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마켓 ‘르클레르’의 화려한 변신에는 문화가 있다
세제, 통조림 그리고 문화. 르클레르 슈퍼마켓 진열대 위의 다양한 제품은 이 기업이 우리 모두의 삶을 아름답게 만들고자 얼마나 열심인지 보여준다. 그러나 르클레르의 ‘문화공간’, 더 넓게는 문화정책은 슈퍼마켓 세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제는 정신세계까지 정복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일까, 아니면 ‘사람들의 영혼을 더 풍성하게 하는’ 문화를 지원함으로써, 기업에 정당성을 부여하려는 의도일까?
니스테르주의 랑데르노에서 르클레르(Leclerc)라는 브랜드를 모르는 사람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인구 1만 5,000명의 이 코뮌에서 르클레르의 간판은 슈퍼마켓, 주유소, 여행사, 문화공간 등 모든 곳에 걸려 있기 때문이다. 시내에 있는 FHEL(Fonds Helene et Edouard Leclerc 엘렌&에두아르 르클레르 재단) 건물에는 1949년에 오픈했다가 1986년에 폐점한 최초의 식료품 전문점 르클레르가 입점해 있었다.
10년 전에 면적 1,600㎡에 이르는 이곳은 전면적인 리모델링을 통해 근대와 현대 미술 전시회가 열리는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엘로른 강을 따라가다 보면 시청이 보이는데, 현 시장인 파트리크 르클레르는 2006년부터 르클레르 기업의 회장직을 맡고 있는 미셸 에두아르의 사촌이다. 그리고 10km 정도 떨어진 생-디비 코뮌에 르클레르 가문이 1966년에 매입한 영지에는 2026년에 70헥타르 면적의 조각 공원이 들어설 예정이다.
오늘날 미셸 에두아르 르클레르 시장은 문화산업에 주력하고 있다. 르클레르 가문의 영지가 어떻게 활용되는지 보면 알 수 있다. “재단을 만들기 전에 랑데르노의 분위기는 전반적으로 침체돼 있었습니다. 재단 덕분에 랑데르노는 새로운 이미지를 갖게 됐고, 그로 인한 경제적 부수입도 많아졌습니다. 베르나르 아르노가 파리를, 프랑수아 피노가 베니스를 선택할 때, 미셸 에두아르는 브르타뉴 지방의 이 작은 도시를 선택했습니다.”
카르푸르와 달리 르클레르는 상장 기업이 아니라, 독립 상점을 운영하는 상인들이 1949년 설립한 ‘E. 르클레르 조직(Mouvement E. Leclerc)’에 가입해 있는 형태다. 르클레르 그룹의 공식 사이트는, 상인들로 구성된 협동조합이 “유통경로를 단축해 모든 물건을 쉽게 얻을 수 있게 하는” 르클레르 단체의 뼈대를 이루고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프랑스 최대의 대형마트 브랜드인 르클레르에는 현재 700개의 상점과 14만 명의 ‘직원’이 소속돼 있다. 이 조직의 주주도, 상점의 소유주도 아닌 미셸 에두아르가 전략위원회를 운영하며, 각 지역 조합의 대표 16명으로 구성된 이사회가 기업의 주요 방향과 전략을 결정한다.
퐁피두 센터에서 만화 전시를
“르클레르 단체에 가입한다는 것은 우리의 문화와 가치에 동의한다는 뜻입니다.” FHEL의 대표인 마리-피에르-바타니가 설명했다. “르클레르 소속 상점의 모든 사장들은 문화적 삶의 주체입니다.” 이에 대해 질문을 받은 미셸 에두아르 르클레르는 아버지를 떠올렸다. “아버지는 랑데르노의 식료품상으로 불렸습니다. 친근한 별명이었어요. 문화는 우리에게 일종의 사회적 보상이었습니다.”
엘렌과 에두아르는 종교적 미술 작품을 수집했고, 이 작품들은 오늘날 FHEL 건물 인근의 교회에 소장돼 있다. “작품마다 편차가 큽니다. 굉장히 흥미로운 작품도 있고, 그렇지 않은 작품도 있어요. 부모님께서는 교회가 재산을 처분하기 시작한 시점부터 종교 관련 작품들을 수집하셨습니다.” 르클레르 그룹의 현 회장인 미셸 에두아르는 다른 형태의 미술 작품, 특히 만화 작품에 투자를 집중하고 있다. “만화가 하위 장르로 인식되던 시기에” 엔키 비라르(Enki Bilal)와 자크 타르디(Jacque Tardi)의 작품도 일찌감치 매입했다고, 앙굴렘 국제 만화 축제(FIBDA)의 조직위원장인 프랑크 봉두는 설명했다.
