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의 광기, 저널리즘은 공공의 적인가

중동 전쟁 보도와 ‘공화주의 아치’의 재편

2024-02-28     세르주 알리미 외

2023년 10월 7일부터 주요 언론사들은 프랑스 내 권위주의 집단의 행보를 주시해왔다. 이스라엘을 무조건 지지하는 이 집단은 자신들에게 반대하는 의견을 비방하고, 공공의 자유를 문제 삼으며, 이민자 색출에 나서고 있다. 이 이념 전쟁은 어디까지 가며, 누구를 위한 전쟁인가?

언론의 광기는 정치적 기회주의를 드러냄과 동시에 가속화했다. 2023년 10월 7일 하마스가 자행한 학살 이후 몇 주 동안, 주요 언론과 프랑스 정부는 두 가지 위업을 달성했다.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 정부의 군사 보복을 사전 용인하는 데 반대한 프랑스 앵수미즈(LFI,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를 ‘공화주의 아치(l’arc républicain, 우파 및 좌파 포퓰리스트에 반대하여, 공화주의 정부의 연정을 구성하기 위해 중도, 사회민주주의, 온건 우파가 지지하는 연합의 한 형태-역주)’에서 축출하고, 여기에 국민연합(RN)을 영입한 것이다. 장마리 르펜을 ‘저지해야’ 한다고 촉구한 지도층은 그에게 정치를 할 자격이 없다고 판단했었다. 장마리 르펜이 1972년에 창당한 당은 베냐민 네타냐후가 이끄는 이스라엘 정부의 노선에 합류하며 돌연 오명을 벗고 명예를 회복했다. <CNews-유럽 1>에서 언론인 소냐 마브루크는 마린 르펜을 “프랑스 유대인을 위한 성벽, 방어물, 방패”(2023년 10월 10일)라며 찬양했고, <르피가로>(2023년 11월 5~6일)와 <BFM-TV>(2023년 12월 12일)는 각각 국민연합 대표 조르당 바르델라의 격양된 얼굴과 “마티뇽(총리 관저)에 간 바르델라, 프랑스인의 46%를 사로잡다”라는 승리의 문구를 게재했다. 같은 시기 진보 언론은 과거 장마리 르펜에게만 했던 말들로 LFI의 장뤼크 멜랑숑 대표를 질타했다. 그는 “반유대주의적 고정관념에 젖은”(<메디아파르>, 2023년 11월 10일) 발언을 일삼으며 “고약한 일탈을 거듭하고 있다”(<롭스(L’Obs)>, 2023년 10월 12일)는 것이다. <르몽드>는 “반유대주의, 장뤼크 멜랑숑은 어떻게 모호한 태도를 키우는가”라는 헤드라인으로 장문의 기사를 실었으나(2024년 1월 4일), 반유대주의적 발언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앞으로 3개월 동안 이 일간지는 기사 6건과 몇 건의 사설에서 프랑스 앵수미즈 지도자의 상징적 암살 시도를 다룰 것이다. 

친기업 성향의 일간지 <로피니옹>에서 니콜라 베이투는 “악마가 편을 바꿨다”(2023년 10월 12일)라고 말했다. “하마스의 공격이 패를 다시 섞고 있다. 프랑스 앵수미즈를 증오하기는 더 쉬워졌고, 국민연합과 싸우기는 더 어려워졌다.” 언론에서는 공화주의 아치가 이스라엘 아치와 혼동된다. 지난해 12월 12일 <프랑스 퀼튀르>의 언론인 브리스 쿠튀리에는 점차 증가하는 프랑스 엘리트들의 수치스러운 욕망을 트위터에서 폭로했다. “(모든 여론조사가 보여주듯이) 국민연합이라는 단계를 거쳐야 할 텐데, 동거의 맥락에서 보는 게 어떻겠는가? 해산. 엘리제에서 마크롱은 (유럽연합 및 북대서양조약기구와 관계를 단절하지 않은 채) 외교정책에 대한 통제를 유지하고, 2026년 적절한 시기에 해산한다.”

10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급속하게 극우화된 프랑스의 정치 스펙트럼은 표현, 의견, 집회의 자유를 제한하며 진화했다. 언론은 내무부 장관과 함께 이데올로기적인 의도로나 지적 태만에 의해, (처음에는 금지됐던)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평범한 시위들을 반유대주의와 동일시한다. 베르나르 앙리 레비는 <르푸앵>에서 이를 “테러리스트를 지지하는 시위”(11월 9일)라고 정정했다. 그를 추종하는 언론인 다리우스 로슈뱅은 <LCI>에서 “이슬람주의자의 행정적 구금”(2023년 10월 15일)을 제안했다. 12월 19일에 대통령 다수당, 우파, 국민연합이 통과시킨 ‘이민법’은 이런 조치들을 최종적으로 마무리했다. 즉 내무부는 국적 우선제를 제도화하고 외국인 탄압을 강화하는 이 법령을 ‘국가의 근본 이익에 대한 공격’과 ‘테러 성격의 활동’, (반유대주의 포그롬을 시도하려는 ‘이슬람주의’ 무슬림의 폭력을 의미하는) 폭력 도발 행위를 막기 위한 방패로 홍보했다. 

