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미국의 패권을 위협하지 않는다

서방은 중국의 위협을 과장하지만,

2024-03-29     르노 랑베르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미국의 공화당과 민주당은 거의 모든 사안을 놓고 대립각을 세우지만 중국에 대해서만큼은 이견 없이 강경 노선을 내세운다. 프랑스 민간에서는 중국과의 단절을 감수하면서까지 미국의 입장에 동조하는 프랑스의 외교 행보를 개탄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그렇다면 과연 중국은 서방에 어떤 위협이 되는 것일까?

 

“중국은 ‘국제 질서’를 자국 입맛에 맞게 재편해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려 한다.” 

이 주장은 중국을 둘러싼 지배 담론의 신념이다. 같은 맥락에서 정치학자 데이비드 B.H 드눈은 중국이 ‘대전략(grand strategy)’, 즉 강대국으로 향하는 로드맵을 고수할 것이라고 내다본다.(1) 굉장히 보수적인 헤리티지 재단(Heritage Foundation)의 일원이자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서 대중국 정책을 설계했던 마이클 필스베리는 중국이 일찍이 중화인민공화국 건국을 선포한 1949년 초부터 ‘비밀 전략’을 수립해, 한 세기 내내 고수했다고 보기도 한다.

이런 전망이 더욱 우려스러워 보이는 까닭은 고독한 독재자이자 공산당의 제1인자인 시진핑이 ‘비밀 전략’ 수립을 이끌고 직접 구상하기도 하며(<레제코(Les Echos)>, 2021년 7월 1일), 세계의 주도권을 쥐려는 그의 야심을 점점 더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닛케이 아시아>, 2023년 10월 16일). 중국이 세운 전략의 첫 단계인 신실크로드 사업을 발판으로 시진핑이 세계를 재편하기로 했다는 주장이다(<CNN>, 2023년 11월 10일).(2)

2013년 9월 7일 시진핑 주석은 이 사업 계획을 제시하면서 ‘일대일로(一带一路, One Belt One Road, OBOR)’라고 명명했으나, 나중에는 ‘일대일로 구상’(Belt and Road Initiative, BRI) 또는 ‘신(新)실크로드’로 명칭을 변경했다. 그 후 몇 년간 이 사업은 주춤했으나, 2015년 3월 28일, 중국 정부는 다음과 같은 정책 기조를 발표했다. 

 

중국 엘리트층과 대중 사이에 만연한 불신

기본 정책 취지에는 (현재 기준으로 1조 달러에 달하는) 기반 시설 건설을 위해 정치적 조건 없이 차관을 제공하고, 지역 연계를 강화하며, 협력을 통해 공동으로 더 밝은 미래를 포용한다는 원칙을 담았다.(3) 호주전략정책연구소(ASPI)는 이토록 근사한 약속이 어두운 현실을 감추지는 못한다면서, 이 구상을 통해 중국은 상대국을 ‘부채 함정’에 빠뜨리고, 지배력을 행사해 ‘패권 영역’을 넓히려 한다고 평가했다.(4) 

최근 중국은 서방 세계의 거센 비판으로 일대일로 구상이라는 이름을 버렸다. 그 결과, 공식적으로 연계된 사업 수가 줄었다. 그렇다면 <파이낸셜 타임스>가 사설에서 지적했듯이 워싱턴의 합의가 중국에 대해 너무나도 적대적이어서 “중국을 향해 손만 뻗어도 미국의 패권이 약해졌다는 의심을 받을 정도”라는 평가도 별로 놀랍지는 않다.(5)

중국의 거대 정당이 이런 생각을 부추기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1970년대 말 덩샤오핑이 집권한 이후로 중국이 거쳐 온 변화를 살펴보면 의구심이 생긴다. 어떤 근거로 중국을 상부의 강령이 만인에게 적용되는 매우 중앙집권적이고 전제적인 국가로 보는 것일까?

