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의 배신당한 표심 - “우리의 공약은 잊으라”
집권 세력의 주도권 유지를 위해 만들어진 태국 헌법이 얼마 전 그 역할을 톡톡히 수행했다. 2023년 5월 총선에서 승리를 거둔 당이 아닌 다른 당에서 신임 총리가 나왔기 때문이다. (총리 선출권을 가진) 임명직 상원에 막강한 힘을 부여하는 헌법 덕분에 생긴 일이다. 그런데 헌법을 이용한 이 같은 정치 공작이 과연 언제까지 가능할까?
한바탕 난리가 났어야 하는데 신기하리만치 조용하다. 2023년 8월까지만 해도 집권 세력(군부와 왕실)은 탁신 친나왓의 귀환을 막는 데 주력했다. 2001년부터 2006년까지 태국 총리를 역임한 탁신 친나왓은 상당한 인기를 누렸음에도 쿠데타로 축출되어 망명길에 올랐다. 그가 감옥에 가지 않고 복귀할 수 있도록 여동생 잉락 친나왓이 총리 재임 시절 사면을 위해 힘썼으나, 2014년 또 한 번의 쿠데타가 일어나며 사면법 처리가 백지화됐다. 하지만 지난 30년간 정계 분열의 핵심에 있던 탁신이 2023년 8월 23일 다시 태국 땅에 발을 들였음에도 그의 행보에 관심을 두는 사람은 별로 없다. 특히 과거의 정적들마저 무덤덤한 분위기다. 왜 이렇게 상황이 급변한 것일까?
일단 가장 큰 이유는 2023년 5월 14일에 치러진 총선 때문이다. 진보 야당이 총선에서 돌풍을 일으키자 그에 대한 반대급부로 (탁신이 창당한 푸어타이당의) 세타 타위신이 총리에 임명됐고, 이로써 태국의 정치사에는 새로운 전환점이 마련된다. 사실 지난번 5월 선거는 태국 정치권의 대립 구도가 이전과 달라졌음을 확인시켜주는 자리였다. 원래 태국의 정치권은 2000년대 초부터 줄곧 (탁신을 반대하는) 노란색과 (탁신을 지지하는) 빨간색으로 나뉘었지만, 이제는 그보다 세대 간의 갈등이 더 두드러지는 상황이다. 자유 민주주의 진영과 태국식 민주주의 진영으로 나뉜 것이다. 아울러 군부의 정치 개입을 반대하고 군주제를 폐지하려는 움직임까지 나타나고 있어 20세기 초 이후 이 나라의 권력을 장악한 두 세력인 군부와 왕실이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옐로 셔츠’와 ‘레드 셔츠’
사실 2023년 5월 선거에서 승리를 거둔 건 젊은 층이 지지하는 ‘전진당(MFP)’이었다. 전진당은 군주제와 군부 정치 모두를 반대할 뿐 아니라 탁신에 대해서도 은근히 반기를 들고 있다. 정당 색깔이 주황색인 이유다. 그런데 왕실을 지지하는 ‘옐로 셔츠’와 탁신을 지지하는 ‘레드 셔츠’ 모두의 마음을 사겠다면서도 정작 중도적인 전략은 취하지 않는다. 오히려 왕실과 군부, 탁신 가문의 구태의연한 왕조 정치를 싸잡아 비난하며 국민 전체, 특히 청년의 적으로 삼았다.
1,400만 표를 획득하여 40%에 가까운 유효 득표율을 얻은 전진당은 하원 의석 500석 가운데 151석을 차지했다. 2005년 탁신 전 총리가 거둔 득표수(1,800만)에 뒤이어 태국 역사상 두 번째로 높은 기록이다. 푸어타이당은 10석 적은 141석을 획득했고, 군부 계열의 두 정당, 쁘라윳 웡수완 부총리의 빨랑쁘라차랏당(PPRP)과 2014년 쿠데타를 일으킨 쁘라윳 짠오차 총리의 루엄타이쌍찻당(UTN)은 각각 40석과 36석밖에 얻지 못했다. 전통적으로 왕실을 지지해오며 가장 역사가 오래된 민주당의 경우, 25석을 가져가며 완전히 힘을 잃었다.
전통적으로 ‘레드 셔츠’는 태국 북부 및 북동부 지역 서민층으로 구성되며, 탁신 정권에서 전 국민 의료 보험 제도를 시행한 후로는 탁신계 인사를 지지한다.(1) 1유로가 채 안 되는 30바트만 내면 태국인 누구든 의료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방콕 엘리트 계층이 집결한 ‘노란 셔츠’는 사립학교나 외국에서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주를 이루고, 대부분 왕실을 지지하는 친군부 성향의 불교도들이다. 이들은 주로 (왕당파인) 민주당이나 군부 쪽 정당을 지지한다.
