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적 다양성이 사라지는 우크라이나
맹렬한 전투를 피해 사라지는 헝가리인 공동체
우크라이나 동부에서 맹렬히 전투가 벌어지는 동안, 우크라이나 서부 끝에서는 마자르족이 달아나고 있다. 카르파티아 산맥에 의해 드네스트르 강 분지와 드네프르 강 분지로 나뉘는 이 지역은 몇 세기 전부터 다양한 민족이 어우러져 살아온 곳이다. 고대 제국의 경계에 자리한 문화적 다양성은 계속해서 과거 속으로 사라져간다.
우크라이나 국경에서 헝가리 부다페스트까지는 자동차로 3시간 거리다. 1920년 트리아농 조약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을 해체했고, 이때 정해진 이 경계의 정반대 편에 마자르족 공동체의 중심지 베레호베가 자리한다. 우크라이나 남서부 끝에 있는 베레호베에서는 시간대를 800km 넘게 떨어진 수도 키이우와 맞출 필요가 없다. 이곳 주민들 표현에 따르면 이곳은 “서쪽” 시간대나 “부다페스트” 시간대로 운영된다. 헝가리의 많은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주민 2만 5,000명이 거주하는 도시 중심에는 ‘영웅’이라는 뜻의 회쇠크(Hősök) 광장이 있다.
베레호베 시장, “난 헝가리인이자 우크라이나의 애국자”
그러나 여기 사람들은 우크라이나인이다. 한 기념관에는 10년 전 ‘유로마이단 혁명’(2013년 11월 당시 우크라이나 대통령 빅토르 야누코비치가 우크라이나의 유럽연합 가입 논의를 중단하고 친러정책을 천명하자 키이우와 서부 지역을 중심으로 대대적인 반정부 시위가 이어졌다-역주) 때 목숨을 잃은 100인의 초상이 전시돼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사망자 명단이 새겨진 오벨리스크에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된 2022년 2월 24일 이후, 동쪽으로 거의 1,000km 넘게 떨어진 전선에서 사망한 이 도시 출신 병사 20명의 이름이 추가됐다.
졸탄 바비악 시장은 자신을 “헝가리인이자 우크라이나의 애국자”로 소개한다. 지금은 흔한 일이지만, 그는 당시 우크라이나 반군(우크라이나어로 UPA)의 깃발로 쓰였던 붉은색과 검은색 기를 국기와 함께 게양하기로 결정했다. 악랄한 민족주의자이자 반유대주의자인 스테판 반데라는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기구(OUN-b)’를 이끌었다. 이 기구의 가장 급진적 분파에 속한 이 무장 세력은 때로는 적이었고, 때로는 소련에 맞서 나치와 손을 잡기도 했으며, 유대인 및 폴란드 민간인을 대상으로 수많은 학살을 저질렀다.(1)
부다페스트와 키이우 관계가 악화되면서 현재는 헝가리 소수민족이 힘든 상황이다. 먼저, 2012년부터 마자르족에게 헝가리 여권을 대량 발급했기 때문이다. 반면 우크라이나는 이중 시민권을 금지했고, 2017년 우크라이나 의회는 학교에서 헝가리어 교육을 축소하는 용의주도한 법안을 채택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뒤 부다페스트가 모스크바와 우호적인 관계를 끊지 않고, 키이우에 대한 유럽의 원조를 방해하려 하자 악감정은 더 격화됐다.(2) 노인들이 주로 찾는 베레호베 시장에서는 헝가리 총리 빅토르 오르반이 헝가리어 사용자들에게 확실히 인기를 유지하고 있다. 20년 동안 시장에서 채소를 팔다 은퇴한 요제프는 “여기 사람들은 전부 오르반을 지지해요”라고 말한다. “우리는 우크라이나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아요. 그들은 우리말을 쓰지 못하게 하려고 우리 헝가리인들을 괴롭히는 거예요.” 요제프는 손님들한테 허락을 구하지만, 다른 손님에게 우크라이나어로 답하기 위해 말을 잠시 끊었다.
