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고속도로 민영화의 허실

2012-07-09     필리프 데스캉

리오넬 조스팽 좌파 정부에서 시작돼 니콜라 사르코지 우파 정부에서 일반화된 고속도로 민영화는 프랑스식 유착 자본주의를 잘 보여준다. 사적 이해관계에 지배당해 포식자가 된 정부는 값비싼 통행료 징수제를 채택해 고속도로 운영상의 위험을 전적으로 감수하면서 대기업들의 이윤 착복을 체계화해주고 있다.

'원칙적으로 고속도로 사용은 무료다'(1)라는 문구로 치장된 고속도로 지위에 관한 1955년 법은 실질적으로 고속도로통행료 제도를 인정했다. 이 법은 프랑스혁명으로 폐지된 봉건법을 부활시켰고, 공공투자와 민간혜택을 혼합한 제도를 만들어냈다. 고속도로통행료를 재정 기반으로 삼는 고속도로 인가사업자 혼합주식회사(공공자본과 민간자본이 혼합 투자된 주식회사)의 형태는 초반에는 '예외적인' 것으로 규정됐으나, 유럽 내 뒤처진 상황을 '만회'하기 위해서라며 점차 빠르게 표준화됐다. 1950년대 독일은 이미 3천km 넘는 고속도로를 보유했고, 이탈리아도 500km 넘는 고속도로가 있었던 반면, 프랑스의 고속도로는 겨우 80km였다.

고속도로통행료 부과를 뒷받침하는 경제적·사회적·환경적 논리는 취약하기 그지없다. 미국과 영국, 독일 같은 주요 국가에서는 조밀한 고속도로망이 신속하게 건설됐고, 모두 무료였다. 지방자치단체들에 의한 직접 출자는 해당 지역의 토지개발계획상 우선순위 실현을 가능케 하고, 기존 도로와 중복 건설되는 유료 고속도로보다 훨씬 비용이 절감된다. 또한 통행료에 의한 자금조달은 더 광대한 토지 수용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비용이 훨씬 많이 들고, 국가가 직접 투자하는 우회도로처럼 반드시 필요한 지점을 연결하는 데 실패했다. 브르타뉴 같은 지역은 고속도로 이용이 무료임을 감안하면, 유료 고속도로는 공공서비스 이용에 관한 평등성도 저해하는 것이다.

운전이 어느 정도 부의 상징이었을 시대만 해도 고속도로 투자비를 세금보다는 통행료 징수로 마련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정당성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자동차 소유가 보편화되는 1960∼70년대에 이르러 이런 주장은 설득력을 잃었다. 저가 자동차 운전자들에게는 소득수준별 차등화된 세금보다 통행료나 유류세가 더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통행료 징수는 자동차 운전자가 비용을 부담하는 화물트럭 전용 고속도로 모델도 등장시켰다. 2012년 주요 고속도로 20여 개 구간의 통행료를 조사한 결과, 40t짜리 혹은 그 이상 되는 대형 화물트럭은 3.5t 이하 일반 경차들보다 3배가량 비싼 통행료를 낸다. 하지만 화물트럭 통행으로 인해 발생하는 투자 및 관리 비용은 일반 자동차가 초래하는 비용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삼축 이상의 화물트럭 통행을 위한 고속도로 차선 건설에는 일반 자가용의 통행을 위한 차선보다 5배 넘는 비용이 든다.(2) 특히 이번 조사는 차선 마모가 일반 자동차들과 상관없음을 알려준다. 고속도로의 구조적 관리에 드는 비용은 대형 트럭으로 인한 것이고, 12t짜리 트럭에 비해 40t짜리 트럭이 양산하는 비용 규모는 400배다.

고속도로 인가사업자 혼합주식회사의 변천 과정은 고속도로 기술구조상의 변화를 잘 보여준다. 이들은 초반에는 정부기관과 옛 교통설비부 소속 엔지니어, 지방채에 크게 의존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관료 출신을 고용하고 있던 공공인프라건설(BTP) 부문 주역들과 손잡게 되었다. 1969년 주택 및 설비부 장관 알뱅 샤랑동이 이들의 자율성을 더욱 강화하면서 AREA, ACOBA, APPEL 등 100% 민자회사들이 등장하게 된다. 그러나 1970년대 말 민자회사들은 수익 창출과 고속도로 관리에 필요한 대규모 투자를 모두 달성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코피루트(Cofiroute)를 제외한 모든 민자회사를 다시 국가가 사들였고, 국가는 이들의 초기 자본금을 반환하는 한편 "민자회사들이 해결할 것이라 믿은 위험관리를 국가가 부담하기로 결정했다"(3)고 1992년 판결보고문은 밝혔다.