과거로부터의 변화는 마오주의 모델이 힘을 잃고 지방의 생활수준이 정체되는 국가적 위기의 결과로 자연스럽게 일어났다. 그러나 미국 정치학자 수잔 셔크는 여기에는 정치 계산이 깔려있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중국 경제 체제의 저조한 성과와 문화대혁명 이후 엘리트층과 대중들 사이에 만연한 불신은 중국이 시장 개혁에 착수한 이유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고 말한다.(6) 

1976년 마오쩌둥 사망 이후, 중국은 후계자 전쟁에 휘말렸다. 덩샤오핑은 경제 위기를 틈타 마오쩌둥이 후계자로 지명한 화궈펑의 신용을 실추하고, 관료제를 장악한 산업 거물들의 힘을 약화했다. (...) 덩샤오핑은 마오쩌둥의 후계자 자리를 놓고 화궈펑과 경쟁하는 도구로 개혁 프로그램을 활용했다. 그리고 자신에게 저항하고 중공업과 계획 경제를 옹호하는 진영에 맞서, 분권화와 시장 개혁에 사활을 걸었다. 분권화를 추진해 지방의 정치 지도자와 지방 공산당 간부들에게는 점점 더 많은 특권을 이양하고 중앙 정부의 권력을 약화했고, 계획 경제를 기반으로 농업, 산업과 국제 무역에서 지방 당국이 수익성을 추구하도록 해서 현대화에 유리한 지역 연합을 구축했다.

 

중국 지방 정부, 외국 정부와 직접 협정 맺어

그렇게 초기 자본 축적 과정을 지방에서 주도하자, 중앙 정부의 역할은 이자율, 환율 등 거시 경제 관리로 축소됐다. 그나마도 계획 경제는 지역 수준에서 관리됐고, 실질적인 조정은 하부 단계에서 이뤄졌다. 사회학자 훙호펑은 결과적으로 국가 차원에서 중국은 “생산 능력과 기반 시설 구축이 중첩되는 치열한 내부 경쟁을 겪고 있다”라고 분석했다.(7) 1997년 경제학자 마틴 하트랜드버그와 폴 버켓은 중국의 30개 자치주 가운데 20개 자치주가 자동차 산업에 한꺼번에 뛰어들어, 전국에 122개의 생산 설비를 보유하게 됐지만(...) 이 중 80%는 연간 차량 생산량이 1,000대 미만에 불과하며, 생산량이 5만 대가 넘는 생산 라인은 여섯 곳에 지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8) 이런 맥락에서 중국은 머지않아 자치주마다 서로 다른 경제 체제를 갖추게 될 것이다. 연안 지방에서는 정책에 점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외국 자본 유치에 힘을 쏟는다. 반면, 내륙 지방에서는 경쟁으로부터 지역 산업을 보호하려고 한다.(9)

교육, 보건, 사법, 조세 분야에서도 분권화가 진행됐다. 그렇게 해서 지방은 경제특구를 조성하고, 지방 당국은 대외 경제 관계를 직접 관리할 수 있게 됐다. 지방 당국은 자체 외교 ‘사무소’를 만들고 국제 협력 기구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았다. 리 존스와 샤하르 하메이리 두 학자는 저서에서 중국이 ‘일원화된 중앙집권 국가’라는 해석을 비판하며, 지방 정부가 어떻게 일종의 ‘유사 외교’에 관여하는지 설명한다.(10) 

지방 정부는 자체 외교로 외국 정부와 직접 협정을 체결하기도 한다. 윈난성은 1999년에 ‘방글라데시, 중국, 인도, 미얀마 지역 협력 포럼(BCIM)’을 출범했다. 이후 2006년에 광시성도 유사하지만 경쟁적인 기능을 갖춘 범-북부만 경제협력포럼(Pan-Beibu Gulf Economic Cooperation)을 발족했다. 그러나 각 지방 정부의 외교 나침반은 지역의 경제 이익으로 향한다. 게다가 중국 지방 정부는 수평적 관계인 외교부의 국가적인 목표에는 큰 관심을 쏟지 않는다. 존스와 하메이리는 “중국 정치 체계에서는 수직적 위계 혹은 직속 관계가 성립하는 경우에만 지시를 하달할 수 있다”라고 설명한다. 1979년 이전에는 중앙 정부가 대외 무역과 투자를 모두 감독했지만 1990년대 초반부터는 통제권이 대체로 지방으로 분산됐다.

