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궤멸이 우선, 인권은 나중 문제”

인도네시아의 무자비한 파푸아 식민 지배

2024-03-29     필리프 파토 셀레리에 | 언론인

2023년 9월, 또다시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브라사 강 하구에서 15~18세의 파푸아 청년 시신 다섯 구가 발견된 것이다. 시신에는 곳곳에 총탄 자국이 나 있었다. 발견 장소는 데카이 시 치안 초소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곳으로, 인도네시아군이 관리하는 중앙고원파푸아 주(일명 라 파고)의 야쿠히모 도내 소재 지역이었다.(1) 사실, 석 달 전에도 (파푸아 주 은두가 지역에서)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다. 17세의 청년 작곡가 위티 위뉘가 참변을 당한 사건이었다. 군인들로부터 고문을 당한 그는 상자에 버려져 산 채로 불태워졌다. 같이 심문받은 또 다른 파푸아인 다섯 명은 결국 풀려났지만, 거의 사람이 아닌 처참한 몰골이었다.(2)

인도네시아 의회인 ‘국민평의회(MPR)’ 의장 밤방 수사툐는 “궤멸이 우선, 인권은 나중 문제”라며 진작부터 강경한 어조를 내비쳤다. 2021년 4월 25일, 서파푸아 주를 관할하던 인도네시아 정보국(BIN)(3) 책임자 구스티 푸투 다니가 사망한 지 얼마 안 된 시점에서 한 말이었다. 매복해 있던 서파푸아 민족해방군이 고위급 장교를 살해한 건 인도네시아로서도 처음 겪는 일이었고, 이에 고위급 정치인인 국회의장까지 나서서 살인을 독려했다. 

1965년에 창설된 서파푸아 민족해방군은 자유 파푸아 운동의 무장 세력으로, 1963년 뉴기니섬 서부를 피로 병합한 인도네시아를 몰아내는 것만이 그들 조직의 한결같은 목적이었다. 과거 외무부 장관이었던 수반드리오(1957~1966)는 “파푸아 사람들을 나무에서 떨어뜨릴 것”이라는 발언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로부터 60년이 흐른 지금은 밤방 수사툐 국회의장이 그 뒤를 이어 살인을 호소하고 있다. 과거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파푸아인의 규모 정도인데, 한때 다수였던 파푸아인들은 오늘날 자신들의 고향에서 소수 민족으로 살아간다.(4)

정보국장이 피살된 그다음 날 인도네시아군 당국은 조코 위도도 대통령의 지시로 중앙파푸아 주 푼착 지역의 네 개 마을에 헬기를 띄워 기관총을 난사했다. 이어 2021년 4월 29일에는 아예 서파푸아 민족해방군을 테러 조직으로 선포했다. 이렇게 되면 해당 조직은 2018년 제정된 무자비한 테러방지법의 적용을 받고, 군대는 거의 무제한의 재량권을 갖는다. 단순한 혐의나 추측, 혹은 막연한 의심에 대해서도 인도네시아 군부가 (대통령 승인하에) 마음껏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이다. 이에 국제 앰네스티에서도 “온갖 인권 침해를 자행하고도 처벌받지 않을 이례적인 토양이 만들어진 셈”이라고 지적했다.(5) 

사실, 현 정권 집권 1기(2014~2019) 때만 해도 정부의 태도 완화에 대한 기대감이 있었다. 파푸아 깃발을 흔들었다는 이유로 2004년 15년형에 처한 필렙 카르마를 포함하여 정치범 다수가 석방되었기 때문이다. 그 시절 위도도 대통령이 노린 건 인도네시아 정부의 주요 시책인 파푸아 지역 경제개발 계획에 대한 지역 원주민의 지지를 얻는 것이었다. 그 중 첫 번째 사업이 파푸아 횡단 고속도로 건설로, 장장 4,500km에 걸쳐 서뉴기니 지역을 관통하는 도로를 닦아 이 지역의 무수한 자원(야자유, 삼림, 광물 등)을 캐기 위해 여러 진입로를 마련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로 인해 막대한 국부가 창출되고 풍부한 일자리가 생기겠지만, 이는 대개 파푸아 원주민에 대한 약탈을 기반으로 한다. 따라서 서파푸아 민족해방군은 이에 대해 그 어느 때보다도 격렬하게 반대하는 상황이며, 2018년 12월 1일에는 인도네시아 인부 스무 명을 공사 현장에서 무참히 살해하기도 했다.(6)

 

 

인권감시 기구의 심각한 경고 

그에 따른 여파는 상당했다. 파푸아 문제를 중심으로 정계에서 포퓰리즘 경쟁이 가속화되며 정치권과 종교계가 논란에 더욱 불을 붙였기 때문이다. 재선에 성공한 위도도 대통령이 집권 2기(2019~2024)를 맞이하자 곳곳에서 강경화의 징후가 보였다. 가장 당혹스러웠던 것은 국방부 장관 인사였다. 지난 두 차례의 대선에서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었던 프라보워 수비안토가 국방부 장관으로 임명됐기 때문이다. 수비안토는 인도네시아군 출신 정치인으로, 동티모르 학살의 주범이었던 독재자 수하르토의 전 사위였던 인물(7)로 이번 대선에서 당선이 유력하다. 인도네시아 헌법에서는 대통령의 세 번 연임을 금하여 위도도 대통령의 임기는 이번에 만료된다.

