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라스무스를 만나는 여행

2012-06-12     알랭 가리구

데시데리우스 에라스무스는 유명 화가들이 그린 초상화와 저서들을 통해 '유럽 대학의 아버지'로 알려져 있다. 특히 당시 엄청난 성공을 거둔 저서 <바보 예찬>(1511)으로 오늘날까지 명성이 높다.

여러 지식이 종합되어 있고 고전의 지혜가 담긴 에라스무스의 <격언집>도 읽어볼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라틴어와 그리스어로 쓰인 <격언집>은 정치와 종교가 혼란스럽던 16세기 상황을 잘 보여준다. 유럽의 인본주의를 수호하는 인물인 네덜란드 로테르담의 에라스무스는 여행을 하며 르네상스 시대의 군주·성직자·지식인들과 편지로 교류했다. 마르틴 루터와 교회 분열, 종교전쟁이 인본주의와 톨레랑스를 쓸어가기 전까지 에라스무스는 훗날 독일 황제가 되는 샤를 퀸트 등 영향력 있는 인물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처음에 교회는 에라스무스를 격찬했지만 이후 이단 사냥에 열중하면서 에라스무스의 <격언집>에 의혹의 눈길을 보냈고, 마침내 에라스무스의 모든 저서를 루터의 저서와 함께 불태웠다.

에라스무스와 루터는 공통점도 많지만 다른점도 있었다. 에라스무스는 교회 분리와 종교전쟁에 반대했고 끝까지 가톨릭을 믿었다. 게다가 에라스무스는 라틴어를 대중화하려고 했지만 루터는 독일어를 예배어로 택했다. 어쨌든 교회로부터 이단으로 의심받아 신변에 위협을 느낀 에라스무스는 개신교의 땅인 스위스 바젤로 피신해 살다가 1536년 67세에 세상을 떠났다. 에라스무스는 18세기까지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졌다.

<격언집>은 1500년 파리에서 처음 출간되었다. 820개 격언이 실렸다. 그후 1536년 바질에서 재출간된 <격언집>에는 1536개 격언이 실렸다. 21세기에 새롭게 나온 <격언집>은 아주 흥미롭고 방대해졌다. 최고의 라틴어·그리스어 전문가들이 작은 협회를 구성해 자원봉사로 재출간 작업에 착수했다. 이들은 베니스에서 그리스어 전문가들을 모아 알데 마누세 출판사를 통해 <격언집>을 출간했다.

1453년 비잔틴제국이 오스만투르크에 멸망하자 그리스 지식인들은 그리스 문헌들을 갖고 이탈리아로 피란했다. 그리하여 에라스무스의 <격언집>은 라틴어와 그리스어로 된 5천 쪽이 넘는 5권의 책으로 살아남았다.(1) 이탈리아-그리스어-<격언집>. 에라스무스와 21세기에 <격언집>을 재출간한 전문가들을 이어주는 공통점이다.

에라스무스는 문헌작업을 창시했다. 참고문헌에 나타난 의미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당시에는 에라스무스의 일이 시대에 맞지 않는 작업처럼 보였을 것이다. 실제로 흥미를 추구하는 세상에서는 번역과 독서가 무의미하고 별로 중요하지 않은 활동으로 치부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격언집>은 시집처럼 영감과 판타지에 따라 읽을 수 있어 매력이 넘치는 작품이다. 또한 <격언집>은 음악, 요리, 문학, 의학 등 모든 분야를 다룬다.

<격언집>을 통해 헤로도토스, 소크라테스, 호메로스, 탈레스의 명언과 만날 수 있다. 바칼로레아(프랑스 대학입학자격시험)를 치르는 학생들은 인본주의에 익숙해야 하지만 <격언집> 같은 방대한 자료는 읽을 시간이 없기 때문에 단지 <바칼로레아 준비 교재>(2)를 읽는 데 만족할 것이다. 이 교재에서 학생들은 고대 로마의 극작가 푸블리우스 테렌티우스 아페르의 명언이자 훗날 인본주의의 슬로건이 된 '인간과 관계된 그 어느 것도 나와 무관하지 않다', 그리고 이 명언의 정신을 이상적으로 구현한 에라스무스와 만나게 될 것이다.

글•알랭 가리구 Alain Garrigou

번역•이주영 ombre2@ilemonde.com


(1) 로테르담의 에라스무스, <격언집>(Les Adages>, Les Belles Lettres, 파리, 2011.

(2) Jacques et Sylvie Dauven, <바칼레로아 프랑스어 준비 교재 제1권>(Prépabac Français 1re toutes séries), Hatier, 파리,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