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가 아니어야 살기 편한 세상”
사회당의 입지가 좁아지는 옥시타니의 현주소
번득이는 아이디어가 없는 정치인들은 대개 지역연고주의만을 앞세워, ‘변두리 프랑스’의 변호인을 자처하려 한다. 하지만 지역 현실을 잘 안다고 과연 민주주의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을 되살릴 수 있을까? 그것이 좌파가 인기를 회복할 묘안이 돼줄 수 있을까? 사회당 소속의 카롤 델가가 의장직을 맡고 있는 옥시타니의 사례를 보자.
대형 스크린에 비친 장 조레스가 말했다. “이상으로 나아가고, 현실을 이해하라.” 스피커에서는 알랭 수숑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감상적인 군중, 우리는 이상에 목말라 있네.” 이날 현장의 분위기는 흡사 여름 전당대회라고 해도 믿을 만큼 뜨겁기만 했다. 2023년 10월 1일 브람 공원(옥시타니 지방(레지옹)의 오드 데파르트망(도)에 있는 공원)에는 청바지 차림의 남성 정치인들과 그보다 조금 적은 수의 여성 정치인들이 자리를 함께 했다. 곳곳에 기자들이 보였고, 랑그독의 전통 요리인 카술레 스튜가 담긴 거대한 냄비도 눈에 띄었다. <리베라시옹>의 전 발행인 로랭 조프랭은 스튜를 먹기 위해 테이블에 착석했다.
폐막식 연설이 끝난 지 한참이 지났지만, 안주인은 좀처럼 연단에서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주말을 맞이해 그녀의 주변에 모인 인파는 모두 2,500명에 달했다. 참석자들은 중년 이상으로 보였다. 더러 청년들이 보였지만, 자원봉사자 배지를 달고 의원 보좌진 특유의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사회당 소속의 니콜라 마이에르 로시뇰 루앙 시장과 공산당 소속의 이앙 브로사 상원의원 같은 인사들도 이날 ‘좌파의 만남’을 위해 자리를 같이 했다. 마침내 옥시타니 지방의회(레지옹의회) 의장이 장내로 입장했다. 카롤 델가의 세계에 오신 걸 환영한다.
야심 찬 좌파, 역사의 상속자
2021년 지방선거에서, 유권자 대다수는 전임자의 연임을 선택했다. 당시 기록적인 기권율에도 불구하고, 델가 의장은 당당히 58%의 득표율을 획득하며, 프랑스에서 가장 높은 지지를 얻은 의장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이후 그녀는 이 타이틀을 훈장처럼 과시하며, 자신이 추구하는 야심 찬 좌파상을 피력했다. “현재 우리 지자체들이 보여주는 것처럼, 해법을 찾기 위해 고심”하고, ‘기업과 진정한 파트너십’을 맺기 위해 노력하는 ‘철저히 유럽적인’ 좌파, ‘깽깽 악을 쓰는’ 대신 ‘사람들과도 잘 어울리는 대중적인 좌파’, 특히 ‘치안 문제’를 위해 ‘열심히 연구하고 뛰어다니는’ 좌파가 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1)
같은 해 일간지 <르몽드>는 그녀를 집중 조명한 기사 두 편을 게재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프란츠 올리비에 지스베르도 그해 10월 27일 자 <르 피가로 마가진>에서 그녀의 대담함을 칭송했다. 9월, <파리 마치>에는 사상 처음으로 그녀의 이름이 인기 정치인 순위에 올랐다. 차기 대선 후보감을 운운하는 등 최근의 보도 전쟁은 현 정치 저널리즘의 궁핍함을 여실히 보여준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라고 말할 수는 없다. 마뉘엘 발스 전 사회당 총리, 그의 뒤를 이어 총리에 올랐던 베르나르 카즈뇌브, 팔레스타인 지지 운동에 반대하는 정치단체 ‘공화당의 봄’(2) 등과도 가까운 사이로 잘 알려진 카롤 델가는 현시대의 흐름을 고스란히 대변하는 인물이다. 가령 권위주의 문제, 파리 엘리트층을 향한 불신, 현대 정치 술수를 정겨운 선술집 분위기로 덧칠하려는 지역주의 유혹 등이 복잡하게 뒤얽힌 현실을 반영한다.
