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제재 속 이란의 일상

2012-07-09     셰르빈 아마디

유엔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과 독일을 포함한 이른바 ‘P5+1’ 사이의 핵협상이 지난 6월 18일과 19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렸으나 최종 합의에 이르지는 못했다. 유럽연합(EU)과 미국은 석유 및 금융 부문에 새로운 제재 조치를 내리기로 결정하고 시행하려는 단계에 있다. 그런데 이란 고르간 주민들의 고민거리는 이런 급박한 정세와 조금 거리가 먼 듯하다.

30년 전 고르간은 숨쉬기 힘들 정도로 덥고 습한 공기 속에서 나와 친척들이 함께 유년기 방학을 보내던 곳이다. 테헤란에서 450km 떨어진 이란 북동부에 위치한 고르간은 카스피해와 인접했고, 1997년 이후 골레스탄주의 주도가 됐다. 주위는 원시림으로 뒤덮인 산에 둘러싸여 있다. 이곳 주민들은 가을에 이렇게 붉은색과 노란색이 아름답게 물드는 곳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이를 인정할 수 없다. 이란의 다른 대도시와 마찬가지로, 고르간 역시 1979년 혁명 이후 근본적인 변화를 겪은 곳이다. 도시화가 급속하게 진행됐고, 새로운 대학이 여러 개 설립됐으며,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도시 풍경이 완전히 달라졌다. 도심 권역은 이제 중심부에서 5km 떨어진 나하르코란의 원시림에까지 확대됐다.

언뜻 보기에 이곳 주민들의 모습은 다른 수도 거주민의 모습과 별반 다를 게 없다. 젊은이들은 그 세대 사람들이 흔히 입는 스타일의 옷을 입고, 몸에 딱 맞는 가벼운 재킷을 우아하게 걸친 젊은 여성들은 화려한 화장에 때로는 코를 성형수술했고, 머리에는 작은 크기의 차도르를 둘러 머리카락이 쉽게 눈에 띈다. 남자아이들은 가볍게 눈썹을 밀거나, 더러는 코를 고치기도 했다. 30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봄이 한창인 이때, 모든 게 잠잠하다. 사람들의 시선에선 그 어떤 두려움도 느껴지지 않고, 상점들은 손님으로 북적이며, 먹을거리를 사서 비축해두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스라엘의 공격에 대한 전망은 그저 먼일처럼 느껴진다. 그보다는 인플레이션이 더 걱정이다. 암시장에서 달러 환율이 치솟아서 사람들의 일상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스위스 초콜릿에서 이탈리아 발사믹 식초에 이르기까지 노점상을 포함한 도심 곳곳에서 해외 수입품을 찾아볼 수 있는데 그 가격이 모두 폭등했다. 최근 미국과 유럽이 제재 조치를 가한 이후 생긴 현상이다. 국내산 물품도 가격이 올랐다. 닭고기는 석 달 만에 70%, 양고기는 60% 인상됐다.

제품 가격이 오른 가장 큰 이유는 휘발유, 가스, 전기, 물, 기초 식료품 등 국민의 1차 필수품에 대한 보조금이 중단됐기 때문이다. 2010∼2011 예산안에서 정부는 현재 시행 중인 조치를 5년에 걸쳐 점차 없애나가기로 결정했다. 이런 조치에 소요되는 예산은 국내총생산(GDP)의 30%를 차지한다. 따라서 이런 결정을 내린 건 정부의 재정지출을 줄이고 에너지 소비를 감소시키며 사회적 도움이 절실한 사람들 중심으로 사회적 지원 방향을 수정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렇게 절약한 예산은 최극빈층 지원(50%), 기업 지원(30%), 그리고 정부 활동을 위한 소득(20%)으로 재분배된다. 몇 달 전부터 이란에서는 가장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국민 모두가 현금으로 가족수당을 받고 있다. '야라네'라고 불리는 이 수당은 매월 4만 리알 정도로, 지금 환율로는 약 15~24유로에 해당한다.

