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과의 전쟁, 뒷걸음질 치는 멕시코
멕시코 대선전이 학생들의 전례 없는 저항시위로 얼룩졌다. 학생들은 주요 민영언론들이 엔리케 페냐 니에토 제도혁명당(PRI) 후보를 지지하는 데 반발했다. (PRI의 승리로 끝난 이번 대선전은 국민의 가장 큰 관심사가 무엇인지 확인하는 계기도 됐다. 마약밀매 조직의 일상화된 폭력에서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지 국민의 고민은 깊기만 하다.
2011년 11월 7일 새벽, 태평양 연안에 자리한 유명 휴양지 아카풀코의 교도소를 기습한 경찰들은 도저히 두 눈을 믿을 수 없었다. 매춘부 20여 명이 버젓이 재소자들과 함께 감방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교도소를 뒤지기 시작하자 더욱 놀라운 일들이 벌어졌다. 마리화나 100kg, 텔레비전, CD 플레이어, 경기용 싸움닭은 물론 심지어 유명한 마약밀매 조직원들이 (재규어와 함께) 즐겨 키우는 애완동물 중 하나인 공작새까지 발견됐다.
이 일화는 멕시코의 민낯을 고스란히 보여줬다. 그동안 멕시코는 조금씩, 그러나 꾸준히 조직범죄에 야금야금 잠식돼왔다. 그러다 결국 교도소와 대다수 영토에 대한 통제력까지 상실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오늘날 마약밀매 조직원들(Narcos)은 미국 시장에 코카인(1)·암페타민·마리화나를 내다팔거나, 사업을 보호하기 위해 공무원에게 뇌물을 먹이거나, 경쟁세력끼리 혈투를 벌이는 정도에 그치지 않는다. 펠리페 칼데론 대통령이 40만 명이 넘는 경찰과 5만 명에 달하는 군 병력을 투입하며 대대적인 '마약과의 전쟁'을 벌인 지 6년이 지났건만(칼데론은 2006년 선거 부정 혐의로 땅에 떨어진 위신을 바로잡기 위해 마약과의 전쟁을 시작했다), 여전히 마약밀매 조직은 멕시코 정부와 전국의 공공기관을 위협하고 있다.
마피아의 최대 희생자는 시·지방(2) 혹은 연방의 경찰이었다. 마피아에겐 자신들을 추적하며 경쟁조직과 결탁하는 것도 서슴지 않는 경찰이 눈엣가시였다. 최근 몇 년간 경찰을 표적으로 한 매복 공격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 그중 이목을 끄는 사건은 2011년 4월 멕시코시티와 과달라하라를 잇는 서부 고속도로에서 일어난 매복 공격이었다. 서부 고속도로는 멕시코에서 차량 운행이 가장 활발한 고속도로여서 더욱 충격이 컸다. 자동소총과 유탄발사기 세례에 놀란 여러 대의 연방경찰 순찰 차량은 그대로 줄행랑을 쳤다. 시날로아주의 주도 쿨리아칸에서 150km 떨어진 과사베시에서는 공공치안장관의 호위대가 갱단의 총격을 받고 무참히 살해됐다. 무려 경호원 12명이 사망했다. 2011년 타마울리파스주에서는 경쟁세력인 '걸프'와 '세타스'가 주도 시우다드빅토리아와 주요 원유 터미널이 있는 시우다드마데르, 두 대도시의 검찰 사무소에 총기를 난사했다. 이 사건으로 공무원 여러 명이 부상을 입었다.
마약조직은 실질적인 통제권을 확보한 지역에서는 육·해군 수송대를 공격하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대표적인 예가 미초아칸주 티에라칼리엔테 지역의 '라파밀리아'와 타마울리파스주 북동부 지역의 '세타스'다. 거의 군대에 버금가는 체계를 갖춘 두 조직은 주로 두목이 처형되거나 수감되는 경우 이에 대한 보복 조치로 군에 대한 공격을 감행했다. 공격 규모를 살펴보면, 오늘날 범죄조직은 (장갑차나 기관총을 무력화할 정도로) 중장비로 무장하고 있으며, 적의 동태를 감시하기 위해 최첨단 통신장비까지 갖추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대체 이런 장비들은 어디서 들여온 것일까? 북쪽에 이웃한 미국의 무기 공장에서 합법적으로 들여오거나, 좀더 은밀하게는 미국 무기상에게 사들인 것이다.
