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飛上)하는 여인들의 만남

2024-02-28     마거릿 애트우드 l 맨부커 상, 프란츠 카프카 상 수상작가

캐나다의 유명 작가 마거릿 애트우드는 젠더, 인권, 환경, 자연 등 여러 주제를 천착해 왔다. 지난해 11월 2일 로베르 라퐁 출판사에서 출간된 『우리 숲길을 산책해요』에서 이 작가의 발랄한 문체, 예리한 해학이 깃든 15편의 단편 가운데 1편을 발췌해 본지에 게재한다. 언어폭력에 직면한 세 여성 지식인의 현실적인 고뇌와 꺾이지 않는 투쟁정신을 투명하게 관찰할 수 있다.

 

크리시의 집 앞에 도착한 머나는 문을 두드렸다. 초인종을 눌렀지만 인기척이 없었다. 그녀는 안으로 들어갔다.

“나 왔어. 세상에, 문을 활짝 열어두다니! 내가 혹 연쇄살인범이면 어쩌려고!” 그녀가 외쳤다. 거의 포효에 가까운 소리였다.

“1분만 기다려. 금방 나갈게.” 

실내 어디선가 크리시가 대답했다.

분홍빛 타일이 깔린 현관은 서늘했다. 머나가 전신거울을 흘끔 쳐다봤다. 꼭대기에 리본 매듭이 조각된 옥빛 나무틀 속의 기다란 거울은 프랑스풍이었다. 크리시는 골동품이라면 사족을 못 썼다. 아무리 상품이 미심쩍어도 상관없었다. 낯선 이들이 남긴 유물. 예전에 남자를 고르는 취향도 꼭 그랬는데. 정말이지 이 물건은 ‘침실 장식용으로 딱’이라면서.

“빌어먹을. 무지 덥네.”

머나가 밀짚모자를 벗어들고, 어수선하게 헝클어진 요란한 진홍색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혼자 중얼거렸다. 미용사 안토니오가 제멋대로 가위를 놀리도록 두지 말았어야 했다. 완성된 머리를 본 안토니오는 에둘러 미안함을 표시했다. 다음에 꼭 머리 색상을 다시 손봐주겠다고 단단히 약속했다. 여하튼 지금 그녀의 모습은 상당히 파격적이었고, 그녀는 다시 오지 않을 이 기회를 온전히 누리기로 마음먹었다.

이 민소매 원피스도 절대 입지 말았어야 했다. 강한 자외선과 늘어진 팔뚝 살 때문이다. 덤벨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물론 그녀가 덤벨을 장식품으로 두지만 않았어도 달랐을 테지만. 게다가 초록색 계열은 좀처럼 그녀에게 어울리지 않았다. 특히 이 라임색은 그녀의 얼굴색을 더 칙칙하게 만들었다.

“뭐가 이리 요란하담?” 

그녀가 거울에 비친 모습을 보고 중얼거렸다.

“이런 차림을 하기에는 늙었어. 이제 아무도 내 외모에 관심이 없다고. 아무도…” 

머나는 크리시의 응접실로 발걸음을 향했다. 그녀의 발밑에서는 습기를 머금은 이끼처럼 베이지색 양탄자가 질퍽거렸다. 토론토는 늪지대였다. 지금도 늪지대처럼 습했다. 응접실은 평소 그대로였다. 연보라빛과 청록빛, 금빛의 건조화가 꽂혀있는 멕시코풍 화병, 방글라데시의 한 여성단체가 직접 수를 놓은 쿠션, 출판사에서 퇴짜를 맞았던 크리시의 유일한 베스트셀러 『창공의 소녀들, 비상하는 여인들』의 표지 시안이 큼지막하게 장식된 액자. 사실 그것은 크리시가 꿈꾸던 표지였다. 하지만 정작 편집자들이 그녀에게 강요한 건 훨씬 더 표준적인 표지였다. 초경량 복엽기가 그려진 주황색 표지. 그들에 따르면, 표지 사진이란 자고로 눈에 확 들어와야 했다. 사람들이 휴대폰 화면을 넘기다가 멈칫할 만큼.