전진당의 경우, 이러한 세력 분열에 대한 인식이 없는 청년층을 지지 기반으로 한다. 전진당의 전신은 2018년 창립한 신미래당(Future Forward)인데, 2019년 의회에 입성한 이 당은 그러나 1년 후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해산됐다. 군대와 왕실에 대한 예산 결의를 의회에서 반대했기 때문이다. 아울러 헌법재판소에서는 이 당을 세운 사업가 타나톤 쯩룽르앙낏과 입헌주의자 피야부트르 생카녹쿨에게 10년간 피선거권을 박탈했다.
2023년 총선으로 태국 정계에 대대적인 지각 변동이 일어나긴 했으나, 아직은 그 여파가 제대로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일단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활동가들은 대체로 숨을 죽이고 있는 분위기다. 왕실모독죄로 기소되는 등 각종 법률 조치가 취해지고 있기 때문이다.(2) 게다가 총선에서 승리했음에도 전진당에 대한 반대 움직임이 만만치가 않다. 7월 19일에는 당 대표인 피타 림짜른랏이 헌법재판소로부터 의원 직무 정지 판결을 받았고, 지난 8월 22일에는 양원 합동 표결 결과 연립 정부 구성에 실패했다.
2017년 헌법을 기반으로 한 태국의 제도적 기틀 자체가 애초에 전진당의 당선을 막으려고 마련된 것이었다. 설령 당선이 되더라도 정국 운영 주도권은 갖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도 있었다. 해당 헌법의 초안을 마련한 군부는 이로써 자신들의 권력 유지 수단을 확보한다. 상원 의원 250명을 전부 군부에서 임명하는 데다 경찰과 3군 수장 자리도 쥐고 있었기 때문이다. 태국의 상원은 선출 의원으로 구성되는 하원과 동일한 비중의 총리 임명권을 가지며, 의회 선거를 할 수도, 엎을 수도 있다. 뜻을 같이하는 하원 의원 126명만 모으면 된다. 2022년에는 선거 규정도 수정됐다. 전진당의 기세를 누르고 군부 계열 정당의 권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푸어타이당, 군부 결탁으로 비난 초래
이러한 ‘예방책’이 있음에도 2019년과 2023년 사이 이 젊은 당의 의석수는 줄어들지 않았다. 오히려 두 배로 늘었다. 이 정도면 군부에서 임명한 상원을 배제하더라도 탁신의 푸어타이당이 한 배만 타주면 얼마든지 내각 구성이 가능하다. 그런데 선거 기간 동안 그 어떤 경우에도 군부와 손을 잡지 않고 선거에 이길 정당을 지지하겠다던 푸어타이당이 결국 군부와 동맹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세타 타위신 신임 총리는 의회 표결에 앞서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과거의 우리는 국민들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는 현실적이어야 한다. 우리의 공약은 잊으라”고 말했다.(3)
‘태국 국민을 위한 정당’이란 뜻의 푸어타이당은 이로써 ‘기회주의 정당’이란 본색을 드러냈다.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정당도, 세간의 표현대로 ‘서민’을 위한 정당도 아니었던 것이다. 이 당은 권력 내부에 한 자리 선점할 수 있는 길이라면 언제라도 군부와 손을 잡을 만반의 준비가 되어있었다. 2008년 부패 혐의 판결을 받고 두바이에 망명 중인 탁신을 다시 본국으로 데려와야 했기 때문이다.
물론 당에서 이런 입장을 공식 표명한 건 아니다. 그의 딸 패통탄도 “탁신 친나왓의 귀환은 정치권과 무관한 일”이라고 선을 그었다.(4) 지지층에 대한 배신을 정당화하기 위해 푸어타이당이 내세운 명분은 ‘왕실모독죄에 관한 저 유명한 형법 112조를 개정하려는 정당과 손을 잡는 건 윤리적 측면에서 불가하다’는 것이었다. 이는 왕실을 지지하는 ‘노란 셔츠’파나 군부에서 내세우는 명분과 동일하다. 유권자들에겐 총리 투표권이 없기에 총선 석 달 후 신임 총리로 임명된 건 대중들이 알지도 못하는 세타 타위신이란 인물이었다. 당초 후보 내정자는 탁신의 딸인 패통탄 친나왓이었으므로 그는 애초에 총리 후보로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 다만 친나왓 집안과 면식이 있는 인물이긴 했다. 탁신의 여동생으로서 2011년 총리에 선출된 잉락 친나왓과 “개인적으로 매우 친한 사이”였기 때문이다. 푸어타이당은 친나왓 집안의 가족 정당이라 ‘외부인’으로서 선거에 입후보한 희망자는 배제됐다.