공권력에 중무장으로 대든 마약 마피아들
마리셀라 모랄레스가 검찰총장으로 있는 멕시코검찰청은 2006년 12월~2011년 6월 마약조직에 의해 발생한 군경 피해 현황을 조사했다. 총 2888명의 육군과 해군, 경찰, 국가정보기관원이 마약조직에 의해 사망한 것으로 집계됐다. 그 가운데 45%는 시경찰관이었다. 멕시코의 기본적인 지방정치행정 단위인 시가 마약과의 전쟁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고 있음이 확인됐다. 마피아는 필요하다면 피를 봐서라도 지역 당국을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기 바랐다. 지방정부를 장악하기 위해 마피아는 조금씩 민주주의 운영과 선거 과정에 영향력을 확대해나갔다.
2006년 이후 멕시코에서는 무려 32건에 달하는 시장 살해 사건이 발생했다. 대부분이 범죄조직의 소행이었다. 2011년 11월, 미초아칸주 라피에다드시에서 '시의장'(시장에 대응하는 표현)이 피살된 사건은 중앙정부에 대한 도전을 의미했다. 희생자는 칼데론 대통령의 누나 루이사 마리아 칼데론의 주지사직 출마를 지지하는 핵심 인사 중 한 명이었다. 마피아는 이처럼 자신들에게 전략적으로 중요한 지역의 주지사 선거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2011년 6월, 모랄레스 검찰총장은 타마울리파스주의 로돌포 투레 칸투 주지사 후보를 2010년 선거가 한창인 가운데 살해한 사건의 배후로 세타스를 지목했다. 마약조직에 협조하기 거부한 것을 피살 동기로 추정했다.
멕시코 전역을 장악하려는 마약조직의 패권욕에서 자유로운 기관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교회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2007년 7월, 북미 출신의 70살 노목사 리카르도 주니우스는 멕시코 수도의 서민가에서 아동 매춘과 미성년자에 대한 마약 판매에 반대하는 운동을 벌이다 목숨을 잃었다. 해방신학의 지지자인 라울 베라 살티요 주교는 성당 안뜰에 자신에 대한 협박글이 적힌 플래카드가 내걸리는 수모를 당했다. 두랑고주의 대주교도 '시날로아' 두목이 숨어 있는 곳은 "당국만 빼고 다 안다"고 말했다가 이내 주장을 번복했다. 언론에 그는 이제 자신은 "벙어리, 장님"(3) 신세라고 하소연했다.
주검이 나뒹구는 거리… 공포의 시가전
마약조직은 시민 사이에 공포를 조장해 패권 장악에 나서고 있다. 2011년 말, 멕시코 시민들은 악몽 같은 몇 주간을 보냈다. 9월, 베라크루스의 한 대형 쇼핑몰 앞에 주검 32구가 나뒹굴었다. 희생자는 경찰도 알 만한 조직범죄자들이었다. '신세대파'로 불리는 범죄조직이 살인 주모자를 자처하고 나섰다. 검찰총장은 시날로아 카르텔의 연합세력인 신세대파가 세타스 조직을 상대로 보복살인을 저지른 것으로 해석했다. 이 살육 사건은 정부에 대한 경고이기도 했다. 베라크루스시에서는 이튿날 전국의 검사들이 한자리에 모여 회의를 열기로 돼 있었다. 11월, 다시 살육전이 속개됐다. 쿨리아칸에서 주검 16구가 불에 탄 채 발견됐다. 이어 멕시코 제2의 도시 과달라하라의 도심에서 유기된 주검 26구가 발견됐다.