『창공의 소녀들』은 학제 간 페미니즘 연구에 대한 급습이라 할 수 있었다. 적어도 크리시는 그렇게 주장했으나, 머나는 그것이 사이비 전문용어라고 평했다. 그녀는 자신이 크리시보다 엄격하다고 자처했다. 크리시는 토론토 명문대에서 신화학과 민속학을 가르쳤다. 그녀가 쓴 책은 중력의 법칙을 거스른 여러 허구 속 여인들을 다룬 학술논문 형식으로 시작됐다.

하지만 여기서 ‘창공의 소녀들’이란 비단 오색 무지개 빛깔을 띤 신의 전령사 이리스나 날카로운 발톱에 새의 날개를 단 하르퓌아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전래동요에 등장하는 ‘바구니 속에 던져진 노파’, 시슬리 바커가 그린 ‘꽃의 요정들’, 요술 우산을 쓰고 구름 위에서 내려오는 메리 포핀스, 『피터팬』에 나오는 반짝이는 작은 요정 팅커벨만 의미하는 것도 아니었다. 수확물을 지키기 위해 하늘을 날아다니며 사악한 마녀들에 맞서 싸우는 이탈리아의 선량한 베난다티도, 오즈의 왕국을 방문한 도로시나 그의 강아지 토토도 아니었다. 비록 도로시와 토토가 연신 하늘을 날아다니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말이다.

사실상 크리시는 픽션과 신화에 머무르지 않고, 실제 삶의 영역으로까지 탐구를 확장했다. 인간 대포알이 된 여성들, 치명적인 추락사로 세상을 뜬 여성 공중 그네 곡예사들, 어느 날 홀연히 수수께끼만 남긴 채 세상에서 사라진 여성비행사 아멜리아 에어하트.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내내 합판 복엽기에 몸을 싣고 야음을 틈타 죽음의 씨앗을 뿌리고 다니던 소련의 여성 비행사단, ‘밤의 마녀들’까지.

이 책의 주석에서 다뤘던, 본문에 실렸던, 하늘을 나는 이 여성들은 대체 그들의 추종자에게 어떤 의미를 지녔던 것일까? 크리시는 몇 가지 가설을 제기했다. 그중 하나는 섹슈얼 새디즘이었다. 아름다운 곡예사가 아찔한 공포 속에 공중을 가르는 모습. 지상의 육신이 구속하는 굴레에서 벗어나기를 갈망하는 여성의 욕망도 있었다. 비상을 꿈꾸지 않는 젊은 소녀가 있을까?

책을 산 사람들 중에는 불만을 제기하는 이들도 있었다. 연합군 전투비행대대를 다룬 책인 줄 알았는데, 요정 이야기 천지라면서 말이다. 정확히는, ‘빌어먹을 요정년들’이겠지. 머나도 일전에 상소리로 도배된 편지의 일부를, 크리시가 보여줘서 읽어본 적이 있었다. “대체 왜 목차는 읽어보지 않는 거야?“라고 크리시가 볼멘소리를 했다. 대체 왜 이런 심술궂은 말들을 써서 보내는 것이냐고?

“더러운 페미나치 잡년”이란 폭언은, 진지한 학술 토론에서는 드문 표현이었다. ‘페미나치’가 페어팩스 대학교의 한 교수(1)에 의해 창안된 용어지만 말이다. 게다가 왜 그 문학평론가 두 명은 굳이 그녀에 대해 묘사하면서 ‘경박한’이란 수식어를 썼을까? 또 다른 평론가는 ‘새대가리’라는 표현도 서슴지 않았다.

“여자가 책을 냈다는 이유만으로 혐오의 대상이 된 거지. 흔한 일이잖아. 우리 모든 여자들이 겪는 일이니까.”

레오니가 크리시를 위로했다. 그리고는 입버릇처럼 말했다.

“프랑스 혁명 때는 훨씬 더했어. ‘시민’이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머리가 댕강 날아가기도 했으니.” 