훗날 이는 전략적으로 훌륭한 선택이 됐다. 현재 르클레르 컬렉션에는 수천 점의 만화 작품이 포함돼 있다. 르클레르 재단은 “앙굴렘과 기타 개인 수집가들과 함께, 프랑스에서 가장 풍부한 만화 컬렉션을 보유”하고 있다고, MEL 출판사의 대표인 뤼카 위로는 자랑스럽게 말했다. 미셸 에두아르가 4년 전에 설립한 이 출판사는 니콜라 드 크레시부터 제라르 가루스트까지 다양한 만화가와 현대미술가의 작품을 복제(판화, 석판화 등)한다. 어떤 목적에서일까? “제가 좋아하는 예술과 예술가들을 모두에게 알리고 싶어서”라고 미셸 에두아르는 덧붙였다. 이로써 그는 만화 업계에서 중요한 인물이 됐다.
2024년에 퐁피두 센터는 르클레르 컬렉션의 만화 작품들을 대중에게 전시할 예정이다. “퐁피두 센터에서 이처럼 대규모의 만화 전시회가 열리는 것은 역사상 처음”이라고 위로는 기쁘게 설명했다. 미셸 에두아르는 작품 대여는 물론이고 이번 전시회를 재정적으로도 지원할 계획이다. 2025년부터 5년간 공사를 위해 문을 닫는 퐁피두 센터는 자체 자원을 늘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러나 이는 “공공시설의 민영화 작업”이나 마찬가지라고, 퐁피두 센터의 한 컬렉션 담당관은 이렇게 비난하면서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기업가 정신을 문화에도 똑같이 적용했어요”
한 가지만은 분명하다. 그와 같은 전시회는 르클레르 컬렉션의 가치를 높일 것이며, 나아가 해당 기업인과 브랜드에 대중적이고, 과감하고, 현대적 문화를 선도하는 이미지를 가져다줄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 명성이 얼마간은 지속되겠지요.” 봉두는 이같이 예상했다. “미셸 에두아르가 개인적으로 추진하는 일인지, 그의 브랜드가 주도하는 일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 둘은 불가분의 관계니까요.” 다만 퐁피두 센터에서 이와 같은 전시회를 기획한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미셸 에두아르는 퐁피두 센터의 대표인 로랑 르 봉과 잘 아는 사이다. 2019년에 르 봉은 FHEL에서 ‘호기심의 서재(Cabinet de curiosités)’라는 제목의 전시회를 기획했었다.
르클레르 재단이 설립된 2012년부터 열린 전시회의 목록을 살펴보면 당황스러울 정도로 주제가 제각각이다. 파블로 피카소와 알베르토 자코메티와 같은 현대 미술의 거장뿐만 아니라, 상대적으로 덜 유명한 작가(블라디미르 벨리코비치, 자크 모노리 등), 만화가(만화 잡지 <메탈 위를랑(Métal Hurlant)>의 만화가 로렌조 마토티), 어반아트의 대표주자(에른스트 피뇽-에른스트) 등 실로 다양한 작가가 포진해 있다. 처음에 르클레르 재단은 브르타뉴 지방의 예술을 지원하겠다고 선언했지만, 이런 노선은 곧 폐지됐다.
2021년에 르클레르 재단에서 전시회를 열었던 조형 예술가 프랑수아즈 페트로비치는 미셸 에두아르가 자신의 작업실에 방문했던 때를 떠올렸다. “그는 호기심이 많고, 신예 작가의 작품을 좋아했습니다. 현대 미술계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유명 인사의 이름을 들먹이는 행동도 하지 않았어요. 그렇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소유한다기보다는 마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기업가의 정신을 문화에도 똑같이 적용하는 것 같았어요.”
문화공간에서 예술과 경제의 교묘한 공존
놀라운 점은 또 있다. 대형마트의 선두주자인 르클레르는 좌파로 분류되는 예술가들을 초청하는 일도 주저하지 않는다. 재단의 초대 전시회는 에른스트 피뇽-에른스트와 제라르 프로망제의 작품들로 구성됐다. “저는 그들의 의견에 상당 부분 공감합니다.” 미셸 에두아르는 이같이 강조했다. 프랑스인들이 ‘좋아하는 기업인’으로서 다른 기업인들과 차별화하려는 의도일까?(1) “베르나르 아르노는 평생 두 번 봤을 뿐”이라고 그는 과거에 흘리듯이 말했었다. 그렇다면 미셸 에두아르는 프랑수아 피노나 이브 로셰와 같은 “프랑스 서부 출신의 기업인들”과 더 가까운 것일까? 여하튼 그는 블로그에서 “흙에 발을 파묻고 있는”, “집단 정신이나 계급 정신과 크게 관련이 없는”과 같이 호의적인 표현을 쓰긴 했다.(2)
FHEL 재단의 재원은 르클레르 그룹에 소속된 상점 상인들의 기부금으로 충당된다.(3) 일부 상인은 이사회의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FHEL의 재정 상태를 감시하고(각 전시회의 예산은 120만~200만 유로) 전시회의 관람객을 조사한다. 재단이 출범한 이래로 총 150만 명이 전시회를 다녀갔으며 그중 70%는 브르타뉴 지역의 거주민이었다.