멕시코의 북부와 서부 지역에서는 마약조직 사이에 참수가 일종의 살인 의식처럼 자리잡았다. 일간 <레포르마>에 따르면, 2011년 발생한 참수 살인은 무려 453건에 달했다. 지난 5월 13일, 누에보레온주의 주도 몬테레이와 텍사스 국경을 잇는 국도 위에선 목과 팔이 잘린 49구의 주검이 발견됐다. 오늘날 참수 살인은 멕시코시티를 위협하고 있다. 2011년 10월, 멕시코시티 도심에서는 국방부에서 불과 1km도 채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머리가 잘린 주검 2구가 발견됐다. 이미 2008년과 2009년에 이 거대도시에서 마약조직의 소행인지는 확인할 수 없으나 신체가 절단된 주검 여러 구가 발견됐다. 그때와 달리 이번에는 마약밀매 조직의 소행으로 단정할 만한 확실한 증거가 발견됐다. 주검을 덮은 상자에 '라 마노 콘 오호스'('손과 눈'이라는 뜻)라는 글자가 새겨 있었던 것이다. '라 마노 콘 오호스'는 시날로아를 위해 일하는 또 다른 갱단 조직의 이름이었다. 11월, 2건의 참수 살인이 또다시 발생했다. 이제 대도시라고 잔혹한 폭력에서 결코 자유로운 것은 아니었다.
최근에는 택시 기사들도 살인의 표적으로 가세했다. 마피아를 위해 일하는 택시 기사들로 추정됐다. 멕시코 북부의 대형 산업도시 몬테레이와 아카풀코에서는 불과 1년 만에 100명이 넘는 택시 기사가 피살됐다. 서로 큰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싸우는 두 마약조직을 위해 각 조직에 포섭된 택시 기사들이 흡사 '매'처럼 여기저기 이동하며 망 보는 일을 맡았다. 암살범이 살해 장면을 찍은 동영상을 전문 포털 사이트나 블로그에 올리면서 시민들 사이에 공포 효과는 더욱 극대화됐다.
멕시코 국민은 공포와 체념 사이를 수없이 넘나들었다. 어느새 그들은 희생자 수를 세는 데도 그만 지쳐버렸다. 2006년 이후 마피아에 의해 희생된 사망자 수에 대해 일간 <라 호르나다>는 5만5671명, 월간 <세타>는 6만5천 명, 모랄레스 검찰총장은 4만7500명으로 추산했다. 이런 식으로 전쟁이 계속된다면 보스니아 내전에 버금가는 희생자가 발생할지 모를 일이었다. 어느새 멕시코인의 삶은 엉망이 되었다. 그들은 일상이 된 이 참혹한 폭력을 그저 무력하게 지켜볼 뿐이었다.
몬테레이, 살티요, 토레온, 탐피코, 아카풀코, 베라크루스, 시우다드후아레스를 비롯한 대도시의 한가운데서 지난 2년간 숱한 난투극이 반복되고 있다. 언제나 시나리오는 똑같다. 마약밀매 조직원을 발견한 경찰이 바짝 추격전을 펼친다. 일반인은 안중에도 없이 마구 총을 쏘아댄다. 주민들이 부랴부랴 집으로 몸을 피한다.
멕시코 북부 지역에서는 수십 명의 영세 자영업자들이 마약조직에 의해 감금됐다. 주민 20만여 명이 시우다드후아레스를 떠나 미국이나 멕시코의 다른 지역으로 이주했다. 미국과 접경한 큰 마을들은 마약갱단의 난투극 현장이 된 뒤로 주민들이 모두 떠나갔다. 군이 파견되기 전까지, 타마울리파스주에서 가장 큰 도시인 시우다드미에르와 산페르난도는 수개월간 유령도시로 지냈다. 2011년 4월 산페르난도 근교에서는 여러 개의 구덩이에 암매장된 주검 145구가 무더기로 발견됐다. 주검의 주인은 미국으로 밀입국하려던 중미 출신 이민자, 갱단으로 추정되는 조직범죄자, 지역 주민 등이었다. 마약조직 세타스가 남부에서 올라오는 고속버스 탑승객을 납치해 살해했다. 갱단의 뒤를 봐준 시경찰관 6명이 검거됐다. 군대도 파견됐다. 하지만 여전히 시우다드미에르와 산페르난도는 평온을 되찾지 못했다.
정부에 대한 신뢰가 추락하고 있다. 2011년 11월, 프란시스코 블라케 모라 내무장관이 사망했다. 정부 당국은 헬리콥터 추락을 원인으로 발표했다. 하지만 대다수 논평가와 분석가들이 암살 의혹을 제기했다.
마약갱단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공식 발언이 줄을 이으면서 국민의 불안감은 더욱 증폭되고 있다. 모랄레스 검찰총장이 올해 초국적 범죄조직 소탕을 위한 북미 회의에 참가한 자리에서 동료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초국적 조직범죄는 더 이상 일국의 치안 문제에 그치지 않고, 여기 참가한 모든 나라의 치안에 총체적인 위협이 되고 있다."
