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의 ‘반마오리족’ 정책은 왜?

2024-01-31     올리버 니스 | 언론인 겸 변호사

지난 12월 초, 수천 명의 시위대가 뉴질랜드 오클랜드와 웰링턴 거리에 나와 마오리족의 권리를 주장했다. 2017년 총선 승리로 집권했던 뉴질랜드 노동당은 사회적 진보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를 배신했고, 새로 집권한 현 정부는 역대 어느 정권보다도 보수적으로 ‘반 마오리족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기 때문이다.

 

2017년 10월, 9년간 야당으로 밀려났던 뉴질랜드 노동당(New Zealand Labour Party, NZLP)이 정권을 되찾았다. 중도 좌파 정당인 노동당은 선거 몇 주 전까지만 해도 지지율 하락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했고, 네 번째 선거 패배를 피하기 어려워 보였다. 그러자 앤드루 노동당 대표는 당을 구하는 최후의 방법으로 당시 부대표였던 저신다 아던에게 당대표직을 이양했다. 효과는 즉각적이었다. 노동당의 인기가 치솟았다. 저신다 아던 후보의 유세장에는 전국에서 모여든 군중이 뜨거운 환호를 보냈고, 얼마 후 투표에서 아던은 집권 여당인 뉴질랜드 국민당(New Zealand National Party, NZNP; 중도우파) 후보를 이겼다.

저신다 아던은 카리스마가 넘쳤고, 소셜 미디어를 능수능란하게 다룰 줄 알았다. 아던의 사회 변화에 대한 공약은 여태껏 뉴질랜드가 열성적으로 고수해온 정통주의와도 대조를 이뤘다. 유세 기간에 아던은 “신자유주의는 실패했다”라고 선언했고, 아동 빈곤과 주택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발표했다. 당선 후에는 사회적으로 보수적이지만 반자유주의 성향인 뉴질랜드 제일당(New Zealand First Party, NZFP)과 좌파 성향인 아오테아로아 뉴질랜드 녹색당의 지지로 150년 만에 뉴질랜드의 최연소 지도자이자 세계에서 가장 젊은 정부 수반이 됐다.

 

패배의 원인은 코로나?

그로부터 6년 후, 노동당은 30년 만에 가장 참담한 패배를 맛봤다. 지난해 10월에 있었던 선거에서 27%를 밑도는 득표율을 기록했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기업가 출신 크리스토퍼 럭슨 신임 총리가 1990년대 이래로 가장 우경화된 정부를 이끌고 있다. 럭슨 총리는 뉴질랜드 국민당을 중심으로 초 자유주의 정당인 뉴질랜드 행동당(ACT New Zealand), 그리고 중도우파를 표방하는 뉴질랜드 제일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했다.

이에 앞서 2023년 1월 당시 저신다 아던 총리는 피로 누적을 호소하며 전격 사임했다. 후임 총리를 맡았던 크리스 힙킨스는 최근 선거의 패배원인을 코로나 사태와 치솟는 생활비에서 찾았다. 그러나 선거 패배는 정치 실패의 결과이기도 했다. 

아던 전 총리는 야심 찬 연설로 국제무대에서 찬사를 받았고, 그런 웅변적 수사를 실현하고자 부단히 노력하기도 했다. 하지만 2023년 현실에서 그런 야망은 바닥을 드러냈고, 노동당은 뉴질랜드 좌파에 찾아온 역사적인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뉴질랜드의 신자유주의로의 전환은 급물살을 타고 전개됐지만, 주요 좌파 정당이 변화를 주도했다는 특징도 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뉴질랜드의 노동당 정부는 스칸디나비아에 버금갈 만한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완벽한 복지 국가를 지향했다. 

하지만 1984년 노동당은 이런 전통을 버렸다. 세계에서 손꼽힐 만큼 보호주의적이던 시장 체제를 개방형 시장으로 탈바꿈시키고, 금융 규제를 완화했으며, 공공 자산 민영화도 추진했다. 1990년에 노동당은 실각 후 국민당에 정권을 내줬고, 여당이 된 국민당은 더욱 활발히 신자유주의 정책을 폈다. 결국 빈곤은 급증하고 불평등의 골은 더 깊어졌다.(1) 헬렌 클라크 노동당 정부(1999~2008)가 들어선 이후 극단적인 신자유주의 정책은 일부 시정됐으나, 반개혁적인 기조에는 변함이 없었다. 2017년, 사회적 지출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기준보다 낮은 수준에 머물렀다. 반면 주택 가격은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2)

 