 

유럽에 권위주의적 전환의 징후 나타나

지각변동의 징후가 보였고, 이미 유럽에서는 그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프랑스에서는 민주적 자유의 수호자를 자처하는 언론 기업과, 극우를 저지하기 위해 선출된 정부의 공동 지휘하에 그러한 권위주의적 전환이 일어나고 있다. 또한,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내 전 주민을 추방하거나 강제 이주를 서두르고, 언젠가 이들이 자기 영토에서 주권자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저지르는 전쟁 범죄가 증가하는 상황에서, 언론과 정부가 ‘이스라엘의 자위권’을 지지하기 위해 이스라엘의 행동을 정당화한다는 점도 아이러니하다. 가자에서 자행된 학살의 규모, 학살이 촉발한 국제적 지탄, 왜곡된 편견을 지닌 서구 저널리즘을 불신하는 분위기 때문에, 어쩌면 일부 주동자는 자신들의 일탈과 그로 인한 피해가 우리의 기억에서 사라지기를 바랄지도 모르겠다. 그런 만큼 10월 7일에 개시된 정보전의 두 국면을 상세히 재검토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첫 번째는 언론에서 하마스의 학살을 공포의 역사적 정점으로 수없이 묘사한다는 점이고, 두 번째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상대로 벌이는 전면전이 아주 조심스럽고 완곡하게 보도된다는 점이다. 몇 주 동안 프랑스는 표현의 자유만큼이나 논쟁적인 토론을 혐오하는 패거리 저널리즘을 경험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은 3단계로 보도된다. 첫 번째는 시간 축으로, 이 축에서 0점(여기서는 10월 7일)에는 항상 이스라엘 사람들이 암살되는 것이 대응한다. 이 사건 전에 발생한 요르단강 서안지구 및 가자지구 주민들이 살해되는 순간은 0점에 대응된 적이 없다. 점령군은 2021년에 329명, 2022년에 291명, 그리고 2023년의 첫 9개월간 227명의 팔레스타인 주민을 살해했다. 미디어 비평 행동 ‘아크리메드’(10월 23일)는 2023년 1월 1일~10월 1일까지 
“<프랑스 2> 채널의 ‘20시’에서 분쟁에 관해 다룬 것이 단 10개 주제에 불과했다. 이 10개월 동안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발언은 33초간 방송됐다”고 지적했다. 이런 시간 구성으로 사건을 일으킨 본질(이스라엘인 학살), 주동자들이 맡은 역할(하마스 테러리스트, 이스라엘인 피해자, 군대의 심판자), 그리고 마지막으로 공포(10월 7~26일) 다음에 ‘반격’과 ‘이스라엘의 자위권’(10월 27~12월 10일)으로 이어지는 시나리오 전개가 기계적으로 결정된다. 

언론 보도는 공포와 반격 이 두 단계에 집중한다. 세 번째 단계, 즉 잠재적 학살로 번질 수 있는(12월 초 이후) 전쟁과 관련한 국제적 논란은 첫 번째 단계인 공포보다 더 적게 다뤄진다.(1) 시간의 문제가 중요하다는 점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스라엘이 점령지에서 저지른 일반적인 범죄나 가자지구의 살인적 봉쇄를 언론에서 중점적으로 보도했다면, ‘팔레스타인 주민의 자위권’ 문제도 당연히 논의돼야 했을 것이다. 

 

일부 언론의 착각, “이스라엘은 유럽 정신이 숨 쉬는 나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을 바라보는 언론의 시각은 두 번째 축인 ‘서구주의’를 중심으로 구성되기 때문에 프랑스와 유럽의 외교정책은 점점 더 범대서양주의를 지향한다. 언론사 편집국은 이런 기조에 동조하여 이스라엘 정부를 동일한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동맹으로 생각한다. 또한 자유 사회의 우월한 문명권에 속한다는 동일한 신념과, 동일한 적을 공유하는 동맹으로 본다. 언론인 로랑스 페라리는 철학자 미셸 옹프레에게 한 질의-성명(<파리 마치>, 2023년 1월 4일)에서, 중동에서 “급진적 이슬람주의의 반계몽주의에 맞서 서구 민주주의자들의 싸움”이 격렬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도미니크 드 빌팽이 <BFM TV> 아나운서 아폴린 드 말레르브에게 “공포스런 일이 일어났다고 해서 다른 쪽에서도 그런 일이 일어나야 합니까?”라고 물었을 때(2023년 10월 27일), 그는 이런 답변을 받았다. “그런데 당신은 인류의 어떤 부분을 생각하는 겁니까?” 계몽된 서구인가 아니면 ‘거리’에서 테러리스트를 보호하는 인구 밀도가 높은 남반구인가. 풍자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 전 국장이자, 현재는 뱅상 볼로레의 극우 라디오 방송 <유럽 1>(2023년 10월 19일)의 논객인 필리프 발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스라엘을 사랑합니다. (...) 유럽 정신이 숨 쉬는 나라니까요.”