더욱이 미국 마약단속기관(특히 마약단속국(DEA))이 사후승인제 형식으로 멕시코 영토에서 직접 단속 활동을 벌일 수 있게 되었다는 소식에 국민의 불안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호르헤 카스타네다, 엑토르 아길라르 카민과 같은 저명인사들까지 나서서 멕시코판 '콜롬비아 작전'(4)을 통해 미국이 마약조직과의 전쟁에 직접 개입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마약과의 전쟁은 분명 미국과는 상대적으로 멕시코 정부가 누릴 수 있는 운신의 폭을 확연히 줄여놓고 있다.
대통령 선거가 시작되자마자 대다수 유명 논평가와 언론매체는 일찌감치 이 국가적 비극의 책임을 칼데론 대통령 탓으로 돌렸다. 가장 너그러운 자들(혹은 가장 오만한 자들이라 해야 할까?)은 칼데론 대통령이 사태의 심각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경솔하게 전쟁에 뛰어들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이들은 PRI 집권 시절(1928~2000년) 마약밀매 조직과 결탁한 전직 공무원들의 증언을 토대로 칼데론이 벌인 '십자군 전쟁'이 오히려 시날로아 조직에 걸프, 세타스, 후아레스 등 다른 경쟁세력에 대한 지배력을 더욱 확대시키는 계기가 됐다고 주장했다.(5) 좌파는 하나같이 '멕시코의 군국주의화가 인권이나 이제 막 탄생한 멕시코의 민주체제를 위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마약과의 전쟁이 경솔했다?
2000년 칼데론과 국민행동당(PAN)에서 활동하던 비센테 폭스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PRI의 장기 집권도 종식됐다. 하지만 범죄조직이 활개치기 시작한 때가 이 정치적 이행기인 2000년대 초반인 것은 대체 어떻게 설명할까? 잠시 지난 역사를 돌아보자. 2000년대 이전 마약밀매 조직들(걸프, 과달라하라, 티후아나)은 굳이 국민의 일상생활을 침범하지 않아도 사업하는 데 큰 제약을 느끼지 못했다. 국가 고위층의 비호를 받는 상황에서 마약 선적물이 미국 국경을 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보잉, 카라벨의 낡은 항공기들이 수십t의 코카인을 싣고 콜롬비아를 이륙했다. 미국 마약단속국이 중미 지역에 설치한 레이더에 감지되더라도 별 문제 없이 항공기들은 멕시코 영공에 진입해 국경지대 근처에 이륙했다. 트롤선이나 쾌속정도 유카탄, 베라크루스, 시날로아, 바하칼리포르니아의 해안가에 은밀히 마약 선적물을 내려놓았다.
1990년대 말 (대통령의 형 라울 살리나스의 스위스 은행 예치금에 대한 자금세탁 혐의를 조사하던) 멕시코 검찰총장과 미국의 주요 마약단속기관, 스위스 출신의 카를라 델 폰테 검사 등이 카를로스 살리나스(6)와 에르네스토 세디요의 6년 대통령 임기 동안 범죄조직들이 얼마나 대대적으로 권력의 비호를 받았는지 밝혀냈다. 모두 PRI 소속이던 치와와·모렐로스·타마울리파스·킨타나로오·베라크루스·소노라주의 주지사들부터 사법경찰청장, 참모본부의 고위 장성, 지역군 사령관, 장관에 이르기까지 줄줄이 범죄조직과 결탁한 혐의를 받고 소환돼 심문을 받았다. 일부 마약조직원은 살리나스 대통령의 형 라울을 비롯해 가장 최근 임기를 마친 두 전직 대통령의 개인 보좌관들도 유착관계에 연루돼 있다고 주장했다. 1995년 멕시코 군정보국이 작성한 문서도 이들의 유착 혐의를 열거했다.(7)
