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O, “만국의 노동자여, 파업권을 지켜라!”
국제규범으로서의 ILO 위상 부활과 비폭력의 길
프랑스는 파업권을 헌법적 원칙으로 간주한다. “파업권은 이를 규제하는 법률의 틀 안에서 행사될 수 있다.” 하지만 올바른 파업권 행사는 노동조합, 더 나아가 때로는 사법관의 각별한 주의를 요구한다. 한편, 국제노동기구(ILO)는 한층 더 폭넓은 차원에서 파업권을 옹호한다. 비록 그로 인해 다양한 모순이 발생할지라도 말이다. 왜냐하면, 노동자 해방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수단이 다름 아닌 이 파업권이기 때문이다.
1세기 넘게 인류는 주기적으로 각종 재앙을 통해 한 국가 안에서나 혹은 여러 국가 사이에 항구적인 평화를 보장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바로 법의 지배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1919년 세계대전은 산업화 시대에 고삐 풀린 폭력이 얼마나 끔찍한 참상을 불러올 수 있는지 사상 처음으로 입증했다. 참혹한 전쟁이 또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베르사유 조약 협상국들은 국제 사법질서 구축을 시도했다. 그 중심에 두 개의 기구, 국제연맹(LN)과 국제노동기구(ILO)가 있었다.
그러나 미국이 베르사유 조약의 조인을 거부하는 바람에 결국 LN은 시작과 동시에 실패한 기구로 전락했다. 반면 미국의 가입에 탄력을 받은 ILO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새로운 국제 사법질서를 확립하는 데 있어 선구자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1944년 ILO가 채택한 ‘필라델피아 선언’은 훗날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가 인정될 수 있는 길을 활짝 열어놓았고, 이를 관할할 다양한 국제기구가 창설되는 계기도 마련했다. 대표적인 기구가 세계보건기구(WHO),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 유엔식량농업기구(FAO)였다.
사회권의 핵심, 결사의 자유
특히 사회권의 모태가 된 것은 결사의 자유였다. ILO 헌장 서문에 명시된 결사의 자유는 이 기구가 단순히 정부만이 아니라, 각 회원국의 사용자와 노동자도 함께 대변하는 특수한 형태의 기구가 되는 단초가 됐다. 어쨌든 관료적 성격을 배제한다는 전제 하에, 정치적, 사회적 차원에서 ILO가 갖는 이중의 대표성은 이 기구의 적법성을 확립하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특히 이런 면은 우리가 앞으로 전체적으로 국제 사법질서를 혁신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교훈으로 삼아야 할 사안이다.(1)
국가적 차원에서나 국제적 차원에서 모두, 법률의 가장 최우선적인 소명은 주먹보다는 말을 통해 분쟁을 해결하도록 강제함으로써 인간들 사이에 폭력을 예방하는 것이다. 법률이 이런 기능을 할 수 있으려면, 무엇보다 분쟁 발생 시 도움을 청할 수 있는, 법률의 제정과 이행 권한을 지닌 제3의 공정한 주체가 필요하다. 결사의 자유도 이런 3자구도를 통해 확립된다. 하지만 각 단체가 경험한 불공정한 사법 질서의 구체적 사례를 경청해줄 창구를 찾아내 평화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허용해 줄 때, 비로소 이런 3자의 관계는 한층 풍요롭고 공고한 관계로 발전할 수 있다.
그런데 결사의 자유란 비단 현행 법률의 이행을 위해 사법의 힘을 빌릴 수 있는 권리만을 뜻하지 않는다. 이 법률을 개선하기 위해 집단적으로 행동에 나설 수 있는 권리도 함께 포괄한다. 사법정의는 결코 신성불가침한 명제가 아닌 것이다. 그렇다고 사회계층이나 인종 간의 무자비한 경쟁 혹은 투쟁을 통해 확립되는 것도 아니다. 사법정의는 법률에 의거해 집단적으로 반론을 제기할 수 있는 대상에 해당한다. 바로 그런 점에서, 결사의 자유는 각자의 이익을 대변 받을 수 있는 권리에 더해, 단체 행동과 교섭의 권리도 함께 포괄하는 것이다. 이런 권리들을 행사함으로써, 우리는 정의에 근접하기 위한 끝없는 노력을 통해 폭력을 해소하고, 힘의 관계를 법률의 관계로 전환할 수 있다.