1년 반 전 키이우에서 그랬던 것처럼, 언론은 이스라엘 정부와 군대의 이야기 대부분을 객관적으로 검증해보지도 않고 무턱대고 인정한다. 이스라엘 정부 및 군대의 홍보 담당자들은 대부분 영어를 완벽하게 구사하고, 대중을 겨냥한 언론 코드에 정통하다. 반대로 하마스 측에서 나온 모든 정보는 피해자 수를 포함해 의심스러운 구석이 있다. ‘차할(Tsahal, 이스라엘 방위군)’은 아기 40명이 참수되었다, 어린이 20명이 불에 타 처형되었다, 갓난아기를 오븐에 구웠다, 임산부를 죽여 배를 갈랐다, 알시파 병원이 하마스의 본거지였다는 등 수많은 ‘가짜 뉴스’를 유포했다. 나중에 이 뉴스들이 사실이 아니라는 반박이 나왔음에도, 파급효과나 영향력은 최초의 선정적인 정보보다 적었다. 그 외에도 프랑스 언론이 보도하는 이스라엘 측의 공식적인 이야기의 핵심은, ‘중동의 유일한 민주적’ 군대가 가자 주민들 속에 녹아든 잔인한 괴물을 파괴할 임무가 있고, 하마스는 분쟁의 모든 피해자에게 일차적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주장에 검증 없이 동조하는 서방 언론

비슷한 상황에서 흔히 그런 것처럼, 이런 종류의 프로파간다를 해석할 사람으로는 베르나르 앙리 레비를 따라갈 자가 없다. 이 수필가는 2023년 10월 29일 <LCI>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이스라엘은 인도주의 법을 따를 의무가 있다. 이스라엘은 민간인 피해자를 가능한 한 최소화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다시 한번 이스라엘은 모든 가자 주민에게 전단을 살포하고 휴대폰에 이런 메시지를 남겼다. “여기에 머물지 마시오! 15년 동안 당신들을 조종하고 있는 이 비열한 놈들의 인질이 되지 말고 떠나시오, 도망치시오.” 따라서 인도주의 법은 뉴욕, 파리, 베를린에 거주하는 평온한 시청자들의 머리와 마음속에 있는 것처럼 이스라엘인들의 머리와 마음속에도 있다.” 말하자면 12월 31일 네타냐후가 분명히 밝힌 것처럼, 이스라엘은 ‘유례없는 윤리 전쟁’을 벌이고 있다. 

 시간이 갈수록 모든 뉴스 채널에서 흘러나오는 이 날조된 이야기는 점점 늘어나는 팔레스타인 피해자 수를 상대적으로 평가하게 한다. 또한, 합법적인 대응으로 위장해 인종 청소를 시도한다. 뱅자맹 뒤아멜은 2023년 10월 13일 <BFM-RMC>에서 이렇게 물었다. “거기서 우리를 지켜보고 우리 말을 듣는 사람들이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하마스는 이스라엘군이 경고했고 대피 명령을 내렸는데도 민간인들을… 방패 삼아 일종의 프로파간다로 이용하기 위해 가자를 떠나지 말라고 요구했습니다. 이것이… 이것이 테러 조직이 내세우는 프로파간다의 목적이란 말입니까?” 상황을 너무나 분명하게 객관적으로 설명하자 당황한 게스트 조르주 말브뤼노 기자는 이렇게 답한다. “그렇습니다… 대략 거의 그렇다고 봐야죠.”

이틀 후 뒤아멜은 조심스럽게 휴전 이야기를 꺼낸 프랑스 앵수미즈 소속의 한 하원의원을 비난했다. “프랑수아 뤼팽, 하마스와 휴전이라니요? 하마스는 테러리스트 조직이에요! 이스라엘이 하마스와 협상을 해야 한다는 말입니까?” 이어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당신 말에는 어딘가 끌리는 구석이 있군요. 사실상 당신은 특히 프랑스 앵수미즈 내에서, 10월 7일 테러리스트 공격과 이스라엘의 보복 중 어느 편도 들지 않는 쪽에 속합니까?” 