 

더 이상 주도권을 독점 못하는 중국 지도층

지방 자치와 덩샤오핑이 착수한 개혁에 따라 대대적인 민영화 과정을 거치면서 기업들은 (법적으로, 그리고 지방 당국 ‘국영 기업’ 장악의 영향으로) 국가의 통제를 벗어났다. 평생 고용과 사회적 보호 의무에서 벗어난 경제 주체들(정부, 기업, 은행 등)은 오로지 시장에서의 생존을 보장하는 이윤 창출을 사명으로 삼기에 이르렀다. 전담 부처가 세운 몇몇 대형 기업은 권력 구조 안에서 기존의 입지를 유지하면서 중앙 당국을 견제하고, 그 밖의 기업들은 소재한 지역의 지원을 발판 삼아 발전을 이뤘다. 지역의 기업들은 대부분 자국 시장에서 서로 경쟁을 벌인다.

시진핑이 전권으로 중국의 지정학 전략을 수립한다는 생각과는 거리가 멀다. 실제로 수십 년간 지속된 분권화, 분열, 국제화 이후 중국 지도자들은 더 이상 주도권을 독점하지 않는다. “중국 정부는 일당제 국가의 다양한 원리를 활용해 다른 행위자들을 정해진 방향으로 ‘이끈다’”라고 리 존스는 설명한다. 그러나 상부의 지시는 해석의 여지를 남길 만큼 모호하다. 그래서 하부와 협상하고, 더 나아가 대화하기도 한다. 따라서 하부 기관이나 부처에는 “중앙의 지시에 영향을 미치고, 비난하고, 드물게는 무시하기도 하는 등, 이익과 의제를 반영하면서 정책을 개발하고 실행하는 과정에 참여한다”.(11) 때로는 하부 기관이나 부처가 압력을 행사해 정책 노선이 정해지기도 한다. 그 예로 널리 알려진 중국 기업의 ‘해외 진출 전략(走出去战略)’을 꼽을 수 있다. 이 전략은 1990년대 초부터 일어난 현상을 2000년에 강령에 반영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2013년 시진핑 주석의 당선이 권력을 중앙 정부로 집중하기 위한 포석이었다고 주장할 것이다. 리줘란이라는 학자는 당시 다음과 같이 저술했다. “다수의 중국 공산당 고위 지도자들은 후진타오 주석의 집권기(2003~2013)가 혼란과 독직 행위로 점철됐다고 본다.”(12) 그래서 당시 중국 지도자들은 불평등을 심화해 중국을 약화하는 분권화 추세를 뒤집을 만한 강력한 인물이 집권하기를 원했다.

 

“시진핑은 게임의 규칙을 바꾸지 않았다”

후진타오 주석이 ‘국가와 당의 역할 확대, 자본가의 권력 제한, 사회적 불안 없이 만족스러운 성장 수준 유지’ 등, 경제학자 브란코 밀라노비치가 소위 ‘좌경화’라고 부른 과업을 추진했다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13) 그렇다고 시진핑 주석이 당 간부 수가 약 4,000만 명, 그 가운데 고위직만 50만 명에 달하는 이 일당제 국가에 변화를 가져온 것은 아니다. 2023년에도 중국 지방 정부는 국가 지출의 85%를 차지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의 3배에 달하는 수준이다.(14) 시진핑 주석은 관료제를 전복하는 대신 관료제에 기대야 했다. 존스와 하메이리는 시진핑 주석이 “게임의 규칙을 바꾸지 않았다”라고 결론 내렸다. 단지 더 나은 결과를 냈을 뿐이다.