결사의 자유는 파업, 집회, 시위, 보이콧, 사회적 기업 인증라벨 활용, 홍보 캠페인, 대중 경고 등 일정한 목록으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할 수 없을 정도로 그 형태가 다양하다. 이 모든 집단행동들은 과거 인도 해방을 위해 투쟁한 모한다스 카람찬드 간디가 ‘사티야그라하(Satyagraha, 산스크리트어로 ‘사티야(Satya)’는 진리, ‘아그라하(Agraha)’는 파악(추구). 즉 ‘진리의 파악(추구)’이라는 뜻-역주)’에 부여한, 정치적 의미에서의 비폭력 사상에 의거한다.(2) ‘수동적 저항’이라는 부당한 꼬리표가 붙기도 했지만, 실상 이런 행동은 글자 그대로 ‘진리 추구’를 의미한다. 즉 물리적 힘이 아니라, 순응을 거부하는 자의 정신적 힘을 통해 불의에 항거한다는 뜻이다.
법률에 이의를 제기할 권리는 결코 사법적 무질서를 초래하는 요인이 아니다. 오히려 다양한 변화에 직면한 사회에서 사법적 질서를 영속시키는 방법이다. 복지국가의 탄생은 정치적 대표성과 사회적(노사) 대표성의 결합을 통해, 독재정권에 맞선 민주주의 체제를 공고히 하는 계기가 됐다. 정치적 민주주의는 형식적으로 평등한 권리를 지닌 개인들이 투표한 다수표에 권력을 부여한다. 한편 사회적 민주주의는 다양한 계층의 현실 경험이 다채롭게 표현될 가능성을 제공한다. 그런 점에서 민주주의의 적용 범위를 확대한다. 노동자와 사용자의 이익은 물론, 독립노동자나 환경운동가들의 이익까지 적용하는 것이다.
이처럼 사회 민주주의는 기득권층에게 현실의 질서를 계속 환기함으로써, 그들이 일반인들의 문제와 ‘괴리’되지 않게끔 한다. ILO의 헌장에 담긴 중대 원칙인 결사의 자유는 187개 회원국에 의무화된 사항이다. 이에 따라, 1950년 이후 ‘결사의 자유 위원회’는 결사의 자유 이행 여부를 감독하는 일을 맡아오고 있다. 더욱이 결사의 자유는, 모든 국가가 비준을 요구받는, 국제노동법의 핵심에 해당하는 11개 기본협약 중 한 협약에도 명문화돼 있다. 그것이 바로 1948년 체결된 기본협약 제87호(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 협약-역주)다.
파업도, 기업의 자유를 보호하는 선까지만?
다른 발효 중인 협약들과 마찬가지로 이 협약도 역시 여러 관록 있는 법률전문가와 독립 연구가들로 구성된 전문가위원회가 이행 여부를 감독하고 있다. 그런데 두 감독기관은 항상 결사의 자유에는 파업권이 포함된다고 간주해왔다. 이런 해석은 특히 제87호 협약 조문에 근거한다. 제87호 협약은 노동조합에 대해서는 “관리 및 활동을 조직하고, 계획을 수립”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한편, 공공기관에 대해서는 “이런 권리를 제한하거나 이 권리의 합법적 행사를 방해하는 모든 개입을 삼가할”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이런 해석에는 모두가 동의했다. 하지만 이후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혼합이 가속화되면서, 민주주의 체제에서 경제정책에 대한 선택권이 제한되기 시작했고, 기득권층은 현실공산주의 체제나 복지국가가 결합된 완화된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는 결코 허용되지 않았을 막대한 부를 누릴 수 있게 됐다. 시장경제로 전환한 공산주의 중국은 1982년 새로운 헌법을 채택했다. 개정 헌법은 파업권에 대한 언급을 삭제하는 한편, “모든 기구와 개인에 대해 사회의 경제 질서를 뒤흔들지 못하게”(제15조) 금지했다.