남편을 여의고 혼자 사는 여성인 나르게스는 "전기요금이 올라서 정부 지원금의 절반이 전기요금으로 나간다"고 토로했다. 4칸짜리 집에 사는 나르게스는 방 2개를 대학생들에게 빌려주고 얻는 임대수입이 주요 소득원이다. "나머지 절반은 가격이 오른 식료품을 사는 데 다 나간다. 결과적으로 상황이 전보다 더 나빠졌다. 재미를 본 건 이웃집 같은 경우다. 이웃집은 2칸짜리 작은 집에서 7명이 사는 대가족이다. 이 집 가장에게 매달 28만 리알이 지원되는데, 이게 그 집의 부수입이 된다. 빵만 먹는 사람들에게 귀중한 소득원이다."

실제로 1차 물가 인상이 있은 뒤에도 서민층의 주식인 빵 가격은 몇 달째 변화가 없었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먹는 바르바리 빵은 2300리알(10~17상팀유로) 정도다. 휘발유 가격은 두 가지 기본 요율로 나뉘어 안정된 상태다. 차량당 60ℓ에 4천 리알인 경우(15~25상팀유로)와 차량당 500ℓ에 7천 리알인 경우(26~46상팀유로)인데, 전자는 보조금을 지원받는 요율이고, 후자는 자율 요율이다. 최근 정부는 보조금을 지원받지 않는 자율 요금에 대해 1만 리알(38~62상팀유로)까지 가격이 올라갈 수 있다고 발표했다. 실제로 그렇게 된 건 아니었지만, 이런 형태의 정부 공지가 사람들 사이에 불안감을 일으키고, 이는 구매력 상승에 대한 국민의 기대감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하지만 공영주택 조성 계획 '메르'와 더불어 야라네 보조금 프로젝트는 포퓰리즘 성향의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이 펼치는 정책의 일환이다. 메르 프로젝트는 무주택자를 대상으로 한 공영주택 200만 가구의 건축을 예정해두고 있다. 가격은 도시와 동네에 따라 달라진다. 고르간에선 7천만 리알(3천~5천 유로) 정도의 초기 구입비와 180만 리알(50~80유로)의 월부금을 20년에 걸쳐 내면 80㎡의 3칸짜리 집을 마련할 수 있다.

나르게스의 두 조카들 역시 이런 식으로 집을 구했다. 한 사람은 관공서에서 환경미화 관리인으로 일하고, 다른 한 사람은 친구와 함께 택시 운영을 하고 있다. 두 사람 모두 만족스러운 모습이지만, 정부 계획이 늘 성공적인 건 아니었다. 테헤란에서는 공영주택 건설을 목적으로 지은 집 가운데 절반 이상이 아직 그 주인을 찾지 못한 상태다. 아마 이 지역의 주택 가격이 다른 지역보다 더 비싸기 때문일 것이다. 고르간에서 집을 구하려면 초기 출자금이 1억5천만 리알(6500~1만1천 유로) 정도 필요하고, 30년간 매달 300만 리알을 내야 한다. 중심부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지어진 아파트인데도 이런 상황이다.

이같은 사회적 프로젝트의 시행으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의 인기가 올라갔을까? 지난 5월 2차 투표가 실시된 최근 의회 선거 결과를 보면, 그에 대한 확신을 하기 힘들어진다. 고향인 감사르 지역구에서 현직 대통령의 여동생이 후보로 출마했지만 1차 투표도 넘기지 못했고, 고르간에서는 대통령 쪽의 어떤 후보도 선거운동을 하지 못했다. 테헤란을 제외한 이란 곳곳에서와 마찬가지로 고르간에서도 지역 문제가 심각하다. 정체성과 관련한 요구사항이 대두되고 있는데, 고르간에도 투르크메니스탄, 카자흐스탄, 그리고 발루치스탄 자볼 이민족인 자볼리족 등 여러 이주 공동체가 공존하기 때문이다. 투르크메니스탄이나 카자흐스탄 출신 후보의 경우 총선에서 쾌거를 올린 적이 한 번도 없었지만, 최근 세 번의 선거에서 자볼리족 출신 후보들이 크게 두각을 나타냈다. 올해는 여성 후보가 출마했는데, 1차에서 탈락돼 부정선거 의혹이 불거졌다.