정부는 돈을 받고 마피아를 보호해주는 대가로, 마피아가 경쟁세력들끼리 서로 공격하거나 영역을 침범하는 일을 삼갈 것을 요구했다. 당시 PRI는 일당체제로 행정기관과 경찰을 장악하고 있었기에 중앙정부, 시정부, 지역정부에 이르기까지 마피아와의 협정을 강제적으로 수용하도록 압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하지만 폭스가 대통령으로 선출되자 상황은 180도 돌변했다. PRI가 대선에 패배한 그 길로 범죄조직과 결탁한 대다수 고위 공직자가 물갈이됐다. 2000년 지방자치단체 선거에서 PRI 소속이 아닌 주지사와 시장들이 줄줄이 권력을 잡았다. 20년 만에 처음으로 마약조직은 자신들에게 비우호적인 정치인들을 상대해야 했다. 새 정치인들은 여러 이유로 지난 정부가 그들과 맺은 협정을 무시했다. 마약조직은 국가 고위층과 처음부터 새롭게 다시 관계를 맺어나가야 했다. 그사이 '개미-루트'라고 불리는 새로운 마약 운송로를 개척하는 일이 시급했다. 새로 개발한 운송로로 안전하게 마약을 운반하기 위해 일단 급한 대로 할 수 있는 일은 과테말라 국경에서 미국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운송로 요충지들마다 시장이나 시경에게 뇌물을 먹이는 것이었다. 게임의 법칙이 바뀌었다. 마약조직은 새로운 보루를 차지하려 충돌했다. 이른바 '자리 쟁탈전'으로 멕시코 전역이 몸살을 앓았다.
자리를 선점하기 위한 최초의 혈투가 벌어진 곳은 2003년 타마울리파스-텍사스 접경지대에 위치한 누에보라레에도였다. 수주일에 걸쳐 걸프와 시나올라의 조직원들이 각기 서로 다른 정부치안조직의 지원을 등에 업고 전쟁을 벌였다. 유엔 조직범죄 전문가로 활동 중인 에드가르도 부스카글리아에 따르면, 2008년 멕시코 도시의 60%가 마약조직에 "포섭되거나 영지처럼 지배"되고 있었다.(8)
신생조직의 등장은 상황을 더욱 통제 불능 상태로 빠트렸다. 2003년 마약조직 걸프의 전설적 두목이 체포되면서 연합세력 세타스가 비로소 걸프 휘하에서 독립했다. "전직 특수군 출신들이 이끄는 이 신생 조직은 마약조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마피아 조직에 가까운 전략을 펼친다"고 마약범죄 분야 최고의 권위자인 루이스 아스토르가가 설명했다. 마약시장 진출이 녹록지 않자 세타스는 (갈취, 납치, 밀입국 알선, 매춘 알선, 불법 도박, 밀수, 위조 등으로) 사업 영역을 다각화했다. 그들의 목적은 단순했다. 최대 매출을 끌어올리기 위해 멕시코 전역에 세력권을 확대하는 것이었다. 세타스는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서라면 다른 유사 지역 갱단과 연합해 기존 마약조직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이를테면 시날로아 조직의 손길이 닿지 않는 멕시코 서부 지대에서 '라 파밀리아 미초아카나' 같은 지역조직을 위해 조직원을 훈련하고 조언해주는 역할을 했다. '자리' 쟁탈전은 이내 '영역' 분쟁으로 번졌다.
"부정부패 없이 마약단이 어떻게 활개치나?"
오늘날 멕시코에 폭력이 일상화된 것은 결코 칼데론 대통령이 2006년 육해군과 연방경찰을 대대적으로 투입해 조직범죄를 소탕하기로 한 결정 때문이 아니었다. 오히려 정권 교체에 따른 어쩔 수 없는 조직 개편과 신종 범죄의 출현이 원인이었다. 그럼에도 다른 면에서 현 대통령은 실수를 저질렀다.
먼저, 칼데론 정부는 전략적 실책을 범했다. 아무리 마약조직의 수뇌부를 공격해도 마약밀매 사업 자체에 큰 타격을 주지 못했다. 칼데론이 집권한 6년 동안 멕시코 당국은 마약조직 두목 37명을 추적, 검거, 처형했다. 하지만 그 가운데 22명이 금세 새로운 인물로 교체됐다. 물론 전설적인 '마약왕' 엘 차포 호아킨 구스만이 올해 초 멕시코군에 덜미가 잡힐 뻔한 사건이 있긴 했다. 하지만 그 외에 별 다른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미국 국무성에 따르면, 2011년 미국에서 소비된 코카인의 95%가 여전히 멕시코를 경유해 들어왔다.