서구 국가들도 ‘정치의 자리를 빼앗고’,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차원에서 모두 ‘민주주의를 제한’하는 각종 신자유주의 프로그램을 실시했다.(3) 마스트리흐트 조약(1992년)과 리스본 조약(2007년)은 유권자의 손길이 닿을 수 없는, 헌법적 가치를 부여받은, 유럽의 경제질서를 확립했다.(4) 2007년 같은 해, 유럽공동체사법재판소(CJEC)(2009년 유럽연합사법재판소(CJEU)의 전신)는 바이킹 판결(기업이 인건비가 싼 국가로 이전하는 것을 막은 파업이 기업의 자유를 침해했다고 봄-역주)과 라발 판결(외국에서 파견 온 노동자에게 국내 단체협약을 적용하기 위한 쟁의행위를 제한-역주)을 통해, 노동자의 파업권보다 기업의 자유가 더 중요하다는 논리를 폈다.
2010년 ILO의 전문가위원회는 “유럽사법재판소의 이런 판결논리가 제87호 협약에 위배되게, 실질적인 파업권 행사를 제한하는 효과를 낳을 수 있다”고 평가했다. 그리고 이런 제약이 국제적 차원의 집단분쟁에만 국한될 뿐이라는 논리를 펴는 영국 정부에 대해서도, “지금과 같은 세계화 시대에, 이런 사건들이 일반화될 우려가 있고, (...) 해당 분야의 노동자들이 고용조건에 타격을 줄 수 있는 사안들에 대해, 사용자와 협상할 권리를 침해한다면, 파국적인 결과가 초래될 것”이라고 응수했다. 이런 신랄한 비판은 유럽의 지도자들이 비로소 ILO가 단순히 스위스 레만호 수변에 잠들어 있는 관료주의 국제기구가 아니라, 강제적 법률의 원천이 될 수 있음을 깨닫는 계기로 작용했다. 비록 ‘이빨’은 없어도 여전히 ILO는 신자유주의 경제 질서를 뒤흔들 ‘목소리’를 지닌 기구인 것이다.
국제사용자기구(IOE)는 이런 불협화음에 대해 일절 침묵을 고수하는 쪽을 택했다. 2012년 국제사용자기구는 전문가위원회의 모든 조약 해석 권한을 거부하고, 사실상 파업권이 제87호 협약에 명시적으로 규정된 권리가 아니라는 점에서, ILO가 주장하는 회원국의 파업권 침해 사례를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런 식으로 이들은 10년도 넘게 ILO 감독 체계의 적법성을 무시하거나 반박해오고 있다. 이처럼 전문가위원회는 우수성을 갖춘 탁월한 기구임에도 불구하고, 어엿한 사법기구가 아닌 한낱 행정기구에 불과했다. ILO 헌장(제37조)은 고유한 사법기구를 갖추지 못한 경우, “모든 협약 해석의 어려움을 국제사법재판소에 맡길 것”을 명시하고 있다.
“평화를 원한다면, 정의의 씨앗을 뿌려라”
하지만 사용자 대표들은 권위주의 정부의 대표들과 마찬가지로 이 조항을 적용하는 데 열렬히 반대하며, 국제규범으로서의 ILO의 신뢰도를 무너뜨리며 무한정 위기를 지속하고 있다. 이에 ILO 이사회는 2023년 11월 11일 마침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제사법재판소에 사건을 회부하기로 결정했다. 1934년 이후 사상 첫 제소가 어떤 결말로 이어질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이는 국제규범으로서 ILO의 위상을 되살리는 신호탄이다.