“혹 그녀라면?” 이 질문은 2005년 12월 15일, <누벨 옵세르바퇴르>의 1면을 장식했다. 당시 발행인 조프랭은 2004년 지방선거에서 푸아투샤랑트의 승리를 이끈 세골렌 루아얄을 대선 후보로 만드는 데 지대한 공을 세웠다. 하지만 오늘날의 그녀, ‘카롤’은 자신을 세골렌 루아얄과 비교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다. “세골렌은 국립행정학교(ENA) 출신이다. 파리 엘리트 코스를 밟은 인물이다. 반면 나는 아무런 유산도 물려받지 못했다.”
옥시타니 지방의회 의장인 카롤 델가는 피레네 산자락에 위치한 코맹주에서부터 시작해, 마뉘엘 발스 총리 내각의 무역부 담당 국무장관(차관급)까지, 자신이 밟아온 이력을 자랑하는 것을 꽤나 좋아한다. 특히 브람의 연단에서도 그녀는 자신의 어린 시절, ‘페르낭드 할머니’, 비서 출신에서 가정주부가 된 어머니, 노동은 반드시 결실을 맺는다는 신념과 ‘일상에서의 소확행’을 이야기하며 울컥했다. 그녀는 ‘국가귀족’을 비판하거나, 중앙-지방간의 관계를 거론하거나, 자신이 구사하는 사투리가 자신을 상징하는 ‘깃발’이라고 주장하고자, 유명한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를 즐겨 인용했다. 베아른 출신의 이 사회학자는 자신의 출신에 대한 수치심을 이야기했었다.
하지만 정권의 진정한 대항자를 자처한 공화당(LR) 소속의 오렐리앙 프라디에 하원의원은 “의원들의 사회적 다양성이야말로 프랑스 국민을 정치로 이끄는 요인”이라고 항변했다. LR의 후보자 명부에 1순위로 이름을 올리고 지방의회에 입성한 프라디에 의원은 취재진에게 자기 경쟁자의 가식을 알리고 싶어 했다. 선거유세 직전 고향 마르트 톨로산에서 만든 인조 보석을 착용한다거나, 연단에 오르기 전 평소 즐겨 신는 라부탱 구두를 벗어놓는다고 말이다.
여하튼 델가가 ‘상속자’에 불과하다는 프라디에 의원의 설명은 그럴싸했다. 델가는 역사의 상속자(오래전부터 좌파는 남서부 지역을 장악해왔다)이자, 사회당(PS) 지도부에 반기를 들 만큼 충분한 의원 인맥을 보유한 인물이다. 또한, 현 직책의 후원 수혜자이기도 하다. 델가 의원은 2014년 미디피레네와 랑그독루시옹의 통합으로 탄생한 지자체에서 사령탑을 맡았는데, 그것이 모두 과거 미디피레네 지방의회 의장이었던 마르탱 말비가 그녀를 차기 후보로 밀어준 덕분이었다. 게다가 애당초 프랑수아 올랑드가 국민전선(FN)의 2차 결선행을 막기 위해 두 지역을 통합하기로 결정도 큰 역할을 했다.
말비는 1998년 미디피레네의 수장에 올라, 2015년 퇴임할 때까지, 툴루즈 항공산업의 수혜를 톡톡히 누렸다. 국가 차원의 결정(전략 산업 개발, 독일 국경과 멀리 떨어진 곳에 산업 기반 구축)은 그가 도 단위 지역이나 소도시에 보조금을 지원하는 등 지역 정책 실행에 중요한 재정원이 돼줬다. 한편 조르주 프레슈는 2004년 랑그독루시옹을 장악했다. 1977년 이후 몽펠리에 시장을 할 때와 마찬가지로, 랑그독루시옹 지역의 수장으로 지내는 동안, 그는 도시 개발에 매진하며, 지역의 작은 왕 노릇을 했다. 2010년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그는 포도 재배업계나 알제리 출신의 모국송환자들과 돈독한 후견주의 관계를 맺었고, 프랑스와 해외에서 간부급 노동자나 투자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홍보전에 매진했다.
