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의 예술' 만화의 새로운 도전 독립만화가들의 발칙한 반란
'문화적 발상과 접근의 다양성' 시대가치와 코드 맞아 '소비 만능' 배척…다채로운 대안만화 페스티벌 개최
누가 서점에 들어가면서 입장료까지 낼 수 있을까? 더욱이 책을 사기 위해 서점에 가면서까지 어느 누구가 별도로 입장료를 지불할 수 있을까? 또 작가의 친필 사인을 받기 위해 긴 줄을 서서 서점에 들어가면서까지, 과연 어느 누구가 추가로 입장료를 낼 수 있을까? 당신이라고? 어쩌면 가능한 일이다. 매년 프랑스에서 이미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이러한 일을 겪고 있다.
이 장면은 매년 1월 앙굴렘에서 국제만화페스티벌이 열릴 때 목격된다. '세계에서 가장 큰 만화서점'이 열리는 4일 동안 행사 참가자들은 '극도로 다채로운 앨범과 부가상품'들1)을 발견하게 된다. 이 페스티벌을 모방해 매년 프랑스에서 400 개 정도의 행사가 열리고 있다.
품질, 규모, 그리고 애호가 혹은 수집가 협회, 도시, 도서관, 슈퍼마켓, 출판사 등 행사 입안자는 서로 다를지라도 대강의 구조는 대동소이하다. 천막 형태의 부스 혹은 축제를 위한 공간이 주말까지 개방되고, 유료로 입장하면 판매 장소까지 이어지며, 그 뒤에서 작가들은 자신들 작품에 무료로 사인을 해준다. 그리고 원탁 토론과 전시회, 액자에 넣어 걸어놓은 만화, 보다 웅장한 무대들이 이러한 행사들을 서로 차별화하고 있다.
기존 페스티벌, 소비 만능으로 변질
앙굴렘 페스티벌은 만남과 공연으로 빽빽하게 채워진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시하고, 때로는 전시회를 통해 창작에 실질적 위상을 부여한다. 사소한 것도 놓치지 않으려는 야망을 채워나가면서도 페스티벌은 예술논리와 산업논리가 공존하는 만화 분야의 역설을 화해시키려 애쓰고 있다. 그러나 많은 오점과 모순을 낳는 대규모 국제전은 매체에 대한 문화적 접근의 다양성을 축소시키고 단순한 소비 관계 속에 관객을 가두어버리는 경향이 짙다.
"시간이 흐르면서 사인회는 중요성과 체계적인 특성을 갖게 되었는데, 그로 인해 만화의 본래적 의미가 퇴색하고 있습니다. 비대해진 형태의 사인회는 무엇보다도 만화 '수집가'들의 욕망을 충족시켜 줍니다. 그들은 우리가 만화에 부여하는 의미와 전혀 다른 것을 기대하지요. "
생-말로의 만화제인 '케 데 뷜'의 조직위원인 에티엔 다보도는 "가능한 한 넓은 창조적 스펙트럼을 보여주려 애쓰고 있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제9의 예술에 활력을 불어넣는 새로운 작업들이 15년 전부터 창조적이고 급진적인 일부 예술가들에 의해 시도되고 있다. 그들은 만화의 본래적 의미와 가치, 그 실천에 대해 수없이 자문하고 있다. 호사스럽고도 상상력이 넘친 시기를 거친 후, 1980년대는 불어권 만화가 이미 포맷이 정해져 있고 실험을 거의 시도하지 않는 시리즈물 속에 점점 안주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자신들의 작업을 받아줄 공간이 거의 없는 사실에 절망한 신인 만화가들은 운명을 직접 개척하기로 마음먹는다. 이들은 종종 잡지들을 중심으로 집단을 이뤄 조직을 스스로 운영하고 관리하면서, 격렬한 논조를 담은 만화 전문 출판사들을 발전시켰다.
대안만화의 태동과 부흥
1990년대부터 라소시아시옹, 레 르캥 마르토, 프레옹, 아목, 코르넬리우스, 에고 콤 익스, 라 생키엠 쿠슈, 시 피에 수 테르, 뷜브 코믹스 혹은 아트라빌이란 이름의 출판사들은 새로운 논조를 담은 이야기들을 출간했다.
