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석유를 '되'찾다

2012-06-12     호세 나탄손

국제통화기금(IMF)은 유럽 국가들이 이제야 해결책을 발견해내고 있는 '구조조정안'을 라틴아메리카에 강요했다. 긴축, 규제 완화, 민영화 등 신자유주의적 방안이 연이어 실패하면서 라틴아메리카는 이제 다른 길을 택해야 할 상황에 놓였다. 이에 따라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은 지난 4월 아르헨티나와 마찬가지로, 석유 대기업의 재(再)국유화를 선택했다.

아르헨티나에서 운영하는 최대 다국적기업 본사에 도착한 아르헨티나 경제부 차관의 손에는 즉시 짐을 싸게 할 고위 간부 명단이 들려 있다. 범상치 않은 장면이지만 이는 스페인 기업 렙솔 직원들이 지난 4월 16일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목격한 것이다. 불과 몇 분 전,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대통령은 스페인 다국적 석유기업 국고석유광맥(YPF)의 아르헨티나 자회사 지분의 51%를 국유화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에 관해 아나 팔라시오 스페인 전 외무장관은 독단적이라 비난했고, <파이낸셜타임스>는 '해적 행위'로 간주했지만,(1) 국민 다수는 정부의 결정을 환영하고 있다.

아르헨티나 하원은 현지 시간으로 5월 3일 밤, 카렐 드 휴흐트 유럽연합(EU) 통상담당 집행위원이 시사한 보복 조치의 위협을 무시한 채 YPF 국유화를 승인하는 법안을 찬성 207표, 반대 32표, 기권 6표로 통과시켰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제기된다. 왜 하필 키르치네르 정부가 출범한 지 9년(네스토르 키르치네르 전 대통령은 2003년에 선출됐고,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키르치네르 대통령은 남편의 뒤를 이어 2007년에 당선된 뒤 2011년 재선에 성공했다)이 지난 지금 시점인가. 무엇보다 1990년대에 YPF를 민영화하기로 한 카를로스 메넴 전 대통령(그 역시 페론주의자이지만 우파이다)의 결정을 지지했던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대통령이 갑자기 방향을 급전환한 이유는 무엇인가(상자 기사 참조). 두 가지로 답변할 수 있다.

경제적 측면에서 볼 때, 아르헨티나 에너지 수급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됐고, 그 원인의 큰 부분은 정부의 전략 선택 미스라고 할 수 있다. 2001년 경제위기에서 벗어난 뒤 경제회복세가 불안정한 상황에서 2003년 아르헨티나가 채무불이행을 선언했을 때(2) 정부는 에너지 가격을 동결했다. 이후 아르헨티나의 전기요금은 주변국에 비해 70% 낮아졌다. 아르헨티나 국민에게 원활한 전기 공급을 보장함과 동시에, 저렴한 수소연료 수출에 대한 세금을 징수해 국가재정을 살리기 위한 방책이었다. 이 전략은 단기적으로 효과가 있는 듯했지만 이미 투자 축소 정책을 펴고 있던 스페인 YPF의 모회사 렙솔이 아르헨티나에서의 활동을 더 축소하고, 에너지 국제 가격이 더 높은 다른 국가로 눈을 돌리게 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급진주의의 길을 선택하다

그러나 지난 8년간 평균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7.1%로 경제가 꾸준히 성장하고 있는데다 에너지 가격마저 낮은 상황에서 에너지 수요는 급속히 늘어났다. '산유국'인 아르헨티나에는 모순적인 일이었지만, 볼리비아 가스나 베네수엘라 석유 등 연료 수입을 늘릴 수밖에 없었다. 통상 흑자를 보인 에너지 무역수지는 2010년 적자로 돌아서면서 2011년에는 100억 달러 적자를 기록했고, 2012년에는 120억 달러의 적자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2001년 디폴트 선언 이후 시장에서 배척당한 아르헨티나는 더 이상 시장에 의존해 자금을 조달할 수 없게 되었다. 2012년 1분기 아르헨티나의 재정 적자는 51억 달러를 기록했는데, 이는 지난 4월 27일자 프랑스 일간지 <레제코> 기사에서 강조한 바에 따르면 '2011년 동기 대비 15배 높은 수치'다. 따라서 YPF 재국유화 결정은 에너지 결산과 무역수지의 균형을 되찾으려는 단기적 필요에 부응하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다. 한마디로 석유 통제권을 되찾아 국가 발전을 꾀하려는 것이다.