어쨌든 그간의 행보로 드러난 인도네시아 정부의 의중은 분명하다. 인권은 더 이상 대통령의 큰 관심사가 아니다. 수비안토의 국방부 장관 임명에 더해 2022년 말에는 유도 마르고노 제독을 인도네시아군(TNI) 수장직에 앉혀 파푸아 지역의 치안 강화를 명했다. 이로써 폭력이 또 다른 폭력을 낳는 악순환의 상황이 펼쳐졌으며, 이를 우려하는 비정부기구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인권 감시 기구 ‘휴먼 라이츠 모니터(HRM)’를 비롯한 일각에선 이미 경고의 목소리를 높이며 관련 기록 자료를 내놓는 상황이다. 심지어 HRM 측에선 보고서 제목을 아예 “궤멸이 우선, 인권은 나중 문제”라고까지 썼다.(8) 이러한 비정부기구의 실태 조사는 더없이 중요한데, 현장 보도가 엄격히 제한된 지역 내에서 민간인이 처한 상황을 보기 드물게 조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HRM의 보고서는 위성 사진을 근거 자료로 제시하는 한편 다양한 조직망이나 현지 독립 언론(Jubi, Suara Papua)을 통한 자료로 내용을 보강함으로써 파푸아 지역 은가룸(페구눙간 주 키위로크 지역)의 상황을 자세히 전해준다. 파푸아 횡단 고속도로 건설 현장으로 쑥대밭이 된 이곳에선 서파푸아 민족해방군과 대치하던 인도네시아 치안군이 여러 차례 공중 폭격을 퍼부었는데, 동 보고서는 당국의 지속적인 위협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내용을 상세히 기술했다. 

 

2021년 9월 중순에서 10월 말, 5㎢ 이상 되는 구간의 마을 여덟 곳은 헬리콥터에 장착한 대형 기관총과 박격포(세르비아제 81 mm)의 공격으로 건물 206채가 붕괴됐다. 폭격의 주된 표적은 교회나 성당이었는데, 이 지역의 인권 침해 현황을 자료화하고 외부에 알리는 데 주된 역할을 해온 이들이 바로 신부나 목사들이었기 때문이다. 학교는 물론, 그동안은 위성 사진에 노출되지 않도록 지붕에 대한 직접 사격은 피해왔던 민가의 가옥도 이 폭격의 대상이 됐고, 마당이나 논밭, 가축우리 같은 곳도 공습의 피해를 받았다. 파푸아 주민 2,252명은 마을을 빠져나와 열대 우림으로 피신했는데, 피난민들은 궂은 날씨에도 먹을 것이나 덮을 것 하나 없이 당국의 철저한 무관심 속에 방치되어 있다.

하지만 극한의 생존 환경임에도 마을로 다시 돌아갈 엄두를 내는 사람은 거의 없다. 표적을 찾는 저격수나 드론 레이더망에 걸리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고원 지대라도 의료 시설은 몇 곳 있었지만 대개 군인들 차지였고, 아직 형태가 남은 건물 몇몇도 주위의 모든 통행을 통제하는 치안 초소로 활용됐다. 여기저기에서 치안대가 돌아다녔으며, 파푸아 주민은 시도 때도 없이 불려가 폭언을 듣거나 죽도록 매질을 당했다. 지난 10월 12일 사망한 아미네랄 카바크도 그중 하나로, 강간을 당한 뒤 신체까지 훼손된 이 여성은 매질 속에서 목숨을 잃었다.

 

 

인도네시아의 무관용 정책, 갈등 증폭

인니 정부의 이 같은 무관용 정책은 식민 정책에 맞선 소수 민족의 분노를 자아내며 무력 분쟁이 중앙고원 지대 너머로 확산하는 추세다. 파푸아 지역은 최근(2022년 11월)의 행정 분할에 따라 6개 주로 나뉘었는데, 이에 병행하여 관련 시설과 함께 현지 공무원도 대거 늘고 군사 시설과 무력 분쟁도 동반 증가했다. 인도네시아 정부가 현지 자원의 신규 채굴 허가권을 ‘치안’ 병력에 부여함으로써 군사 갈등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결과다.(9)

그 후 마을을 벗어나 피난처에서 살아가는 주민은 7만 6,228명에 달했고, 2021~2022년 사이 745명이 이미 목숨을 잃었다. 고원 지대라 먹을 게 부족한 상황에서 기후 변화 문제까지 겹치니 현지 주민들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그런데 한 가지 풀리지 않는 의문은 이러한 현상이 왜 서뉴기니 지역에서 60년째(1963~2023) 지속되느냐는 점이다.