프랑스 혁명은 레오니의 전공 분야였다. 그녀도 캐나다 명문대인 토론토 대학에서 프랑스 혁명에 대해 강의를 한 적이 있었다. 역사가 아직 권위를 누리던 시절이었다.

레오니도 『테르미도르!』라는 제목의 책을 냈었다. 처음에 그녀는 대학출판부에 원고를 보냈지만, 결국 퇴짜를 맞았다. 자극적인 폭력에 초점을 맞춘 글이 영 진지하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다 이 책의 잠재력을 알아본 한 중견 상업 출판사가 나타났다. 하지만 이번에는 출판사가 레오니가 붙인 부제를 삭제했다. ‘프랑스 혁명에 반기를 든 테르미도르 반동 시기의 사법 외적 정치 보복과 복수의 학살, 그리고 이 사건이 현대에 남긴 유산.’ 부제가 너무 장황하다는 이유에서였다. 

대신 그들은 조금 더 드라마틱한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 표제에 느낌표를 달았다. 그리고 19세기 말 툴루즈 로트렉의 포스터에 기반한 벨 에포크 양식의 갈색 문자가 박힌, 빨간색 원톤 표지를 넣자고 했다. 레오니는 시대착오적이라고 항변했지만, 오히려 편집진들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툴루즈 로트렉은 프랑스인이잖아? 붉은색도 마른 핏자국을 연상시키잖아? 대체 뭘 더 원하는 거지?

레오니에 따르면, 그 표지는 재앙 그 자체였다. 그녀는 일부 현학적인 대학교수들로부터 역사를 무시한 그 글자체에 대해 공격을 받았다.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테르미도르!』를 바닷가재(툴루즈 로트렉이 애호하는 갑각류!) 특선 재료를 이용한 해산물 요리사로 착각한 일반 독자들까지 자유, 평등, 박애를 외친 죄로 교수대에 오른 올랭프 드 구주의 모습, 얼굴에 총상을 입은 로베스피에르의 모습이 담긴 컬러 장식 컷, 총칼을 들고 자코뱅파 포로들을 마구 학살하는 복수심에 사로잡힌 반혁명주의자들의 모습이 줄줄이 등장하자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대체 피에 굶주린 어떤 괴물이 이런 타락한 주제들에 관심을 갖는 거지?

레오니에게도 온갖 상스러운 편지들이 날아왔다. 발신자들 중 대다수는 책을 읽지도 않은 사람들이었다. 신문 비평란에 실린 레오니의 사진만 보고 항의한 것이었다. 당시 그녀에 대한 비평문이 무더기로 쏟아졌다. 편집위원회가 집단처형과 미디어 린치가 세간의 이목을 끌기 좋다고 여겼던 것이다. 남성 발신자들 중 일부는 레오니가 그들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고 비판했다. 심지어 “뚱뚱한 젖소”, “추잡한 암퇘지”, “쓰레기 잡년” 등 욕설을 쏟아내는 자들도 있었다. 여성들도 비판에 가세했다. “당신 미쳤어?”, “뭐가 그리 삐딱해?”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가장 충격적인 ‘최후의 일격’(2)은 “진심으로 실망입니다”라는 표현이었다.

“무시해버려.” 머나가 레오니에게 조언했다. 

레오니는 충격이 큰 나머지 눈물을 쏟았다. 아니, 그러기 직전이었다. 그들 세대는 사람들 앞에서 진짜 눈물을 보이는 일을 결코 용납하지 않았다. 그건 너무나도 약해빠지고, 너무나도 여성스러운 행동이었다. 정형화된 고정관념이라면 모조리 뿌리 뽑아야 했다.

 

“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잖아.” 

그녀가 말했다.

“많지는 않아. 그리고 사람들은 악의적인 평에 물들 거야.” 

레오니가 반박했다.

“악평은 글쓰기만큼 역사가 길지. 폼페이의 선술집 벽면 낙서들을 떠올려봐!”