<프랑스 앵테르>에서도 같은 이야기가 나왔으나, 한 달 뒤 1만 2,000명이 사망했다(11월 16일). 공영방송이 선호하는 전문가 피에르 세르방은 “이스라엘이 그들의 전쟁 목표를 더 빨리 달성하려면 더 많은 민간인을 죽여야 할 것이다. 하마스가 민간인 뒤에 숨어 자신들을 보호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정당화한다. 이어서 그는 “민주주의 국가의 다른 군대가 어떤 식으로 이보다 더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면서, “가자 주민에게 경고하고, 인도주의적 통로를 마련하며, 차할이 전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취하는 몇 가지 실질적 예방 조치들”도 강조했다. 그에 따르면, 반대로 하마스는 “가자지구에서 곧 부각될 비극적 사건을 일으키느라” 분주하다. 어쨌든 라디오에서 네타냐후의 대변인 역할을 (치열한 경합 끝에) 거머쥔 것은 <유럽 1>이었다. 종종 그의 우상이 당혹스러움에 얼굴을 붉힐 정도였다. 역사가 조르주 방수상은 이스라엘 군인들이 “삶과 생존을 가져왔고, 의료 장비도 가져왔다”고 말했고, 언론인 소냐 마브루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유럽 1-CNews>, 2023년 11월 16일).

 

네타냐후의 대변인 역할을 한 <유럽 1> 라디오 뉴스 

이 자비로운 군대는 우리와 비슷하므로, 프랑스 언론인들은 동포들 중 한 명이 이 대열에 합류할 때 동행한다. 2023년 10월 10일 <프랑스 앵테르>의 아침 방송에서, 소냐 드빌레르는 ‘요발’이라는 한 학생을 영웅시했다. 이스라엘에서 싸우기 위해 프랑스를 떠나는 요발은 하마스와 가자지구 민간인을 구분하지 않는 것 같았다. 언론인 드빌레르는 팔레스타인 영토를 침략할 준비를 하고 있는 군인에게 “고마워요 요발, 잘 다녀와요!”라고 인사하며 방송을 마쳤다. 그녀의 동료 유디트 와인스트로브는 <피가로 마가진>(2023년 11월 24일)에서 또 다른 군인을 찬양했다. “반유대주의를 피해 이주한 프랑스 태생의 쥘리앵 발룰은 TV 채널 <i24News>에서 5년 동안 근무한 뒤 예비군 신분일 때 다시 군복을 입었다. 그는 현재 차할의 대변인으로 활동 중이다.”

공영 언론이든 민영 언론이든 언론 편집국은 가자지구로 싸우러 떠난 프랑스인들을 비판적으로 다뤄야 한다는 생각을 강요받지 않는다. 서구 중심으로 편향된 그들의 편견이 현재 거대한 악의 세력(러시아, 중국)과 동맹을 맺은 이슬람주의의 위협을 받는 민주주의와, 나머지 세계 사이에 위계를 가정하기 때문이다. 어떤 언론인도 자신이 이 행성의 일부를 인간 이하로 취급한다는 것을 기꺼이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신체를 훼손당한 여성들에게 저질러진 학살과 강간을 같은 것으로, 현재 보복의 일환으로 벌어지는 폭격과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죽음을 같은 것으로 보기를” 거부한다면 결국 마찬가지일 것이다.(소냐 마브루크, <유럽 1>, 2023년 11월 26일)

언론인의 키보드가 텔아비브를 묘사하는지 가자를 묘사하는지에 따라, 어휘와 구문은 그 진술을 인간화하기도 하고 비인간화하기도 한다. 하마스는 이스라엘 피해자를 ‘학살’하거나 ‘살해한다.’ 팔레스타인은 누가 그들을 죽이는지 실체가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 채 ‘죽는다.’ 하마스 측 공격이 있을 때마다 언론은 이스라엘 피해자 개인의 절절한 사연을 묘사하는 반면, 팔레스타인인은 보도에서 대개 잔해더미를 헤매는 불명확한 익명의 존재로 축소된다.(2) 우리가 영화 속 등장인물과 동일시하는 생명 없는 주체이거나, 배경에 숨어 있어 우리의 시선에 잡히지 않고 빠져나가는 생명 없는 대상인 것이다.

