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싱에 더 이상 ‘아우라’는 없다
‘스테이크 한 조각’을 위한 권투는 사라지고
무하마드 알리라는 권투선수가 있었다. 전 시대를 아우르는 위대한 복서였던 그는, 이제는 전설이 됐다. 1974년 킨샤사 세계 챔피언 타이틀매치의 영웅, 무하마드 알리와 더불어 복싱계에서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린 선수로는 마르셀 세르당, 록키 마르시아노, 마이크 타이슨이 있다. 한편, 수천 명에 달하는 무명선수들은 평범한 노동자다. 복싱이 과거에 누리던 영광은 이제 사라졌다.
나의 아버지는 프랑스 노르망디 지역 아마추어 복서였다. 아버지는 프랑스 배우 알랭 들롱과 장폴 벨몽도 앞에서 프로선수처럼 상의를 벗고 링에 서 있을 자신을 상상하곤 했다. 그러나, 현실은 그런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장폴 벨몽도는 복싱 팬이었고, 알랭 들롱이 야망에 불타는 복서로 나온 <로코와 그의 형제들>은 아버지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였다.
아버지의 추억
아버지는 파리에서 이스라엘 선수와 붙은 적이 있다. 아버지의 상대인 슈뮈엘 야콩은 이스라엘의 복싱 챔피언으로, 올림픽 준준결승까지 올랐고 여러 국제 경기에서 우승한 선수였다. “아주 대단한 놈이었지!” 그때를 회상할 때마다 아버지의 눈은 감탄으로 반짝였다. 당시 27세였던 아버지는 노르망디의 아마추어 챔피언에 올랐고, 그것만으로도 이미 엄청난 성과였다.
프랑스 방송사 <카날 플뤼스>는 이 경기를 촬영했다. 아버지가 말했다. “링에 올라가는데 상대 선수의 이력을 끝없이 읊는 거야. 내 차례가 됐지. ‘노르망디 챔피언, 데르카위 선수.’ 그게 끝이었어. 심판은 나를 매의 눈으로 훑더니 내 코치한테 조용히 말하더라. ‘이건 프로 경기예요. 그쪽 선수, 상의 벗어야지!’ 옷을 벗었어. 온 세상 사람들 앞에서 발가벗고 있는 느낌이었어. 진짜 경기장에 내던져진 고깃덩이 같았다니까. 부르주아 인사들이 다 있었어. 이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고 무대에 선 느낌이었어.” ‘이스라엘의 기품 있고 멋진 슈뮈엘 야콩, 데르카위 꺾을 것’, 한 스포츠 신문에 실린 아버지와 야콩 선수의 사진 캡션이었다. 아버지는 그 경기를 이렇게 회상했다.
“난 1라운드부터 다운됐어. 머리가 지끈지끈 울렸지. 3라운드는 심지어 기억도 안 나. 탈의실에서 깨어나 링 사이드쪽의 의사를 보고 ‘내가 진 거요?’라고 물으니 그 사람이 ‘판정으로 졌어요!’라고 하더군. 심지어 의사는 내가 그때 기억을 잃었다는 걸 알아채지 못했고, 코치는 입을 다물었어.”
복서와 고깃덩어리
이스라엘 복서와의 시합 후, 아버지는 진짜 ‘고깃덩이’가 됐다. ‘쇼’를 위해, 그리고 이겼을 때 코치의 주머니 속으로 빠르게 들어가는 지폐 몇 장을 위해 복싱을 하는, 얼굴이 뭉개진 프롤레타리아 복서 말이다. 청년 시절 싸움꾼이었다가 아마추어 복서가 된 미국 작가 잭 런던은 복싱에 대한 단편소설을 몇 편 썼는데, 그중 최고는 역시 『스테이크 한 조각』(1)이다.
우울한 이 단편은 퇴물이 된 노년의 복서 톰 킹의 이야기다. 전성기가 지난 톰은 가족에게 스테이크 한 조각 사줄 수 없을 만큼 가난하다. 그럼에도 용기를 내, 유망주인 젊은 샌델과 링에서 겨루기로 결심한다. 그의 목적은 돈, 우승해서 상금을 받는 것이다. “이기면 30파운드로 빚을 다 갚고도 좀 남아. 지면 한 푼도 없어. 집으로 갈 차비도.” 톰은 말한다. 결국, 슬픈 현실이 펼쳐진다. 톰은 경기에서 지고, ‘유통기한 지난 고깃덩이’보다 싱싱한 현역 선수에게 판돈을 거는 쪽이 맞음을 관객에게 증명한다.