하지만 푸어타이당의 이 같은 행보는 상당한 오판일 수 있다. 태국 국민들은 이제 군부와 결탁하는 것을 더는 용인하지 않기 때문이다. 2019년 선거 후 군부와 연정을 구성한 민주당은 다음 선거에서 참패하고 방콕 시장 자리마저 잃었다. 아마 푸어타이당도 같은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구태의연한 왕조 정치”에 집착한다면 더더욱 국민들로부터 외면당할 것이다.
‘오렌지’ 컬러 전진당, 전국에서 지지 얻어
75% 이상의 참여율을 끌어내며 막강한 유권자 동원력을 보유한 전진당은 비록 선거에서 승리했어도 2019년 선거 후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야권 세력이다. 이는 어찌 보면 지금까지 꽤 비싸게 값을 치른 급진 전략으로 인해 세력이 위축되지 않으면서 당이 존속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기도 하고, 2027년 선거에서 승부수로 작용할 수도 있다. 북부와 북동부 농촌 지역에서 벼농사 짓는 농민을 지지 기반으로 한 푸어타이당의 경우, 교육 수준이 높은 도심 엘리트층의 마음을 사는 데는 실패했다.
그러나 ‘오렌지’ 컬러의 전진당은 전국에서 다양한 계층의 지지를 얻고 있다. 심지어 방콕 지역 선거구는 – 군인들의 투표 지역을 포함하여 - 100% 전진당이 의석을 가져갔다. 물론 2011년 푸어타이당 역시 방콕 외곽 지역을 중심으로 몇 개 선거구에서 승리한 적이 있긴 하다. 하지만 방콕 전체가 왕실과 군부에 만장일치로 반기를 든 건 이번이 처음이다. 수도에서 부는 이 ‘오렌지’ 열풍은 쿠데타가 거듭되는 태국 정치의 악순환을 끊는 의미심장한 신호일 수 있다. 그동안 태국에서는 지방 유권자의 힘으로 총리를 선출하면 도시 유권자들이 시위를 벌여 이를 뒤집어놓고 군대가 개입하는 구조였다. 따라서 맨 처음 태국 헌법이 제정된 1932년 이후, 평균 6~7년마다 한 번씩 쿠데타가 일어났다.(5)
새로 구성된 정부를 군인들이 무너뜨리면 도심 지역에서는 환호와 갈채로 군부를 맞이한다. 2006년 탁신 친나왓 정권이 무너졌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군인들이 무혈 혁명으로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포르투갈 카네이션 혁명 때와 비슷하게 도시 전체가 환희에 들떠 탱크를 맞이했고, 구경 나온 사람들은 꽃으로 포병들을 장식하며 만면에 웃음이 가득한 병사들과 함께 장갑차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2014년 잉락 친나왓 정권을 몰아낸 쿠데타 때는 환호의 열기가 다소 줄어들었지만, 그래도 잉락 친나왓 정부에 대한 반대 시위가 크게 불거진 다음에 일어난 쿠데타이기는 했다.
하지만 또다시 쿠데타가 일어난다면, 왕실에도 반기를 들고 군부에는 완전히 등을 돌린 방콕 시민들이 거리로 몰려나와 쿠데타를 반대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쿠데타가 실패로 돌아가거나, 아니면 미얀마에서처럼 극심한 폭력 진압이 이뤄질 수 있다.
최근의 선거 결과로 봤을 때, 태국에서 왕실을 지지하는 세력은 이제 거의 없는 듯하다. 왕실에 대한 그 어떤 비판이라도 입에 올리는 순간 3년에서 15년 징역형을 살 수도 있는 지금의 태국에서 왕실모독죄를 강화하자고 제안한 왕당파는 선거에서 거의 0점에 가까운 성적을 거뒀다. 반면 제1당인 전진당은 창당 이후 줄곧 왕실모독죄와 군주제 개혁을 당의 핵심 과제로 두고 있다. 전진당은 헌법, 예산, 사회 부문에서 일련의 조치를 취하여 태국의 군주제를 영국식 입헌군주제로 바꾸겠다고 공언했다.