경영자 스타일 의원들의 당
취재진이 마침내 몽펠리에에 도착했다. 벽기둥, 분수대, 물에 젖은 미소년 조각상에 이르기까지, 1978년 리카르도 보필이 설계한 안티고네 거리는 세월의 무게가 한층 짙게 느껴졌다. 특히 레즈 강변에 자리한 지방의회 건물이 더욱 그러했다. 랑그독루시옹과 미디피레네 지역이 통합된 이후로 공간이 협소하다는 이유로 이곳에서는 더 이상 회의가 열리지 않았다. 델가 의장은 비록 툴루즈에 대부분의 지방 서비스 시설이 모여 있음에도, 여전히 이 아치형 콘크리트 건물 안에 있는 사무실을 이용했다.
그녀가 50여 미터 아래 강변이 내려다보이는 테라스에서 취재진을 반갑게 맞이했다. 근사한 풍광과 커피와 초콜릿 빵, 그리고 공보관 한 명과 비서실장 한 명이 자리를 함께 했다. 의장은 자신에 대해, 그리고 옥시타니 지방에 관해 이야기했다. 하지만 특히 자신의 이야기를 더 많이 했다. 비록 지금은 사회당 내에서 평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만, 그녀의 이력이 얼마나 출중한지 늘어놓았다.
델가 의장은 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한 뒤 리모주 시청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곳은 1912~2014년까지 사회당이 장악한 곳이었다. 2005년 미디피레네 지방에서 간부로 일하던 그녀는 사회당에 입당하게 되고,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2009년 마르트 톨로산의 시장이 됐다. 그리고 말비의 도움에 힘입어 지방의회 의원직을 꿰찼다. 정치학자 레미 르페브르는 이런 그녀의 이력을 나탈리 아프레나 조안나 롤랑 등과 비교한다. 그들도 지자체 간부를 거쳐 렌느와 낭트의 사회당 소속 시장이 된 인물들이었다. 말비가 델가에게 그랬듯, 지역정치의 황태자이자 전직 시장인 에드몽 에르베와 장 마르크 에로는 각기 이들 지역 관료들을 새 시대의 인물로 밀어줬다.
아프레나 롤랑처럼 의원의 조력자이자 지역 간부에서 시작해 시장이 된 경우는 1983년 인구 3만 명 이상 규모의 코뮌(시,읍,면)을 책임지는 시장들 중 1%에 불과했지만, 2014년 25%로 증가했다.(3) 옥시타니의 경우에도, 지방의회 의장과 부의장을 비롯한 지방의회 행정부 구성원의 40%가 동일한 이력의 소유자였다. “종종 사회당은 지역 의원들의 정당으로 불린다. 하지만 이제는 무상 정책을 비롯해, 거의 우파와 동일한 정책을 추구하는 경영자 스타일 의원들의 당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르페브르가 지적했다.
옥시타니 지방의회 의장은 청소년 무료 승차나 수백만 명을 대상으로 한 1유로 티켓 혜택, 배차 간격 확대 등 그녀가 추진했던 철도 정책들을 세세하게 소개했다. 한편 그녀는 툴루즈나 페르피냥까지 고속철도 노선 확대를 위해서도 투쟁 중이라고도 말했다. “파리에서 4시간 이상 떨어진 곳에 거주하는 프랑스인의 60%가 옥시타니 주민”이라는 게 그녀의 설명이었다.