왜 이렇게 고기가 자주 언급될까? 로익 아르티아 연구원은 “권투가 막 자리 잡을 당시, 권투선수 중 상당수가 직업적으로 고기를 다룰 만큼 근력이 좋은 도살장 직원이었다. 그래서 붉은 고기 섭취가 에너지 공급에 최고라는 인식이 있다. 가축 도살장 직원은 고기라는 최고의 선택지에 대한 접근성이 좋다”라고 말했다.(2) 유명한 복싱 영화 <록키>의 주인공 록키는 ‘연습 벌레’라는 별명이 있는 헤비급 챔피언(1970~1973) 조 프레이저처럼, 필라델피아 도살장에서 일한다. 그리고 냉동실에 걸린 고깃덩어리를 샌드백 삼아 훈련한다.
아마추어 복서는 획득한 메달이나 승리에 따라 수당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것조차 없어졌다. 아마추어 복서였다가 1992년 코치로 전향하고 프랑스 올네수부아 지역에서 체육관을 운영하는 나세르 라라위가 어려워진 현실에 대해 설명했다. “5~6년 전만 해도 아마추어 복서는 라운드 당 15~20유로를 받았다. 아마추어는 3라운드로 진행된다. 아마추어 복싱 국가대표에게는 경기당 100~400유로의 수당이 주어졌다. 그런데, 이제 복서들도, 트레이너들도 수당을 한 푼도 받지 못한다. 이동거리에 따라 계산되던 트레이너 사례도 없어졌다.”
프로 세계의 경우 그나마 낫긴 하지만, 보수가 거의 오르지 않았다. 라라위는 “라운드 당 신인은 100~150유로, 검증된 선수는 200~300유로를 받는다. 최고 선수들은 1,000유로까지 받을 수 있다. 타이틀이 있으면 최소 1만 5,000유로에서 수백만 유로까지 받을 수 있다. 세계타이틀을 보유하거나 복싱 스타면 말이다”라고 설명했다. ‘복싱 사업’은 승부 조작이나 사기도박, 불공평한 매치를 선호한다. 라라위는 “프로 복서 에이전시는 돈을 벌려고 있는 것이다.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보통 10%를 뗀다. 그렇지만 자기네 좋을 대로 복서의 몸을 돈 버는 수단으로 생각해 사기 치는 에이전시들이 있다”라고 덧붙였다.
어떻게 하면 관심을 끌까?
프로 경기는 아마추어 경기보다 훨씬 격렬하다. 경기시간도 길다. 3라운드에서 12라운드까지 늘어난다. 상대 선수가 한 번 이상 다운된 후에도, 더 이상 일어날 수 없을 때까지 경기가 계속된다. 펀치 수는 줄어도 강도는 더 높다. 보호대는 마우스피스 등 최소한에 그친다. ‘쇼’는 반드시 흥행해야 한다. 프로 복서의 인기는 상대 선수들이 KO를 당할 때마다 올라간다.
아마추어 복싱에서는 빠른 펀치를 특히 선호한다. 아마추어 경기에서는 펀치가 더 많고 빠르지만 세기는 프로 복싱보다 약하다. 헤드가드 덕분에 강도가 약해지기 때문이다. 프로 복싱이 특히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로 만들어졌다면 아마추어 복싱은 좀 더 스포츠 정신에 치중돼 있다. 사회학자 파브리스 뷔를로 박사가 질문을 던졌다. “강력한 펀치를 날리며 상대 공격을 잘 버텨 명성을 쌓아야 하는 중요한 경기에서, 어떻게 하면 관전자의 시선과 감정을 사로잡을 수 있을까?”(3)
20세기 초, 상대 선수를 경기 불능으로 만드는 경기를 관전하는 것은 강렬한 감각을 추구하는 관객의 흥미를 불러일으켰다. 관객들의 복싱 취향은 그저 폭력적인 공연을 뛰어넘어 적법한 스포츠로서의 복싱 그 자체를 즐기는 방향으로 점차 발전하고 있다. 이런 변화를 통해 관객들은 경기의 가치와 선수들을 높이 평가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경기나 대회의 질을 평가하는 체계가 마련된다. 뷔를로 박사는 “경기에 참여하는 선수는 평가에 따라 다음 대회가 결정된다. 어떤 기획자가 기획한 대회에, 어떤 챔피언을 맡은 어떤 매니저가 대회에 가치를 부여하고 관객을 끌어모은다”라고 밝혔다.