분쟁이 발생한 지 거의 4개월이 지났으나, 프랑스 주요 언론 중 이 분쟁을 다룬 언론을 정량적으로 조사한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디 인터셉트>(2024년 1월 9일)는 미국에서 2023년 10월 7일~11월 24일에 나온 <뉴욕타임스>, <워싱턴 포스트>,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기사의 광범위한 표본을 분석했다.(3) 프랑스 독자들에게도 그 결과가 낯설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스라엘 피해자의 경우 ‘유린(carnage)’이라는 표현이 팔레스타인 피해자보다 60배 더 많이 사용됐고, ‘학살(massacre)’이라는 표현은 이스라엘 피해자에 대해서는 125회, 팔레스타인 피해자에 대해서는 2회 사용됐다. ‘끔찍한’이란 표현은 이스라엘 피해자에게는 36회, 피해자가 팔레스타인인 경우는 4회 쓰였다.” 또한, 저자들은 “어린이 및 언론인이 일반적으로 서구 언론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데 비해, 이 두 집단에서 살해된 전례 없는 수에 대해서는 언론의 관심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마지막으로 하마스가 자행한 민간인 암살은 의도적인 전략의 산물로 상세히 묘사되는 반면, 언론인들은 가자 주민들의 죽음을 “수천 번 반복되는 오류의 연속인 것처럼” 묘사한다.

또 다른 서구 미디어인 <BBC>의 연구에서도 특정 어휘가 어떤 이들에게는 감동을 주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거리감을 준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4) 연구자들은 2023년 10월 7일~12월 2일에 제작된 <BBC> 온라인 제작물의 90%를 면밀히 조사했다. 이스라엘 피해자와 ‘학살, 살해, 살육’ 같은 단어들이 거의 체계적으로 연관된다는 사실(팔레스타인인은 ‘죽거나 사망했다’고 표현됨) 외에, 이 연구는 ‘엄마, 할머니, 딸, 아들, 남편’ 등 가족 관계를 나타내는 용어가 팔레스타인인보다 이스라엘인을 묘사하는 데 더 자주 사용되었다고 밝혔다. 

 

이중 잣대의 불균형을 개선하라는 목소리 작아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하고 100일 뒤, 이스라엘 정부가 집계한(12월 15일) 사망자 수는 1,139명이었고, 그중 민간인이 766명, 아직 가자에 억류돼있는 인질이 132명이었다. 미국의 장비와 자금을 지원받은 이스라엘군은 팔레스타인인 2만 3,000명을 죽였고(그 외 8,000명 실종), 병원, 학교, 사원, 문화시설, 문서 보관소, 도로, 에너지 기반시설을 폭격했다. 또한, 건물의 60%를 손상시키고 파괴했으며, 주민의 85%를 난민으로 만들었고, 생존자의 40%를 위협하는 대규모 기근은 물론 조직적으로 물과 의약품 부족 사태를 유발했다. 미국 역사가 로버트 페이프는 이것이 시리아의 알레포, 우크라이나의 마리우폴,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말기 연합군 폭격으로 망가진 독일 도시들의 파괴 규모에 맞먹는, “역사상 가장 강력한 민간인 토벌 작전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5) 그러나 그것은 한 번의 일탈로 볼 일이 아니다. 작전은 대학살을 예고하는 듯한 어조로 사전에 공식 선언되었다. 사회주의 성향의 이스라엘 대통령 이츠하크 헤르초그는 “책임은 국가 전체에 있다”고 했고, 국방부 장관 요아브 갈란트는 “가자는 절대 예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모든 것을 제거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스라엘 정부 지도자들이 ‘인간 동물’의 운명으로 점찍어둔 이스라엘의 살육을 분석할 때, 그 원인을 추적하기 위한 강도 높은 조사나 그 의미를 파악하기 위한 고급 기호학 과정은 필요하지 않다. 그러나 그때 언론은 전략을 바꿨다. 팔레스타인의 운명을 ‘이슬람주의 테러리즘’으로 규정하고 이스라엘의 정책을 이 학살에 대한 일련의 ‘보복’으로 규정함으로써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를 끊임없이 퍼뜨렸다. 또한, 서구의 연대가 동맹을 인간화하고 적을 야만화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그러고 나서 대부분의 프랑스 언론인은 시선을 돌리기로 했다. 그들은 의도적으로 분쟁 보도를 축소해 불쾌한 질문을 피하려고 했다.(6) 

그러나 논리적으로나 정의의 측면에서, 10월에 “이스라엘은 스스로 방어할 권리가 있다”고 선언한 다수의 논평가와 의사 결정자들은 지금까지 발생한 피해자 수와 관련해 이 ‘권리’의 결과에 의문을 제기했어야 했다. 또한, 그들에게 살해를 막기 위한 조치나 제재를 제안하라고 요구했어야 했다. 팔레스타인의 ‘테러리즘’에 대해 발설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이 말을 어긴 자들에게 언론이 돌팔매질을 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이번에는 이스라엘의 전쟁 행위를 주시함으로써 ‘추방, 인종 청소’는 물론 ‘대학살 시도’ 같은 다른 표현들이 등장하는 듯했다. 언론인들은 이제 이스라엘을 ‘무조건적으로 지지하는’ 일부 사람들 쪽으로 그들의 무기를 돌리고 발언을 쏟아낼까? 언론인들은 이번에는 가자지구에서 민간인 학살이 일어나 자신들의 보호 대상에게 반대하는 목소리를 높여야 할 때, 자신들의 맹목성을 비난하겠는가? 