정치적 관점에서 볼 때, 이런 결정은 2011년 대선에서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에게 우호적이던 투표 결과를 고려해야만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1차 투표에서 거의 54%의 득표율을 기록한 페르난데스는 아르헨티나가 1983년 민주주의로 회귀한 이래 최다 득표를 기록하며 대통령에 재선됐다.

정부는 페르난데스의 승리가 환율 통제, 외부 투기자본 유입 통제를 비롯해 2008년의 연금기금과 항공 국내선 국유화 등 여타 경제 핵심 요소의 재취득 등 재정 적자 상승을 수반하는 그간의 거시경제적 전략에 대한 지지를 의미한다고 풀이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변화에 깊이 더하기'라고 명명한 확고한 정치적 계획을 더 자신 있게 추진해나가게 되었다. 세계경제 위기 및 자국이 처한 난관 등과 관련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계획으로 더 급진적인 길을 선택한 것이다.

렙솔-YPF 경영진은 자신들이 주주에게 지나치게 많은 배당금을 지급해 투자 능력을 제한했다는 아르헨티나 정부의 비난을 이해할 수 없다. 배당금 지급은 적어도 부분적으로나마 카사 로사다(아르헨티나 행정부 청사)의 요구에 부합하는 조치였기 때문이다. 사실상 아르헨티나 정부는 2008년 렙솔-YPF 측근 중 하나인 은행가 엔리케 에스테나시와 그의 소유인 피터슨 그룹의 렙솔-YPF 지분 15%(향후 25%) 소유에 우호적 입장을 보였다. 에스테나시의 부채 상환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YPF는 이전에는 이윤의 44%였던 배당률을 이윤의 90%로 높여 주주들에게 지급하게 되었다.

차후 단계가 결정적 역할을 할 것이다. 유럽과 미국 언론이 극도의 히스테리를 부리는 가운데 아르헨티나가 과감한 결정을 함으로써 노출될 위험은 법적 문제가 아님은 분명하다. 즉, 렙솔의 재국유화는 해당 기업이 보상해야 할 대상이 될 경우 국유화를 허용한다는 헌법에 의거해 시행됐다. YPF와 함께 총생산량의 절반, 절반에 가까운 재정 보유고와 세전 이익의 3분의 1을 잃게 된 렙솔이 재국유화 반대를 선언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렙솔은 아르헨티나와 스페인이 체결한 투자보호 조약에 의거해 이런 종류의 분쟁을 중재하기로 돼 있는 세계은행 산하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에 100억 유로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그러나 이 조약은 해당 기업이 ICSID에 청원하기에 앞서 아르헨티나 법원에 탄원서를 제출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매우 긴 절차가 될 것이다. 게다가 아르헨티나가 ICSID 탈퇴를 결정할 수도 있는 일이다.

스페인 정부는 렙솔 그룹의 법적 조치를 지지하지만, 스페인 정부나 렙솔이 아르헨티나에 미칠 수 있는 해는 매우 제한적이다. 아르헨티나와 스페인은 여전히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양국은 공통된 역사를 지녔고, 양국 간 이민 인구나 자본 유출입도 상당하다. 600개에 달하는 스페인 기업이 아르헨티나에서 운영되고 이 중 상당수가 선전하고 있기 때문에, 스페인은 아르헨티나 행정 당국의 심기를 건드릴 생각이 없다. 2010년 부채 상각 전 업무 실적(전년 대비 9.82% 증가)이 10억 유로에 달하는 통신그룹 텔레포니카는 일례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에서 주요한 난관은 외부에서 찾아온 것이 아니었다. 1990년대 실시한 민영화의 결과로 아르헨티나 정부는 에너지 관련 인력의 상당수를 해고했고, 이에 다수의 기술자들이 민간부문이나 해외로 옮겨갔다. 정부는 이들을 다시 불러들여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대통령이 4월 16일 연설문을 통해 제시한 '최고의 기업실무 경험'에 기초해 YPF를 경영하겠다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신임 사장에 갈루치오를 선임하겠다고 발표했다. 44살의 기술자 갈루치오는 민영화되는 시점까지 YPF에서 일했고, 이후 석유 탐사 및 시추 전문 기업인 슐럼버거에서 빛나는 커리어를 쌓았다.