“죄다 지옥으로 꺼지라고 해! 정말 내가 ‘쓰레기 잡년’일까?” 

레오니가 훌쩍이며 말했다.

“아니, 결코 평범한 여성들에 비할 바는 아니지.”

머나가 대답했다.

“그건 그냥 역사일 뿐이야. 과거에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 사람들이 행한 일. 그런데 그런 걸 썼다는 이유로 내가 왜 이토록 얻어터져야 하지?”

“사람들은 대개 남의 진심에 관심이 없거든. 그저 바닷가재나 먹고 싶을 뿐이지!(그녀는 속으로 ‘나도 마찬가지야’라고 외쳤다) 내가 왜 그 머리 아픈 이야기를 읽어야 하느냐면서 말이야. 그래, 네 말이 맞아. 하지만 세상 모든 사람이 순수한 진리의 빛을 추구하지는 않아.”

머나가 대답했다. 그녀는 예전에 사회언어학적 현상의 일종으로 욕설과 비어의 연구에 천착한 적이 있었다. 그녀는 명문 토론토 대학을 그만둔 뒤에도 여전히 시민의 자격으로 이 주제들을 탐구했다. 그녀는 최근 인터넷에서 ‘실망스러운’이라는 단어가 여성들을 비판하는 용례로 사용되는 경우가 점점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은밀한 무기인 이 형용사는 어느새 ‘충격’이나 ‘분개’라는 표현을 대체했다. 흡사 전파력이 강한 바이러스가 그보다 약한 바이러스를 대체하듯이 말이다.

검열에 잘린 크리시의 표지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쪽빛 하늘, 알록달록한 빅토리아풍 열기구. 턱까지 베일을 내린 카플린 모자와 장갑을 착용하고, 가슴에 각기 청보라색, 분홍색, 노란색 주름 장식을 단 젊은 여인 세 명이 버들가지로 엮은 열기구 바구니에 올라타 있다. 여인들은 나무, 지붕, 첨탑, 강 위를 날아가며, 구경꾼들을 향해 신이 나서 손을 흔든다. 장밋빛으로 물든 구름 속으로 태양이 지고 있다. 아니 떠오르고 있는 것일까? 앞으로 밝아지는 것일까, 아니면 어두워지는 것일까? 크리시는 이 부분에 대해 아무런 확신을 할 수가 없었다.

레오니는 벌써 응접실에 도착해 있었다. 그렇다고 그녀가 시간을 허비한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최애 음료인 임을 넣은 진토닉 잔을 들고, 기다란 버찌색 벨벳 소파에 누워 있었다. 흰색 속바지에 진홍색 웨지 샌들, 꽃무늬 블라우스. 크고 둥근 주황색 플라스틱 귀걸이를 걸고. 가발은 쓰지 않았다. 2번째 항암화학요법 이후 그녀의 머리에는 듬성듬성 가느다란 흰머리가 자라고 있었다. 눈썹은 펜슬로 그려 넣었다. 방사선 치료를 동반하는 암 수술을 받은 직후, 그녀는 한동안 얼굴에 고양이 수염을 그려 넣고 다녔었다. 하지만 이제 그것도 그만둔 것이다.

“날이 무척 덥지?” 레오니가 물었다. 

40년째 대화를 시작하는 고전적인 문장이었다. 요즘 같으면 아마도 ‘빌어먹을’ 같은 표현을 덧붙여야 할 것이라고 머나는 생각했다. 그녀의 사춘기 손주들도 언제나 거친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물론 더 어린 손주들은 아직 그 단계까지는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그들은 아직은 항문기에 머물러 있었다.

예전에는 인종차별적인 욕설은 많이 찾아볼 수 있어도, ‘빌어먹을’이란 단어는 금기시됐다. 하지만 요즘은 정반대였다. 머나는 인간의 문화에서 항상 주된 테마로 등장한, 이 모든 언어의 변천 과정을, 금기어들을 꼼꼼히 기록했다. 줄을 서시요. 험담가들, 분변 전문가들은 여기. 설교자들, 신성모독자들은 저기. 악운을 몰고 올 수 있는 금기어들은 저 뒤. 여하튼 다시 ‘빌어먹을’에 관한 얘기로 돌아가 보자면, 머나는 예전에 이 주제에 대해 탐구한 논문을 <말레딕타 : 언어 공격 관련 국제 저널>이란 학술지에 발표한 적이 있었다.