통행료 부과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논리는 시간에 따라 변화했으나, 통행료 징수는 더 이상 선택 사항이 아닌 반드시 필요한 것이 되었다. 인허가 사업제가 날로 증가하고, 통행료 징수도 마찬가지다. 초기 통행료 징수는 건설사업 비용을 확보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인프라 시설이 낙후되기 무섭게 신규 건설 구간이 거론된다. 이용률이 높은 고속도로 구간 덕분에 신규 구간 건설 비용을 마련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신규 노선의 수익성 여부와 상관없이 말이다. 이렇게 기존 통행료 수입으로 신규 공사 자금을 조달하는 관행이 일반화됐고, 이는 1999년 프랑스 최고행정재판소 판결까지 갔다.

이런 관행에 종지부를 찍고자 사회당 소속 리오넬 조스팽 정부는 별도의 인허가 사업을 구축해 신규 고속도로 건설공사 비용을 별도로 확보하도록 하고, 기존 인허가 사업과 연결짓거나 이미 노후되기 시작한 기존 고속도로의 통행료를 인하하는 방법을 금지하도록 했다. 2001년 3월 당시 경제부 장관이던 로랑 파비위스는 고속도로 인가사업자 혼합주식회사의 인허가 사업제도를 민자기업들의 제도와 맞게 조정했고, 이는 해외 기업에도 사업을 개방하는 기회가 되었다. 인허가 사업은 노선에 따라 2026년에서 2028년까지 계약이 체결됐고, 길게는 2032년까지 가기도 한다. 경제부 장관직에서 물러나기 직전인 2002년 파비위스는 프랑스 제1의 인가사업자 ASF의 자본 49%를 민자회사에 양도했다.

21세기 들어 프랑스의 인프라 설비는 성숙기에 이르렀다. 2011년 총 2만542km에 이르는 고속도로 중 3170km가 비인가사업인데 국가예산으로 비용이 확충됐고, 8771km가 인가사업에 속한다. 신규 건설공사는 부차적인 것이 되었고, 채권을 통한 공사비용 확충도 규모 면에서 현저히 제한됐다. 집권우파인 대중운동연합 소속의 장피에르 라파랭 총리는 국토개발 관점에서 구조적으로 핵심적인 노선과 고속도로를 국가가 책임진다는 정책을 발표했으나, 같은 당 소속이자 라파랭 총리를 승계한 도미니크 빌팽 총리는 이 정책을 뒤집었다. 빌팽 총리는 전체 고속도로 인가사업자 혼합주식회사의 민영화를 국회 표결 없이 법령으로 공포해버렸다. 2006년 초반 여전히 공적자본에 속한 ASF, Sanef, SAPN, APPR , AREA는 인가사업 계약이 23년에서 27년까지 남아 있었음에도 148억 유로에 양도됐다. 여전히 국가가 고속도로망의 소유주로 남아 있기는 하지만, 투자로 인한 소유권 획득과 수익을 향유하는 기쁨은 정작 다른 이들에게 돌아가고 있다. 1950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일부 인가사업들의 계약 만기는 여전히 먼 이야기일 따름이라 '사실상의 독점시장은 공공의 소유재산이 되어야 한다'라고 밝힌 1947년 10월 27일 헌법 서문의 정신까지 위배하고 있다.

에르베 마리통 의원의 '고속도로의 재산가치 향상'에 대한 보고서는 민영화 합리화를 위해 예산상의 필요성과 고용창출의 논리를 내세운다.(4) 국가 부채가 사적 이해를 위한 합리화 수단으로 쓰이는 것이다. 도로부가 "고속도로 인가사업자 혼합주식회사의 활동에 대한 포식자적 행위가 갖는 위험에 대해 우려한다"라고 밝힌 것을 두고 마리통 의원은 이런 우려가 과장이라고 했다. 민영화가 국가 부채 감축에 지금 당장 가져올 눈앞의 이익만 보고 앞으로 민자회사들에 나눠줘야 할 배당금은 애써 잊으려 하는 것이다.

공공부채라는 상투적 핑곗거리

몇몇 데이터만 봐도 민간 투자자들을 안심시키기에 충분하다. 고속도로는 사실상 자연적인 독점시장에 가깝다. 더 안전하고 신속한 이동에 대한 요구는 변함없이 존재한다. 2010년 지방도로보다 고속도로상의 사망사고 확률은 5.25배 낮았고, 국도보다 6.6배 낮았다. 고속도로는 전체 아스팔트 포장도로의 1%에 못 미치는 노선으로 25%의 통행률을 확보하고 있다. 유럽 내 고속도로의 약 20%가 인가사업자에게 위탁된 여건하에 2011년 유럽 고속도로통행료 수입의 31% 이상이 프랑스 고속도로에서 징수됐다.(5) 통행료 수입은 꽤 짭짤하다. 마리통 의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인가사업 기간에 수익이 340억∼390억 유로에 이른다. 이는 물론 신규 주주들의 수익 창출을 위한 아이디어는 고려하지 않은 수치다.

