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티모르의 불안한 회복
수많은 역경을 겪은 동티모르가 민주주의를 향해 발을 내딛고 있다. 유엔에서 받은 원조 대부분은 헛되이 날려버렸지만 아직 석유라는 축복을 누릴 여유가 있다. 7월 7일 예정된 총선 후 동티모르는 새로운 시대로 도약할 것임이 틀림없지만 여전히 국민의 4분의 3은 시골에서 어렵게 살아가고 있다.
종종 '색종이 조각'(1) 국가로 묘사되는 동티모르의 실제 면적은 레바논이나 자메이카보다 크고 인구수(120만 명)는 키프로스나 에스토니아와 맞먹는다. 경제 상황은 '아시아 최고 빈곤 국가'라는 고정관념이 깊숙이 자리한다. 하지만 동티모르는 탄화수소 개발 사용료로 매년 10억 달러의 수익을 거둬들이고 있으며, 2011년에는 포르투갈의 국채 일부를 매입하겠다는 제안도 했다.
지난 4월 동티모르에서 세 번째 대통령이 선출되었다. 초대 대통령은 2002년 독립 당시 '동티모르의 넬슨 만델라'라 불리며 민족해방운동을 이끌던 샤나나 구스망 현 총리였다. 2007년 2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주제 하모스 오르타(1996년 노벨평화상 수상) 전 대통령의 뒤를 이어 '타우르 마탄 루악'이라 불리는 주제 마리아 드 바스콘셀로스 전 게릴라 전사가 61%의 득표율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상대 후보는 일명 '루올로'로 불리는 동티모르 독립혁명전선(프레틸린)의 프란시스코 구테레스였다.
1975년 내전 때 끔찍한 살육전을 겪고 24년간(1975~99년) 인도네시아의 식민 지배를 받은 동티모르에서 정치적 다양성이 실현되었다. 1차 투표에서 네 후보가 각각 17% 이상의 지지율을 획득한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은 주로 대표자 역할이고 실질적 결정권을 쥐는 것은 국회다. 따라서 7월 7일로 예정된 총선이 중요하다. 구스망 총리를 수반으로 하는 티모르재건국민회의(CNRT)에 대한 지지도가 높다지만 어느 당이 과반수 의석을 차지할지 아직 미지수다.
오랜 기간의 식민 지배와 1999년 독립 국민투표 이후 인도네시아 군대와 민병대의 초토화 작전으로 동티모르는 황폐화되었고, 이 상흔은 여전히 남아 있다. 유엔은 2002년 5월까지 과도정부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고 자부하지만, 여기에는 비판적 시각이 늘어나고 있다.(2) 국제사회는 1999년 말~2006년 초 동티모르에 20억 달러의 원조를 지원했으나 그중 80%가 동티모르가 아닌 유엔평화유지군을 위해 사용되었으며 15%는 해외 '전문가들'의 주머니로 들어갔다. 이들의 연봉은 40만 달러가 넘는 것으로 예상된다.(3) 하지만 막상 전문가들은 언어와 환경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현지 상황에 맞는 기반을 구축하지 못했다.(4) 그뿐만 아니라 2002년 전문가 회의에서 결정된 1차 개발계획은 민영화와 해외 투자 개방, 금융 분야 활성화, 정부 규모 축소, 노동력 '규제' 등 신자유주의 형태를 띠었다.(5) UN 일부 간부들도 당시 계획이 부적절했으며, 국민에게 더 큰 실망감을 안겨주었다고 말했다. 공공부문뿐만 아니라 민간부문에서도 일자리 창출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예정된 보조금과 원조금도 지원하지 않았다.
인도네시아와의 평화를 향하여
독립에 대한 기대감으로 부풀어 있던 황폐화된 국가에서 이런 실패는 뜻하지 않은 정치위기로 이어졌다. 서부 출신 동티모르 군인은 동부 출신자에 비해 차별 대우를 받는다고 주장하며 결집했다. 동티모르가 내전 위기로 치닫자 2006년 5월 정부는 유엔의 복귀를 요청할 수밖에 없었다. 하모스 오르타 대통령과 구스망 총리에 대한 두 번의 암살 시도가 실패로 돌아가며, 2008년 2월 위기사태는 일단락되었다.
2011년 미국의 '평화기금' 단체는 동티모르를 '실패 국가 지수'에서 북한 다음인 23위로 분류했다.(6) 하지만 동티모르는 진정한 복수정당제를 따르고 있으며, 여성 국회의원 비율이 32%에 달한다. 이는 전세계 대부분의 국가보다 높은 수치이다. 또한 1999~2010년 기대수명은 56살에서 62.5살로 증가했고, 문자해독률은 40%에서 58%로,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330달러에서 5300달러로 늘어났다. 국제 통계상 동티모르 국민의 40~50%가 빈곤선 이하에서 생활한다고 나타났지만, 이 통계가 논란의 여지가 많은 이유는 국민의 4분의 3이 화폐 가치로 평가할 수 없는 자급자족형 농업으로 살기 때문이다. 또한 정부도 무상교육 보장과 보건진료소 설치를 통해 국민에게 생활필수품뿐만 아니라 교육과 보건위생을 지원해주고 있다.
2050년이면 동티모르 인구가 2배 이상 증가할 것이므로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2011년 구스망 정부는 변화에 대비하기 위해 2030년을 목표로 개발계획을 수립했다. 석유라는 은혜 덕분에 2012년에는 100억 달러까지 확보했다. 하지만 추정 매장량이 40년 생산량으로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현재 탄화수소의 90% 이상에 집중된 의존도를 낮추고, 경제를 다양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 동티모르는 오스트레일리아와 중국이 자국의 자원을 탐내고 있는 사실을 자각하고 세계경제에서 지위 확보에 주력해야 한다.
인도네시아와의 관계는 많이 개선되었다. 옛 지배국이 자신이 저지른 횡포를 인정하지 않고 수많은 인권단체가 여전히 국제재판소에 청원을 내고 있지만,(7) 2008년 일명 '진실 및 우호 위원회'가 양국의 평화적 관계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다. 또한 동티모르의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가입에 대한 인도네시아의 지지와, 포르투갈과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지난 5월 20일 독립 10주년 기념행사 참석차 수도 딜리를 방문한 것은 긍정적인 신호다.
글•프레데리크 뒤랑 Frédéric Durand 주요 저서로 <동티모르, 기원전 3천년경 최초의 국가>(Asie plurielle 컬렉션·파리·2011) 등이 있다.
번역•배영미 petite0222@hotmail.com 이화여대 통번역대학원 졸.
(1) <AFP>, 2012년 4월 16일.
(2) Geoffrey Gunn et Reyko Huang, <New Nation: United Nations Peace-Building in East Timor>, Tipografia,마카오, 2006.
(3) The Australian, <쿠리에 앵테르나시오날>, n°968, 2009년 5월 20일.
(4) Irasec- Arkuiris, <1999~2050 경제·정치의 전망과 기준을 모색 중인 동티모르>, 방콕-툴루즈, 2008.
(5) 계획위원회, 동티모르 국가계획, 2002.
(6) www.fundforpeace.org/global/
(7) Angela Robson, 티모르섬에서의 사면 문제를 둘러싼 분열,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8년 1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