“‘빌어먹을’ : 한 문제적 용어의 긍정적이고도 부정적인 가치.”

“이를테면 찜통더위와 비슷한 거야. 처음에는 덥다고 투덜거려도, 4개월 뒤면 금세 추위를 불평하게 되는 거지.” 

그녀가 대답했다. 어쩌면 그녀는 이렇게 답변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시간이 지난 뒤에야 대가를 치르는 법이야.” 그다지 나쁘지 않은 고전적인 답변이었다. 하지만 이런 답변도 가능할 것이다. “빌어먹을, 우리는 시간이 지난 뒤에야 대가를 치르는 법이야!”, “우리는 시간이 지난 뒤에야 대가를 치르는 법이야, 빌어먹을!” 또는 “우리는 시간이 지난 뒤에야 응당 대가를 치르는 법이야, 빌어먹을”도 가능했을 것이다.

그런데 ‘응당’은 동사를 강조하는 표현일까? 얼마나 끔찍한 어법인가! 언어라는 배수구를 통해, 끝을 알 수 없는 어법의 깊은 심연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는 것은 얼마나 쉬운 일인지!
“세상에, 네 머리가 왜 그래? 비트 주스라도 쏟은 거야?”

레오니가 화들짝 놀라 물었다. 

“마법사와 한 판 붙었거든. 나를 오랑우탄으로 만들려다 실패했지.” 

머나가 대답했다.

“머리카락은 다시 자라니까.” 

레오니가 말했다. 잠시 후, 그녀는 자신의 말이 너무 난폭하다고 느꼈는지 한 걸음 물러섰다.

“그래도 진짜 효과 하나는 정말 경이롭네.”

“고맙다. 진짜 경이로운 건 너도 마찬가지야.”

제길 빌어먹을! 그녀는 속으로 생각했다. 사실 레오니가 3개월 뒤에도 멀쩡히 살아있을 확률은 불과 20%에 불과했다. 그런데도 우리는 한가하게 머리 얘기나 하고 있다니.

그녀는 크리시가 테이블 위에 차린 미니바를 바라봤다. 술병과 유리잔, 얼음이 담긴 스테인레스 믹싱볼, 그리고 노란색과 초록색의 레몬 조각들이 담긴 작은 그릇이 놓여 있었다. 콜라와 레모네이드가 담긴 캔들, 페리에 탄산수 병들도 보였다. 그녀는 이 음료를 전부 마셔버릴 만큼 목이 탔다. 그녀는 페리에 뚜껑을 열었다.

“하나 더 집어. 할인 상품이야.” 

레오니가 그녀에게 권했다.

“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돼. 이번에는 작작 마실 테니. 주치의 명령이거든(그녀가 허스키한 목소리로 웃었다). 저번 모임에서는 내가 좀 과했었지.”

저번 모임이라면 1년 반 전 일이었다. 레오니가 암 진단을 받기 전이었다. 머나는 과했다는 그녀 말의 의미를 생생히 기억했다. 레오니는 택시에 실려가야 할 만큼 취했었다. 레오니가 운전대를 잡았다면, 반려견을 산책시키던 한 불운한 행인을 저 세상으로 보낼 수도 있었다. 머나의 앞에는 이미 160cm나 되는 일거리가 쌓여 있었다. 하지만 웨지 샌들을 빼고도 177cm나 되는 레오나에 비하면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머나는 레오니에게 술은 한 모금도 허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녀에게는 양배추 주스가 좋을 것이다. 그리고 블루베리를, 그것도 아주 많은 블루베리를 먹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크리시는 검은 올리브가 가득 담긴 그릇과, 전채용 비건 수플레 빵이 담긴 푸르스름한 접시 하나를 들고 응접실로 들어섰다. 그녀는 응접실 테이블 유리 상판 위에 올리브와 수플레 빵을 올려놓았다. 그 옆에는 장미꽃봉오리가 하나씩 수놓아진 레이스 문양이 들어간 칵테일 냅킨들이 탑을 이루고 있었다.