한편 그녀는 “과도한 대도시 확장을 멈추려 한다”고 했다. 그런 의미에서 군소 열차 노선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그녀는 ‘활기찬 생활권을 만들기 위해’ 옥시타니 지자체가 ‘시골 지역에’ 고등학교를 설립하거나 “의사들을 채용”하는 데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가령 옥시타니 지자체의 노력에 힘입어 개관한 의료센터 10여 곳에 2022년 7월 이후로 배속된 의사의 수는 40명이 넘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전히 높은 수요를 생각하면 상징적인 성과에 불과할 뿐이다. 가령 에로의 강주나 아베롱의 드카즈빌, 생지롱에서는 조산원이 줄이어 폐업하고 있다. 아리에주 군청을 잇는 철도 노선도 사라진 지 오래이며, 상점도 줄이어 폐업했다. 시내 골목길 곳곳에 적십자, 에마우스, 가톨릭구호, 민중구호 등 지역 자선단체들이 우후죽순으로 들어섰다. 생지롱은 빈곤층이 많다고 알려진 옥시타니(프랑스 전체 빈곤인구는 14.6%, 이 지역은 16.8%)(4) 안에서도 가장 많은 빈곤층이 거주하는 코뮌(2019년 빈곤인구는 전체 인구의 19%)이었다. 이에 옥시타니 지자체는 지역의 매력도를 향상하고, 기업의 요구에 부응하고자 노력하며, 유용성 논란이 불거진 사업의 추진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
오랜 대립구도의 부활
카롤 델가 의장은 여전히 신념이 확고했다. 천문학적인 자금을 쏟아 붓고도 5년 동안 일자리 창출은 10만 개 이하에 그친 1,000억 유로 규모의 ‘경쟁력과 고용을 위한 세액공제 제도(CICE)’에 대한 질문에, 그녀는 “다음 기회에도 CICE를 다시 채택”할 것이라고 당당히 말했다. 그러면서도 2012~2014년 하원의원을 지낸 그녀는 하원의 효율성을 개탄했다. “공허한 구호만 부르짖다 끝나는 경우가 허다하다.”(5) 처음에 델가 의장은 시장, 지방의회 의원, 하원의원, 그리고 장관직까지 정해진 이력을 차근차근 밟아나갔다. 그러다 돌연 2015년 장관직에서 물러나고, 하원의원직을 포기하면서, 커리어의 방향을 틀었다. 2014년 겸직 금지안이 통과되면서, 정부직과 지방직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했던 것이다.
수많은 특권을 누리는 광역지방의 탄생을 지켜본, 그녀는 결국 지방직을 선택했다.(6) 델가 의장은 옥시타니 지방이 사실상 600만 인구를 자랑하는, 프랑스에서 누벨아키텐 다음으로 면적이 넓다는 사실을 즐겨 거론했다. 2017년 그녀는 진정한 정권의 대항자가 되기를 희망했다. 그녀는 오베르뉴론알프 지역의 로랑 보키에나 오드프랑스 지역의 그자비에 베르트랑과 똑같은 계산을 했던 것이다. 일단 국가는 정치 경험이나 지방의 지지기반이 없는 기술관료를 수장으로 뽑는다. 다수당의 지위만 믿고 하원을 찬밥 취급한다. 그러면 각 광역지방의 의원들이 지원군으로 나선다. 하지만 이런 시나리오의 상당수는 결국 현실화되지 않았다. 이런 오판의 역사는 꽤 유서가 깊다.
우리는 이미 중앙정부에 맞섰던 남서부 지역의 역사, 반정부 전통과 지역 투쟁의 역사에 대해서라면 익히 잘 알고 있다. 1907년 나르본에서는 포도재배업자 7명이 진압군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민생고를 외면하는 정부에 대항해, 포도재배업자들이 일으킨 폭동에 정부가 무력 진압하면서 사망자가 발생했다-역주). 당시 저명한 사회주의 정치가 장 조레스는 반란자들의 편에 섰다. 그보다 15년 전 이미 자신의 선거구, 타른 카르모의 광부들을 비호했을 때처럼 말이다. 이때부터 사회주의 세력은 선거기반을 단단히 다져나갔다. 1906년 툴루즈, 1908년 님을 장악했다.
소규모 농경지와 산업이 곳곳에 포진한 지역적 구조는 사회주의 세력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오랫동안 이런 지역적 특성이 급진좌파에 유익한 도움을 줬다. 비록 오늘날 ‘붉은 남부’(Midi Rouge, 역사적으로 사회주의, 급진주의, 공산주의 세력의 텃밭이었던 남프랑스 지역을 의미-역주), 심지어 프랑스공산당(PCF)이 님이나 베지에를 장악했던 시대로부터 남아 있는 것은 거의 아무것도 없지만 말이다(물론 아직까지 ‘카술레 좌파’는 존재한다).
