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 가까이에
소설 <친절한 무슬림> 타흐미마 아남
독립전쟁이 승리를 거두었다. 어제의 꿈과 야망은 어떻게 되는가? 독재자의 손에 떨어진 나라, 전범이 득실대는 나라, 피해자의 대다수가 자신이 당한 것을 잊으려 하는 나라. 이런 나라에서 어떻게 살아갈까? 방글라데시 출신의 젊은 여성 소설가 타흐미마 아남은 어제의 전투병들이 품었던 자유와 해방에 대한 희망, 그리고 1971년 방글라데시가 탄생하면서 겪은 오늘의 악몽을 소설 <친절한 무슬림> 속에 그려낸다.
아남은 독립전쟁과 국가 성립 이후 망가진 어느 평범한 가정이 간직한 비밀을 묘사해간다. 세상을 떠난 아버지, 암투병을 하는 어머니, 의사로서 여성이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시골 깊숙이 들어간 딸 마야, 극렬 이슬람에 빠져든 아들 소하일…. 폭력 속에 탄생한 나라 방글라데시의 모습을 반영하듯, 위기에 빠진 방글라데시 어느 가정의 모습이다. 방글라데시는 혼돈과 고난 속에 탄생했다. 1947년 힌두교와 이슬람 사이의 종교 갈등으로 인도제국에서 떨어져나와 동파키스탄이 되었다. 군사독재가 된 파키스탄의 일부 영토가 된 것이다. 그러다가 동파키스탄은 파키스탄 군대와 힘겨운 전투 끝에 독립해 국호를 방글라데시로 한다.
방글라데시가 독립을 쟁취한 지 15년 후, 마야는 고향인 다카에 돌아온다. 고향에 대한 마야의 추억은 여전히 생생하다. 어린 시절을 보낸 곳과 다시 만났다는 행복감과 시골 깊은 곳에 들어가기 위해 직업인 외과 의사 일을 버리면서 받은 상처가 마야의 마음속에서 교차한다.
특정 종교를 신봉하지 않으며 투쟁적인 성격이 된 마야는, 가깝게 지내고 같은 꿈을 가졌던 남동생 소하일을 잊으려 노력한다. 소하일은 예전의 남동생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영웅심이 가득하고 진보적이던 소하일은 이제 이슬람 근본주의자가 되어버렸다. 편협한 종교관에 빠져 자신의 아들마저 부정할 정도였다. 소하일이 새로운 것으로 받아들인 이슬람 근본주의야말로 낡은 시대의 산물이다.
타흐미마 아남은 이야기를 극적으로 이끌어가며, 집단 트라우마 속에서 등장인물들의 인간성이 갈가리 찢어지는 과정을 묘사한다. 또한 적에게 성폭행당하는 여성들의 비극을 조심스럽게 다룬다. 성폭행 피해를 입은 여성들은 마야에게 낙태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요청하거나, 성폭행이라는 끔찍한 기억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알려달라고 간청한다. 소설 속에서 마야와 소하일은 프리야라는 여성에게 "이제 끝났고 안전하니 걱정말라"며 위로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나 마야와 소하일은 프리야에게 그녀의 생각을 말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
돕는 마음만 있다고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마야는 이를 여러 번의 경험을 통해 깨닫게 된다. 그것도 소하일의 아들이 죽는 것을 보면서 더욱 절실하게 깨닫게 된다.
글•마르틴 뷜라르 Martine Bulard
번역•이주영 ombre2@ilemond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