인도네시아의 서뉴기니 식민 지배를 주의 깊게 살펴본 (몇 안 되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곳에서 해마다 살인이 거듭되는 인종 청소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는데 주시한다. 이미 집계된 피해자만 해도 (낮게 잡아) 30만 명 이상이다. HRM이 (보고서를 통해) 상세히 조사한 키위로크 지역에서 벌어진 인권 유린 상황만 하더라도 국제형사재판소에 관한 로마규약(7조)에서 정하는 ‘인도에 반한 죄’에 해당한다. 심지어 세 개의 범죄 구성 요건을 성립하는데,(10) 첫 번째는 ‘살해’고 두 번째는 ‘절멸’로, 이는 “주민의 일부를 말살하기 위하여 계산된, 식량과 의약품에 대한 접근 박탈과 같이 생활조건에 대한 고의적 타격”을 말한다. 세 번째는 ‘주민의 추방 또는 강제이주’인데, 이는 “국제법상 허용되는 근거 없이 주민을 추방하거나 또는 다른 강요적 행위에 의하여 그들이 합법적으로 거주하는 지역으로부터 강제적으로 퇴거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정도의 심각성으로 보건대 이러한 반인도적 행위는 ‘강행 법규’의 적용을 받는다. 인도에 반한 죄는 모든 국가에 구속력을 갖는 강제 규범으로써 다스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로마 규정을 비준하지 않은 것은 물론 국제형사재판소의 관할권도 인정하지 않는 인도네시아라 해도 예외가 되진 않는다. 그런데 인도네시아도 인권에 대한 부분이 신경은 쓰이는지 이스라엘의 대팔레스타인 정책에 대해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물론 유엔 인권이사회 이사국(임기 2024~2026)에도 입후보했다. 이번에도 뽑히면 여섯 번째 선임이다. 인도네시아가 인권 이사국으로 재선임되는 것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놀랍게도 이는 이미 현실이 됐다. 유엔 192개 회원국 가운데 186개국의 승인을 얻었기 때문이다.(11) 인도네시아로서는 기록적인 성과이나 파푸아로서는 또 한 번의 국제적인 참사이다. 하지만 누군가 이미 말하지 않았던가? “궤멸이 우선, 인권은 나중 문제”라고 말이다.

 

 

 

글·필리프 파토 셀레리에 Phlippe Pataud Célérier
저널리스트 겸 작가, 아시아 현대예술 전문가.

번역·배영란
번역위원


(1) ‘Australian advocacy group condemns killing of 5 West Papuans — challenges Canberra’, <Asie Pacific Report>, 2023년 9월 17일.
(2) ‘The kids had all been tortured : Indonesian military accused of targeting children in West Papua’, <The Guardian>, London, 2023년 9월 25일. 
(3) John Saltford, The United Nations and the Indonesian takeover of West Papua, 1962-1969, Routledge, New-York, 2003. 
(4) ‘파푸아 독립운동에 나선 소수 민족 파푸아인’, <르몽드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2015년 4월호.
(5) 2018년과 2020년 사이 인도네시아 군경이 저지른 불법 살인의 피해자 수는 80명 이상이다. ‘‘Terrorist’ designation shows govt’s failure to address root of Papua’s problems’, Amnesty International, 2021년 4월 30일.
(6) ‘Massacre in Nduga : Indonesia’s Papuan Insurgency’, The Diplomat, 2018년 12월 24일. 
(7) ‘What ever happened in Kraras, Timor Leste, ‘Pak’ Prabowo ?’, The Jakarta Post, 2013년 12월 20일.
(8) ‘Destroy them first…discuss Human rights later’, Human Rights Monitor, 50 pages(PDF), Wuppertal, 2023년 9월.
(9) ‘Displaced and Disempowered : Military expansionism at the cost of civilian lives’(PDF), TAPOL, 2023년 10월. 아울러 ‘미국 기업, 파푸아 구리 약탈’, <르몽드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2023년 2월 기사도 함께 참고.
(10) 유엔 웹페이지 ‘반인륜범죄’ 참고.
(11) Jayanty Nada Shofa , ‘Indonesia Reelected at UN Human Rights Council with Most Votes’, Jakarta Globe, 2023년 10월 11일.