둘째, 정부는 부정부패 척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부정부패야말로 가장 근본적인 문제인데도 말이다. 월간 <프로세소> 기자에게 이스마엘 '엘 마요' 삼바다가 증언한 이야기도 이런 사실을 확인해준다. 2010년 4월 3일, '마약과의 전쟁은 왜 실패했는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시날로아를 가장 오랫동안 지휘한 두목 엘 마요는 이렇게 냉소적으로 대답했다. "부정부패가 없다면 마약밀매가 어떻게 일반 사회에까지 깊숙이 뿌리내릴 수 있겠는가."
정부는 2010년 부정부패 혐의로 처벌을 받은 공무원이 1500명, 기업인이 500명에 달한다며 애써 해명했지만 별 설득력은 없었다. 검찰총장도 지난 2년 사이 전체 인력의 28%에 달하는 검사 목을 잘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국민, 정치계, 경제계를 설득할 만한 정말 악의 싹을 잘라내려는 정부의 강력한 의지를 반영한 대책은 찾아볼 수 없었다.
수많은 예 중 몇 가지만 살펴봐도 정부가 얼마나 부정부패 척결에 소극적이었는지, 직접 부패에 연루됐는지 가늠해볼 수 있다. 수십 년 동안 검찰총장은 타마울리파스주 전 주지사 3명과 쿨리아칸시(시날로아주)·티후아나시(바하칼리포르니아주) 전 시장, 소노라주 전 주지사(멕시코에서 부유한 기업인 가운데 한 명) 등이 마약조직과 결탁했을 가능성을 주목했다. 하지만 공식적으로 심문을 받은 용의자는 아무도 없었다. 마찬가지로 공공치안장관이 공무원 소득과는 무관하게 축재한 거액의 재산을 많은 언론이 문제 삼았지만, 어떤 연방기관도 공식적인 조사에 나서지 않았다.
정부는 자금세탁 근절에서도 별다른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기껏해야 새로운 은행·금융 규제안을 채택한 것이 전부였다. 멕시코 중앙은행은 최근 우려스러운 통계 결과를 발표했다. 현 대통령의 임기 동안 멕시코 은행 시스템이 적발한 불법 자금이 310억 달러에 달한다고 했다. 이는 폭스 대통령 때보다 106% 증가한 액수였다.(9) 경제학자 로헬리오 라미레스는 "특히 건설, 부동산, 호텔업 등의 기업들이 번성하고 있는 멕시코 북부 지역에 검은돈이 투자됐다. 그러니 이 기업들의 수입을 조사하는 것이 빠른 지름길이다"라고 지적했다. 재무부 산하 금융정보국 국장도 멕시코의 연간 불법 세탁 자금 규모가 150억~500억 달러, 즉 국내총생산(GDP)의 3~8%에 이른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정부가 가장 많이 비판을 받는 분야는 역시 인권이다. 멕시코군과 연방경찰은 범죄조직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실책을 저질렀다. 군이 쳐놓은 바리케이드 앞에 제때 멈춰서지 않은 민간인 여러 명을 사살했다. 치와와주의 오히나가 군사지역을 지휘하는 모레노 아비나 장군은 사법 절차를 무시한 민간인 처형, 고문, 주검 소각, 불법 감금 및 가택 침입 등에 대해 대법원의 조사를 받았다. 그에 앞서 군사재판소는 장군의 기소를 거부했다.
시민들, 협상력 있는 PRI 재집권에 동조
토레온 경찰청에 파견된 한 고위 장교는 언론에 이렇게 진술했다. "세타스 조직원을 잡아 그 자리에서 처형했다. 뭐하러 심문을 하는가? 군은 자체 정보기관을 두고 있다. 추가 정보 따위는 필요 없다."(10) 네트자이 산도발 변호사와 멕시코 시민 2만8천 명은 200건 이상의 고문 행위를 저지른 혐의로 군을 헤이그국제형사재판소(ICC)에 제소했다. 멕시코군은 구금 뒤 피의자를 법에 따라 검찰로 이송하는 대신 수일 동안 군대 안에 잡아두고 심문했다.
