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로 간 4대강의 눈물

2012-06-13     김병건

지난 5월 17일 독일 뮌헨주의 다뉴브강을 끼고 있는 작은 도시 레겐스부르크. 하얀 천과 8개 색이 담긴 페인트통, 그리고 마법의 빗자루처럼 보이는 큰 붓이 이곳 강변을 찾은 많은 독일인들의 눈길을 끈다. 레겐스부르크에선 매년 독일 자연보호연맹인 분트(BUND)에서 주최하는 다뉴브 축제가 열린다. 다뉴브 축제는 유럽의 10개국을 흐르는 젓줄인 다뉴브강을 자연 그대로 보호하고 강의 생명인 습지와 생명체들을 위해 열리는 행사다. 올해는 다뉴브강에 댐을 지어 강을 직강화하려는 토건자본에 맞서 지난 10년간 댐공사를 반대해온 분트를 비롯해 많은 사회단체와 교회 학자들이 참여했다. 댐을 건설하느냐 포기하느냐 결정하는 중요한 해이기 때문이다.

이번 축제에는 다뉴브 댐을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와 특별한 퍼포먼스가 벌어졌다. 그중 하나로 한국의 보디페인팅 아티스트인 배달래 작가(1)가 펼치는 <강의 눈물>은 파괴돼가는 강과 죽어가는 생명을 위로하고, 강과 생명이 다시 본래 모습으로 회귀하기를 희망하는 미술과 음악, 무용이 합쳐진 토털 아트 퍼포먼스다. <강의 눈물>은 2011년 8월 한국의 4대강 공사 현장을 살펴보기 위해 한국을 방문해 열흘간 현장을 둘러보고 "한국의 4대강 사업 후 이 사업을 계속 유지할 재정을 가진 나라는 지구상에 한 곳도 없다"고 밝힌 독일 카를스루에대학의 하천복원 전문가인 베른하르트 교수가 한국 방문 때 경남 창원에서 열린 배달래 작가의 퍼포먼스 <강의 눈물>을 관람하고 눈물을 흘릴 정도로 감동받아, 이번 다뉴브 축제의 의미에 딱 들어맞는 퍼포먼스라고 분트의 후베르트 바이거 회장에게 추천해서 이뤄졌다.

이날 축제 연설에서 바이거 회장은 다음과 같이 말해 큰 박수를 받았다. "한국에서 온 우리의 친구들이 이 자리에 함께하는 것을 대단히 기쁘게 생각합니다. 한국 친구들은 2년6개월 만에 16개의 보가 지어지는 상황을 맞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패배했다고 포기하는 대신 투쟁을 계속하겠다고 합니다. 국민 대다수의 의지로 한국의 강을 다시 옛 모습으로 되돌릴 때까지 정치적·의회적 투쟁을 계속할 것이라 말합니다. 이것이 바로 지구를 향해 보내는 신호입니다. 자연이 파괴된 자리에 주저앉아 놀지 않고 자연을 다시 회복시키겠다는 한국인의 의지를 배워야 합니다." 배달래 작가와 <에코채널 라디오인>이 기획한 <강의 눈물>의 의도를 바이거 회장이 잘 해석해낸 것이었다.