시골 마을 노인들은 가끔 헝가리어를 쓰지만, 가정에서는 대개 다국어를 사용한다. 사람들은 헝가리어, 우크라이나어, 러시아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두 자녀를 독일로 떠나보낸 요제프는 “전쟁 때문에 젊은이들이 다 떠났어요. 형편없는 연금 탓에 나이든 사람들은 내 물건을 살 여유가 없어요”라고 한탄한다. 마자르족 공동체의 상당수가 2022년 2월 24일 이후 난민 행렬과 함께 이 지역을 떠난 것으로 보인다. 참전 연령대의 많은 남성들은 몇 주 뒤 국경이 폐쇄되기에 전에 헝가리 여권을 이용해 서둘러 이곳을 떠났다.
우크라이나에서 소외된 소수민족
카르파티아 산맥을 경계로 이쪽 지역의 남서쪽 측면은 수 세기에 걸쳐 폴란드, 오스트리아, 체코슬로바키아, 헝가리, 소련, 우크라이나 등 다양한 주권을 경험했다(아래 지도 참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카르파티아 루테니아(또는 자카르파탸)로 규정한 이 지역은 오늘날 우크라이나의 자카르파탸주(oblast)에 해당한다. 베레호베 외곽에 자리한 묘지에서는 우크라이나 국기를 보고 병사들의 새 무덤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 헝가리, 러시아, 우크라이나, 슬로바키아, 독일, 유대인 등의 묘지는 여러 문화가 뒤섞여 있음을 증명한다. 2001년 마지막 인구조사에서 우크라이나인은 이 지역 인구의 80%를 차지했다. 이들은 루테니아인(루신인)과 동화되어, 그리스정교-로마가톨릭 신앙고백 및 동방귀일교회를 따르는 슬라브족이다. 소수민족 중 헝가리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들의 규모가 가장 크고(12.7%), 이어서 러시아인 3만 명, 비슷한 규모의 루마니아인, 스스로 헝가리인이라고 말하며 대개 마자르어를 사용하는 롬인, 그리고 슬로바키아인과 독일인 수천 명이 각각 소수민족에 속한다.(3)
부다페스트의 헝가리 외교부 사무실에서 소수민족 담당 정무차관 레벤테 마자르는 헝가리의 관점을 설명했다. “2014년 돈바스 전쟁이 발발한 뒤, 키이우는 우크라이나어의 헤게모니를 주장할 계획으로 국가 건설 과정에 참여했다. 러시아 문화의 영향력을 축소시키려는 것이 주요 목표였다. 그러나 다른 소수민족은 소련 시절 이후 종종 혜택을 받았던 권리를 잃었다. 그들은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와 러시아 문화유산 사이에 벌어진 이 역사적 전투의 부수적 피해자들이다.”
블라디미르 푸틴의 전임 수석보좌관 브라디슬라프 수르코프의 이메일이 유출되면서, 2016년 우크라이나를 불안정하게 하려는 전략이 일부 드러났다. 크렘린은 러시아 민족주의자들의 요구를 부추겨 우크라이나의 자카르파탸주에서 민족 간 갈등을 유발하려고 했다.(4) 2014년 크름반도 합병 이후 헝가리 우익 정당 요비크(Jobbik, 바른정당)는 부다페스트에서 자카르파탸주 자치권을 요구하는 시위를 조직했다. 친러시아 성향의 극우정당 요비크는 오르반 총리가 이끄는 피데스(Fidesz, 청년민주동맹)와 치열한 경합을 벌였다. 2018년 자카르파탸주의 주도인 우주호로드 소재 헝가리 문화센터를 겨냥한 방화 사건이 벌어지자, 헝가리 정부는 성급하게 우크라이나 ‘극단주의’를 지목했다. 친러시아 성향의 군소 극우 집단 팔랑가(Falanga) 소속 폴란드인 3명이 방화의 주범으로 보이는 영상이 있는데, 그중 2명은 돈바스 분리주의자들과 싸운 인물이었다. 폴란드에서 열린 재판에서 한 피의자는 독일인 마누엘 오크센라이터를 배후로 지목했다. 그는 극우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의 고문이자 기자로, 러시아 정부를 지지하는 언론에서 주기적으로 발언을 하고 있다.(5)
우주호로드 성(城) 지구의 한 레스토랑에서 정치학자 드미트로 투얀스키는 이렇게 설명했다. “러시아는 자카르파탸주가 민족 간 긴장을 일으키거나, 적어도 이런 분위기를 전달할 수 있는 지역이라고 진지하게 생각한다. 그 생각이 어느 정도는 맞는 것 같다. 우크라이나에서도 일부 주민은 민족 문제와 헝가리 분리주의가 존재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러 대학이 참여한 연구팀과 이런 분리주의의 흔적들을 찾아보았으나,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다른 민족끼리의 공존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상황이며, 여러 공동체 사이에 긴장이라곤 전혀 느낄 수 없다. 놀라운 일이다!”