그녀는 흡사 유아용 앞치마를 닮은 제비꽃 빛깔이 감도는 펑퍼짐한 옷을 입고 있었다. 주근깨가 박힌 그녀의 가녀린 두 팔을 가려주는 것은 오직 두 개의 진주 팔찌뿐이었다. 자홍색 포도 알맹이 모양의 유리 귀걸이가 그녀의 귀에서 짤랑거렸다. 그녀의 희끗희끗한 갈색 머리칼이 포니테일 스타일로 유니콘 모양(세상에 유니콘이라니!)의 쪽빛 머리끈에 묶여 있었다. 머나는 유니콘에 대해 한마디 하려다가, 꾹 참았다.

 

“제 시간에 왔구나. 레오니는 너무 일찍 왔거든!” 

크리시가 나무라듯 말했다.

“미안하게 됐다고.”

레오니가 대꾸했다.

“어쨌든 이제 다 모였네. 우리 하르퓌아 밴드. 달린은 없지만.”

‘가글(Gaggle) 밴드겠지.’ 머나는 생각했다. ‘가글’이란 말은 독일어에서 유래한 단어였다. 거위나 여자들이 꽥꽥거리는 소리를 지칭했다. 아마도 ‘꼬꼬댁거리다’라는 의미를 지닌 ‘캐클(Cackle)과 어원이 같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대뜸 크리시가 말했다. “달린은 쉬기로 했어. 나 스피리처 한 잔이 필요한데.” 

“달린은 아픈 거야? 아픈 사람 천지네.” 머나가 걱정스런 말투로 물었다. 

“아니, 달린은 사임하기로 했어.” 크리시가 술병과 술잔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우리 위원회에서 말이야. 우리까지 논란에 휘말리게 하고 싶지 않다면서.”

“논란이라니, 대체 무슨 논란?” 머나가 다그치듯 물었다.

“달린은 대학의 학장이야. 생물학자이기도 하지. 생물학자들은 언제나 곤란한 일을 겪곤 해. 아무도 그들을 이해해주는 사람이 없으니까. 그러니까 생물학자는 절대 학장이 되어서는 안 되는 거라고.” 크리시가 대답했다.

“하지만 우리에겐 달린이 필요해! 달린이 없는 우리는 레몬 없는 홍차라고.”

레오니가 항변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그녀가 무슨 이야기를 했길래?”

“달린이 라디오 방송에 나갔어. 토론회 패널로.” 크리시가 대답했다.

“패널이라고! 앓느니 죽지!” 레오니가 소리쳤다.

하지만 언제나 모든 패널이 다 나쁜 것은 아니라고 머나는 생각했다. 그녀도 예전에 날씨와 관련된 영미지역의 유서 깊은 은유를 주제로 사람들과 토론을 벌이기 위해 패널로 참여한 적이 있었다. 그 날의 토론은 정말이지 굉장했다.

“어떤 종류의 토론이었지?” 그녀가 묻자, 크리시가 음성을 낮추어 대답했다.

“젠더에 관한 토론.”

“이런 빌어먹을. 뱀들이 득실대는 소굴이잖아!” 레오니가 말했다.

“너도 잘 알잖니. 달린이 얼마나 순진한 사람인지! 사람들이 그녀에게 자연의 다양성에 대해 물었나봐. 그런데 달린이 곰팡이의 일종인 점균이라 불리는 유기체 이야기를 꺼낸 거야. 무형의 얼룩처럼 보이는 이 유기체가 우리의 많은 문제를 풀어줄 수 있다면서. (크리시가 잠시 뜸을 들였다) 게다가 이 유기체가 자그마치 720개의 성별을 지니고 있다고도 말했지.”