모순과 함정 속에 시작된 주택 정책

이런 상황에서 아던 총리는 과거와의 결별을 결심한 듯, 주택 부문의 자본주의를 “명백한 실패”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당선 직후 첫 인터뷰에서 “선진국 그 어느 국가보다 노숙자가 많은데, 경제성장이 다 무슨 의미가 있느냐”라고 지적했다.(3) 아던 정부는 아동 빈곤을 절반으로 줄이고, 10년에 걸쳐 자금을 투입해 주택 10만 채를 짓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아던 총리의 계획에는 애초부터 모순이 있었다. 한편으로는 신자유주의를 비난하면서도 ‘재정정책 운용 준칙’을 준수하겠다는 말로 재계를 안심시키려 했기 때문이다. 아던 총리는 재정 흑자를 달성하고, 공공 지출을 국내총생산(GDP)의 35~30%로 줄일 것이며, 부채를 GDP의 20% 이하로 유지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는 대다수 유럽이나 북미 국가에 비해서도 매우 낮은 수준이었다.(4)

아던 총리는 모든 OECD 국가에서 시행해 왔고, 노동당도 부동산 투기 대책으로 오랫동안 내세워 왔던 양도소득세 도입을 중단하기도 했다. 이렇듯 노동당 정부는 한껏 펼치고 싶다고 했던 날개를 스스로 잘라냈다. 집권 연립정부는 최저임금 인상, 사회 지출 확대, 교통수단 탈탄소화, 나무 10억 그루 심기 등의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했지만, 대출을 규제하고 부유세 도입에 반대했다.

이런 접근방식에 숨은 함정은 곧 드러났다. 노동당 정부는 널리 알려진 ‘키위빌드(KiwiBuild)’ 정책에 따라 10년간 저렴한 주택 10만 채 건설을 목표로, 첫해에 주택 1,000채를 건설하고 매년 주택을 1만 2,000채씩 건설해 나가겠다고 했다. 하지만 사업이 시작된 지 1년이 지나도록 건축이 시작된 주택은 258채에 불과했고, 정부는 얼마 안 가 기존의 계획을 포기했다.(5)
1970년대의 노동당 정권은 공공 기금을 주택 계획에 투입하기를 주저하지 않았지만, 아던 정부는 과열된 시장을 옮겨 다니며 더 큰 이익만을 추구하는 민간 부문에 더욱더 의존했다.

 

정치적 자산을 활용하지 못한 노동당

노동당 집권 1기에는 심각한 위기가 촉발돼 이런 사회 쟁점이 수면 위로 떠 오르지 못했다. 2019년 3월 15일, 크라이스트처치의 이슬람 사원에서 백인 우월주의자가 자동소총으로 신도 51명을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사건 당일에 아던 총리는 “뉴질랜드의 역사는 영원히 바뀌었다. 이제 법이 바뀔 차례”라고 선언했다. 그 과정에서 의회는 반자동 무기를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켜 총기 6만 2,000정을 거둬들였다. 총리가 히잡을 쓰고 희생자 가족에게 위로의 말을 전하는 사진이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크라이스트처치에서 이런 비극이 일어나기 전에도 아던 총리는 뉴질랜드 정부 수반으로는 전례 없는 세계적 명성을 누렸다. 국제 언론은 아던 총리가 당선된 것은 저스틴 트뤼도와 에마뉘엘 마크롱의 당선처럼 도널드 트럼프에 대한 전 세계적인 반발심이 원인이라고 여겼다. 테러 발생 두 달 후, 아던 총리는 마크롱 대통령과 공동으로 SNS에서 테러와 폭력적 극단주의를 조장하는 유해 콘텐츠를 퇴치하자는 취지로 ‘크라이스트처치 요구(Christchurch Call)’를 발표했다.

비극이 발생한 지 1년 후인 2020년 3월,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휩쓸자 아던 정부는 뉴질랜드 영토에서 코로나를 퇴치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두 달 후, 철저한 격리 조치 끝에 바이러스는 확산을 멈췄다. 다른 나라에서 희생자 수가 계속 늘어나는 사이에 뉴질랜드인들은 거의 정상적인 일상생활로 돌아갈 수 있었다. 결국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뉴질랜드의 사망률은 미국보다 80%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이는 2만 명의 목숨을 구한 것과도 같은 수치라고 한다.(6)

노동당은 이 두 가지 위기에 잘 대응한 덕에 큰 보상을 얻었다. 2020년 선거에서 50%의 득표율로 74년 만에 당 최고 성적을 거두며 재집권에 성공한 것이다. 이 선거에서 노동당은 1996년 비례 투표제 도입 이후 처음으로 단독 과반을 확보했다. 첫 여성 대표의 역사적인 인기 덕에 노동당은 단독 정책 결정을 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노동당은 이 정치적 자산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인플레이션, 부의 독점 심화

2021년 중반부터 대다수 국민은 생활이 더 각박해졌다. 팬데믹 기간에 재정과 예산 상황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을 유지했지만, 아던 정부는 어려움에 부닥친 개인 앞으로 지원금을 직접 지급하는 대신, 기업 면세를 확대하고 기업 활동에 보조금을 집중했다. 그래서 봉급생활자들은 일자리를 유지할 수는 있었지만, 2021년 말에 약 8,720억 뉴질랜드 달러(4,960억 유로)가 자본가들의 주머니로 들어가는 소위 ‘부의 이전’이 이뤄졌고, 부동산 가격이 더욱 치솟았다.(7)

설상가상으로 2022년 여름 뉴질랜드의 인플레이션은 7.3%에 달해, 32년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8) 노동당은 중앙은행의 공격적인 금리 인상을 승인했지만 그 충격을 완화하지는 못했다. 세입자 지원을 위해 소액 수표 350달러를 지급하기도 했지만, 연금 생활자들과 대다수의 복지 수혜자들은 정부 지원을 한 푼도 받지 못했다. 게다가 대중교통 요금 인하 정책마저 1년 만에 중단됐다. 정부는 대형 유통업체의 초과이윤 취득을 규제하려던 계획도 포기했다.