이리나 베레슈추크 부총리(6)와 국가안보국방위원회 올렉시 다닐로프 장관 등 우크라이나의 몇몇 정치 대표와 고위 관료들은, 헝가리가 실지회복주의(irredentism, 잃은 땅을 다시 찾고자 하는 것) 성향을 갖는 데다 옛 카르파티아 루테니아를 되찾기 위해 러시아와 협력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지난 30년간 부다페스트는 헝가리 소수민족의 문화적·영토적 자치권을 지지해왔다. 그러나 돈바스 분리주의로 인해 우크라이나 키이우가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게 됐고, 그들의 요구는 묵살당했다. 부다페스트가 헝가리 교육기관 및 문화기관에 투입한 막대한 자금이나, 대헝가리(The Great Hungary) 지도 같은 실지회복주의를 의미하는 상징들로 인해 의심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 대헝가리 지도는 2022년 11월 헝가리-그리스 축구 경기 당시 헝가리 정부는 물론 오르반 총리 자신이 전시한 바 있다.
2023년 12월, 우크라이나 의회는 한 법안을 채택했다. 이 법안은 유럽평의회의 중재 하에 헝가리 및 루마니아 양국 정부의 요구에 따라 소수민족의 권리를 회복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부다페스트의 지정학적 균형을 위한 조치가 이 소수민족의 입지를 약화시킨다는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그 해 12월 15일, 헝가리 오르반 총리는 26개국이 채택한 우크라이나의 유럽연합(EU) 가입 협상 개시를 위한 찬반 투표를 피하기 위해 때맞춰 유럽이사회 회의장을 떠났다. 오르반 총리는 서구사회가 우크라이나에 재정적·군사적 지원을 해봤자 소용없으며, 우크라이나가 승리할 수 없는 전쟁에서 외교적 해결을 지연시킬 뿐이라는 생각을 공공연히 드러냈다. 유럽연합 회원국 및 정부 수반들은 올해 2월 1일, 만장일치로 키이우에 4년간 500유로 규모의 재정적 지원을 하기로 결의했다. 결국 오르반이 이에 굴복하기는 했으나 그는 우크라이나 문서와 관련해 그의 잠재적 거부권을 계속 언급할 심산이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내 헝가리 대표들은 우크라이나의 유럽연합 가입을 막지 말라고 부다페스트에 공개적으로 요구하며 반대하는 태도를 보였다. 이는 헝가리 정부에 크게 의존하고 있으면서도 소수민족이 헝가리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신호다.
그러나 헝가리 공동체의 충성심에는 여전히 미심쩍은 부분이 있다. 더 넓은 의미에서 산맥 너머에 위치한 이 모든 영토가 키이우 쪽에서는 의심스러워 보일 수 있다. 우주호로드 지자체 장을 맡고 있는 빅토르 미키타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의 ‘국민의 종’ 정당 출신이다. 그는 “여기에는 분리주의자나 극단주의자가 없다. 2022년 2월 24일 이후 모든 우크라이나인은 소수민족과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라고 말한다. 미키타는 자카르파탸에 여전히 널리 퍼져 있는 평화로운 다문화주의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 그는 비록 자세한 수를 파악할 수는 없지만 우크라이나군에 자원입대한 마자르족 출신의 병사 수백 명과 이주민들에게 이곳 주민들과 헝가리인들이 환대와 연대를 보였다며 칭송했다. 도지사의 사무실에는 마다르(Madyar, 우크라이나어로 ‘마자르인’이라는 뜻)라는 별명의 로베르트 브로브디가 지휘하는 드론 부대 ‘마자르의 새들(Madyar’s Birds)’을 포함해 군인들이 서명한 지역 전투부대 깃발이 걸려 있다. 도지사는 “헝가리 소수민족이 없다면 자카르파탸는 더 이상 자카르파탸가 아닙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우크라이나 내 헝가리인들은 여전히 위협받고 있다. 2001년 인구조사 당시 15만 명이었던 마자르족은 2017년에 약 13만 명으로 종전보다 줄었고(7), 2022년에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는 겨우 10만 명이 남아 있었다.(8) 더 정확한 공식 통계가 없기 때문에, 헝가리 외교부는 지난 2년간 “소수민족 출신 수만 명이 우크라이나를 떠났을 것”이라고 시인했다.