사실상 ILO의 최우선 과제는 사법적 안정성을 담보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명쾌하고, 각국의 이행 환경을 모두 아우를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총체적인 방향에서, 국제노동법 규범을 확립하는 데 있다. 그런 의미에서, 조약 해석을 국제사법재판소의 판단에 맡기는 것은 ILO가 허울뿐인 기관으로, 국제노동법이 ‘허울뿐인 법’으로 변질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가령 법률의 의미와 효력 범위가 내부의 역학관계나 혹은 여러 무역협정에 따라 설치된 중재기구의 판단에 의해 힘없이 좌지우지되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법치의 길로 가는 첫 걸음 뒤에는 두 번째 걸음이 뒤따라야 한다. 다시 말해, 파업권 금지를 제87호 협약에 규정된 결사의 자유와 양립 불가능하다고 판단하는 전문가위원회의 해석을 국제사법재판소도 수용해야 한다. 일단 제87호 협약은 조약법에 관한 비엔나 협약의 조문에 의거해 해석돼야 한다. 특히 ‘조약의 대상과 목적에 비추어서’(제31조 1항) 해석되는 한편, 그 조약 적용에 있어 추후의 관행(제31조 3항)을 고려해야 한다. 제87호 협약은 노동조합이 자유롭게 행사할 수 있는 행위를 목록화한 적이 없다. 그런 점에서 협약이 겨냥하지도 않은 행동 방식을 금지한다는 것은, 결사의 자유가 지닌 모든 의미를 무색하게 만든다.
사실 파업권을 국제적으로 인정해준다고 해서 그것이 무제한적인 권리라는 의미는 아니다. 게다가 그 권리를 규제하는 것은 ILO 감독기구들의 통제 하에 회원국이 책임져야 할 소관에 속한다. 한편 파업권을 국제관습법에 속하는 권리로 인정해야 할 타당한 이유는 또 있다. 그것은 바로 수많은 지역 및 국제기구들이 파업권을 인정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파업은 국가와 분야를 막론하고 여전히 노동조합 행위의 중요한 형태 중 하나에 해당한다. 가령 미국의 영화산업과 자동차산업에서부터 유럽의 (우버식)플랫폼 노동, 방글라데시의 섬유산업에서 남아프리카의 운송산업까지 모두 해당된다. 파업은 『로마법대전』이 이미 6세기 규정한 사법의 정의처럼, “각자에게 그들이 응당 누려야 할 것을 부여하려는 꾸준하고 지속적인 의지”에 해당한다.
이처럼 국가 안에서나, 혹은 여러 국가 사이에, 폭력이 점차 점증하는 시대에, 우리는 무엇보다도 사회적 반발이 최대한 평화적 형태로 구현될 가능성을 활짝 열어놓아야 한다. 그리고, ILO의 신조를 잊지 말아야 한다.
“평화를 원한다면 정의의 씨앗을 뿌려라.”
글·알랭 쉬피오 Alain Supiot
콜레주 드 프랑스 명예교수
번역·허보미
번역위원
(1) Samantha Besson 외, 『Democratic Representation in and by International Organizations』, Oxford University Press, 2024년 출간 예정.
(2) Mohandas Karamchand Gandhi, 『Hind Swaraj. L’émancipation à l’inidenne 힌두 스와라지. 인도식 해방』, Fayard, Paris, 2014년.
(3) Friedrich Hayek, 『L’Ordre politique d’un peuple libre 자유로운 민중의 정치질서』, Presses universitaires de France, Paris, 1983년.
(4) Dieter Grimm, ‘Quand le juge dissout l’electeur(한국어판 제목: EU에 민주주의가 결핍된 이유)’,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한국어판, 2017년 7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