보급자와 배급인 역할을 맡은 르 콩투아르 데 앵데팡당은 1999년에 설립됐는데, 회사는 이러한 출판물들이 기존 유통망 속에 진입하도록 도와주었다. 그런 점에서 이들의 만화는 엄격하게 언더그라운드 형태를 고수하던 '팬진'(fanzines)과 구분된다. 미리 상업적인 고민을 거치지 않은 탓에, 이들의 작품은 특색 있고, 호기심을 가득 담고 있었다. 이 때문에 이들의 작품은 기존 만화에서 덜 개발한 장르, 즉 르포르타주, 체험담, 풍자, 몽환상태, 자서전, 형태 놀이 등에 이끌린 독자층과 만나게 된다. 이들은 보다 연령대가 높고, 보다 여성적이며, 문학, 연극, 조형예술로부터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었다.
초기에 비판을 받았던 대안만화가들의 성공은 매스미디어를 타면서 때때로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비록 그들의 판매 수준이 이 분야의 베스트셀러와 비교가 불가능했음에도 불구하고. 5천 부 이상을 팔면 대안만화 출판사 입장에서 성공이라고 말할 수 있는 반면, 상업 출판사는 1만 부 이하의 판매를 실패로 규정한다.
2000년대에 들어, 대안만화는 최악의 위기를 맞게 된다. 다양해진 만화의 형태, 더욱 화려해진 커버, 강렬한 흑백기법의 이용, 상업적인 '그래픽 소설'2) 등의 인기 등으로 인해 영세한 대안만화의 설자리는 점차 비좁아졌다.
"오늘날 많은 출판사들과 작가들이 돈 벌기를 원합니다. 막대한 판매, 예술적 신뢰, 대중들의 인기, 이 모든 요소들이 작품을 대중화시키는 요인이 되며, 대중들의 정서에도 부합하지요."
최근의 만화계의 흐름에 대해 라소시아시옹과 에고 콤 익스에서 만화책을 출간한 올리비에 조소는 비판적 견해를 밝힌다.3)
'소수' 위한 페스티벌 줄이어
갈리마르 출판사의 소유주인 드노엘은 2003년에 드노엘 그라픽을 설립했다. 2005년에는 아셰트 리테라튀르가 '라 푸인 일뤼스트레' 컬렉션을, 갈리마르가 '바이유' 컬렉션을, 악트 쉬드 출판사가 '악트 쉬드 BD' 컬렉션을 처음 선보였다. 같은 해에 '퓌튀로폴리스'라는 풍성한 카탈로그를 보유하고 있던 갈리마르가 솔레이유 출판사와 협력관계를 맺으며, 이 컬렉션을 더욱 활성화했고, 악트 쉬드는 랑 되(L'An II) 출판사를 인수했다. 이에 따라 2007년에 '악트 쉬드-랑 되' 컬렉션이 태어났다. 서점 주인과 사서들 역시 혼란스러울 지경이라고 고백하는데 어떻게 이 만화들을 정리할 수 있을 것인가?
한편으로는, 독립 작가들의 작품들을 위주로 한 페스티벌도 의미를 지니기 시작했다. 이들 페스티벌은 사인회에 대한 맹종을 거부하고, 무료입장에다 지역 사회에 밀접한 기반을 두었으며, 국제적인 경쟁에 개방적이며, 외부의 참여와 평가를 중시하였다. 또 벽에 내 거는 전시품 보다는 실제로 출간되어 읽히는 작품을 고수해, 만화 창작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1994년에 프리고 집단의 브뤽셀루아들은 벨기에, 프랑스, 독일, 스위스 작가와 출판물을 소개하는 오타르식 코믹스(Autarcic Comix)를 개최했다. 아목 출판사는 이 행사를 파리에서 월례행사로 이어받았다.
소수의 목소리를 대변하지만, 고립과는 거리가 먼 행사들도 쏟아지기 시작했다. 프랑스에서는 특히 플룩 드 필롤 페스티벌(피레네), 밀바슈 고원에서의 부두 페스티벌, 렌 페리스코파주 페스티벌, 해적문학의 노마드 행사, 릴의 페-르-투아-멤 전시회, 툴루즈 앵델레빌 페스티벌 등이 대표적인 행사들이다. 1998년에 레 르캥 마르토는 알비에서 제1회 레틴 초고(草稿) 페스티벌을 개최했는데, 그 후 만화, 음향 창작, 조형물 설치, 거리극 등 다양한 예술적 교류가 매년 이루어지고 있다.