이런 맥락에서, 대다수 서방 싱크탱크와는 다른 시각에서 일대일로 구상을 해석해야 한다. 키르기스스탄의 예를 들면, 일대일로 구상에 포함된 여덟 가지 사업 계약은 이 구상이 제시된 2015년보다 앞서 체결됐다.(15) 공통의 일원화된 플랫폼에 모든 것을 통합한다는 발상은 더 나중에 나왔고, 여러 부처와 지자체, 그리고 기업은 정치적인 지지와 재원 확보를 위해, 제대로 정의되지 않고 구호뿐인 이 구상에 뛰어들었다. 당시 중국에서는 과잉 투자에 따른 결과로 자국 기업의 해외 진출(수출 부문의 급성장기에 중요)이 가속화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중국은 투자를 통해 대규모 경기 부양책을 추진했다. 여러 지방 정부가 쉽게 돈을 빌려 신규 대출의 상당 부분을 불필요한 기반 시설 구축과 건설 사업에 투입했다. 그렇게 해서 지역 GDP는 높아졌지만 장기적인 수익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 결과, 놀랍게도 2011~2013년 중국의 시멘트 소비량이 20세기 100년간의 미국 시멘트 소비량을 넘어섰다.(16) 이 콘크리트 열풍으로 주민이 한 명도 없는 거대 도시들이 전국을 뒤덮었고, 현재의 부동산업계 위기의 불씨가 됐다.

(2010년 20% 이상에서 2018년 12.4%로) 수익률이 하락하자, 과잉 생산과 과잉 투자 문제가 발생했다.(17) 그러자 중국의 경제 주체들(정부, 기업, 은행 등)은 지리학자 데이비드 하비가 ‘공간적 조정(spatial fix)’이라고 부르는 과잉 생산 능력을 외국으로 수출하는 방법을 썼다. ‘공간적 조정’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자본주의 체제의 고전적인 방식이다.

 

‘공간적 조정’을 하는 일대일로 구상

따라서 일대일로 구상은 현장에서 수많은 해석이 난무하는 ‘전략적 비전’을 바탕으로 탄생한 것이 아니라, 외교적 동기가 아닌 경제적 동기에 따라 여러 사업을 한데 묶어놓은 결과라고 봐야 한다. 2014년 당시 외교부 부부장이던 허야페이가 선언한 중앙 강령도 1990년대 초 이후 경제 주체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수립됐다. “수년간 축적된 산업 부문의 과잉 생산이 최근 들어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 이대로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는다면 은행 부실이 쌓이고 경제 생태계가 망가져 산업이 줄도산의 위기를 맞게 될지도 모른다. (...) 중국 정부는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제3차 전체 회의에서 제시된 원칙에 따라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강령을 마련했다. 관건은 우리의 해외 개발 전략과 외교 정책을 바탕으로 초과 생산 능력을 ‘수출’하여 도전을 기회로 바꾸는 것이다.”(18) 그로부터 1년 후, 중국은 모호하기만 하던 일대일로 구상의 공식 정의를 처음으로 발표했다.

 

서방이 부풀린 중국 함정 외교 

당연히 이렇게 규모가 큰 국경 간 투자는 중국과 사업 참여국 관계에 영향을 미친다. 일대일로 구상이 경제적 필요 때문에 추진된다고 해서 외교적 영향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중국 중앙 정부가 정치적 영향을 무시하기는 어렵다. <이코노미스트>에 의하면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중국의 재정 지원을 받는 수혜국들은 점점 더 ‘자신감’을 보였으며, “서구 사회 일각의 희망대로 중국의 새로운 시도를 거부하기는커녕 여전히 반긴다. 일대일로 구상이 중국보다는 동남아시아 지역 지도층의 우선순위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이코노미스트>는 “중국이 상대 국가를 부채의 함정에 빠뜨리는 외교를 할 것이라는 생각은 (...) 부풀려졌다”라면서 “중국의 기업과 은행들은 덜 유리한 조건으로 기존 계약을 재협상하기도 한다”라고 지적한다. 결과적으로 일대일로 구상의 긍정적인 효과는 ‘심오하며 오래 지속될 수 있다’.(19) 외교적 영향에 관한 관측은 다분히 가능성은 있지만, 그렇다고 일대일로 구상의 취지나 전략의 성격을 바꿔놓지는 않는다.