“인간보다 700개 이상 성별이 많은 셈이군.” 레오니가 맞장구쳤다.

“정확해.” 크리시가 그녀의 말에 수긍했다. “하지만 바로 이 부분이 사람들의 심기를 건드린 거야! 일부 패널은 그녀가 자신들을 이 곰팡이처럼 취급한다고 여겼지. 또 어떤 사람은 그녀가 여성에 대해 비판적이라고 길길이 날뛰었어.”

“점균이 불편한 존재라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겠군.” 머나가 지적했다.

“그 사람들에게는 그렇지. 그들은 모든 생명이 둘씩 쌍을 이루기를 바라니까. 오로지 둘씩만. 칸막이가 구분된 서랍처럼. 밤과 아침, 남자와 여자처럼 말이야.”

“물론 지옥행인 자들과 구원받은 자들도 빼놓을 수 없겠지.” 레오니가 거들었다. 

“아주 청교도적인 발상이야. 혁명적이라고도 할 수 있지. 찬성 대 반대에 따라 사람의 목을 쳐내니까. 그래서 우리 달린은 저주받은 칸에 분류된 거래?”

“그렇다고 볼 수 있지.” 크리시가 대답했다. “트위터에서 사건이 터졌나 봐. 불과 1분도 지나지 않아 그 사달이 난 거야. 대학들은 원래 자기들 이미지에 민감하잖아. 달린은 자신의 표현에 실수가 있었다고 해명서를 발표해야 했어.” 

“달린은 표현에 실수가 있는 사람이 절대로 아니야. 오히려 아주 정확한 사람이지.” 

레오니가 힘주어 말했다.

“나도 알아. 그러니까 내 말뜻은 레오니 본인이 그렇게 말했다고. 실수라고? 남녀를 불문하고 대학의 학장이라는 사람들이 논쟁할때마다 의례적으로 하는 말이지.” 

“맞아, 표현에 실수가 있었어.” 머나가 다시 한번 문장을 읊었다. “이 표현이 현대에 생긴 것이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 실은 19세기에서 유래한 말이야.” 

“흥미롭군.” 크리시가 무심한 태도로 대답했다. “그 작은 가게에서 신상 치즈를 발굴했어. 신데렐라라는 별명을 가진 애쉬 염소 치즈야. 애쉬(재)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겠지?”

“감염병도 처음에는 논란거리였어!” 레오니가 말했다. “하지만 감염병처럼 우리는 이 문제도 잘 관리할 수 있을 거야. 달린은 우리 셋이 논란을 전혀 겪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 거야? 그녀는 우리 위원회로 돌아와야 해.” 

“달린은 자신이 분란의 씨앗이래. 더 이상 우리 프로젝트에 해를 끼치고 싶지 않다네.” 

크리시가 설명했다.

“분란의 씨앗? 나는 여성 신의 가호 덕에 대학 캠퍼스의 수목 사이에서 개고생하는 일에서 벗어날 수 있었어! 거기는 지금도 여전히 공포정치가 계속되고 있지.” 레오니가 소리쳤다.

“우리도 이미 똑같은 일을 경험했어. 예전에 ‘Y’자가 들어간 여성을 뜻하는 신조어 ‘Womyn’을 두고 논란이 무성했던 사건 기억나니?”

제발 ‘Wymmen’과는 헷갈리지 말아야 한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것은 현대에 생성된 단어가 아니라, 중세 영어에서 유래한 말이었다.

“아무도 그 단어를 수용하지는 않았지. 극히 일부만 빼고.” 레오니가 대답했다.

“달린의 입장을 이해해줘야 해. 그녀는 우리와는 달리 여전히 일을 하잖아. 소셜미디어에서도 활동 중이고.” 크리시가 아주 진지하게 항변했다.

“그래, 그녀는 그만둘 수밖에 없는 거겠지.” 레오니가 투덜거리며 말했다.