르클레르는 자사의 문화공간에서 예술적 열정과 경제적 전략이 혼합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제 르클레르 브랜드는 식료품점뿐만 아니라 약국, 여행사 등으로까지 영역을 확대했다. “가구 지출의 85%는 식료품 외의 품목에서 이뤄집니다.” 미셸 에두아르 르클레르는 설명을 이어갔다. “그리고 문화에 투자하는 것은 우리 기업만의 차별점입니다.” 사실 르클레르의 경쟁사 대부분은 문화 분야에는 관심이 없고, 오샹(Auchan)의 모기업인 뮐리에즈(Mulliez) 그룹만이 퀼튀라(Cultura)를 운영 중이다.
오늘날 225개의 문화공간을 관리하는 르클레르는 프낙-다르티(Fnac-Darty)에 이어 두 번째로 큰 문화 제품 유통 업체다. “사실 프낙-다르티는 프낙보다는 다르티에 가깝지요.” 미셸 에두아르는 이렇게 비판했다. “문화공간은 식료품 코너와 분리돼 있고, 카트도 들어갈 수가 없어요.” 르클레르의 구매 센터인 갈레크(Galec)의 문화공간 책임자 마리-조제 스가라는 이같이 설명했다. “현재 매출의 절반은 도서 분야에서 나오고 있지만, 제품군이 점점 더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지금은 보드게임, 스마트폰, 모니터 등도 판매합니다.” 그렇다면 르클레르에서 문화란 어떤 의미일까? “우리는 콘텐츠뿐만 아니라 콘텐츠의 전달 수단도 함께 판매합니다.”
문학 분야 ‘랑데르노상’을 만든 이유는?
르클레르의 문화공간은 특히 중형 도시에 집중돼 있어서, 인구 2만 명 이하의 코뮌이 40%를 차지한다. 대도시 이외 지역의 거주민들도 얼마든지 문화를 즐길 수 있게 하는 것, 그것이 르클레르의 신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화를 즐기려면 거리만큼이나 가격도 중요하다. 르클레르는 식료품을 언제나 가장 저렴하게 제공하려고 노력하지만, 수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킨 랑법(Loi Lang)에 따라 도서정가제가 시행돼 책의 가격은 마음대로 낮출 수가 없다.(4) 랑법이 제정되고 이미 40년이나 지났지만 미셸 에두아르는 여전히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이 법은 대형서점 체인인 프낙에 맞서 파리 서점 운영자 조합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고안됐습니다. 책은 대형 유통업체가 가장 많은 이윤을 남기는 분야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랑법 덕분에 프랑스 전역의 독립 서점들이 폐점 위기를 면할 수 있었고, 2021년에는 책이 판매되는 여러 경로 중에서 독립 서점이 1위를 차지했다(프랑스 시장의 40%). 그렇다면 자타공인 문화 예찬론자인 미셸 에두아르 르클레르는 독립 서점을 전혀 위협하고 있지 않을까? “시장이 확대된 덕분에 독립 서점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스가라는 이같이 설명했다. 올해에 르클레르는 타르브의 중심가에 두 번째 문화공간을 열었다. 근처에서 독립 서점인 ‘Les beaux jours’를 운영하고 있는 플로랑스 앙드리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단골손님들은 전혀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르클레르의 독점이 싫어서 우리 서점을 찾아오는 분들이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문제입니다. 그저 아멜리 노통브의 최신작이 궁금한 분들은 아무 생각 없이 르클레르를 방문하곤 하니까요.”
아나 공칼브는 르클레르의 문화공간에서 일하다가 랑데르노의 독립 서점인 ‘Les passagers du livre’로 이직했다. “두 곳의 일은 완전히 다릅니다. 여기서는 손님들에게 책과 관련된 조언을 건넵니다. 하지만 르클레르에서 제 업무의 대부분은 박스에서 책을 꺼내 매대에 진열해 놓는 일이었습니다.” 르클레르는 책의 판매량에 따라 책을 선택한다. 르클레르가 말하는 ‘문화에 대한 접근성’이란 결국 잘 팔리는 책들에 대한 접근성을 의미하는 셈이다.