일대일로 구상은 중국의 세계 경제 체제 편입과 직결된 과잉 생산 능력을 공간적으로 조정하는 기능을 한다. 요컨대, 중국이 세계 질서를 전복하려는 것이 아니라 세계 질서에 전적으로 순종한다는 뜻이다. 훙호펑의 저술에 따르면 “중국은 새로운 세계 질서를 주도하기보다는 낡은 질서 속 신흥 강대국일 뿐이다.”

그렇다면 미국은 대체 왜 그렇게 중국을 견제하는 것일까? 세계 질서가 구조와 위계로 이뤄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중국은 미국이 두려워할 정도로 세계 질서의 구조를 위협하지는 않지만, 중국의 무게는 위계를 뒤흔들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그런 위계와 구조 사이에서 미국 정부의 중심은 거의 흔들리지 않는다.

미국은 중국의 부상 덕에 자국 기업들의 배를 불리고 적자를 메우는 등 득을 크게 봤다. 그러다 문득 중국이 자유 무역 게임에서 미국을 앞지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품었다. 금융화와 시장 개방 명령을 비롯한 자유 무역 게임의 규칙은 처음부터 미국의 패권 보장을 위해 설계됐기 때문이다. 미국의 패권을 더 이상 담보하지 않는다면 과거에 ‘매수됐던 경제학자’, 싱크탱크, 그리고 지배 언론이 찬양해 마지않던 이른바 ‘경제 법칙’까지도 싹 뜯어고쳐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어쩌면 중국은 ‘국가 안보’라는 더 큰 명분, 요컨대 미국이 국제 위계질서에서 어떻게든 뺏기지 않으려 하는 패권국의 지위에 순종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2023년 4월 27일,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제이크 설리번은 미국 경제 정책의 변화를 설명하는 가운데, 공산주의 블록 붕괴 후 득세한 자본주의 사상을 여럿 거론하면서 ‘새로운 워싱턴 합의’를 구상할 때가 됐다고 선언했다.(20) 기존 ‘합의’의 목표는 미국이 구축한 ‘국제 질서’에 점점 더 많은 국가를 편입시키는 것이었다. 이런 논리는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지지한 빌 클린턴 대통령(1993~2001)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0년 3월 9일, 클린턴 대통령은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1970년대 중국 방문 이래로 중국에서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설명하면서 새로운 지정학적 변화를 승인해 줄 것을 미국 의회에 촉구했다. “중국의 WTO 가입은 중국이 미국 제품을 더 많이 수입할 뿐 아니라, 민주주의의 가장 소중한 가치로 꼽는 경제 자유를 도입하는 데에 동의한다는 것을 뜻한다.”

 

미국, 국제질서 구조변화로 패권 지키려 

그러나 애석하게도 ‘경제 자유’를 얻은 중국은 약 10년 만에 구매력 평가 기준, 세계 최고의 경제 대국으로 도약했다(미국 중앙정보국(CIA)에 따르면 ‘경제 자유’는 다른 국가들이 시장에 진입하고 ‘경제와 복지를 개선할 수 있는 최고의 기회’).(21) 중국은 자유 무역을 통해 기술을 습득하고 발전할 기회를 얻었고, 바야흐로 미국의 패권을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2024년 1월 30일, 설리번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은 외교협회(CFR)가 개최한 대담에서 “미국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중화인민공화국을 새롭게 구현하고 변화시키려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라고 인정했다.(22) 

그리고 이제는 보호주의에 의존하더라도 “미국의 기초 기술을 보호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강조했다. 2000년에 클린턴 전 대통령은 “경제 안보와 국가 안보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는 주장은 잘못됐다”라고 봤지만, 설리번 보좌관은 이제 반대로 “세계는 국가 안보에 적합한 (...) 국제 경제 체제가 필요하다”라고 주장한다. 국제 질서의 구조를 바꿔 위계를 유지한다는 의미다.

