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꿈

노르웨이 테러 1년

2012-07-09     에블린 피에예

2011년 7월 22일의 학살극은 노르웨이를 충격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정치·사회적 조화를 이뤘다고 자부하던 나라인 만큼 충격은 더 컸다. 노르웨이는 투명성과 공존, 공생의 가치를 바탕으로 합의를 통해 운영되는 사회였다. 추리소설 작가 요 네스뵈의 말을 빌리면, 노르웨이 사회의 논쟁은 "좌파와 우파가 합의할 수 있는 목표에 도달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찾는 데" 집중됐다.(1) 이처럼 분쟁 조정 능력을 갖춘 모범적인 민주주의 국가에서 콤플렉스에 가득 찬 극우파들이 등장한 이유는 뭘까? 이들을 단순히 민족주의자 비드쿤 크비슬링- 나치 독일의 노르웨이 점령 기간 친나치 정부 수반- 의 후예로 정의할 수는 없다. 이런 현상은 비단 노르웨이만의 문제는 아니고, 정치적 영역에 국한된 것도 아니다. 대중은 내면적 감성을 자극하는 예술작품이나 대중문화를 통해 이런 경향을 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기도 한다.

1991~93년 노르웨이에서는 특별히 불우한 환경에서 성장했다고 볼 수 없는 청년들이 연이어 사고를 쳤다. 우선, 노르웨이 밴드 메이헴(Mayhem·대혼란, 아수라장을 뜻함)의 스웨덴 출신 보컬 데드가 자살한다. 그룹 창립 멤버로 작곡과 기타를 맡은 유로니무스는 데드의 주검을 촬영해 앨범 재킷에 싣는다. 1992년, 교회 연쇄방화 사건이 발생한다. 그중 한 곳을 찍은 사진이 그룹 엠퍼러의 앨범 재킷에 등장한다. 엠퍼러의 기타리스트 사모스는 방화범으로, 드러머는 한 동성애자를 살해한 죄로 구속된다. 1993년 메이헴의 베이시스트가 유로니무스를 살해한다. 그는 16년을 복역하고 2009년 출소했다.

비행과 살인을 서슴지 않는 이 청년들은 동시에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냈다. 그들은 격렬한 하드록의 유산인 헤비메탈을 더욱 급진화해 새로운 음악 장르를 개척했다. 그들의 음악은 고함 소리, 귀를 찢는 듯한 괴성, 가차 없이 두들겨대는 드럼 소리, 주문처럼 반복되는 가사, 기타 디스토션 등의 특징을 보이는 이른바 '블랙메탈'(Black Metal)로 악마 숭배 의식과 전사들의 주술 의식을 닮았다. 노래를 부른다기보다 불쾌한 트랜스(忘我·망아, 일종의 최면음악) 상태에 빠져 냉혹한 분노감을 표출하는 것에 가깝다. 블랙메탈은 북유럽뿐 아니라 폴란드, 러시아, 프랑스까지 확산됐다. 고딕, 네오중세, 사탄과 이교도, 다양한 모양의 십자가, 숲, 해골과 뼈 등의 이미지가 자주 등장한다. 아티스트들은 검은색과 흰색으로 화장을 하고 주검처럼 오싹한 얼굴로 무대에 선다. 그들을 보며 19세기의 그랑기뇰(Grand-Guignol·주로 무서운 연극을 하던 극장)을 떠올리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노래 가사에 정치적 메시지가 직접적으로 등장하지는 않는다. 차라리 음울한 니힐리즘에 가깝다. 메이헴의 한 앨범을 들어보면 "나는 죽어가는 문화의 해안에 떠다니는 잔해들을 본다"(2)는 가사가 등장한다. 혹은 파괴와 세계 종말, 죽음을 찬미하기도 한다. 그룹 버줌의 앨범 <전쟁>에는 "이건 전쟁이다. 나는 부상을 입고 수백 구의 주검이 널린 겨울 벌판에 누워 있다"(3)는 가사가 나온다. 이들은 선명하게 '나치즘'을 표방하지는 않는다. 대신 현 세계에 대한 거부, 사라진 순수함과 옛 시절, 영원한 자연에 대한 향수와 모호한 이교도 사상, 피를 통해 정화를 구현하는 궁극적인 폭력 등이 뒤섞여 있다. 블랙메탈은 '위대한 절망에 도달할 만큼 명석하고 인류를 타락시키는 주범들에 대항해 싸울 용기를 가진, 선택받은 자들의 힘'을 찬미한다.

블랙메탈에서 고급문학까지 뿌리 뻗는 파시즘

정신이상의 광신자들이 모인 사이비 종교단체쯤으로 치부할 수도 있다. 혹은 그들의 예명이나 무대연출을 비웃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의 음악을 완전히 외면하기는 쉽지 않다. 그것이 분노이건 풍자, 탈선 혹은 최후의 일격이든 메탈 그룹들의 무대연출은 무시할 수 없는 파급력을 갖는다. 2006년부터 프랑스 루아르아틀랑티크의 클리송에서 매년 열리는 '익스트림 메탈뮤직 페스티벌' 헬페스트(Hellfest)에서는 사흘 동안 온갖 종류의 메탈그룹들을 접할 수 있다. 그중에는 이른바 '국가사회주의 블랙메탈'(NSBM) 경향의 그룹이나 '히틀러는 섬세한 사람이었다'는 후렴구를 외치는 그룹도 포함된다. 물론 나중에 명단에서 제외되긴 했지만.