국방부는 제소된 군인들의 면책특권을 박탈하는 데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2006~2011년 중대한 인권침해 혐의로 군사검찰의 재판을 받은 군인은 모두 3671명에 달했지만, 그 가운데 29명만이 유죄판결을 받았다. 한마디로 정부는 더 이상 군과 경찰을 통제할 수 없다는 지경에 이르렀다. 더 심하게는 사회 전체를 군국주의화하려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1970년대 '바나나 공화국'에나 어울릴 법한 이런 부패 독재 행태는 많은 멕시코 시민의 공분을 자아내고 있다. 그로 인해 지금까지 대다수 국민에게 신뢰를 받아오던 몇 안 되는 국가기관 중 하나인 군대마저 이미지가 크게 훼손됐다. 쿠에르나바카에서 활동하던 갱단의 손에 아들을 잃은 시인 하비에르 시실리아는 2011년 한 해 동안 '더 이상의 피를 원치 않는다!'는 구호 아래 좌파 일부를 결집하는 데 성공했다. 거의 모든 국내 비정부기구의 지지를 받고 있는 그는 무기력한 멕시코의 치안·사법 시스템을 맹렬히 비판했다. 물론 시실리아가 벌인 이 운동은 민중의 결집을 이끌어내지 못했지만 냉소·불신·환멸로 가득 찬 국민의 불만을 증폭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결국 이 운동으로 대통령제에 대한 신뢰는 땅에 추락했다. 멕시코는 12년 전 70년간의 일당체제를 종식하고 민주체제로 이행했다. 아직은 위태롭기만 한 민주화 이행 과정을 더욱 탄탄하게 해줄 유일한 제도는 대통령제뿐이다.
칼데론에 대한 공격은 오히려 그들이 수호하려는 민주체제를 더욱 위태롭게 만들 수 있다. 최근 몇 년간 마약밀매 조직은 권력의 직접적 공모 여부와 관계없이 정부를 무력화해 대부분의 영토를 장악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해 보였다. 이같은 사실은 정치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치안'과 '폭력'이 뜨거운 화두로 떠오른 이번 대통령 선거전에서 연일 주요 방송사가 반복해서 내보내는 참혹한 영상이 시민들을 경악시키고 있다. 이미 시민들은 PRI가 재집권해야 한다는 주장에 동조하는 분위기다. 사람들은 오직 PRI만이 마약조직과 협상을 벌여 멕시코에 평화를 되돌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어쩌면 2012년 7월 대선은 마약밀매 조직이 멕시코 민주주의와의 대결에서 첫 승리를 거두는 날이 될지 모른다.
글•장프랑수아 부아예 Jean-François Boyer 언론인
번역•허보미 jinougy@naver.com 서울대 불문학 석사 수료.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1) 미국 국무성에 따르면, 2011년 미국에서 소비된 코카인의 95%가 멕시코를 거쳐 공급됐다. 헤로인 18~20t과 마리화나 1만6천t(2009년 수치)도 멕시코를 경유해 들어왔다. 반면 메타암페타민의 믿을 만한 통계 자료는 확인할 수 없었다.
(2) 멕시코 31개 주정부에 속한 경찰을 의미한다.
(3) Patrice Gouy, ‘멕시코 가톨릭교도 마약전쟁에 반기를 들다’, <라크루아>, 2011년 7월 24일.
(4) Hernando Calvo Ospina, ‘콜롬비아 작전의 한계선에서’,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5년 2월호.
(5) ‘후아레스’ 조직과 결탁한 혐의로 유죄 선고를 받았다가 군사재판소에 의해 석방된 뒤 지난 4월 암살된 전직 장군 마리오 아투로 아코스타 샤파로의 증언 참조. Annabel Hernandez, <Los Senores del narco>, Grijalbo, 멕시코시티, 2011.
(6) Renaud Lambert, ‘그다지 희지 않은 백기사’,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2년 1월호.
(7) <패배한 마약과의 전쟁>, 라데쿠베르트 출판사, 파리, 2001.
(8) ‘El narco ha feudalizado 60% de los municipios, alerta ONU’, <라호르나다>, 멕시코시티, 2008년 6월 26일.
(9) ‘BdeM: en 2 sexenios panistas el crimen lavo mas de 46.5 mil mdd’, <라호르나다>, 2011년 11월 29일.
(10) ‘Si agarro a un zeta lo mato ; para qu? interrogarlo? : jefe policiaco’, <라호르나다>, 2011년 3월 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