정치 발언이 모두 행동으로 이어지지는 않지만,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의 발언은 2016년 도널드 트럼프 당선 이후로 진행 중인 변화를 확인시켜준다. 억만장자 대통령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2017)에서 탈퇴하고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2020)을 재협상한 이후, 후임 대통령 조셉 바이든은 미국의 보호주의 조치를 더욱 강화했다. 이런 변화는 첨단 기술 분야에서 더 극명히 드러난다. 대표적으로 반도체 및 과학 법(Chips and Science Act, 2022년 8월 9일: 미국 반도체 산업 부양을 위한 2,800억 달러 규모의 프로그램), 인플레이션 감축법(Inflation Reduction Act, 2022년 8월 16일: 신청 기업이 생산 시설을 상당 부분 미국에 두도록 요구하는 3,500억 달러 규모의 에너지 전환 계획), 해외 투자 프로그램(Outbound Investment Program: 2023년 8월 8일, 군사, 감시, 정보 활동 분야에서 중국(홍콩 및 마카오 포함)에 대한 미국의 투자를 금지하는 행정명령)을 꼽을 수 있다.

따라서 세계를 지배하려는 중국의 ‘대전략’이라는 서사는 현실에 기반한 설명이 아니라, 현실을 새로 구현하려는 시도로 읽을 수 있다. 위협이 될 가능성이 있는 적의 목표를 파악하면 자국의 목표를 세울 수 있다. 조셉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세계에서 국제관계에 가장 정통한 학자’라고 부르는 그레이엄 앨리슨 외교관계위원회 위원은 최근 저서에서 이렇게 밝혔다. “미군이 비밀리에 분리주의 세력을 양성하고 지원할 수도 있다.(23) 중국 국가 체제에는 이미 금이 가고 있다. 미약하지만 집중적으로 노력을 기울이면, 차츰 정권을 약화하고, 대만, 신장, 티베트, 홍콩에서 일어나는 분리 독립 운동을 부추길 수 있으며, 중국의 분열을 조장해 중앙 정부가 국가 안정을 유지하기 어렵게 만들 수도 있다.”(24)

이 전략은 적어도 서류상으로 엄연히 존재한다. 하지만 안심해도 무방하다. 미국이 세운 전략이기에 국제 질서를 뒤흔들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글·르노 랑베르 Renaud Lambert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번역·이푸로라
번역위원