“우리도 똑같이 분란의 씨앗이긴 마찬가지야.” 머나가 이야기를 계속했다. “너희 ‘그레이트 담스’란 커뮤니티가 출범했을 때를 기억하지? ‘우체부들을 겁에 질리게 만들었던 그 잡지’도? 여성혐오적 성격의 프로이트 분석가들에 대해 다뤘던 <구두(레즈비언을 의미-역주) 앤 프시케>의 그 기획 기사 말이야.”

“우리 그 기사 하나 때문에 거의 초죽음이 됐었잖아.” 레오니가 말했다. “우리를 메가이라(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질투의 화신)와 하르퓌아(그리스 신화속의 괴물)로 취급하던 푸른색과 붉은색 줄이 그어진 온갖 욕설로 도배된 증오 편지들, 그리고 수없는 살해 협박들. 그중에는 더러 상당히 창의적인 표현들도 있었는데! 그래, 내 기억이 맞다면, ‘투르트(Tourte, 둥그스름한 모양을 한 파이로, ‘멍청한’이란 의미도 있다-역주) 젖가슴’이었던가? 그런데도 우리를 봐봐. 지금 이렇게 멀쩡히 살아 있잖아!” 

머나는 생각했다. ‘메가이라’라니, 얼마나 낡은 표현인가. ‘하르퓌아’는 또 어떻고? 하지만 ‘젖가슴’은 현대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자주 사용되는 표현이었다.

“당시 우리에게 제대로 대접을 톡톡히 해주겠다고 나서는 자원자들이 꽤나 많았지. 가령 강간이 뭔지 보여주겠다는 둥 하면서 말이야.” 레오니는 다시 말을 이었다. “그래서 어디 한 번 와보시지. 나는 한 번은 그런 치들 중 두 명에게 이런 답을 해준 적도 있었어. 내 구둣발로 그곳 한 번 걷어차 줄까?”

“나는 그렇게 난폭한 말은 한 적 없는데.” 크리시가 말했다. “물론 그랬다면 너처럼 대성했겠지만. 너는 그때 여자 대학축구팀에서 뛰지 않았던가?”

“우리가 대응할수록 그들은 미처 날뛰었지. 그래도 실제 행동하는 사람은 없었어. 그래도 나는 뾰족 우산이나 후추 스프레이 없이는 외출할 수가 없었어.” 머나가 말했다.

“너희들 위기 상황에서 ‘살려달라’고 외칠 생각은 없지? 그럴 때는 ‘불이야’라고 외쳐야 해.” 크리시가 말했다.

“왜?” 머나가 물었다.

“우리가 살려달라고 외친다면 달려올 사람이 없을 테니까.” 크리시가 서글픈 목소리로 설명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래도 나라면 꼭 달려갈 거야. 만일 소리만 듣는다면…” 레오니가 확언했다.

“그래 너라면 꼭 그러겠지.” 크리시가 응답했다.

“나도.” 머나가 말했다. “그나저나 우리 달린의 나이가 정확히 몇 살이지?” 

“우리보다는 어려.” 크리시가 손가락에 낀 반지들을 뱅글뱅글 돌리며 대답했다. 하나는 백색 오팔, 하나는 자수정이었다. “그녀는 우리와는 다른 사람이지.”

“그래, 그녀는 겁쟁이야.” 레오니가 곁에서 거들었다. 그리고 그녀는 잔을 높이 치켜들며 외쳤다. “우리 분란의 씨앗들을 위하여!” (....) 

 

 

글·마거릿 애트우드 Margaret Atwood
캐나다 작가. 2000년 『눈 먼 암살자(The Blind Assassin)』로 맨부커 상을 수상했다. 이어 2017년 프란츠 카프카 상, 2019년 ‘컴패니온 오브 오너(Order of the Companions of Honour)’상을 수상했다. 

번역·허보미 
번역위원

 

※마거릿 애트우드의 영어 원문을 이자벨 D. 필립이 프랑스어로 번역했고, 이를 허보미 번역위원이 한국어로 옮겼습니다.


(1) Tom Hazlett, 조지 메이슨 대학교 법경제학 교수. 
(2) 원문도 프랑스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