2023년 1월 아던 총리가 사임했을 때, 2020년의 열풍은 상당 부분 수그러든 분위기였다. 범죄 증가와 인플레이션이 뉴스 머리기사를 장식했고, 의료 보험이나 상수도 보급과 같은 주요 개혁은 호응보다는 논란을 부추겼다. 2021년 봉쇄 조치의 영향으로 열의가 좌절로 바뀌면서 뉴질랜드 정부의 코로나 대처에 대해 긍정적이던 여론도 완전히 돌아서 버렸다. 

일부 유권자, 특히 지방에서는 아던 총리가 노동당 이미지를 개선하는 역할을 했을 뿐이라고 낮게 평가한다. 아던의 사임 후 총리직을 넘겨받은 노동당의 크리스 힙킨스 총리는 구매력 촉진 정책에 예산을 투입하기 위해 다수의 환경 정책을 포기하기로 했다. 그러나 우파 재집권의 위험성에 초점을 맞춘 힙킨스 총리의 선거 연설은 2017년 아던 총리만한 파급력은 일으키지 못했고, 결국 노동당은 참담한 선거 결과를 마주하게 됐다.

노동당의 두 집권기는 과연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노동당은 수당과 최저임금을 인상하고, 노동자와 세입자의 권리를 강화했으며, 사회주택 수를 늘렸다. 하지만 주거 비용은 아던 총리 취임 시기보다 더 비싸졌다. 뉴질랜드 국민의 1%가 부의 약 1/4을 독점하는 등 불평등은 줄어들지 않았다.(9) 그리고 노동당 정부는 기후 변화와의 싸움에서 로비에 굴복해, 경제에서 가장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부문인 농업에 대한 특혜는 끝내 폐지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등을 돌린 유권자들은 국민당 공약에 찬성표를 던졌을까? 현 정부가 뉴질랜드 헌법의 근간이자 건국 문서로 인정받는 와이탕이 조약(Treaty of Waitangi)을 재규정할 것을 검토하자, 마오리족의 이익을 대변하는 좌파 성향의 마오리족 정당(Māori Party, Te Pāti Māori)은 전국차원의 시위를 촉구하고 나섰다. 현재 집권한 연립정부는 공공 부문 규모 축소, 부문별 단체교섭 폐지, 임대료 인하, 세입자 권리 약화, 해상 석유·가스 탐사 재도입 등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이렇듯 노동당이 그동안 쌓아놓은 작은 성과마저 위협 받는 동안, 뉴질랜드 좌파에는 밤이 찾아왔다. 이 밤은 무척 어둡고 길 것이다. 

 

 

글·올리버 니스 Oliver Neas
언론인 겸 변호사

영불 번역·올리비에 시랑 Olivier Cyran 

불한 번역·이푸로라
번역위원


(1) Serge Halimi, ‘La Nouvelle-Zélande éprouvette du capitalisme total 뉴질랜드는 전면적 자본주의의 시험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1997년 4월호.
(2) OECD, ‘Social Expenditure Database’, www.oecd.org, 국제통화기금(IMF), 세계 주택 동향(Global Housing Watch) 보고서, 2016년 7월.
(3) Dan Satherley, ‘Homelessness proves capitalism is a “blatant failure” – Jacinda Ardern’, 2017년 10월 21일, www.newshub.co.nz
(4) Vernon Small, ‘Labour-Greens have signed up to a joint position on surpluses, cutting debt’, 2017년 3월 24일, www.stuff.co.nz
(5) Zane Small, ‘Labour’s flagship policy: Where did KiwiBuild go wrong?’, 2019년 9월 4일, https://www.newshub.co.nz
(6) Serena Solomon, ‘New Zealand Covid response saved 20,000 lives, study says’, <The Guardian>, London, 2023년 10월 6일.
(7) ‘Our counterproductive Covid ‘rekovery’, The Kākā by Bernard Hickey, 2021년 11월 30일, https://thekaka.substack.com
(8) Stats NZ Tatauranga Aotearoa, ‘Annual inflation at 7.3 percent, 32-year high ’, 2022년 7월 18일, www.stats.govt.nz
(9) Max Rashbrooke, ‘Has Labour worsened inequality?’, 2023년 6월 13일, https://thespinoff.co.n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