델가 의장은 이런 역사를 되살리기를 바라는 듯, 2002년 5월 신민중생태사회연합(NUPES)(2002년 총선을 앞두고 장뤽 멜랑숑의 주도로 결성된 범좌파 정당연합-역주)에 대립한 후보자들을 지지했다. 범좌파 연대를 거부한 사회당의 분파세력을 지지한 것이다. 이로써 그녀는 오랜 대립구도를 부활시켰다. 한편으로는 조직의 약화된 틈을 이용하려는 지역의 황태자들이 자리했다. 이는 1920년 투르 정당대회 이후 당원의 2/3가 공산당으로 넘어가, 사회당 지도부가 그들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때를 떠올리게 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1970년대 프랑수아 미테랑이 추진했듯(7) ‘유력인사들을 재장악하는 과정을 통해’ 재건된 당이 자리했다.
하지만 지난 시대, 델가 의장이나 올랑드 전 대통령이 구현했던 수구좌파의 입지는 아주 좁아졌다. 올리비에 포르 역시 대선 패배 이후 이런 현실을 인정했다. 그는 당을 살리기 위해, 극좌 세력인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LFI)와의 연대가 불가피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지역 차원에서 문제를 야기한다.
입지를 잃어가는 사회당
“아리에주는 사회당의 텃밭이다. 사회주의 세력이 아니면, 아주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여하튼 많은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2020년 인구 500명 규모의 베자크 주민들은 장폴 샤베를 시장으로 선출했다. 이 ‘피레네를 마주한 베드타운’에는 어느새 파미에에서 일하는 야금공 몇 명과 농민 한 명만 남았다. 샤베는 소속 정당이 없다. 하지만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데파르트망(도) 단위에서 어려운 점이 많다. 어떻게든 단일성을 유지해야 득이 된다. 2017년 LFI 하원의원 두 명이 선출됐을 때 상당히 기대가 컸다. 하지만 기대는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이 지역 출신인 미셸 라리브 의원은 자신의 임무는 의회라며, 지역에는 얼굴 한 번 내비치지 않았다.”
현재 역경에 처한 샤베 시장은 사실 지금보다 더 많은 지원을 기대했다. “사업을 벌일 때면, 지방이나 국가 차원에서 80%의 지원금을 받아내려고 노력한다. 단위별로 정치성향이 비슷하면 일하기가 수월해진다.” 그래서 2022년 지난 총선 때 샤베 시장은 주민들에게 옥시타니 지방의회 의장과 도의회 의장, 아리에주 사회당 의원과 노선을 같이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사회당 소속의 포사(베자크에서 20킬로미터 거리) 시장이자 아리즈레즈 코뮌 공동체의 의장인 로랑 파니푸 후보, 즉 사회당 분파세력을 지지했다.
LFI 소속의 르네 르볼 몽펠리에 메트로폴 부의장에 따르면, 미카엘 들라포스도 거의 동일한 이유에서 델가 의장과 손을 잡았다. 비록 그가 2022년 대선에서 좌파당의 멜랑숑 후보에게 가장 많은 표를 던진(40%) 대도시의 사령탑을 맡고 있었지만, 여하튼 메트로폴(2015년 설립) 운영을 위해서는 사회당 계열의 에로 도의회와 원활한 협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또한, 2014년 이후 각 지방이 관할 중인 유럽결속기금을 지원받는 데도 차질이 빚어지길 원치 않았다.