자유로운 영감과 풍자…
빈슐루스4)와 시조(Cizo)가 2002년에 시작한 슈퍼마켓 <페라이유>는 '실업자 푸아그라', '두 개 가격으로 3개 슬리퍼' 등 못 말릴 물건들을 파는 일련의 가게들을 무대에 올리는 전시회로서, 프랑스와 해외에서 개최되었다. 동일한 아름을 가진 알비의 한 출판사가 출간하는 신문 <페라이유> 속의 풍자 세계를 다룬 것이었다.
슈퍼마켓을 박물관 형태로 변모시킨 <페라이유> 박물관은 다음해에 앙굴렘 페스티벌에서 대단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또 다른 문화 기관들처럼 리외 위니크 드 낭트 페스티벌은 만화에 규칙적으로 문호를 개방했고, 2009년 3월부터 <페라이유> 신문의 가상 소유주이자 윌 메롤의 사장을 위한 기념전을 개최할 예정이다.
밀브랑슈 고원에서 열리는 독립만화제는 2003년부터 시작되었다. 루아예르 드 바시비에르에 소재해있으며, 부티크, 카페 및 콘서트홀, 전시장 및 인포메이션 센터 역할을 겸하고 있는 아틀리에는 행사를 총괄하는 장소다. 이는 농촌의 황폐화가 제기하는 문제들에 관심이 많은 협회들의 네트워크에 의존하고 있다. 3년 전부터 12명 내외의 작가들이 열흘 동안 주민들의 집에 묵는다. 따라서 독자들과의 교감은 단순하고도 직접적이다. 이곳의 스타 이름은 에드몽 브두앵이나 로랑 롤메드이고, 현대의 젊은 창작물들이 대접을 받는다. 초대작가들은 이곳에서 체류하는 동안 학교에서 강연을 하고, 지역을 여행하며, 미팅, 시사회, 컨퍼런스 및 만화, 플립 북(flip book)5), 실크스크린 아틀리에를 거친 후 폐막식이 열리는 주말에 자신들이 받은 영감을 종이 위에 옮긴다. 물론 행사는 모두에게 공개된다.
라소시아시옹 소속의 주요 만화가6) 중 한 명인 장-크리스토프 므뉘는 "완벽주의 정신, 비정상적인 윤리, 인간성에 대한 배려, 우리 시스템의 경제적 순진함은 다른 세계 이야기"라며 "마케팅 측면에서 따져보면 우리들 방식은 눈물이 날 정도로 웃긴다"고 스스로 평가했다. 즐거움과 창작의 비밀을 간직한 대안만화가 그 어느 때보다 시대성을 갖는다는 의미일까?
번역|이상빈 malraux21@ilemonde.com
각주
1) 페스티벌의 공식 홈페이지인 www.bdangouleme.com 참조
2) 새로운 주제를 다루는 작가주의 만화를 지칭하는 미국의 그래픽 소설(graphic novel)을 프랑스어로 옮긴 것이다. 아트 슈피겔만(Art Spiegelman)이 그린 <쥐(Maus)>는 이 장르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오락을 주종으로 삼는 'comics'와 대비되는 이 표현은 상업출판사를 통해 프랑스에서 대성공을 거두었다.
3) 앙리 랑드레(Henri Landre)와의 대담, <코믹스 클럽(Comix Club)>, no 9, ed. Groinge, Nice, 2008년 10월호.
4) 최근의 주목할 만한 <피노키오(Pinocchio)>의 작가. 시조(Cizo)가 색을 입힘. Les Requins marteaux, Albi, 2008년 11월.
5) '플립 북(flip book)' 혹은 '폴리오스코프(folioscope)'는 이미지를 연결시키는 형태인데, 빨리 넘기면 운동의 느낌을 받는다. www.flipbook.info 사이트를 참조할 것.
6) <플라트-방드(Plates-bandes)>, L'Association, Paris, 2005년 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