헬페스트는 가장 우파에 속하는 정치·종교 단체로부터 자주 공격을 받는다. 그들은 긴 머리를 한 가수들의 '악마 숭배'를 문제 삼는다.(4) 그러나 헬페스트에서 공연되는 '익스트림 뮤직'에는 메탈 이외의 장르도 있고 좌파 성향의 아티스트들도 자주 등장한다. 그룹 데드 케네디스의 보컬로 명곡 <캘리포니아 위버 알레스>,(5) <캄보디아에서의 휴가> 등을 부른 젤로 비아프라, 영국의 펑크그룹 999 등이 그 예다. 이들의 출연이 눈속임용인 것 같지는 않다. 그보다는 겉으론 '극우' 성향의 발언이나 태도를 부정하면서 그 예술적 형태는 용인함으로써 각 그룹의 정치성을 과소평가하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봐야 한다. 평론가들은 대중이 각 그룹의 정치적 성향에 동의하지 않으면서 음악을 즐기는 현상을 지적한다.

유로니무스를 살해한 바르그 비켄네스 같은 이들이 전형적인 예지만 이런 현상은 블랙메탈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룹 버줌(<반지의 제왕>에서 따온 이름)의 뮤지션으로 명성을 떨친 비켄네스는 합리적인 광신자를 자처한다. 그의 홈페이지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나온다. "우리는 나약해졌다. 우리는 망가지고 황폐해졌다. 우리의 자유를 팔아 안전을 도모했기 때문이다." 잘못은 국가를 파괴하기 위해 무슬림을 이용한 유대인과 프리메이슨에게 돌아간다. 그는 "총과 탄약을 들고 체첸과 아프가니스탄, 이라크로 향하는 것"에 동의한다. 그는 급진적이기를 원하며, 실제로 그렇다. 그는 오슬로 학살 사건의 범인 아네르스 베링 브레이비크가 반유대주의를 빼고 민족주의만 표방한 데 아쉬워한다.

"생태우생학, 다문화주의, 사회주의적 이슬람을 표방하며 '인간 공원'의 관리자로 행세하는 제4제국이야말로 역사상 최악의 반인륜적 음모다. (중략) 우리의 적 제4제국은 파괴되어야 한다." 비켄네스가 한 말이 아니다. 2009년 스위스에서 이슬람 사원 첨탑 건설 허용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가 실시됐을 때 작가 모리스 당테가 '링'(Ring)이라는 인터넷 사이트에 올린 글이다. 그와 친분이 있는 작가 미셸 우엘베크는 이 사이트를 '최고의 뉴스 사이트'라고 평가했다. 당테는 이어서 다음과 같이 썼다. "국가 연합체, 공식 정당, 인권 관련 위원회, 법관, 노조 지도자, '비정부' 구호단체가 이 민주적 전체주의의 동조자들이다. (중략) 인류를 3천 년간 이끌어온 프로젝트를 바로 세워야 한다. 이 프로젝트는 다음 세 가지 근본 토대 위에서 탄생했다. 켈트 민족, 그리스·로마 문화, 게르만 연방. 우선 전세계에 만연한 민주적 독재를 극복해야 한다." 당테는 풍부한 독서량을 자랑한다. (무엇보다 '인간 공원'이라는 표현을 처음 쓴 페터 슬로터다이크를 비롯해 레옹 블루아, 필립 딕 등) 명민하고 신경질적이며 사람들 앞에 잘 나서는 그는 강렬한 낭만주의를 구사할 줄 아는 작가다. 일반 소설뿐 아니라 추리소설, 공상과학(SF)소설, 에세이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자신의 세계관을 표현한다. 2009년에만 200만 권이 넘는 책을 팔았을 만큼 그는 대중적인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때로 그의 미래주의적 혹은 록(Rock)적 가톨릭 신앙이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지만 말이다.

작가 리샤르 밀레는 아카데미 프랑세즈 에세이상 수상 작가로 50여 권의 책을 냈다. 갈리마르 출판사의 심사위원으로 조나단 리텔의 <호의적인 사람들>의 출판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 역시 당테와 비슷한 발언을 했다. 그는 "각 종족이 본래 모습으로 자신의 땅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사랑하는 오래된 지혜"를 찬양한다.(6) 그리고 "비유럽 이민자들이 몰려와 국가와 국민 정체성의 가치를 무시하고 아무 생각 없이 그것을 파괴하는 상황"에 대한 성찰을 촉구한다. "이민자 수가 무한정 늘어나고 그들이 세계 자유주의 독재에 찬동하는 동안 본토 출신의 유럽인들은 극심한 피로감 속에서 낡은 의미를 붙들고 있다."(7) 당테와 밀레는 자신을 상처받은 진실의 대변자로 간주하는 것을 굳이 거부하지 않는다. 그들은 문학계 스타 노릇도 톡톡히 해낸다. 당테가 자칭 '기독교·시오니스트 전사'로서 이를테면 댄디-예언자라면, 밀레는 스타일을 중시하는 고전적 전통의 수호자로서 레바논 전쟁 때 자발적으로 기독교 세력에 지지를 보냈다.