 

<프랑스 앵테르>에 이의를 제기한 방청객 ‘브리스’

야엘 브라운 피베 하원의장, 제라르 라르셰 상원의장, 에리크 시오티 공화당(LR) 대표, 안 이달고 파리 시장 등, 불과 몇 주 전이었다면 이들은 불복하는 지도자로서 이런 질문을 받을 수도 있었다. “인종 청소에 찬성합니까?”, “그것은 오히려 추방에 더 가까운가요?”, “대부분이 예비군 신분인 이스라엘 선수들을 올림픽에 참가하지 못하게 하는 건 어떨까요?”, “이스라엘에 대한 제재는 대체 언제쯤 하게 될까요?”

우리는 전혀 그렇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이미 짐작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다른 신문들보다 더 공평하게 분쟁을 보도하는 것으로 정평이 난 <르몽드> 같은 신문조차도, 팔레스타인에서 전쟁 범죄를 저지른 국가가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아야 한다고 늘 권고하지는 않는다.

신년사에서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가자지구에서 숨진 2만 2,000명을 위해 열다섯 마디를 바쳤다. 2023년 12월 31일, 총 48페이지에 달하는 <르 주르날 뒤 디망슈>는 팔레스타인인들의 순교에 대해서는 단 한 건의 기사도 게재하지 않았다. 

2주 뒤, 성향이 매우 다른 두 정치인 라파엘 글뤼크스만과 에리크 제무르는 각각 <프랑스 앵테르>와 <유럽 1>에서 장시간 인터뷰를 했다. 이 두 방송의 유일한 공통점은 인터뷰 시간이 50분이고, 가자지구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거론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글뤼크스만은 공격받은 병원과 관련해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러시아 해커의 공격을 받은 코르베유에손의 병원 이야기뿐이었다(2022년 8월, 러시아 해커 집단이 코르베유에손의 한 종합병원에 돈을 요구하며 사이버 공격을 단행해 진료가 중단되고 환자들을 다른 병원으로 이송해야 했던 사건-역주).

그 며칠 전인 12월 21일,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은 다시 한번 <프랑스 앵테르>의 초대를 받았다. 인터뷰를 시작하고 16분이 지났는데도 가자지구 전쟁 얘기가 나오지 않자, ‘브리스’라는 한 방청객이 대화를 끊고 이렇게 말했다. “팔레스타인에서 수만 명의 희생자가 발생해야 여기에 참여하는 모든 발언자에게 이스라엘 군대의 잔인한 행위를 명백히 비난하는지 물을 겁니까? 처음에는 며칠 동안 당신은 양측의 사망자 수를 각각 알려줬는데, 사망자 수가 1,200명으로 같아지자 니콜라 드모랑(<프랑스 앵테르> 아침 방송 진행자) 당신은 거기서 멈췄던 걸로 기억합니다. 현재는 팔레스타인 쪽 사망자 수가 20배나 더 많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모두에게 이 모든 것을 분명하게 비난하는지 물어야 할 차례입니다.” 소용없는 일이었다. 다음 날 <프랑스 앵테르> 게스트는 프랑스 앵수미즈의 하원의원 프랑수아 뤼팽이었고, 언론인들은 그에게 가자 관련 질문은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프랑스에 마침내 권위주의적 저널리즘 탄생

하마스 공격 이후 2주간인 10월 8~21일 <프랑스 앵테르> 아침 방송에 초대된 게스트 중 2명을 제외하고 모두가 학살 관련 질문을 받거나 스스로 공포를 표현했다. 영화배우 뱅상 랭동은 10월 13일 “오늘 우리가 올바르게 행동하고 싶다면 그것이 우리의 내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우리가 느끼는 게 무엇인지 말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설명했다. 두 달 뒤 이 ‘도덕적 의무’는 사라졌다. 12월 8~21일에 가자지구 내 학살 위험에 관해 유엔 산하기구를 포함해 국제적 논의가 확산할 당시, <프랑스 앵테르> 아침 방송에서 이런 주제로 질문을 받은 게스트는 단 2명에 불과했다. 물론 ‘브리스’까지 합하면 3명으로 늘어나겠지만 말이다. 