두 번째 도전은 재정적인 부분이다. 생산량을 만족스러운 수준으로 회복하려면 앞으로 4∼5년 안에 석유 확인 매장량을 증가시킬 수 있게 석유 탐사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특히 새로운 유전의 대부분이 '비전형적' 유전으로 분류됨에 따라 시추 비용이 훨씬 많이 든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러하다. 아르헨티나 남서부 네우켄주에 위치한 바카 무에르타 분지도 마찬가지 경우로, 전세계 3대 주요 비전형적 유전으로 간주된다. 렙솔 경영진은 아르헨티나 정부의 YPF 재국유화에는 바카 무에르타에 매장된 석유를 독차지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현재 상황으로 봤을 때 석유 채굴이 가능하나 확실하지는 않다. 석유를 채굴하려면 1차 단계 수행 과정에만 200억 달러가 필요하다.

재정 확보를 위한 새 유전 탐사 시급

다시 말해 빈 금고를 다시 채우려면 자금이 필요한데, 현재 같은 경제 둔화 상황에서 아르헨티나 정부에는 그럴 만한 자금이 없다. 그래서 YPF를 주식회사 형태로 유지하고 지분의 51%만 취하기로 한 것이다. 민간 투자자들을 유치하고 다른 기업의 기술인력 혜택도 보겠다는 심산이다. 유가만 떨어지지 않는다면 지원자는 부족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가장 큰 난관은 장기적으로 드러날 것이다. YPF는 민영화 이래 기나긴 쇠퇴의 길을 걸었다. 1997년 의사결정의 중심이 아르헨티나에서 스페인으로 이전되면서 렙솔-YPF는 저렴한 연료 공급 등 국내 생산 수요를 뒷전으로 하고, 아르헨티나에서 멀리 떨어진 알제리나 카자흐스탄 같은 국가와 비즈니스를 추진하는 야심찬 국제화 플랜에만 주력했다. 결국 석유 탐사에 투자할 소득이 줄었다. 1970년대에는 10년간 매년 110개 유정을 시추했으나, 2001년에 시추 유정 수는 고작 30개로 줄었다. 예상대로 생산량은 곤두박질쳤다. 경제부는 1997~ 2012년간 석유 생산은 54% 감소했고 가스 생산은 97% 감소했다고 밝혔다. YPF를 다시 살리려면 앞으로 몇 년간 막대한 노력을 들여야 할 것이다. 야당의 전폭적 지지를 포함하는 강력한 정치적 지지, YPF 내에서의 대대적인 찬성, 유가 배럴당 100달러 이상 유지 등의 조건이 맞아준다면 새로운 단계는 순조롭게 진행될 것이다.

글•호세 나탄손 José Natanson 언론인.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아르헨티나판 편집인.

번역•김혜경 hyekyung3@gmail.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1) 각각 2012년 4월 25일, 4월 18일.

(2) 모리스 르무안, '그리스, 어떤 아르헨티나가 될 것인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2년 4월호 참조.


재국유화, 같은 단어 다른 의도

유럽이나 미국에서 보면 비슷할 수도 있지만, 최근 몇 년간 남미에서 결정되는 재국유화 조치는 서로 다른 우려와 의도로 해석된다. 2006년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이 선포한 석유 국유화는 세수를 높이기 위한 목적이었다. 세계 최대 원유 매장지 중 하나인 오레노케의 석유 벨트 자원을 보유한 베네수엘라 우고 차베스 대통령의 동기도 동일했다. 두 경우 모두, 국가가 회사의 지분 전체를 차지하지는 않았지만 석유 시추와 관련된 '혼합' 기업 지분의 상당 부분을 차지해 재정적 기여뿐 아니라 기술적 경험의 혜택을 입었다. 베네수엘라 국영 석유회사(PDVSA)의 모기업인 BP, 토탈, 셰브론, 그리고 볼리비아 국영에너지공사(YPFB)와 연결된 렙솔은 이 상황을 받아들였다. 아르헨티나에서는 YPF가 동일한 방식으로 재국유화를 해나갈 것으로 보인다. YPF는 이미 국제 파트너십을 특히 미국 기업에서 찾고 있다.

반면 베네수엘라 내 철강 및 시멘트 기업들의 국유화는 무엇보다 국가 발전에 핵심적으로 기여하는 제조산업 분야를 관리하겠다는 베네수엘라 정부의 염원으로 풀이된다. 아르헨티나에서 일어나는 재국유화는 지금까지 프랑스 기업 수에즈에서 관리했던 물공급처럼 국민생활 필수 요소의 공급을 보장하기 위해서인 경우도 있고, 소크마(Socma)가 보유하고 있던 시절의 우편 서비스처럼 이전 경영의 비효율성을 해결하기 위한 목적도 지닌다. 이 경우에는 경영인이 직접 적자 상태인 자신의 기업을 국유화해달라고 요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