걸림돌은 ‘왕실모독죄’
이러한 변화는 기존 체제는 물론 신임 국왕 마하 와치랄롱꼰에 대한 반감하고도 어느 정도 관련이 있다. 부친이었던 라마 9세 푸미폰 아둔야뎃의 경우, 다르마자(진리의 왕)의 현신으로 군림하여 70년의 재위 기간 중 별다른 스캔들 없이 왕좌를 유지했다. 그나마 문제가 되었던 건 1946년 즉위 직후의 형이 (의도적인 죽음인지 사고사였는지 모를 의문사로) 사망한 사건에 대한 가담 여부, 그리고 1976년 군대가 탐마삿 대학교에서 공산주의를 지지하는 학생들을 대량 살상했을 때 이를 독려 혹은 묵인하여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는지 여부 정도다.(6) 2016년 즉위한 아들은 왕세자로서 공식 행보를 이어온 몇십 년간 주기적으로 성 추문에 휘말렸으며, 그에 대한 국민의 반감은 시간으로 해결되지 않았다. 정치에 개입했다가 문제가 되기도 하고, 공무에 관심이 없어 태국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독일(바이에른 주), 스위스 등지에서 체류할 때도 많았기 때문이다.
이번 선거 결과의 여파로 군부와 왕실이 정치에서 배제되고 그에 따라 주기적인 쿠데타도 사라진다면, 태국 헌재의 미래도 밝아진다. 사실 전진당의 구 총재 피타 림짜른랏와 관련한 재판이 점점 쌓여가는 상황인데, 의원 직무 정지 판결을 초래한 혐의에 대해 올해 1월 24일 헌재가 무혐의 처리하긴 했지만, 그 외에도 판결이 이뤄져야 할 건이 한두 개가 아니다. 왕실모독죄 개정과 관련한 공약이 위헌인지 여부도 재판을 받아야 한다. 만약 헌재에서 이를 위헌이라 판단하면, 정당이 다시 해산될 수 있고 이와 함께 피타 역시 오랜 기간 피선거권을 박탈당한다. (올해 1월 31일, 태국 헌법재판소는 전진당의 왕실모독죄 개정 공약이 위헌이라고 결정했다-역주)
과거 헌법재판소는 내각을 뒤엎는데 별로 개의치 않았다. 때로는 사소한 이유로도 정권을 뒤집었는데, 2008년 사막 순다라벳이 태국 요리 방송에 출연했다는 이유로 그에게서 총리직을 박탈했을 때가 대표적이다. 당시 헌재는 그의 이러한 활동이 적절한 공무 수행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일각에서 ‘사법 쿠데타’라고도 부르는 이 같은 헌재의 결정은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키는 기반이 되었고, 그 결과 2006년 탁신 친나왓 정권과 2014년 잉락 친나왓 정권이 무너졌다.
전진당에서는 존재론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왕실모독법은 태국 헌법 정체성의 주축인가? 2012년, 판사들은 이에 대해 긍정적인 답을 내놓았다. 2024년의 재판부는 어떨까? 태국에서 아직 왕정주의자로 남아있는 이들이 오래전 퇴역했거나 갓 퇴역한 군 고위급 인사뿐이라는 사실을 판결로써 확인시켜줄까?
글·외제니 메리오 Eugénie Mérieau
정치가 및 법률가. 『Constitutional Bricolage : Thailand's Sacred Monarchy Vs. the Rule of Law』(Hart Publishing, Oxford, 2021) 등의 저서가 있다.
번역·배영란
번역위원
(1) ‘Les Chemises rouges de Thaïlande 태국의 레드 셔츠’, 현대 동남아 연구소(Irasec), Bangkok, 2013년.
(2) ‘En Thaïlande, les jeunes face à la monarchie et à l’armée 군부와 왕정에 맞서는 태국 청년들’, <르몽드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21년 1월호.
(3) Panu Wongcha-um & Panarat Thepgumpanat, ‘Thailand’s Pheu Thai joins military rivals in bid to form 11-party government’, Reuters, 2023년 8월 21일, 및 ‘Srettha says has had to eat his words so Pheu Thai can form a government’, Thai PBS World, 2023년 8월 21일.
(4) ‘Thaksin’s return has nothing to do with politics, says daughter Paetongtarn’, <The Star>, Petaling Jaya (Malaisie), 2023년 8월 21일.
(5) David Camroux 다비드 캉루, ‘태국에서의 열두 번째 쿠데타’, <르몽드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2014년 11월호.
(6) Kao Tom 카오 톰, ‘Le coup d’État donne plus de consistance à l’opposition de gauche 쿠데타로 보다 견고해지는 좌파 야당’, <르몽드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1976년 11월호 참고. 군주제에 대한 젊은 층의 반감에 대해 알아보려면 ‘Une nuit de manifestation à Bangkok : ce qui a été tagué puis effacé reste dit 방콕에서 밤샘 시위 – 청년들의 사라진 아우성’, Politika, www.politika.io/f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