2024년 1월 12일 금요일 <프랑스 앵포>는 학살 행위 혐의에 대해 이스라엘 정부를 옹호하는 생방송을 내보냈다. 이처럼 저널리즘이 이스라엘에 호의적인 쪽으로 치우쳤다는 증거와, 그 전날 헤이그 국제사법재판소에서 있었던 남아공의 변론은 같은 대우를 받지 못했다는 증거가 계속해서 쌓일 것이다. 그럼에도 조정이 필요한 불균형을 시사하는 ‘이중 잣대’를 비판하는 목소리는 아직 부족하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을 특별 취급하는 것은 보다 광범위한 변화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4개월 동안 ‘4대 강국’의 지도자들은 식민 제국 시대처럼 서구를 인류의 정점에 올려놓는 문화주의를 부추기기만 한 게 아니다. 대다수는 이스라엘 극우의 관점을 지지하고, 프랑스에서는 어제까지도 분명했던 연대 표명을 전쟁 반대자들이 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그들을 소외시키는 데 동조하거나 지지했다. 이렇게 그들은 러시아의 위협과 이슬람 테러리즘에 맞서 싸운다는 명목으로 프랑스의 군사적·도덕적 재무장을 축하하는 동시에, 국민연합 공화주의의 세례를 촉발했다. ‘포퓰리스트’ 운동과 ‘반자유주의’ 정권에 맞서 자유주의 정부들이 15년간 벌인 전쟁은 여기서 뜻밖의 원군을 만났다. 프랑스에서 권위주의적 저널리즘이 탄생하고 자리 잡은 것이다. 

 

 

글·세르주 알리미 Serge Halimi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고문
피에르 랭베르 Pierre Rimbert
기자

번역·조민영 
번역위원


(1) 유로 애그리게이터에서 프랑스 언론 항목에 등재된 기사 및 시청각 자료의 수. 
(2) Pauline Perrenot, ‘À la Une du Parisien, la caricature du double standard <르 파리지앵>의 1면, 이중 잣대의 캐리커처’, Acrimed, 2023년 12월 21일 참고.
(3) 미국 언론의 또 다른 표본에 관한 홀리 잭슨(Holly Jackson)의 연구도 참고. https://github.com/hollyjackson/casualty_mentions_nyt
(4) 이 연구는 잰더 엘리어즈(Xander Elliards)가 요약한 것임, ‘Study shows BBC “bias” in reporting on Palestinian and Israeli deaths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인 사망 보도에서 BBC가 보여주는 ‘편향성’ 연구’, <The National, Glasgow>, 2024년 1월 9일. 데이터는 https://github.com/liet-git/bbc-bias#wordbank-analysis에서 찾을 수 있다.
(5) Julia Frankel, ‘Israel’s military campaign in Gaza seen as among the most destructive in recent history, experts say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군사작전은 최근 역사에서 가장 파괴적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Associated Press, 2024년 1월 11일. 
(6) Alain Gresh et Sarra Grira, ‘Gaza, l’escorte médiatique d’un génocide 가자, 언론이 학살을 호위하다’, Orient XXI, 2024년 1월 8일.

 

위조와 명예훼손

반유대주의자라는 오명을 쓴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는 가운데, 그런 집단에 또 한 명의 새로운 인물이 등장했다. 바로 도미니크 드 빌팽 전 총리다. 2023년 11월 23일 <TMC>의 프로그램 ‘일상(Quotidien)’은 가자 전쟁에 대해 입장을 표명했다가 미국에서 제재를 받은 예술가들에 대해 보도했다. 이 보도를 본 뒤 드 빌팽은 이렇게 논평했다. “우리는 이 보도에서 언론과 예술 및 음악계에서 재정적 영향력이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지 암묵적으로 확인했습니다. 그 예술가들은 계약이 중단되기 때문에 자기 생각을 말할 수 없습니다. 안타깝지만 프랑스에서도 그런 일을 볼 수 있죠.”

사흘 뒤 <BFM TV> 진행자인 로날 갱트랑주는 프랑스유대인협회(CRIF) 회장 요나탕 아르피에게 드 빌팽의 발언에 대해 반응을 유도했다. 그러나 이 언론인은 전 총리의 발언을 조작했다. 그는 이렇게 주장했다. “처음에 드 빌팽은 미국에 대해 이야기하고, 서구사회에서 유대인 금융의 영향력을 비판했습니다. 그는 이 영향력 때문에 사람들이 끔찍한 인종 청소의 피해자인 팔레스타인인을 직접적으로 지지하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그는 미국의 상황을 이야기한 뒤 ‘프랑스도 마찬가지죠’라고 말합니다.” 그러고 나서 갱트랑주는 이런 논평을 덧붙였다. “이런 표현을 사용해서 미안하지만, 교외 지역에 사는 작은 아랍인이 반유대주의 발언을 하는 상황이라면 문제는 쉽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프랑스 전 총리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그가 정확히 무슨 뜻으로 그런 말을 했는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2023년 11월 28일, 거짓말의 증거가 드러나자 <BFM TV>는 다음과 같은 짧은 사과문을 방송에 내보냈다. “2023년 11월 26일 일요일 ‘120분’ 프로그램에서, 그 주에 나온 도미니크 드 빌팽의 발언에 대해 부정확하고 유감스러운 표현이 사용됐습니다. <BFM TV>는 시청자 여러분께 사과 말씀을 드립니다. 항시 경계를 늦추지 않는 것만이 우리 방송과 시청자 사이의 신뢰를 보장해 줄 것입니다.”