레겐스부르크에서 <강의 눈물>이 시작되자 많은 독일 관객들이 흰 천이 깔린 임시 무대 주변을 에워쌌다. 평화로운 강과 습지의 신이 아름다운 강변을 거니는 모습으로 시작되는데, 일본 부토 무용의 대가 무시마루 후지에다가 강과 습지의 신이 되어 나타났다. 다양한 미디어들을 사용해 자연음과 전자음의 독특한 조화를 이뤄내는 작품을 만들어내는 신세대 자연주의 뮤지션 최강희가 엮어내는 환상적인 모습에 이 퍼포먼스를 궁금해하던 독일인의 눈과 귀를 집중시켰다. 이 평화로움도 잠시, 배달래 작가의 붓은 탐욕의 세력이 되어 평화로운 강과 생명들에게 파괴의 칼날을 들이민다. 결국 욕망의 손은 강과 습지, 그리고 모든 생명을 파괴하고 강과 습지의 신은 고통으로 몸부림친다. 그의 눈은 고통으로 피눈물을 흘리고 있다. 바로 그 눈물이 우리 인간의 눈물이 되어 눈물의 강이 되고 자연의 모습으로 회복하기 어려워진 강마저 '강의 눈물'이 되어 흐른다. 하지만 바이거 회장의 연설대로 끝없이 자연의 강을 염원하고 지구에 회복의 메시지를 보내며 투쟁해온 많은 사람들의 간절한 소망과 기도에 강과 습지의 신은 욕망으로 가득 찬 파괴의 세력에 자연의 힘으로 응징을 내린다 .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가 흐르고 욕망의 구조물들이 무너져내린 강가에 고요가 찾아온다. 이내 모든 습지와 생명이 꿈틀대며 강은 제 모습을 찾아가고, 강과 습지의 신은 다시 평화로운 자연의 모습을 보기 위해 몸을 움직이려 한다. 결국 인간의 욕망은 자연의 힘 앞에 무력하게 꺾여 자연은 본래의 평화로운 모습을 찾고, 생명들은 다시 움튼다. 자연의 강으로 돌아오길 염원하는 아름다운 사람들의 작은 외침이 메아리가 돼 인간의 욕망으로 인해 포기하려던 강과 습지의 신을 다시 돌아오게 만든 것이다.

배달래 작가와 무시마루 선생, 뮤지션 최강희 이렇게 단 3명으로 구성된 <강의 눈물> 퍼포먼스팀은 인간의 욕망 파괴, 그리고 자연 복원이라는 염원을 주제로 한 퍼포먼스를 머나먼 독일의 다뉴브 강변에서 펼쳐 현지 독일인들에게서 5분간 기립 박수를 받았다. 그들은 하나같이 "가슴속으로 눈물이 북받쳐 올랐다"는 말로 공연의 감동을 대신했다. 바이거 회장은 공연이 끝난 뒤 페인트 묻는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배달래 작가의 작은 몸짓에 경의를 표하고, 퍼포먼스 무대에서 사용된 천을 영원히 분트에 기념으로 남기겠다고 했다.

바이거 회장은 "한국과 독일의 환경운동가들이 더 많은 교류와 정보 공유의 장을 열게 되어 기쁘다. 앞으로 자연파괴와 탈핵에 대한 전반적인 환경 사안에 대해 한국과 독일이 깊은 유대를 갖도록 하겠다"며 한국과 독일의 환경운동의 협조 방안에 대해서도 말했다. 배달래 작가는 퍼포먼스 소감을 이렇게 전했다. "레겐스부르크에서 열린 다뉴브 축제에서 현지 관객들과 함께 토건세력의 욕망으로 파괴돼가는 강과 그 속에 살고 있는 생명을 위한 몸짓을 나눴다. 자연과 생명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은 독일인이나 한국인이나 전 지구인이 같은 심정인 듯하다. 이곳 독일인들과 함께 가슴으로 느꼈다."

다뉴브 공연을 성곡적으로 마친 <강의 눈물> 퍼포먼스팀은 다음날 독일 통일과 냉전 종식의 상징인 베를린 브란덴부르크문 광장으로 향했다. 그곳 제2차 세계대전의 가해국인 독일에서, 또 다른 가해국인 일본의 무용가와, 그 전쟁의 피해국이며 그로 인해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인 한국의 예술가가 한반도의 통일과 세계 평화를 염원하는 퍼포먼스를 했다. 이 퍼포먼스는 창원의 대봉고등학교 학생들이 각자의 평화와 통일의 염원이 담긴 글을 담은 종이 비행기를 베를린 시민들이 함께 날리는 관객 참여로 진행됐고, 이것 역시 좋은 반응을 얻었다. 베를린 퍼포먼스 뒤 퍼포먼스에 쓰인 배달래 작가의 바닥천 작품은 프랑스인 가족의 부탁으로 그들에게 선물로 전달됐다.

배달래 작가는 "이 퍼포먼스를 하며 뜨거운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파란색과 빨간색은 나뉜 한반도를 의미한다. 냉전 종식과 통일의 상징인 이곳의 작은 몸짓이 나비효과가 되어 전 지구촌이 평화와 화해가 이뤄지는 행복의 땅이 되었으면 한다"고 독일에서 한 두 가지 퍼포먼스에 대한 감회를 이야기했다.

글•김병건


(1) 행위예술가. 1969년생. 경남 마산 출신으로 성신여대 서양화과 및 동 대학원 졸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