주류는 아니지만 꾸준히 맥을 이어온 블랙메탈부터 고급문학으로 대접받는 작품들까지 자신의 '극우' 성향을 자랑스러워하는 이들이 공통적으로 집착하는 것이 있다. 그들은 하향 평준화한 사회에 만연한 나약함을 극복하고 다시 힘을 되찾거나, 결국 같은 종류의 생각이지만, 외부에서 침투한 해로운 요소들에 의한 오염을 막고 순수함을 지켜나가거나 되찾으려 한다. 이런 이미지는 상당수 베스트셀러 작품 속에 '호모 옥시덴탈리스'(서양인)의 몰락- 부활이 될 수도 있다- 을 의미하는 세계 종말, 혹은 몇몇 예외적인 인물만이 눈치채고 막아낼 수 있는 세계적 음모 등으로 형상화된다. 대성공을 거둔 영화 <매트릭스>와 2010년에만 8600만 부가 팔린(그중 150만 부가 프랑스에서 판매됐다) <다빈치코드> 등 음모론을 주제로 한 작품들이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더 흥미로운 것은 '판타지' 장르의 성공이다. 다소 편집증적이고 과거에 대한 향수가 강하게 밴 이 작품들에는 자신의 소명을 다하는, 선명한 질서가 지배하던 사회로 되돌아가려는 욕망이 숨어 있다. 가장 강하고, 가장 영웅적이고, 용감하게 희생을 무릅쓸 수 있는 자가 인간 무리를 지배하고 이는 자연의 섭리와도 통한다는 식이다. SF를 대신해 인기를 끌고 있는 판타지 장르는 정신의 혼란을 조장하는 마법, 악에 대항한 싸움, 각종 전설 등의 중세적 매력을 한데 뒤섞는다. 나약한 이성은 더 이상 본능을 통제하지 못하고, 기술은 다시 마법이 되며, 선택받은 자는 수많은 통과의례와 정화의식을 거치며 임무를 완수한다. 주인공이 어둠의 세력과 싸워서 이겨 되찾으려는 것은 권력이다. 북유럽의 전설에서 일부분 영감을 받은, 톨킨의 <반지의 제왕>이 좋은 예다. 세계를 지배하는 반지를 찾아나선, 그러나 그것을 파괴하기 위해 주인공이 겪게 되는 이 이야기는 1954년 초판이 나온 뒤 지금까지 총 2억 부 넘게 팔린 초대형 베스트셀러가 됐다.

판타지 장르는 소설에 머물지 않고 헤비메탈, 롤플레잉비디오게임, 상업영화 등에서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 판타지는 고유의 코드를 지닌 하나의 정신으로서, 초현실적이고 폭력적인 배경 위에 새로운 영웅과 야만인, 마법사 등을 창조한다. 잠재적 파시스트 작가들이 쓴 이 작품들은 근대성과 평등에 반대하고, 종족에 대한 소속감과 폐쇄적인 세계, 지도자의 고독과 용기를 찬양한다. 그러나 이들이 독자와 나누려는 꿈은 집단적 해방을 추구한다고 보기 힘들다. 판타지 장르는 성탑과 용 등이 등장하는 환상적인 과거를 발명한다. 그 속에서 사회적·정치적 문제가 한 위대한 인물의 점진적 승리 속에 극복되는, 고대적이고 반계몽적인 사회가 마치 잃어버린 낙원인 양 묘사된다. 이런 경향은 현 시대의 조류와도 무관하지 않다. 진보와 민주주의가 그렇듯 역사는 의미를 잃었다는 식의 생각이 만연하고 있다. 과거에 선조가 세운 위계와 질서로 돌아가는 것만이 자연이 명하는 방식대로 인간의 진리를 되찾는 길이라는 것이다.

에블린 피에예 Evelyne Pieiller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특파원

번역정기헌 guyheony@gmail.com 


(1) <Courrier International>, 파리, 2011년 8월 5일.
(2) “I can see the wreckage floating ashore of the dying culture”, 앨범 <View from Nihil>.
(3) “This is War, I lie wounded on wintery ground with hundred of corpses around.”
(4) 2010년 프랑스 국회에서 크리스틴 부탱과 일명 ‘메탈 의원’으로 불리는 파트리크 루아 사이에 열띤 논쟁이 벌어졌다.
(5) 과거 독일 국가에 등장하는 ‘독일 제국이 모든 것보다 우월하다’라는 구절을 패러디했다.
(6) Richard Millet, <문학의 환멸>, Gallimard, 파리, 2011.
(7) Richard Millet, <의미의 피로>, Pierre-Guillaume de Roux, 파리,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