지역 통합, 지방분산화, 광역도시화 등 각종 개혁은 지역 의원들의 봉건적 주종관계를 더욱 강화했다. 델가 의장이 지역의 유력인사들에 직·간접적으로 미치는 영향력은 그녀가 국가 차원의 야망을 충족시키는데 밑거름을 제공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 한정적이거나, 혹은 일시적인 현상에 불과하다. 물론 옥시타니 지방에 속한 대부분의 지자체는 여전히 사회당의 영향력 아래 놓여 있다. 하지만 사회당의 입지는 점차 축소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지난 총선에서 델가 의장은 NUPES에 반기를 들고, 그녀와 연대할 많은 의원들을 동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옥시타니 지역 내 선거구 26개 중 무려 24개에서, 그녀가 밀던 후보는 1차 투표에서 낙선했다. 2022년 사상 초유의 낙선 사태(옥시타니 지방 출신 하원의원 총 36명 중 5명만 당선)가 발생하기 이전에도, 사회당은 중소도시 일부만 점령하는 데 그쳤다. 게다가 2008년 이후 오트가론느에서만 그동안 사회당의 차지였던 인구 3,500명 규모의 코뮌의 절반을 잃었다.
한편 LFI도 지역 기반을 다지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2021년 LFI와 녹색당의 결별은 델가 의장이 지방의회 내에 범좌파연대 세력의 진출을 저지하게 해줬다. 반면 국민연합(RN)은 의석을 유지했다. 사회당과 공화당은 지난 대선에서 합계 득표율 6%에 그쳐 지방에서 겨우 생존했다. 반면, 마린 르펜은 국가 단위 선거와 유럽연합 단위 선거에서 계속 선전하며, 그녀의 당도 지역의 정치적 영향력을 점차 확대해나가고 있다.
옥시타니 지방 산하 여러 시의회 의원들 사이에 정파 이동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2023년 9월 상원선거에서, RN을 선택한 피레네의 대의원 수는 무려 5배 증가했다. 여러 데파르트망(도)에서 나타나는 이런 ‘약화 신호’를 지켜보면서, 헌법학자 벤자맹 모렐은 ‘지역 차원에서 정당패권이 무너지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새로운 징표라고 해석했다. 이제는 “시의회 의원들이 르펜의 정당에 투표하는 것이 더 이상 수치스럽거나 상상할 수 없는 일로 치부되지 않는”(<로피니옹>, 2023년 9월 25일) 시대인 것이다.
이런 경향은 비단 대의원 차원만이 아니라 모든 유권자 차원에서 똑같이 나타나고 있다. 델가 의장은 2021년 지방선거에서 2015년에 견줘 RN이 후퇴했다고 자찬했다. 하지만 정작 그녀는 2020년 시의회 선거 1차 투표에서부터 극우가 62%의 득표율로 베지에를, 59.5%로 가르의 보케르를 사수한 사실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또한 2022년 6월 오드의 3개 선거구, 피레네오리앙탈의 4개 선거구, 가르의 총 6개 중 4개 선거구, 그리고 타른에가론의 무아삭 선거구를 쟁취한 사실에도 침묵을 지켰다.
“좌파가 아니어야 살기 편해”
어느 토요일, 익명을 요구한 두 은퇴생활자 노엘과 다니엘을 에스파네트 수문 근처 운하 강변에서 만났다. 노엘은 지난 선거에서 극우 RN에 투표했다고 말했다. 다니엘은 “무아삭의 모든 주민들이 그렇듯, 과거에는 아랍인이 주된 관심사였다. 하지만 이제는 불가리아인이나 롬인을 잘 관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2000년대 말부터, 불가리아 파자르지크의 계절노동자들이 이곳으로 사과나 딸기, 백포도를 따러 온다. 불가리아인 1,800명이 년 중 한때 타른에가론(인구 1만 3000명 규모의, 빈곤 가정 비율이 26%에 달하는, 우선지구로 지정된 지역으로, 2020년 이후 RN 소속의 로맹 로페즈가 시장직을 맡고 있다)에 체류하는 것이다.(8)
예전에 ‘없어서 못 파는 낡은 영국식 주택’을 리모델링하는 일을 했다는 노엘은 지금도 “꾸준히 목공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직 노인기초연금을 수령할 연령이 되지 않은 그는 “어떤 지원도 받을 수 없다”고 현실을 개탄했다. “내 아내는 병원에서 청소를 했다. 하루는 아내와 함께 발랑스 다장에서 사람을 한 명 만났다. 그는 정규직 일자리를 얻었다.” 노엘에 따르면, 그가 정규직 일자리를 얻은 비결은 우파 정당의 벽보 붙이는 일을 했기 때문이다. 그의 맏아들도 RN 소속 인사가 시장으로 있는 무아삭 시에 채용됐다. 다니엘에 의하면, 이 시골 마을에서는 좌파가 아니어야만, 동네 유력자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9)