동시에 전쟁을 피해간 자카르파탸주는 전쟁 초기 대규모로 이곳에 온 난민들에게 피난처가 되었다. 2022년 가을, 많은 이들이 러시아로부터 탈환한 하르키우와 헤르손 지역의 영토로 돌아갔으나, 약 30만 명이 여전히 그곳에 남아 있을 것이다. 또한 미키타 도지사는 점령지의 400개 기업이 자카르파탸주로 부지를 이전했다는 점을 언급했다. 이 상황은 세르비아 북부에서 벌어진 유고슬라비아 전쟁의 결과와 유사하다. 세르비아의 보이보디나 내 헝가리 소수민족은 1948년에 43만 3,000명, 1991년에 34만 3,000명, 2022년에 18만 4,000명으로 계속해서 줄었다.(9) 레벤테 마자르 헝가리 정무차관은 이렇게 지적했다. “상황은 다르지만 결과는 우크라이나에서도 같을 것이 우려된다. 지역 및 지방 정치에서 헝가리인들이 소외될 가능성이 있다. 전쟁이 끝나면 자카르파탸의 문화적·인종적 현실이 완전히 달라질 거라는 현실적 두려움이 존재한다.”
우루호로드 출신 작가이자 군 자원 봉사자인 안드리 류브카는 “내가 젊었던 1990년대에 헝가리인들은 우크라이나에서 큰 명성을 누렸다”고 회상했다. 그는 “현재 이 소수민족은 게토화 과정에 있다. 헝가리인이라는 것을 수치스럽게 느낄 수 있다. 오르반의 정책은 소수민족을 내부에서 갉아먹고, 압박감은 그들을 질식시키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우크라이나인들에게 매우 중요한 시기이고, 헝가리인들 역시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젊은 층은 이제 자신을 우크라이나인으로 정의하는 선택을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이들 중 상당수가 국경이 다시 열리면 떠날 것이다.” 전쟁은 유럽에서 가장 다문화적인 지역의 하나인 이곳의 인류 유산에 해를 입힐 것이다.
글·코랑탱 레오타르 Corentin Léotard
부다페스트 <유럽중앙통신> 편집장
번역·조민영
번역위원
(1) Éric Aunoble, ‘Choc de mémoires et conflit de récits 우크라이나: 하나의 역사, 두 개의 엇갈린 시각’,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한국어판 2022년 4월호.
(2) Corentin Léotard, ‘La petite musique hongroise 헝가리우파, “러시아는 우리의 적이 아니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한국어판, 2022년 12월호.
(3) 2001년 인구조사, 우크라이나 통계청.
(4) ‘The activity of pro-Russian extremist groups in Central-Eastern Europe’, <Political Capital>, 2017년 4월 28일, https://politicalcapital.hu.
(5) Benoît Vitkine, ‘En Transcarpatie, l’art russe de l’intox fait des étincelles 자카르파탸주에서 러시아의 세뇌 기술이 큰 성과를 올리고 있다’, <르몽드>, 2019년 4월 7일.
(6) ‘Iryna Vereshchuk unsure what Hungary’s Viktor Orbán wants in exchange for Russia’s good will : cheap gas or Zakarpattya region’, <Oukraïnska Pravda>, 2022년 3월 22일.
(7) Patrik Tátrai, Jószef Molnár, Katalyn Kováli & Ágnes Erőss, ‘Changes in the number of Hungarians in Transcarpathia based on the survey “Summa 2017”’, <Hungarian Journal of Minority Studies>, vol. 2, 부다페스트, 2018.
(8) Magyar Hang, 2022년 5월 27일, https://hang.hu
(9) 2022년 인구조사, 세르비아공화국 통계연구소, 벨그라드,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