격리해 강제로 백인 가정에 입양 보냈다. 작가는 이런 인종차별주의적 정책을 딱히 비판하지도, 두둔하지도 않는다. 다만, 등장인물들이 자기 성격에 따라 말하고 행동하게끔 내버려 둘 뿐이다. 이 책에는 은어와 번역되지 않은 분자룽족 언어가 생생하게 묻어있다. 이렇듯 구어체에 가까운 직설적인 문체로 쓰여진 이 책을 넘기다 보면, 끝이 보이지 않게 펼쳐진 풍경과 알 수 없는 위험이 도사리는 덤불숲의 흔들림을 느낄 수 있다.
호주의 권위 있는 문학상인 마일스 프랭클린(Miles Franklin) 문학상 2019년 수상작인 이 소설은 루카셴코의 여섯 번째 작품으로 프랑스어로 번역된 첫 작품이다. 쇠이유(Seuil) 출판사가 ‘선주민(Peuples premiers)’ 출신 작가들의 소설을 알릴 목적으로 만든 새로운 전집 『원주민의 목소리(Voix autochotones)』의 수록작이기도 하다. 유엔은 백인에게 땅을 빼앗긴 원주민들을 ‘선주민’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 선주민들이 이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목소리를 이 책에서 생생하게 들려주고 있다. 그밖에, 프랑스에서 선주민 관련 책들을 활발하게 내고 있는 출판사로는 레 제디시옹 데페이자주(les éditions Dépaysage)가 있다.
글·위베르 프로롱조 Hubert Prolongeau
기자, 작가
번역·송아리
번역위원
(1) 마틴 리트 감독의 영화(1979). 대표적인 미국 사회문제 영화로 종종 간주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