더불어 신께서 가짜 뉴스로부터 우리를 보호해주시기를….   


번역·조민영
번역위원

 

실격 처리된 프랑스

분쟁의 시작부터, 프랑스와 유럽연합은 물론 서구 언론과 관련하여 일부 팔레스타인인들은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고 있었다. 유네스코 팔레스타인 대사를 지낸 엘리아스 산바르는 씁쓸하고 역설적인 어조로 이렇게 썼다. “프랑스는 주권을 지닌 독립 국가다. 그리고 프랑스는 현재 전쟁의 초기에 쓰러진 민간인, 이스라엘인 혹은 다른 국적자의 운명에 대해 정당하게 분노할 수 있다. 또한, 프랑스는 가자지구 폭격으로 사망한 어린이 수가 증가하는 참상에 대해 침묵을 지킬 수도 있다. 프랑스는 팔레스타인인들과 연대하는 집회를 금지할 수 있고,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열렬한 선언을 계속하고 팔레스타인인의 불행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을 수 있다. 프랑스는…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이번에 스스로를 실격 처리하고 다음 게임에 나가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2023년 10월 13일, <르몽드>에 게재된 인터뷰)

 

폭격, 미래의 해결책

주간지 <르푸앵>의 ‘세계’ 부문 편집장 뤼크 드 바로셰는 지난 1월 18일 가자지구의 휴전 가능성이 가져올 결과를 이렇게 상상했다. “이스라엘군의 결과는 적대 감정을 멈추기에는 비극적이게도 불충분하다. 이스라엘이 무기를 내려놓으면 어떤 일이 벌어지기 때문일까? 하마스는 인질을 수년간 협박 수단으로 이용할 것이다. 하마스는 계속해서 가자지구를 통제할 것이다. 하마스 지도자들은 아랍-무슬림 세계에서 영웅 대접을 받을 것이다. 서구의 이익에 해를 끼친다면 블라디미르 푸틴과 시진핑은 환영할 것이다. 이란과 예멘,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의 이란 민병대는 날개가 돋아나는 것 같다고 느낄 것이다. 다에시(이슬람국가 IS)가 이끄는 지하디스트 조직은 그들의 적(여기에는 우리도 포함된다)에게 하마스만큼 치명적인 타격을 가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만 한다면 공격을 재개할 힘을 얻을 것이다. 우리는 정녕 이런 것을 원했다는 말인가?”


평화, 이 ‘유치한’ 생각

<르피가로>에서 언론인 로르 망드빌은, 먼저 ‘하마스와 싸우기 위한 국제적 동맹’을 제안했던 에마뉘엘 마크롱이 생각을 바꿔 2023년 11월 9일 가자지구에서 폭격을 중단할 것을 촉구한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일주일 뒤 망드빌은 공화국 대통령을 이렇게 질타했다. “차알이 실존적 위험을 무릅쓰고 군사작전을 벌이는 와중에 휴전을 요구함으로써, 프랑스는 세력 균형을 피하고 전쟁 시기를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 건너뛰려는 유럽의 경향을 반영합니다.”
가자지구 및 그 주민들을 파괴하려는 행동이 중지되었다는 사실에 절망한 기색이 역력한 망드빌은 이렇게 밝힌다. “전쟁을 수행해야 하는 ‘속도’의 문제는, 여기서도 현재 매우 널리 퍼져 있는 다소 유치한 조바심 같은 태도를 반영하기 때문에 중요하다. 넷플릭스 시리즈에서 볼 수 있듯이 내용 전개가 빨라야 한다.” 맙소사! <르피가로>가 보여주는 전쟁은 멋지다….


착각

2023년 12월 12일, 가변기하학 교수이자 전방위적으로 위대한 증인인 베르나르 앙리 레비는 이스라엘 방송 <i24>의 프랑스어 채널에서 늘 그렇듯 진심으로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이스라엘에 불리한 ‘이중 잣대’가 정말 존재한다니 놀라울 뿐입니다.”   

 


번역·조민영
번역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