르펜은 과거 우파 유권자들의 지지에 힘입어 대선 1차 투표에서 무아삭 표의 30%를 획득했다. 게다가 1세기 넘게 공산당의 텃밭으로 군림해온 캉플롱 도드에서도 27%가 넘는 득표율을 올렸다. 전통적인 지지기반도 그대로였다. 피레네오리앙탈이 대표적인 예다. 이 지역에서는 1986년 이미 비밀군사조직(OAS)의 전 책임자 피에르 세르장이 국민전선 소속 하원의원으로 당선된 적이 있다. 과거 구치소 자리에 설립된 페르피냥 소재 알제리프랑스인자료센터를 방문한 취재진은 이 지역에서 알제리 출신의 모국 송환자들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해할 수 있었다. 방명록에는 “프랑스령 알제리 만세! 식민지 만세!”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최근 CSA 연구소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페르피냥 주민의 67%는 인구 규모 10만 명 이상의 코뮌에서 사상 처음으로 배출된 RN 소속의 시장, 루이 알리오에 대해 상당한 만족감을 표시했다. 2020년 시장에 당선된 이후, 그는 ‘빛나는 페르피냥’이란 문구를 이 도시를 상징하는 캐치프레이즈로 선정했다. 마치 빛나는 유력인사를 활용한 자신의 선거전술을 상징하기라도 하는 듯이 말이다. 그는 자신의 전술이 다른 곳에서도 당의 승리를 이끌어낼 방도라고 평가했다. 그것이 국가 단위 선거이든, 지방 단위 선거이든 말이다. 알리오는 취재진에게 “2028년 지방 선거는 충분히 해볼 만하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2028년이면 델가 의장이 한 번 연임을 한 이후다. 분명 차기 선거는 지금과는 전혀 판세가 다를 것이다. 내 말을 믿어도 좋다.”
글·그레고리 르젭스키 Grégory Rzéepski
사회학 박사출신으로 프랑스 정치와 경제, 사회 문제, 그리고 영국문제를 담당하고 있다.
번역·허보미
번역위원.
(1) <TMC>, 2022년 11월 8일, <France Info>, 2023년 9월 16일, 브람 연설, 2023년 10월 1일.
(2) <Sud Radio>, 2023년 10월 12일.
(3) Luc Rouban, ‘Le nouveau pouvoir urbain en 2014 : les maires de villes de plus de 30,000 habitants 2014년 신흥 도시 권력 : 인구 30만 이상 규모 도시의 시장들, <Les enjeux>, 제11호, 2014년 5월 20일, www.cevipof.com.
(4) 프랑스국립통계청(INSEE)
(5) <France Culture>, 2022년 10월 15일.
(6) Benoît Bréville, ‘Vos régions, on n’en veut pas(한국어판 제목: 당신들의 지역, 우리는 원치 않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21년 7월호·한국어판 8월호.
(7) Frédéric Sawicki, ‘La force du localisme 지역주의의 힘’, <Esprit>, 제397호, Paris, 2013년 8/9월호.
(8) Stéphan Altasserre, ‘La communauté bulgare de Moissac face à une hostilité croissante, à la crise sanitaire, mais aussi face à ses responsabilités 점증하는 적대감, 보건위기에 더해, 책임까지 무거워진 무아삭의 ‘불가리아 공동체’, 발칸지역 정보연구센터, Blaganc, 2021년 1월 3일.
(9) Benoît Coquard, 『Ceux qui restent. Faire sa vie dans les campagnes en déclin 남아 있는 사람들. 퇴락하는 시골에서 생활하기』, La Découverte, Paris,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