오디션 대회와 탬버린의 등장

고르간은 이란의 닮은꼴이라고 볼 수 있다. 여성들이 사회에서 상당한 입지를 구축했기 때문이다. 혁명 전만 해도 시내에서는 물건을 파는 여자가 한 명도 없었다. 아르메니아 출신의 여자는 대개 남편과 같이 일을 했고, 남편은 고급 의류를 파는 옷가게 주인이고 고객은 주로 상류층 가정을 중심으로 선별됐다. 여직원은 전적으로 여성 고객만을 담당했다. 당시 이란 여성들은 이런 형태의 경제활동밖에 하지 않았다. 아내가 상인인 남편을 여의면 계속 이어서 가게를 끌어나갈 사람을 찾은 뒤에야 비로소 영업할 수 있었다. 여자가 일하는 것을 안 좋게 보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상황이 다르다. 전통적인 거리나 서민들이 사는 동네에서는 장사를 하는 여자들로 넘쳐난다. 서비스업이나 건설, 교통 등 상업 이외의 분야에서도 여성의 활동이 두드러지고, 여성은 더 이상 모습을 감추려 들지 않는다. 택시 운전사나 은행 직원도 있다. 과거와는 사뭇 다른 양상이지만, 어쨌든 오늘날 이란 여성들의 경제활동은 하나의 현실이 됐다.

이란 사회는 여러 시청각 매체들을 통해 점차 개방되고 있다. 텔레비전 방송은 사람들의 일상에 변화를 주고, 터키에서 열려 <페르시안1TV>를 통해 방송된 오디션 프로그램 <넥스트 페르시안 스타>에서 이란 출신 참가자가 1등을 하기도 했다. 공식적으로 이 채널은 방영이 금지됐음에도, 프로그램 참가자들은 종종 현지 기업체의 후원을 받고 있다. 이란으로 돌아온 대회 참가자들은 간혹 결혼식이나 축제 자리에서 공연하는데, 이를 걱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정부도 이런 형태의 프로그램에 협조적인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 이득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BBC>나 <보이스 오브 아메리카>(1)의 방송에는 우려하고 있다.

사싼은 중심가에서 음반 매장을 운영한다. 고르간 시내에 음반 매장이 10여 개 있는데 보통 악기와 CD, 콘서트 티켓 등을 판매한다. "한 달에 악기 15~20개를 팔고, 기타가 제일 잘 나간다. 예전에는 부유한 집 자제들이 연주하던 악기였는데, 요즘에는 <파르시 원> 채널을 보는 중산층이나 서민층 젊은이가 많이 연주한다. 부유층 사람들은 이제 시타르 같은 전통 악기로 관심을 돌렸다. 서양 악기에 대한 관심은 이제 그리 많지 않은 편이다."

대화를 나누던 중 여자 손님 2명이 연달아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얼핏 전통적인 가정에 속한 여성들처럼 보였고, 거리에서 쉽게 보이는 여성들과는 달리 둘 다 이슬람 머릿수건인 차도르를 쓰고 있었다. 한 사람은 바이올린을, 다른 한 사람은 탬버린의 일종인 '다프'라는 악기를 샀다. 33년 전, 혁명이 일어나기 이전에 전통 거리에 악기가 들어온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정치권에 대해 사람들은 무관심하거나, 아니면 당혹스러워하는 분위기다. 정권 내부의 갈등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다. 나르게스는 "서로 물어뜯고 싸우든지 화해하든지,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초연하게 내뱉었다. 중산층의 마음을 사려던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은 그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종교계의 간섭에서 사적 영역을 지켜내지 못했고, 민족주의적 슬로건은 그 목표에 미치지 못했다. 고르간에서도 대통령은 한물간 인물이 돼버렸다.

셰르빈 아마디 Shervin Ahmadi

번역배영란 runaway44@ilemonde.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역서로 <미래를 심는 사람> 등이 있다.


(1) '이란 정부, 딜레마에 빠진 언론 통제'(Le pouvoir iranien perd la main sur les médias),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1년 7월호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