'비용과 통행료 간의 왜곡', '통행료의 불투명성', '징수 극대화'. 이는 2008년 국가회계감사원이 인가사업자들에게 지나치게 유리한 프랑스 고속도로 시스템상의 모순과 비정상적 행태를 지적한 말이다.(6) 회계감사원은 임의적이고 부조화스러운 통행료 책정 방식을 만들어낸 여러 법적 체계가 공존하는 문제를 지적했다. 인가사업자들은 합당하지 못한 통행료 추가 인상을 남발하고, 생산성 증대와 비교했을 때 불합리적인 가격에 연계한 임시 지수를 남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흔히 쓰는 방법은 허용된 평균 통행료를 원칙적으로는 채택하되, 통행률이 가장 높은 구간에 대해 통행료 인상을 우선적으로 실시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망트와 가이용 고속도로 구간 통행료는 12년간 연 5.1%의 증가율을 보였다. 결론적으로 회계감사원은 "인가사업자들의 실질적 수익은 허용된 인상치와 통행료 수준에 비해 훨씬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1차 조사 뒤 1년이 지나서 회계감사원은 인가사업자들의 수익 증가 수준이 여전히 높다고 판단했다. "고속도로 통행량에 거의 변화가 없었음에도, 2008년 상반기 ASF와 APRR의 통행료 수익은 각각 4.8%, 4.5% 증가했고, Sanef의 영업이익은 5.6% 증가했다." 회계감사원이 통행료 체계를 명확히 하고 통행료 지수를 재조정하거나 불합리한 인상에 대한 보상 조치를 취하도록 요구하자, 정부와 인가사업자들은 '계약서 문안'과 '처음부터 약속된 인가사업의 재정상 균형'에 대한 철저한 이행을 들며 반발하고 있다.(7)

이익 배당금이 인프라에 재투자되는 한, 인가사업자들과 행정기관의 영합이 크게 공공이익에 반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민영화 뒤, 공권력은 민간주주들에게 점점 더 유리해지는 통행료제를 두고도 일말의 거리낌 없이 이를 승인했다. 그렇게 국가는 사용자의 불이익을 감안하지 않고 규제 권한을 가진 공권력으로서의 권리를 포기했다.

고용 문제를 들먹인 것도 가당찮은 이야기에 지나지 않았다. 통행료 징수가 자동화되며 직원들은 희생 대상이 되었다. 빈치(Vinci) 그룹은 '사람이 중심이 되는 ASF'라는 슬로건을 내세웠지만, 노사관계는 악화됐다. 노조연합은 개인별 차별적 임금인상제도로 인한 임금삭감안을 비난하고 있다. 인원도 빠르게 감축되고 있다. Vinci-ASF 그룹의 에스코타(Escota)는 2007∼2009년 18%를 감원했다.(8)

고속도로 인가 회사의 주요 주주들은 공공인프라건설 부문에 속해 있고, 이들 중 상당수가 선거운동 기부자다. 프랑스 엘리트 지배층의 지지를 한 몸에 받는 알랭 밍크가 2011년 말 사네프(Sanef) 사장직에 임명된 것도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고속도로 체계 내 주역들은 경제학자 제임스 갤브레이스가 묘사한 공공서비스에 반대하는 적들 간의 영합 관계를 가감 없이 드러내준다. 이들 중 국가가 '작은 정부'로 돌아가는 것을 바라는 기업은 단 하나도 없고, 이 차이가 이 기업들과 보수파를 근본적으로 구분짓는다. 국가의 개입 없이 이 기업들은 존재할 수 없고, 현재 누리고 있는 시장지배력도 확보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기업들의 존재 이유는 국가를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는 한, 국가 재산을 통해 이익을 보겠다는 것이다.(9)

필리프 데스캉 Philippe Descamps 언론인

번역김윤형 hibou98@naver.com 파리3대학 통번역대학원 졸.


(1) 고속도로 지위에 관한 1955년 4월 18일 법. L122-4 조항, 개정 도로법.
(2) ‘승용차와 대형 화물트럭으로 인한 도로 인프라 비용’, 국토 정비와 도로, 교통에 관한 연구보고서, 바뇌, 2009년 6월.
(3) ‘도로 및 고속도로 정책, 국가도로망 관리에 관한 평가’, 회계감사원 공개 보고서, 파리, 1992년 5월.
(4) 에르베 마리통, ‘고속도로 재산의 가치 향상’, 국회 보고서 자료, 2005년 6월 22일.
(5) 고속도로 인가사업자 및 통행료 관리사업자 유럽연합 데이터.
(6) ‘연차공개보고서’, 회계감사원, 2008년 2월 6일.
(7) ‘연차공개보고서’, 회계감사원, 2009년 2월 4일, 경제부 쪽 답변.
(8) <르 카나르 앙셰네>, 파리, 2011년 9월 21일.
(9) 제임스 K. 갤브레이스, <The Predator State>(프랑스어판), 쇠유, 파리,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