(1) David B.H. Denoon, 『중국의 대전략 강대국으로 향하는 로드 맵?(Denoon, China’s Grand Strategy. A Roadmap to Global Power?)』, New York University Press, 2021 /
(2) Niva Yau, ‘일대일로 구상’은 새로운 세계 질서를 위한 중국 전략의 첫걸음에 불과하다(BRI is only first step in China’s strategy for a new world order), <닛케이 아시아(Nikkei Asia)>, Tokyo, 2023년 10월 16일. 
(3) ‘중국, 일대일로 구상 실행 계획을 발표(China unveils action plan on Belt and Road Initiative)’, <신화통신>, Beijing, 2015년 3월 28일.
(4) Brahma Chellaney, ‘중국의 부채 함정 외교(China’s debt-trap diplomacy)’, 2017년 1월 24일.
(5) Edward Luce, ‘미국의 봉쇄에 대한 중국의 주장이 타당하다(China is right about US containment)’, <Financial Times>, London, 2023년 3월 9일.
(6) Susan L. Shirk, 『중국 경제 개혁의 정치 논리(The Political Logic of Economic Reform in China)』,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Berkeley, 1993.
(7) Hung Ho-fung, 『중국 붐. 중국이 세계를 지배하지 못하는 이유(The China Boom. Why China Will Not Rule the World)』, Columbia University Press, 2016. Hung Ho-fung의 인용문은 모두 이 기사에서 발췌했다.
(8) Martin Hart-Landsberg, Paul Burkett; 『중국과 사회주의(China and Socialism)』, Monthly Review Press, New York, 2005.
(9) Shahar Hameiri, Lee Jones et Yizheng Zou; ‘중국 접경지대 개발과 안보의 연결고리: 국가 변혁의 시대의 국가 간 경제 통합 재검토(The Development-Insecurity Nexus in China’s Near-Abroad: Rethinking Cross-Border Economic Integration in an Era of State Transformation)’, <Journal of Contemporary Asia> 제49권, 3호, 2019.
(10) Lee Jones, Shahar Hameiri, 『분열된 중국. 중앙 정부의 변화는 어떻게 중국이 부상하게 했나(Fractured China. How State Transformation is Shaping China’s Ris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21, 이 두 저자의 인용문은 모두 이 책에서 발췌했다.
(11) Lee Jones, ‘국가 변혁 시대의 외교와 안보 정책에 관한 이론 정립: 중국의 새 체제와 사례 연구(Theorizing Foreign and Security Policy in an Era of State Transformation: A New Framework and Case Study of China)’, <Journal of Global Security Studies>, 제4권 4호,  Oxford, 2019년 10월
(12) Zhuoran Li, ‘시진핑의 권력과 한계(The Power–and Limits–of Xi Jinping)’, <The Diplomat>, Arlington, 2023년 11월 18일.
(13) Branko Milanović, ‘시진핑은 마오쩌둥의 재림이 아니다(Xi Jinping is not Mao reborn)’, 2023년 12월 13일, unherd.com
(14) Rosella Cappella Zielinski, Samuel Gerstle; ‘국방비 부담: 미·중국 간의 지정학적 정책 경쟁에 따른 자금 조달(Paying the Defense Bill: Financing American and Chinese Geostrategic Competition)’,  제6권 2호, 2023년 봄, Texas National Security Review, The University of Texax, Austin. 글쓴이는 이 문서를 제공해준 아르노 베르트랑(Arnaud Bertrand)에게 사의를 표한다.
(15) Hidayatullah Kha, Md Nasrudin Md Akhir, Geetha Govindasamy; ‘중국 내 경제 제약의 외부화: 키르기스스탄과 타지키스탄에서의 중국의 공간적 조정(Externalization of Domestic Economic Constraints: China’s Spatial Fix in Kyrgyzstan and Tajikistan, International Journal of China Studies)’, <International Journal of China Studies>,  제13권, 2호, Kuala Lumpur, 2022년 12월
(16) Ana Swanson, ‘중국은 어떻게 단 3년 만에 미국이 100년 동안 쓴 시멘트량을 소비했나?(How China used more cement in 3 years than the US did in the entire 20th Century)’, <The Washington Post>, 2015년 3월 24일.
(17) Junfu Zhao, ‘미·중 기술 전쟁의 정치 경제학(The Political Economy of the US-China Technology War)’, <Monthly Review>,  제73권 3호, 뉴욕, 2021년 7월~8월호.
(18) Hidayatullah Kha, Md Nasrudin Md Akhir, Geetha Govindasamy, op. cit. 
(19) ‘동남아시아, 중국에 대처하는 방법을 배우다(South-East Asia learns how to deal with China)’, <The Economist>, London, 2024년 1월 11일.
(20) ‘바이든 행정부의 국제 경제 의제: 국가안보보좌관 제이크 설리번과의 대화(The Biden administration’s international economic agenda: a conversation with national security advisor Jake Sullivan)’, Brookings Institution, Washington, 2023년 4월 27일. 달리 언급하지 않는 한 설리번(Sullivan)의 인용문은 모두 이 연설에서 발췌했다.
(21) Graham Allison, 『예정된 전쟁. 미국과 중국은 투키디데스의 함정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Destined for War. Can America and China Escape Thucydides’s trap?)』, Scribe, Victoria, 2017.
(22) ‘미·중 관계의 미래에 관한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의 발언과 질의응답(Remarks and Q&A by National Security Advisor Jake Sullivan on the Future of US-China Relations), 미국외교협회(Council on Foreign Relations), Washington DC, 2024년 1월 30일.
(23) 인용된 책의 포켓 판 표지에 언급된 내용
(24) Graham Allison, 『예고된 전쟁(Destined for War)』, op. c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