르클레르는 ‘랑데르노상’이라는 문학상까지 만들었다. 올해에 소설 부문에서는 토마 B. 르베르디의 『위대한 구원(Grand Secours)』(Flammarion), 만화 부문에서는 기욤 생줄랭의 『경계(Frontier)』(Rue de Sèvres)가 랑데르노상을 수상했다. 이 뛰어난 작품들은 소설가 세실 쿨롱과 만화가 리아드 사투프, 그리고 미셸 에두아르 르클레르로 구성된 심사위원단이 선정했다. 이쯤 되면 문학적으로도 정당성을 갖춘 셈이다. 기업의 이미지에도 당연히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공공문화계 거물들과 손잡은 르클레르
문화는 르클레르가 사익과 공익의 중간에 서 있게 만들기도 한다. 르클레르가 가장 많은 직원을 고용하고 있는 타르브에서, 파르비스(Parvis) 국립극장은 시내 쇼핑몰 안에 위치해 있다. 본래 파르비스는 르클레르 소속 상점 주인의 남편인 마르크 벨리가 설립한 극장이었는데, 문화부에서 이 극장을 국립극장으로 만들었다. 미셸 에두아르가 문화를 이용해 정치계 진출을 노리는 것일까? 사실 그는 공권력과 양면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르클레르의 문화공간은 배우들의 무료 낭독회로 구성되는 ‘퀼튀리시모(Culturissimo) 축제’와 같은 고유의 문화 행사를 매년 기획하면서, 정부 지원금으로 운영되는 다른 곳들과 경쟁하고 있다. 그리고 교묘하게도, 이런 행사들은 문화부가 제공하는 혜택에서 다소 소외된 중형 도시를 중심으로 열린다.
르클레르는 재단 운영 외에도 각종 지역 축제들도 지원한다. 생-말로의 ‘놀라운 여행가들(Etonnants voyageurs)’, ‘낭트의 크레이지 데이(La Folle Journée de Nantes)’, ‘오래된 쟁기들(Les Vieilles Charrues)’ 등이다. 프낙에 자리를 내주기 전까지, 르클레르는 1990년부터 2006년까지 앙굴렘 국제 만화 축제(FIBDA)의 주요 스폰서였다. “우리 축제가 위기에 빠져 있었을 때 미셸 에두아르가 나타나 우리를 도와주었습니다. 그러나 현지의 르클레르 상점들은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어요. 파트너쉽 관계에서는 열정만큼이나 약속도 중요합니다. 르클레르 상점들은 오샹(Auchan) 상점들보다도 덜 협조적이었어요. 그래서 우리는 스폰서를 교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봉두는 변명하는 듯이 설명했다.
미셸 에두아르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우리의 일이 반드시 우리의 소망과 일치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원래 화가가 되고 싶었어요.” 그의 말대로, 미셸 에두아르는 2023년 7월부터 또 하나의 직책을 맡게 됐다. 바로 국제관계전략연구소(IRIS)의 대표직이다. ‘식료품상’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 좋아하던 그는 이제 두 명의 부대표, 전 문화부 장관인 로즐린 바슐로와 LVMH의 사무총장인 마르크-앙투안 자매와 함께 일하고 있다.
참고로, LVMH의 회장인 베르나르 아르노는 공공 문화 활동을 지원하는 큰손 중 하나다. 이 모든 것이 과연 우연일까?
글·앙투안 페쾨르 Antoine Pecqueur
기자
번역·김소연
번역위원
(1) Yves Derai, ‘Exclusif : les 20 patrons préférés des Français 독점 : 프랑스인들이 좋아하는 20인의 기업인’, 2021년 12월 26일, www.forbes.fr
(2) Yannick Le Bourdonnec 인터뷰, ‘La Bretagne 브르타뉴 지방’, 2016년 5월 30일, De quoi je me M.E.L 내가 미셸 에두아르 르클레르를 좋아하는 이유(미셸에두아르 르클레르의 홍보용 블로그), www.michel-edouard-leclerc.com
(3) Mathilde Goanec, ‘Fondations “d’utilité publique”, vraiment? 메세나의 진실은 납세 회피 수단?‘,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한국어판, 2014년 3월호.
(4) Patricia Sorel, Prix unique du livre, péripéties d’un combat 제정 40년 된 랑법(Loi Lang)의 투쟁사,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한국어판, 2021년 7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