신분 상승? 먹고 살기도 힘들다
어린 권투선수들은 권투를 사회적 지위 상승의 수단으로 삼을지도 모른다. 1920년 광부의 아들이자 1차 세계대전 당시 전투기 조종사로 훈장을 수여받은 조르주 카르팡티에는 세계 챔피언에 백만장자까지 된 첫 번째 프랑스인이다. 그렇게 ‘권투’는 초기에 스포츠 스타를 여럿 배출했다. 라라위는 “요즘 프로 복싱 수입은 괜찮지만 그건 몇몇 엘리트들에만 국한된 이야기”라며 지적했다.
“복싱계에서 마지막으로 배출한 프랑스 최고의 스타는 매체에 자주 등장했던 크리스토프 티오조(1990년 당시 WBA 슈퍼미들급 세계챔피언이었던 한국의 백인철을 프랑스로 불러들여 6회 TKO승으로 타이틀 획득-편주)인데 8시 뉴스에도 출연했다! 티오조 전에는 장클로드 부티에가 있었다. 그렇지만 이들 복싱 스타 이후 방송에 등장하는 복서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우리 곁에서 커리어를 마무리한 센생드니 출신의 장마르크 모르멕 같이 몇몇 위대한 챔피언들이 있었는데도 말이다. 복싱에는 더 이상 예전 같은 아우라가 없다.”
그럼에도, 그는 복싱에 대한 진한 향수를 간직하고 있다. 프랑스 프로 복싱선수 450명으로, 축구선수(1,361명)의 1/3에 그친다. 이런 현실이니, 복싱을 세계 수준으로 발전시킬 수 있을까?
22세 무스타파 자우슈의 경우를 보자. 크고 날렵한 체격의 이 청년은 올네수부아에서 라라위와 알림 샤라비에게 훈련을 받고 있다. 그는 샌드백에 펀치를 두 번 날리는 사이에도 코치들에게 농담을 던진다. 그렇다고 목표에 집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는 내게 자신의 이력에 대해 자랑스럽게 늘어놓았다. 전국 선수권 대회 청소년부 준결승, 전국 선수권 대회 준준결승 진출 등에 대해 말이다.
“저는 2020년 6월에 프로로 전향했습니다. 아마추어일 때보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훈련을 두 배로 늘렸어요. 먹는 이유도 사는 이유도 복싱 때문입니다! 아직까지는 파리 체육관에 운동 코치를 부업으로 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복싱으로 생활이 가능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은 잘 알지만요.”
우리는 오랫동안 복싱으로 큰 돈을 번 청년 노동자들을 조명했다. 그러나 현실은 스폰서도 찾기 너무나 어렵고, 대전료는 야박하기 짝이 없다. 무스타파 자우슈를 비롯해, 많은 프로 복서들이 훈련을 계속하기 위해 부업을 하고 있다.
글·셀림 데르카위 Selim Derkaoui
기자, ‘르 파사제 클랑데스틴’ 출판사의 2023년 책 『반격의 펀치 ― 권투 그리고 계층들의 싸움』의 저자. 본 기사는 해당 저서에서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번역·이보미
번역위원
(1) Jack London, 『Un steak 스테이크 한 조각』, Libertalia, Montreuil, 2010년(초판: 1909년).
(2) Loïc Artiaga, ‘Rocky Balboa ou la revanche de l’Amérique blanche 록키 발보아 또는 미국 백인의 설욕전‘ <Ballast> 2023년 3월 6일, www.revue-ballast.fr
(3) Fabrice Burlot, 『L’Univers de la boxe anglaise. Sociologie d’une discipline controversée 영국 복싱의 세계, 논란 많은 분야의 사회학』, INSEP(Institut National du Sport, de l’Expertise et de la Performance, 프랑스 국립 전문 스포츠원), Paris, 201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